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집에 팔린 오츠야의 등에 거미여인의 문신을 강제로 당하면서 점점 색시가 흐르고 남자들을 후려가는 이야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을 66년에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원래 문신은 아주 짤막한 소설인데 영화의 내용은 준이치로의 여러 소설에서 가져 온 것 같다.

자막을 영어로 되어 있는 걸 봐서 미치는 줄 알았는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내용을 떠올리며 영어단어 뜨문뜨문, 뭐 그렇게 해서 봐도 아주 재미있게 봤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은 탐미소설의 절정을 보여준다. 소설들을 읽어보면 뭐랄까 애간장이 타들어가면서 어쩌지 못하게 만드는 주인공 여자들이 잔뜩 등장한다. 활자인데 마치 여자의 섹시미가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마광수가 사라의 손톱에 집착했다면 다니자키는 여자의 발에 집착을 한다. 근데 영화에서는 그렇게 발에 집착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 게이샤 오츠야 역으로 당대 일본의 최고의 여배우 와카오 아야코가 나온다. 묘한 섹시함을 뿜어낸다. 돈 많은 상인의 딸 오츠야는 점원인 신키치를 사랑하지만 부모가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두 사람은 야반도주를 한다.

두 사람은 한 숙소에 묵는데, 숙소의 주인은 신키치 몰래 오츠야를 기생집에 팔아 버린다. 마취를 시키고 포박을 해서 가마에 실어 데리고 간다. 그리고 사람들을 시켜 신키치를 만취시켜 죽여 버리게 한다.

오츠야가 실려간 곳에는 세이키치라는 화가가 있는데 그림보다는 주로 문신을 새기고 있다. 그의 소원은 미녀의 몸에 혼을 담아 문신을 새기고 싶어 한다. 그런 오츠야를 보게 된 세이키치는 그녀의 등에 거미여인을 문신한다. 거미여인의 얼굴은 마치 오츠야를 닮았고, 거미는 꼭 살아서 움직일 것만 같다.

마취에서 깨어난 오츠야는 고통을 이겨낸 후 점점 색시미가 강하게 풍기는 마성의 여자로 바뀌어 게이샤로 이름을 떨친다. 점점 더 많은 남자들이 돈을 들고 오츠야를 찾아온다. 남자들은 오츠야를 서로 가지려 하고 오츠야는 남자들을 후린다.

죽음을 당할 뻔했던 신키치는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죽이면서 자신은 살인을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오츠야를 찾아간다. 오츠야를 만난 신키치는 같이 도망가서 살자고 하지만 오츠야는 이미 마성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자신을 팔아넘긴 남자를 후려서 그의 아내를 죽이게 만들고, 신키치에게 그를 죽이게 한다. 신키치는 점점 죄의식으로 고통받지만 오츠야는 신키치도 후린다.

게이샤로 돈을 엄청 벌어들이며 빚도 전부 갚은 오츠야는 점점 마성의 여인이 되어 가고, 신키치는 그런 그녀의 곁을 벗어나지 못하며 도망가자고 하지만 늘 오츠야의 후리기에 놀아난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을 읽어 보면 대체로 이런 장면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주인공 여자들에게 점점 꼬여 들어가는 남자들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 답답하면서 그놈 참 잘 됐네,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기묘하다.

신키치는 오츠야의 후리기에 넘어가서 점점 더 오츠야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럴 때마다 오츠야는 자신의 몸을 안게 하며 후리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의 등에 있는 거미여인이 꼭 움직여서 신키치에게 독을 퍼트리는 것만 같다.

마지막에는 [그 당시로는] 충격적인 결말을 맺는다. 사무라이 영화가 아니라 칼부림이 요즘 보기에는 뭐야? 9세 아이들의 칼싸움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와카오 아야코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하얀 살갗에 새겨진 거미여인의 문신과 오츠야의 색기에 넘어가는 남자들의 최후를 보시라.


https://www.youtube.com/watch?v=gb9DKq21r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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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얘기 해줄게. 예전 하루키 모교 기증의 기사가 대대적으로 났었잖아. 하루키는 자신의 유산을 모교인 와세다 대학에 몽땅 기증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먼저든 생각은 멋있다,였지.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서 공부만 바라보는 일본 사회와 배울 것이 없다는, 일본 축소판인 와세다 대학을 깎아내리면서도 실은 마음 깊은 곳에는 애정을 잔뜩 가지고 있었어. 필시 하루키는 자신처럼 범우주적이고 현실에서 약간 비켜가 있는 학생들에게 지식의 채집보다는 감정의 터득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의 유보로 자신의 유산이 학생들에게 골고루 전달되리라는 생각을 했을 거야. 멋져 멋져 ㅋㅋ 멋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팬으로 이내 시무룩해졌어. 유산기증, 같은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이제 하루키도 소설을 고작 한 두편 정도 집필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13년도에 몇 년 만에 장편소설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출판되었을 때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은 들썩였어. 다자키의 이야기가 나오기 이전에는 하루키는 없는데 하루키에 관한 책들이 쏟아졌었지. 

하루키를 좋아하세요? 같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패러디와 사람들은 카페의 구석진 곳에서 하루키를 논하고 출판사에서는 하루키가 없는 하루키에 대한 책들이 출간되었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그의 소설을 이야기했지. 그 속에 나도 있었고 하루케스트인 스니들도 있었겠지.



다자키 이야기는 일본에서 1주일 만에 100만 부가 팔렸고, 발간된 4월 12일 도쿄 시부야 구에 있는 서점 다이칸야마 쓰타야에서는 그날 자정에 카운트다운 행사까지 열었지. 내용조차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 주문이 50만 부나 되었어. 소설 속에 흐르는 리스트의 ‘순례의 해‘ 음반까지 덩달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국에 그럼 하루키만 한, 하루키만큼 좋아했던 소설가는 없었을까.

실은 무라카미 류도 있고,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도 한국이 좋아하는 작가들이었어. 하지만 왜 그런 지 13년, 그 즈음을 기점으로, 아니 조금 더 이전부터 신드롬의 주인공은 오직 하루키였지. 지금 현재 하루키를 제외한 신드롬을 일으키는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어졌어. 

한국에는 하루키 이전의 신드롬을 밀란 쿤데라가 차지하고 있었어. 사랑은 운명이라 믿는 테레자와 사랑은 그저 우연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토마시와 그 사이에 매력적인 사비나와 찌질한 남자 같은 프란츠는 지구에 있는 인간 유형을 전부 드러냈지. 사람들은 밀란 쿤데라의 3인칭 같은 1인칭적이며 작가의 화법이 등장하는 등, 소설의 작법을 이렇게 와그작 무너트린 그를 몹시 좋아했어. 그 자리를 조용히 비집고 하루키가 들어왔지.

사회운동의 시대가 저문 90년대 중반 대학가에서 하루키 붐이 불기 시작했어. 시대, 사회를 말하는 한국 소설보다 말보로와 싱글 몰트 위스키의 하루키는 그야말로 매혹적이었지. 


밀란 쿤데라를 읽으려면 니체의 영원회귀와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를 알아야 했지만 하루키는 비틀즈, 레이먼드 카버 등 20세기의 것들로도 충분했지. 매력적일 수밖에.

야나첵과 베토벤, 리스트가 등장하지만 음악을 철학적으로 연결 짓는 어리석은 짓을 하루키는 하지 않았어. 그러면서 망가지지 않고 작가의 본분은 반복된 루틴이라는 명제하에 철저하게 정돈되고 질서를 유지한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했고 사람들에게 하루키는 매혹을 넘어 신드롬이었지.

그러나 신드롬이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야. 신형철은 하루키는 한국에서 문화적 현상에 한정해 하루키를 바라보는 관점은 시효가 다 되었다고 말했는데. 진지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는데 요컨대 눈과 손이 가지 않음에도 이 신드롬 때문에, 모두가 읽으니까 할 수 없이 읽으며 감정을 소모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어때? 스니들? 

그것은 영화 ‘조커’와도 비슷해. 조커처럼 우울하고 폭력적인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칭찬 일색인 그 영화를 봐야만 인스타그램에 인증 사진을 올릴 수가 있는 것이고 사람들과 한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거지.

중요한 건 하루키 팬들아 하루키 소설은 이제 고작 한 편? 두 편? 정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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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8-29 1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것도 하루키가 자식이 없으니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어쨌든 그 학교 특별히 문학부 다니는 사람은 자부심이 대단할 것 같습니다. 근데 하루키가 여전히 좋다면 아직 젊다는 거 아닌가 싶기도합니다. 하루키가 늙은 사람은 잘 등장시키지 않찮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나이들수록 하루키가 여간해서 잘 안 읽게 되더군요. 그래도 이 양반은 죽을 때까지 한 두권의 책이라도 계속 쓸거 같습니다. 그게 진짜 작가죠. 하루키가 진짜 난 사람은 난 사람이죠. 존경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교관 2024-08-29 11:38   좋아요 2 | URL
현재는 개관한 하루키 문학관을 보러 한국에서도 하루키스트들이 엄청 가고 있어요. 하루키의 소설, 세계관, 음악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하루키는 현재 도쿄 라디오에서 [무라카미 라디오] 디제이도 하고 있는데 청취률이 높고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되고 있어서 여전히 인기는 좋아요

stella.K 2024-08-29 11:42   좋아요 1 | URL
교관님도 조만간 가시겠네요. 하루키 문학관 찍은 사진 볼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하루키의 ‘소울메이트’의 일본 원제는 ‘꿈에서 만납시다’야. 말 그대로 꿈에 나타나는 기묘하고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래서 더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적어 놓은 글이야.

하루키 본인도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어. [단편집도 아니고, 에세이집도 아니다. 그렇다고 잡다한 원고의 모음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이상한 책]이라고 했어. 말 그대로 아주 이상한 책이야.

이 비슷한 책이 하루키의 ‘밤의 거미원숭이‘인데 초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잖아. 마찬가지로 초현실적인 이야기가 가득한 꿈 같은 책으로 그 책에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삽화가 있어. 다음에 리뷰를 하도록 하고. 이 ‘소울메이트’의 출판사는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해.

이 책에는 스티븐 킹의 단편이나 트루먼 카포티의 초기작 같은 느낌이 들어. 코카콜라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잠에서 깨어나니 현관매트가 되어 있기도 하고. 현관 매트로 변한 주인공은 찾아오는 예술적 동료와 여자친구가 성가시게 하지 않아서 이대로도 괜찮군, 하는 내용이 잔뜩 있거든. 그러니까 스티븐 킹의 단편에서 기괴하고 요물 같은 일들이 이 소울메이트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거지.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페이지 표시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차례차례 읽기보다 탁 펼쳐서 그냥 눈에 들어오는 대로 읽는 것이 편해. 게다가 하루키 말고 더 골 때리는 카피라이터 이토이 시게사토의 글도 반 정도 있어서 누가 쓴 글인지 맞추는 것도 재미있어. 이토이 시게사토는 분명 골 때리는 카피라이터인데 목소리 한편, 단역 한편으로 출연한 것으로 자기소개에 영화배우라고 당당하게 소개하고 있는 괴짜.

이 책은 어떤 면으로 문제가 많은 책일지도 몰라. 하루키가 습작 시절 없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바로 신인상을 타고 출판사의 편집자 옆에 불려가서 들었던 말이 ‘이 소설은 문제가 많아요, 하지만 뭐 한 번 해보세요’라는 말을 들었잖아. 하루키는 자기 자신이 문제가 많은 인간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고, 문제가 많은 인간이 문제가 많은 소설을 쓰는 게 이상한가?라고 생각을 했지.

생각해보면 작금의 시대에 문제가 없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문제가 없는 곳이 없어. 그게 참 문제야. 세상의 모든 곳이 문제가 많아. 그래서 문제가 많은 ‘소울메이트’를 읽고 있으면 거짓말 없이 세상일은 잊게 될지도 몰라. 왜냐하면 꿈이 바로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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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팬들, 하루키스트 모여봐. 하루키의 소설 ‘하나레이 만’ 읽어본사람? 그거 영화로 만든 ‘하나레이 베이’는 봤어? 


하나레이 베이에 서핑을 하러 간 아들이 상어에게 물려 죽고 난 뒤 사치는 그곳을 찾아가잖아. 

하나레이 베이 속 사치는 아들을 잃고 그곳에서 텅 비어버린 공백에 대해서 생각을 해. 하루키의 대부분 소설에서 주인공은 누군가를 잃잖아. 나오코를 잃고, 키키를 잃고, 쥐를 잃고, 연상의 그녀를 잃고, 다자키는 친구들을 잃고, 엄마와 누나를 잃은 다무라 카프카 녀석, 멘시키는 아내를 잃고, 에이코를 잃은 토니타키는 생각하지.



들어온 만큼 뺐는데 원래의 구멍은 이전보다 더 커져 있다고. 그간 소설 속에 등장한 주인공은 왜 그런지 읽고 있는 독자의 이야기 같아. 하루키의 소설 속에는 우리가 보통 느끼는 상실에 대해서 여기저기에 이야기해 놓음으로써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텅 비어버린 이상한 공백과 공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거든.


그리고 그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건 돈이나 명예가 아닌 사람이라고 말하지. 밝지만 우울한 미도리, 묘한 매력의 오시마와 사에키, 다자키의 사라, 스미레, 아오마메와 덴고, 아키가와 마리에 등 사람으로 인해 생겨버린 공백은 사람이로 메꿔야 한다고 절실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모든 소설 속에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흔들림 없는 진실보다는 오히려 흔들리는 가능성을 선택하는 게 옳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해.


어쩌다 보니 정작 하고 싶었던 영화 ‘하나레이 베이’ 이야기는 못 했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주인공 사치처럼 사랑하는 이를 잃게 돼. 화면 속 사치를 따라서 가다보면 사치의 결락을 느끼게 되어서 울컥하다가 동시에 위로를 받거든. 슬픔이란 파도 같은 것이고. 준비되지 않는 모성으로 아들을 키우다 결국 아들을 잃어버린 상실을 깨달았을 때의 사치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해.


마지막 장면 아들이 남겨 놓은 카세트를 들으며 사치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는데, 그때의 사치 감정을 마음대로 한 번 써 봤어.




내 마음에 뚫린 공백은 나도 알 수 없다. 길을 잃어버려 뱅뱅 맴도는 느낌일 뿐이다. 이 공허하고 손에 닿을 것 같은데 끝에 도달 할 수 없는 이 기분을 어떻게 할까. 나는 10년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일까. 나는 누구이며 누군가의 엄마였고 어떤 남자의 아내였다. 병신 같은 남편이 듣던 헤드 셋이 아들을 건너 내가 결국 듣고 있다. 앞이 보였던 내 인생을 깡그리 망가트리고 깨버린 내 삶에 들어온 남자들을 증오한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남자들은 나에게 먼지만큼도 행복을 주지 않았다. 타카시를 가진 것을 알고도 마약에 빠져 있던 남편도, 남편의 모습을 그대로 물려받은 타카시도 어쩌면 내가 원하는 바대로 신이 있다면 신이 데리고 가버렸다. 낡은 티브이처럼 죽은 후에도 하얀 빛이 화면위로 깜빡깜빡 헤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경우처럼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성실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불성실한 먼지가 안개처럼 가득 껴서 주변을 떠돈다. 남편과 타카시를 떠올리면 그렇다. 불성실한 공기다.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없는 이미 들어와 버린 내 인생의 낙인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린 그 남자들이 듣던 헤드 셋을 끼고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들이 내게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욕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나도 모르는 새. 그리고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소리 내어 울고 싶지만 나는, 나는 바보라서... 다리 한 쪽이 잘린 일본인 서퍼를 본 순간 나는 내 마음 속의 공백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내 자신이 먼 옛날에 죽어 풍화되어 바짝 말라버린 거대한 생물의 미궁과도 같은 체내를 방황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서 나는 시간의 구멍을 빠져나와 그 한가운데에 쑥 빠져버렸지만 타카시가 듣던 음악을 듣는 동안 나는 다리 한 쪽이 없는 서퍼가 타카시라는 확신이 들었다. 타카시는, 내 아들은 10년 동안 나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당신의 소중한 아들이었다고.



그리고 하나레이 베이를 읽기 싫으면 낭독해 놓은 유튜브가 있거든. 정말 사치가 읊조리는 듯 낭독을 하는데 정말 좋아👍🏻 


https://youtu.be/lrwnR3fVbh8?si=i_mmQ_DzurUYs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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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패트는 원래 일반 스머프가 아니라 갸갸멜이 스머프들을 잡기 위해 만든 복제 스머프였어. 남자들만 있는 스머프들을 미인계로 잡는다는 계획이었지. 

갸갸멜은 실은 물리학보다 화학에 천재성을 보인 과학자였거든. 그런 갸갸멜이 스머프 일망타진을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테크놀로지 스머프가 스머패트라는 거지. 하지만 물리학에서 좀 벗어나게 만들어졌는지 파파 스머프로 인해 순화되었어. 

이후에는 완전히 스머프가 되어서 아픈 스머프를 간호해 주며 돌보게 돼. 그러면서 생각해 보면 스머프 종족은 어떤 식으로 번식을 하는 것일까. 

전부 남자인 스머프 마을에 스머패트 혼자 여자야. 근데 여자 스머프가 또 한 명 더 있어. 바로 사세트. 후에 사세트가 등장하지만 사세트는 어린이였어. 

스머패트, 단 한 명의 여자로 살아가는 인생이란 어떨까. 아기 스머프는 어떻게 탄생할까. 똘똘이 스머프, 투덜이 스머프, 배짱이 스머프 등 심지어 파파 스머프까지 스머패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단 말이야. 파파 스머프 때문에 마법으로 스머패트는 박애주의자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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