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블란쳇을 떠올리게 하는 소녀소년한 얼굴의 에릭 마틴이 내지를 때 나오는 그 허스키한, 그로울링 한 음색에 반했던 것 같다.


그런 음색은 매력적이다. 존 본 조비가 그랬고, 에어로 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가 그랬고, 우리나라로 치면 지 드래곤의 삐딱하게 할 때 음색이 그랬고,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 그 시절의 음색이 그랬고, 마야의 음색도 그랬다.


남자들의 전유물 같은 글램록 세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빅센의 자넷 가드너 누님의 음색도 매력을 넘어서 마력적이었다. 이 누님들 비주얼은 요즘의 인공지능도 울고 갈 모습이었다. 빅센은 리처드 막스가 프로듀서 하면서 그야말로 수면 위로 빵 떠올라 자넷의 허스키한 노래들이 세계를 강타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에서 유명한 미스터 빅의 노래들 말고 이들의 진가는 터질듯한 폭주기관차처럼 헤비헤비한 메탈 곡들이다.


리더이자 베이스 빌리 시한은 화려한 주법으로 베이스를 장난감처럼 막 가지고 놀았다. 기타리스트들보다 베이스를 더 화려하게, 손가락이 춤을 추다가 급기야 드릴 신공으로 연주를 해버렸다.


당시의 잘 나갔던 록스타들은 전부 일본에서 공연했다. 후에 미스터 빅은 한국에서 자신들의 곡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한국을 찾아 공연도 하고 23년인가 고별무대도 서울에서 했다.


에릭 마틴은 나이가 들었지만, 음색이 그대로라서 좀 놀랐다. 그러나 밴드에서 나이가 들면 보컬은 힘들고, 고생이다. 본 조비도 한국에서 이제 나는 올웨이즈를 부를 수 없지만 한국에서 이 노래를 너무 사랑해서 안 올라가지만 불러 보겠다고 했다.


드럼의 팻 토페이는 파킨슨병을 앓다가 19년도에 세상을 떠났다. 기타의 폴 길버트는 다섯 살 때부터 기타를 친 건 유명하다. 폴은 기타 학교 지아이티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고 속주 전쟁에는 늘 참여해 기타 속주세계를 평정했다.


역시 미스터 빅의 빠르고 신나는 곡 ‘데디, 브러더, 러버, 리틀 보이’를 연주할 때 빌리 시한과 드릴 신공을 보여주어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미스터 빅은 일본에서도 사랑을 듬뿍 받았고 일본 공연도 많이 했고 폴 길버트 아내도 일본인이다. 이제 다시 미스터 빅의 완전체를 볼 수 없지만 그들의 음악이 있어서 행복했었다. 

미스터 빅의 한창때의 곡을 들어보자.  

Daddy, Brother, Lover, Little Boy https://youtu.be/46BCpSJKIjw?si=aLf6M7hMIr6zMh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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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2-08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스터 빅의 wild world를 잊지 못하는 건 동인천 화재 사건 때문입니다. 대학 시절 가끔 고향친구가 인천에 오면 동인천 골목의 라이브 카페에서 술을 마시곤 했는데 그때 늘 신청하던 곡이 wild world 였어요. 작은 라이브 무대 옆 큰 스피커 자리라 대화도 못하고 노래를 귀가 먹먹하도록 듣곤 했었죠. 졸업후 동인천 화재가 발생했는데 그때 가장 많은 학생이 죽은 장소가 그 카페 바로 스피커 자리였죠.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그 노래와 함께 그 장소가 잊혀지지 않더군요.

교관 2025-02-09 12:23   좋아요 0 | URL
그런 아픈 기억이 있으시군요. 와일드 월드가 어딘가에서 들리면 그때가 생각이 나는 게 그럴 것 같아요. 사연을 들이니 꼭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듣는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