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얘기 해줄게. 예전 하루키 모교 기증의 기사가 대대적으로 났었잖아. 하루키는 자신의 유산을 모교인 와세다 대학에 몽땅 기증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먼저든 생각은 멋있다,였지.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서 공부만 바라보는 일본 사회와 배울 것이 없다는, 일본 축소판인 와세다 대학을 깎아내리면서도 실은 마음 깊은 곳에는 애정을 잔뜩 가지고 있었어. 필시 하루키는 자신처럼 범우주적이고 현실에서 약간 비켜가 있는 학생들에게 지식의 채집보다는 감정의 터득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의 유보로 자신의 유산이 학생들에게 골고루 전달되리라는 생각을 했을 거야. 멋져 멋져 ㅋㅋ 멋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팬으로 이내 시무룩해졌어. 유산기증, 같은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이제 하루키도 소설을 고작 한 두편 정도 집필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13년도에 몇 년 만에 장편소설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출판되었을 때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은 들썩였어. 다자키의 이야기가 나오기 이전에는 하루키는 없는데 하루키에 관한 책들이 쏟아졌었지. 

하루키를 좋아하세요? 같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패러디와 사람들은 카페의 구석진 곳에서 하루키를 논하고 출판사에서는 하루키가 없는 하루키에 대한 책들이 출간되었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그의 소설을 이야기했지. 그 속에 나도 있었고 하루케스트인 스니들도 있었겠지.



다자키 이야기는 일본에서 1주일 만에 100만 부가 팔렸고, 발간된 4월 12일 도쿄 시부야 구에 있는 서점 다이칸야마 쓰타야에서는 그날 자정에 카운트다운 행사까지 열었지. 내용조차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 주문이 50만 부나 되었어. 소설 속에 흐르는 리스트의 ‘순례의 해‘ 음반까지 덩달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국에 그럼 하루키만 한, 하루키만큼 좋아했던 소설가는 없었을까.

실은 무라카미 류도 있고,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도 한국이 좋아하는 작가들이었어. 하지만 왜 그런 지 13년, 그 즈음을 기점으로, 아니 조금 더 이전부터 신드롬의 주인공은 오직 하루키였지. 지금 현재 하루키를 제외한 신드롬을 일으키는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어졌어. 

한국에는 하루키 이전의 신드롬을 밀란 쿤데라가 차지하고 있었어. 사랑은 운명이라 믿는 테레자와 사랑은 그저 우연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토마시와 그 사이에 매력적인 사비나와 찌질한 남자 같은 프란츠는 지구에 있는 인간 유형을 전부 드러냈지. 사람들은 밀란 쿤데라의 3인칭 같은 1인칭적이며 작가의 화법이 등장하는 등, 소설의 작법을 이렇게 와그작 무너트린 그를 몹시 좋아했어. 그 자리를 조용히 비집고 하루키가 들어왔지.

사회운동의 시대가 저문 90년대 중반 대학가에서 하루키 붐이 불기 시작했어. 시대, 사회를 말하는 한국 소설보다 말보로와 싱글 몰트 위스키의 하루키는 그야말로 매혹적이었지. 


밀란 쿤데라를 읽으려면 니체의 영원회귀와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를 알아야 했지만 하루키는 비틀즈, 레이먼드 카버 등 20세기의 것들로도 충분했지. 매력적일 수밖에.

야나첵과 베토벤, 리스트가 등장하지만 음악을 철학적으로 연결 짓는 어리석은 짓을 하루키는 하지 않았어. 그러면서 망가지지 않고 작가의 본분은 반복된 루틴이라는 명제하에 철저하게 정돈되고 질서를 유지한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했고 사람들에게 하루키는 매혹을 넘어 신드롬이었지.

그러나 신드롬이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야. 신형철은 하루키는 한국에서 문화적 현상에 한정해 하루키를 바라보는 관점은 시효가 다 되었다고 말했는데. 진지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는데 요컨대 눈과 손이 가지 않음에도 이 신드롬 때문에, 모두가 읽으니까 할 수 없이 읽으며 감정을 소모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어때? 스니들? 

그것은 영화 ‘조커’와도 비슷해. 조커처럼 우울하고 폭력적인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칭찬 일색인 그 영화를 봐야만 인스타그램에 인증 사진을 올릴 수가 있는 것이고 사람들과 한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거지.

중요한 건 하루키 팬들아 하루키 소설은 이제 고작 한 편? 두 편? 정도 될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24-08-29 1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것도 하루키가 자식이 없으니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어쨌든 그 학교 특별히 문학부 다니는 사람은 자부심이 대단할 것 같습니다. 근데 하루키가 여전히 좋다면 아직 젊다는 거 아닌가 싶기도합니다. 하루키가 늙은 사람은 잘 등장시키지 않찮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나이들수록 하루키가 여간해서 잘 안 읽게 되더군요. 그래도 이 양반은 죽을 때까지 한 두권의 책이라도 계속 쓸거 같습니다. 그게 진짜 작가죠. 하루키가 진짜 난 사람은 난 사람이죠. 존경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교관 2024-08-29 11:38   좋아요 2 | URL
현재는 개관한 하루키 문학관을 보러 한국에서도 하루키스트들이 엄청 가고 있어요. 하루키의 소설, 세계관, 음악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하루키는 현재 도쿄 라디오에서 [무라카미 라디오] 디제이도 하고 있는데 청취률이 높고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되고 있어서 여전히 인기는 좋아요

stella.K 2024-08-29 11:42   좋아요 1 | URL
교관님도 조만간 가시겠네요. 하루키 문학관 찍은 사진 볼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