글을 잘 쓰려면 자신의 이야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유홍준 교수께서 말했다.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할까. 좋아하는 이야기도 일종의 흐름이 있다.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아픔에 관한 이야기, 내가 망한 이야기,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권선징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착한 것만을 권할 수 있냐는 것이다. 나아가서 착한 사람이 흥하고 나쁜 사람이 망하는가 한다면 오히려 그 반대다.
정말 착해야 하는 걸 권해야 할까. 착한 콤플렉스가 얼마나 무섭냐면 카렌 카펜터가 그것 때문에 결국 거식증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으로 갔다. 어릴 때부터 착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오빠 말을 잘 들어야 하며 커서도 재능이 있는 오빠의 그늘에 가려 앵무새처럼 만들어준 노래만 불렀다.
결국 카렌이 죽음으로 해서 사람들은 카펜터스의 불행을 흥미로 몰고 갔다. 언론과 출판사는 카펜터스의 불행을 팔고 사람들은 카렌의 불행을 먹고 즐거워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흐름이 있다. 한동안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자기 경험을 쓴 글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우울증이 걸리지 않았더라도 우울함은 누구나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은 건 알았지만 이렇게나 많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데뷔도 많이 했다. 우울증에 관한 경험 에세이가 나왔는데 겉표지부터 내용이 대부분 비슷하다. 예전 번아웃에 관한 글이 유행일 때 나온 에세이가 다 엇비슷한 것과 같았다.
이혼에 관한 글은 시대를 막론하는 스테디셀러다. 이혼하면서 홀로 아이를 키우며 빚까지 다 갚은 이야기는 이혼을 한 사람은 물론 이혼하지 않은 사람까지도 사로잡았다.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이혼을 해 본 적 없는 내가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던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는데 우울증에 걸린 이야기를 쓰는 건 이상하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이라면 나는 글을 잘 쓰는 것에 대한 욕심은 버려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