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멤버들과 자주 가는, 영화를 틀어주는 카페가 있었다. 대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로 극장에서 잘 볼 수 없는 영화를 주로 틀어주었다.

상영관에 걸리지 못하는 이류 문화를 지향하는 영화나, 철 지난 예술영화 위주로 틀어주는 카페였다. 소규모 상영관 같은 곳이었다.

그곳은 몇 주 동안 포르노물이나 음악에 관련된 다큐를 상영할 때도 있었고, 누벨바그의 고다르 영화가 잔뜩 나오기도 했다.

이런 영화들이 대체로 따분하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대학생 대부분은 이곳을 찾지 않았다. 대학교 밴드나 음악을 하는 고등학생 밴드부, 각 학교의 문예부, 영화에 심취한 외톨이들과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서로 모르지만,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알 수 없는 위로를 서로에게 건네고 받곤 했다. 나이와 생김새는 다르나 어떤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묘한 곳이었다.

그날은 영화 ‘졸업’을 상영하는 날이라 일요일 오전부터 그곳을 찾았다. 우리는 몽땅 졸업의 마지막 장면을 좋아했다. 졸업의 마지막 장면은 현실 파괴의 동기부여가 되었고 이상주의자였던 우리에게 이상적인 영화였다.

오전 열 시에 영화는 시작한다. 공간은 협소했다. 스무 명 정도가 앉을 수 있고 벽장같이 생긴 벽에 프로젝트 빔으로 빛을 쏘아 영화를 틀기 때문에 극장에서 보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고3이었다. 이렇게 몰려 다는 것도 이제 마지막일지 몰랐다. 빔에서 쏘는 빛을 타고 먼지의 입자들이 춤을 추었다. 그 먼지를 따라 영화 ‘졸업’에 빠져들었다.

벤저민과 일레인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였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들이 영화를 꽉 꽉 메웠다.

우리가 영화 졸업을 보게 되는 건, 일탈에 성공한 벤저민과 일레인의 웃음기가 미묘하게 걷히면서 앞으로 닥쳐올 암울한 현실의 불안함을 암시하더니, 그나마 남아있던 행복한 표정이 완전히 사라진 장면에서 두려움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성 가치와 부조리에 학생이라는 특권적 시효 상실과 언젠가 닥쳐올 자기 자신에 대한 호기심 고갈이 막연하게나마 영화를 통해서 엿볼 수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때는 어렸지만, 그 충격파를 견디기 위해, 충격을 몸과 마음으로 흡수하기 위해 우리는 영화 졸업을 3년 내내 몇 번이나 봤다.

그리고,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동시에 슬픈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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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1-1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노래가 MRS.ROBINSON 이었던가요. 다른 노래보다도 졸업하면 이 노래가 먼저 떠오르네요.
전 예전 영화관에서 가장 그리운 것이 영사기 빛의 일렁거림입니다. 뭔가 아스라한 느낌이랄까요.

교관 2025-01-20 11:41   좋아요 0 | URL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가 나오는데 묘하죠 ㅎㅎ. 정말 기묘하게도 노래가 너무 부드럽고 좋은데 이 좋은 거 금방 끝날 것 같은 느낌.

아스라한 느낌,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