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몇 개 있다. 대전, 통기타, 청바지, 조지 마이클 그리고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돈 맥클린의 스타리 스타리 나잇의 빈센트, 또 양수경이다.


신승훈은 무명 시절 양수경의 코러스로 참여를 했다. 양수경의 노래 중에는 전영록에게 받은 곡들이 있다.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가 대표적으로 전영록이 작사 작곡한 곡이다. 전영록에게 받은 곡을 부를 때는 묘하지만 전영록의 목소리가 양수경의 목소리에서 들리는 착각이 든다. 특히 ‘그렇지만 문득 그대 떠오를 때면~’할 때 들어보면 그렇다.


신승훈은 충남대 통기타 동아리 ‘팝스우리’에서 활동을 하면서 부상했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 신승훈은 이미 대전에서 알아주는 지역가수로 대전의 조지 마이클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 음악 감상실에 가면 디제이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내 기억은 그렇다.


조지 마이클이 웸(인지 왬인지)에서 떨어져 나와 솔로가 된 후 이반인 것도 세상에 알려지면서 멍키가 있는 앨범(키싱 어 풀부터 좋은 곡들이 들어 있는 앨범) 속 faith를 정말, 너무나 멋지게 부른다. 찢어진 리바이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청바지를 멋지게 입고, 가죽재킷에 라이반 선글라스 그리고 수염과 구레나룻에 웨스턴 부츠를 신고 페이스를 부르는데 웸에서 앤드류(는 일전에 조지 마이클과 함께 활동했던 웸에 대한 다큐 영화를 제작한다고 했다)에 가려져 있던 조지 마이클의 매력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노래를 신승훈이 멋지게 커버했다.  https://youtu.be/6Cs3Pvmmv0E


신승훈이 기타 하나를 들고 대전의 음악 카페에서 많이 불렀다고 한다. 천만다행인지 유튜브에 하나의 영상이 있다. 신승훈의 페이스를 한 번 들어보자. https://youtu.be/M8t3OPlr0tE


그리고 신승훈은 돈 맥클린보다 어쩌면 빈센트를 더 잘 부르는 가수가 아닐까 할 정도다. 영상을 보면 20년 넘게 빈센트를 불러와서 너무 좋아하는 노래이며 빈센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신승훈이 빈센트를 부를 때 여성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연령에 무관하게 빠져들어가고 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https://youtu.be/lFr1YWsSEyQ


신승훈 2집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1집보다 훨씬 풍부하고 좋은 곡들로 다 채워졌다. 왜 그러냐 하면 신승훈은 아티스트다. 싱어송 라이트였던 신승훈은 작곡을 하고 작사를 할 줄 아는 가수였다. 범대중적 아티스트였다. 이는 아티스트와 대중가수의 중간쯤 되는 가수로 자신이 하고 싶은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데 대중이 따라오는 가수를 말한다.


하지만 아티스트와 범대중적 아티스트는 대중가수에 비해 엄청난 인기를 누리지는 못한다. 대중가수는 철저하게 대중이 좋아하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하면 아이돌 같은 가수가 대중가수, 인디음악을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가수를 아티스트라고 부를 것이고, 우효나 제이레빗, 스탠딩 에그 같은 가수가 범대중적 아티스트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신승훈은 2집에서 자작곡은 두 곡만 넣고 나머지 곡들은 작곡가들의 곡을 받아서 불렀다. 그래서 풍부한 사운드, 다양한 색이 있는, 대중이 원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 증거로 골든디스크 대상과 KBS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쥐게 된다. 아티스트의 기질 중 하나인 고집을 버리고 포용과 수용을 겸허히 받아들인 결과 92년은 바로 신승훈의 해가 되었다.


학창 시절에 박살 나는 헤비헤비한 메탈을 듣던 우리는 신승훈은 끼워줬다. 메탈리카, 메가데쓰 쪽도 신승훈은 인정해 줬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라고, 지들이 뭐라고 웃기지도 않지만 당시에는 헤비헤비한 메탈을 듣던 애들은 팝메탈인 본 조비나 넬슨, 포이즌을 듣고 있으면 뭐야? 그런 말랑말랑한 팝 따위 흥,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신승훈의 앨범을 듣고 있으면 그것대로 인정을 해주었다. 웃긴 일이지만 뭐 다 그런 시절을 지내는 것 같다.


신승훈의 노래는 흥얼거리면 참 잘 불러지는데 마이크를 잡고 크게 부르면 잘 불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김성면이나 김종서 노래는 잘 불러지는데 신승훈 노래는 어려웠다.


신승훈이 가요계에 등장하고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썰렁한 농담 같은 것을 티브이에 나와서 많이 한 것 같은데 이를 뒤받침 해준 것이 여성팬들이었지 싶다. 서태지도 참 재미없잖아, 그럼에도 계속 썰렁한 농담을 하는 이유는 팬들은 다 좋아 죽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승훈은 쌍절곤을 아주 잘 돌린 것 같은데, 그래서 검색을 해봐도 전혀 그런 모습이 없다. 기억은 분명 신승훈이 쌍절곤을 휙휙 멋지게 돌리는 모습을 본 것 같은데 아닌 모양이다. 도대체 누구야, 쌍절곤 돌린 사람은.


신승훈 하면 광고 안 찍기로 유명한 가수였다. 광고의 유혹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나 한 번 내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고 했는데, 몇 해 전에 티브이에 나와서 괜히 그 말해서 아직까지 광고는 찍지 않고 있다며 웃으며 말하는 걸 들었다. 신승훈은 김민종과 강타와 잘 어울려 술을 한 잔씩 하는 걸로 또 유명하다. 김민종은 어떤 꼬투리를 잡혔기에 얼마 전에는 가세연에도 나왔더라. 강타는 여성 편력 때문에 질타를 받기도 했다.


신승훈은 사건사고 같은 것이 없는 도화지 같은 아티스트라서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데 나 개인적으로는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다 잊을 텐데 사고도 좀 치고 여자 때문에 뉴스도 장식해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라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프랑스와즈 사강이 법정에서 말했다. 이 말을 김영하는 소설집 제목으로 쓰기도 했다. 예술인들이 반듯하면 좋겠지만 공무원처럼 지내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신승훈 2집에서 한곡을 고르라면 신승훈이 작곡한 두 곡 중 ‘쉬운 이별’을 선택하겠다. https://youtu.be/1nmf7A0Vh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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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오는데 오늘 저녁은 아빠 오시면 떡국 끓여 먹자.


어릴 때 아버지가 회사에서 퇴근 후 집에 오시면 엄마의 떡국 밥상이 가끔 차려졌다. 떡국은 새해에만 먹곤 했는데 이맘때,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엄마는 떡국을 끓였다. 떡국이라는 게 별거 아니지만 새해에만 먹던 음식이라 평일에 한 번씩 해 먹으면 괜히 설레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나는 동생과 함께 우산을 들고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우산을 들고 동생과 아버지를 마중 나가는 시간은 즐거웠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것도 없지만 어린이였던 우리는 즐거웠다.


집을 나서서 공터를 지나 골목을 내려가 도로를 건너 버스정류장까지 가는데 한 20분 정도 걸렸다. 그 시간이, 아버지 마중 나가는 그 길이 우리는 즐거웠다. 엄마는 동생을 잘 챙겨야 한다고 해서, 동생과 티격태격하면서도 나는 동생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는 떡국이 먹고 싶다. 뜨거운 떡국을 먹고 속을 데우고 싶다. 얼음이 잔뜩 들어간 아메리카노로 식어버린 속을 따뜻하게 온도를 높이고 싶다.


우리는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이 버스에서 아버지가 내리나 내기를 하며 기다렸다. 부웅 버스가 지나가면서 도로 가의 물이 우리 쪽으로 튈 때에는 꺄악 하며 뒤로 물러나는 것도 즐거웠다. 어린이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늘 오시던 시간에서 늦어지면 동생은 초조해했다. 오빠, 왜 아빠 안 와?라고 하면 저 멀리서 오는 버스를 보며 저 버스다!라고 내가 말했고, 앗! 저 버스다!라고 따라 하던 동생은 여고를 가면서 기숙사 생활을 위해 집을 떠나, 대학교를 서울의 뚝섬 근처로 가면서 집에서는 완전히 떨어졌다. 한 녀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조카를 낳아서 키우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간 집에서 떨어져 살았던 동생이 조카를 낳자마자 고향 집으로 와서 몸을 추슬렀다. 동생은 자신의 몸에서 나온 새로운 생명이 꽤나 신기했던지 조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하고 집에 와서 방문을 열어 보면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자는 꼬물이 조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다음 날에도 집에 와서 방문을 열면 비슷한 자세로 조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다음 날에도 집에 와서 방문을 열면 비슷한 자세로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폼으로 잠든 조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을 거의 매일 비슷한 모습이라 사진을 매일 담아서 액자로 만들어 버렸다. 아버지도 조카를 보고 하늘로 가셨다면 좀 어땠을까.


우리는 우산을 쓰고 한 손에는 아버지의 우산을 들고, 저 버스에서 아버지가 내릴까 고개를 자라처럼 빼서 기다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번에도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더 이상 재미가 떨어진 우리는 비가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정류장에는 제과점과 슈퍼, 그리고 레코드 가게가 있어서 사각 스피커에서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자주 나왔다. 아마 레코드 가게의 주인이 바그너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트리스탄은 적국의 장군이고 이졸데는 적국의 공주였다. 이졸데가 트리스탄의 상처를 치료해 주다가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두 사람은 같이 있지 못하고 떠났다가 트리스탄이 먼저 죽고 이졸데가 죽은 자신의 연인 트리스탄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슬픈 이야긴데 바그너가 너무나 장엄하고 웅장한 슬픔으로 표현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가장 잘 표현된 영화가 있다. '멜랑콜리아'가 바로 그 영화다. 우울하다면 이 영화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지구가 멸망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의외로 덤덤한 저스틴. 그에 비해 극도의 공포와 긴장으로 몸이 분열될 것만 같은 언니 클레어.

멜랑콜리아의 마지막은 지구가 멸망하면서 끝이 난다. 영화는 저스틴의 우울로 인해 그간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지구의 멸망보다 더 힘들었기에 그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이 끝난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든다.


그에 비해 언니인 클레어는 유복하게 잘 살고, 자상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일상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갖추어서 생활을 하고 있다. 저스틴과는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며 언제나 착한 언니, 완벽한 언니, 엄마, 아내로서 살아간다.


하지만 멜랑콜리아라는 거대 행성이 지구와의 충돌이 야기되자 두 사람의 심정이 반전된다. 클레어의 심리가 완벽하게 무너지는 시점이 그때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사회가 만들어 준 단단한 껍데기가 박살 나게 된다. 그에 비해 저스틴은 멜랑콜리아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면서 우울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삶이 망가져 있던 저스틴은 음식을 먹으며 활동을 하고 숲 속에 발가벗고 누워 비로소 자유를 느끼며 멜랑콜리아, 멸망을 받아들이는 자신만의 의식을 가진다.


영화는 숨은 장면이 많고 무척이나 철학적이다. 바그너의 음악은 니체를 말하고, 저스틴의 방에 걸린 그림들은 저스틴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저스틴과 클레어 이외에 남편들과 저스틴이 우울에 깊게 빠지게 되는 경유는 모두가 저스틴과 가장 친밀한 것들에서 시작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내부를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도 하지만 나의 내부를 안쪽부터 칼로 베어내기도 한다. 우울이라는 내면은 행성 충돌로 인한 멸망의 외부보다 더 거대한 고통이다. 지구의 멸망으로 인해 나의 깊은 우울 또한 끝이 난다. 이토록 기뻐했던 적이 있었던가.


두 시간이 넘는 동안 바그너가 온 마음을 휘두르고 영상 내내 미술품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 영화 ‘멜랑콜리아’였다.


https://youtu.be/JCUdy1nUqrg


1장이 끝나갈 때 버스가 정차를 하고 아버지가 내렸다. 동생은 아빠 하며 아버지에게 갔고 아버지는 동생을 올려서 안았다. 아버지는 근육도 좋고 한 손으로 동생을 안아 올렸고 동생은 우산을 들었다.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 동생을 아버지가 안고 있는 사진이 많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아버지에게 늘 안겨 있었다.


아빠, 오늘 엄마가 떡국햏따.


아버지에게 안겨 동생이 발음도 잘 안 되는 말을 했다. 오늘 저녁은 떡국이다. 따뜻한 떡국 한 그릇 먹으면 하릴없이 추억 속으로 젖어들 수 있다. 떡국에 계란 지단을 많이 올려 먹는 게 좋아서 엄마는 계란 지단을 많이 만들었다. 떡국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좋았다. 네 식구가 떡국에서 피어나는 연기에 흡착될 것 같았다. 양념간장을 조금 넣어서 휘휘 저어서 먹다 보면 아버지도 허허하며 이야기를 하고, 동생은 하염없이 어린이가 되어 재잘재잘거렸다.



아버지가 생각날 때 보는 웃긴 코믹 싱글벙글 영상 https://youtu.be/kcPVDWAT4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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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소설들은 재미는 있는데 어렵다. 아주 흥미로운데 ‘나’라고 하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어서 따라가질 못한다. 사이언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테드 창의 소설은 그야말로 바이블이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이 나온 지가 오래전이고 나 역시 오래전에 이 소설을 읽었는데 요즘의 쳇 GPT 같은 인공지능 펫, 디지언트라고 하는 인공지능이 겪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치밀하게 말하고 있다.


정말 테드 창은 소설을 통해 이미 10년, 15년 후의 현실세계를 직시하고 있었다니. 이 소설을 다 읽고 생각나는 것은 인공지능이 섹스와 부모에 관한 것을 받아들이는 관념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만 침팬지에게 뭔가를 느껴 컁컁 해버리는 것이 생각난다.


달리를 쏙 빼닮은 에드리언 브로디가 주연한 영화 ‘스플라이스’에서 실험하는 생명체 끼르르르 끼르르르르 밖에 할 줄 모르는 드렌에게 그만 그것을 느껴서 컁컁 해버리는 것과 흡사할지도 모른다. 나의 변태적 성향인지 그런 부분은 잘 기억하고 있다. 어제일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이렇게 오래되고 오래된 영화와 소설 속 그런 장면과 묘사는 기억이 잘 난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옆에서 이 변태야,라고 하더라.


테드 창이 이번 쳇 GPT에 대해서 한 말을 언급하며 대단한 소설가라고 한 박태웅 의장의 말이 생각난다. 박태웅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실 무섭다. 이놈의 인공지능이 도대체 어디까지 사람을 홀릴 것인가에 대해서 너무 세세하게 이야기를 해줘서 듣다가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 들어간다. 박태웅도 브런치를 하고 있는데 들어가서 글을 읽어보면 다행이지만 하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들어가서 보면 미래 영화, 소설 속에서나 볼 법한 표식과 도표 같은 것들이 많아서 사이언스 인들은 좋아할 것 같다. https://brunch.co.kr/@brunchgpjz


그런데 나의 변태적 성향은 이런 것보다(붕가붕가하는 장면을 기억하는)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에는 용암처럼 뜨겁게 해서 식기 전에 먹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뜨거운 음식은 식도에 아주 좋지 않다. 그래서 뜨거운 음식은 식도암을 유발한다고 한다. 식도에 넘기기 전에 입 안에서 이 뜨거운 음식을 머금고 있는데 입천장이 홀라당 까지는 그 따가움을 느끼는 것이 꼭 짜릿하니 나쁘지 않다.


과연 나는 변태일까. 입천장에 까지면 혀로 입천장을 훑을 때 전해오는 약간의 고통이 나쁘지 않다는 거다. 그리고 벗겨진 입천장의 피부를 발골하듯 혀로 돌돌 말아서 뱉어냈을 때 많이 까질수록 좋다. 좋다기보다 나쁘지 않다. 까진 입천장에 혀를 갖다 대면 따가운데 따가워서 좋다. 이런 고통을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니까 진짜 살아있다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건 어쩌면 매일 조깅을 하면서 다리에 고통을 주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헬스인들이 무거운 기구를 얼굴이 터져라 들어서 근육에 고통이 와야 아 살맛 나는 군, 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깅을 할 때 늘 비슷한 코스로 늘 비슷한 속도와 비슷한 거리를 비슷한 폼으로 달리지만 중간중간에 무리가 갈 정도로 몸을 푸는 경우가 있고 무리가 갈 정도로 달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몸에 고통이 온다. 그게 나쁘지 않다는 거다. 나는 변태일까.


그렇게 뜨거운 음식을 먹고 까진 입천장이 얼마 만에 다 낫는지 보는 것도 묘미라면 묘미다. 예전에는 오전에 까진 입천장이 몇 시간 뒤면 거의 아물었는데 요즘은 하루가 지나야 아문다. 칼에 베이거나 손가락에 피가 나는 경우에도 예전에는 한 나절만에 아물었는데 요즘은 하루가 지나야 한다. 이러다가 이틀사흘나흘 걸리겠지. 그런 지켜보면서 느끼는 결락 같은 것도 삶의 묘미라면 묘미겠지.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기억나는 대사가 ‘연애는 방구고 결혼은 똥이야, 방구 존나 뀌다가 똥 마려울 때 결혼하는 거야’다. 이 대사 너무 멋진 거 같애. 나는 변태일까.


변태심리를 테스트하는 사이트가 있다. 뭐 그냥 심심풀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재미있는 물음이 많다. 피부 긁어서 부풀어 오른 부분 손톱으로 십자 자국을 내는지, 응가하고 나서 닦은 휴지를 눈으로 확인하는지, 손가락의 손거스러미 미묘하게 튀어나온 그거 확 잡아 뜯는 게 좋은지, 애인의 정수리 냄새, 하수구냄새나 수정액 냄새가 좋은지 물어본다. 아무튼 오케이가 많으면 변태에 가깝다.


예전에 집에 강아지들을 키울 때 씻기기 전에 꼬질꼬질 그 비린내를 흠흠 하며 계속 맡았었는데 나는 어떤 변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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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역시 핑크라고 카세트테이프에 박힌 나사가 아주 멋들어지게 보인다. 꼭 골든라이탄처럼 벌떡 일어나서 변신할 것만 같다. 미니카라면 트랜스포머 정도가 되겠지만 라이터나 카세트 같은 경우는 골든 라이탄에 가깝다. 뭔 소린지 모르겠는 사람은 그냥 패스.


나에게는 오래된 미니카도 있다


이 안에 변신하는 미니카도 한 대 있음


변진섭 앨범 중에 변진섭 2집이 제일 좋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좋은 노래가 없다. 변진섭은 정말 힘 안 들이고 아주 편안하게 고음과 바이브레이션을 낸다. 얼굴의 표정이 그대로, 주욱 이어지면서 저 높은 곳을 향해 목소리가 올라간다.


87년 MBC 신인가요제 1회 출신으로 은상을 타며 가수로 데뷔한 변진섭은 1집의 성공 이후 2집마저 1집처럼 골든디스크 대상을 받으며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황태자의 자리를 지키려는 찰나, 그만 신승훈이 나타나서 그 엄청난 인기를 독차지하는 걸 막는다.


변진섭과 신승훈은 상업적 광고 같은 걸 하지 않으며 노래를 불러서 어쩌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인기가 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티스트는 그냥 가수와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가요프로그램에 나타나지 않아도 변진섭이 부르는 노래는 늘 1, 2등을 다투었다. 그래서 거만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변진섭 하면 최진실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최진실은 섭섭이 오빠와 결혼할 계획이 있다고 했을 정도로 두 사람은 가까웠다. 최진실이 무명이었을 때부터 알고 지내며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각자 바빠지고 나서는 뭐 그렇게 연락이 뜸해지면서 소원해졌다고 하는데... 변진섭은 최진실의 사망소식을 듣고 빈소에 와서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여러 방송 카메라에 찍힌 모습이 생각난다.


요즘 변진섭의 큰아들이 아티스트 스위밍 선수를 하고 있어서 가끔 티브이에 나온다. 큰아들의 얼굴은 변진섭의 얼굴을 떼서 갖다 붙여 놓은 것 같다. 아주 닮았다. 변진섭이 막 그렇게 또 잘생긴 건 아니니까 아빠 얼굴 닮았다고 하면.


큰아들이 아티스트 스위밍 선수를 할 수 있었던 아무래도 변진섭의 아내의 영향이 컸지 않았을까 싶다. 아내가 아티스트 스위밍 국가대표였고 또 90년대 중반에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부분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유전자가 큰아들에게 물려 간 것 같다. 유전자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어떤 결계 같은 것이 있다.


이 앨범의 ‘숙녀에게’는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2에서 다 같이 부르면서 한 번 더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었다. 노래가 너무 좋은 거 아니니.https://youtu.be/RfxidoaCGH0


변진섭 팬들은 앨범 속 모든 노래들을 몽땅 좋아하겠지만, 아니 꼭 팬이 아니더라도 이 앨범 속의 노래들은 전부 듣게 편안하니 좋다. 아무튼 이 앨범을 통해 노영심도 수면 위로 부상했다.


둘리 남매를 보는 듯한 닮은 두 사람이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며 ‘희망사항’을 부르면서 노영심은 변진섭을 닮은 얼굴로 티브이에서 많이 나왔다.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옛날 티브이를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보다가 노영심이 나오는 크리스마스 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이영애도 같이 나왔는데 노영심이 이영애에게 언니언니 하는 것이다. 이영애는 아니 왜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저를 언니라고 부르냐니까, 그럼 예쁜데 언니라고 불러야지 흥, 같은 뉘앙스로 똑 쏘면서 말했다. 노영심이 진행을 하는 음악회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노영심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노영심의 음악이 가장 돋보였던 건 개인적으로 드라마 ‘연애시대’의 음악이었다. 만약 연애시대에서 음악이 빠지거나 다른 음악가가 했다면 은호와 동진의 그 이상하고 이상한 연애에 몰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연애시대는 너무나 재미있었던 드라마로 나는 그 드라마가 나오기 훨씬 전에 일본판 원작 소설을 읽었다. 거기에 주인공 하루와 신이치로보다 드라마의 동진과 은호가 더 좋았던, 원작을 뛰어넘은 건 아마도 처음이었지 싶다.


그런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니 연애시대 감독이 한지승 감독으로 노영심 남편이었다. 그리고 노영심이 드라마 음악을 했다. 그런 두 사람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라마에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드라마 제작이 열약한 환경인데 이미 시나리오가 7, 80%가 나와 있어서, 쪽대본으로 하루하루 쳐대는 다른 드라마에 비해 재미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런 노영심 부부도 후에 이혼을 했다. 고로 남녀관계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이 앨범에서 딱 한 곡을 골라라면 ‘이별을 받아드리리’로 하겠다.



https://youtu.be/SZ4CT7-23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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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은 실패하지도 않고 질리지도 않아서 든든하게 먹곤 했다. 늘 가까이에 있어서 당연한 그런 음식이 미역국이다.


나는 좀 이상하지만 미역국은 아주 뜨겁게 먹거나, 밥을 말아먹을 때에는 국물이 거의 없이 뻑뻑하게 먹거나, 또 식어버린 또는 데우지 않은, 차가운 미역국을 후루룩 먹거나 식은 밥을 말아서 차갑게 먹는 걸 좋아한다. 나 자신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주 뜨거울 때 입천장이 홀라당 다 벗겨질 정도로 미역을 입에 가득 넣고 후후 하며 먹는 맛이 좋다. 뜨거운 미역국을 먹고 나서 입천장에 벗겨지지 않으면 어쩐지 섭섭했다. 밥을 말아먹을 때에는 국물을 조금 남겨두고 밥을 가득 말아서 뻑뻑한 채로 우걱우걱 먹는 게 좋다.


너는 왜 미역국을 그렇게 먹는데?라고 해 봤자 나도 모른다. 그렇게 먹는 게 좋단 말이다.


아무튼 미역국은 실패하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은 맛에서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떤 때에 먹어도 좋다는 말이다. 배가 고플 때에도, 머릿속에 라면이 막 생각났어도, 방금 어묵을 먹었어도 미역국이 있으면 먹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미역국을 끓여 먹고서는 미역을 덜 삶았는지 아다리 걸려서 고생고생했다. 토하고 싸고 약 먹고 또 약 먹고. 그렇게 하루이틀 고생을 하다가 제대로 미역국을 끓여서 미역국으로 망친 속 미역국으로 달래줬다. 그렇게 미역국을 먹고 있으니 예전에 미역국은 문학적인 맛이라고 한 것이 생각났다. 그래, 다른 음식들은 대체로 다큐적인데 미역국은 문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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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미역국을 검색해서 죽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미역국도 감치만큼 집집마다 먹는 방법, 들어가는 재료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보통 미역국이라고 하면 소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을 떠올리고 나 역시 소고기 미역국을 가장 좋아하지만 집집마다 다양한 미역국을 끓여 먹고 있었다. 별거 아닌데 대단히 신기했다.


어떤 집은 들깨가 잔뜩 들어간 미역국을, 참치로 만든 미역국도 끓여 먹고, 성게알로 멋들어지게 끓여낸 미역국, 가자미 미역국, 전복 미역국 등 정말 맛나고 사연이 가득한 미역국들이 많았다. 어묵을 넣은 미역국, 새우를 넣은 미역국, 담치를 넣은 미역국 또 양파를 통째로 넣은 미역국도 있었다. 가자미는 가자미가 그대로 들어가는 미역국도 있고 가자미의 살을 다 발라내서 푹 삶아서 미역국을 떠먹으면 고소한 맛이 나는 가자미 미역국도 있었다.


미역국에 담긴 이야길 읽고 있으면 큭큭 거리는 사연도 있고, 오 하는 사연도 있고, 훌쩍하는 사연도 있었다. 미역국에 관한 글들을 보면서 관통하는 단어는 생명, 엄마, 슬픔, 눈물, 생일이었다. 미역국은 생명의 연장선에 놓인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랑이 있었다.


미역국은 생일에 먹는 음식이지만 생일에 미역국은 밥상 위에 놓이지만 정작 생일을 맞이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서 슬픔의 음식이기도 하다.


어떤 미역국 사연에는 강아지를 낳은 어미 개에게 미역국을 끓여서 먹이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집도 강아지를 여럿, 오래 키워서 마당이 있던 집에 살 때 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서 새끼를 낳은 어미에게 고생했다며 먹였다. 나는 그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 소설에 쓰기도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810

개에게 미역국을 먹이는 이야기를 읽으며 괜스레 움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생일의 대표적인 음식이라 미역국은 자신이 먹고 싶어서 잘 끓여 먹지는 않는다. 미역국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먹이고 싶은, 그래서 미역국을 끓이는 동안 만드는 이의 사랑이 그 안에 담긴다.


기쁘면서 슬픈 노래 조용필의 걷고 싶다 속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국이 미역국이 아닐까 싶다. 뮤직비디오 내용이 너무나 아름답지만 너무너무 슬프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슬프게 다가올 것 같다. 조한선의 근래의 영화를 봤는데 이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연기가 제일 좋은 것 같다. 미역국은 그렇게 사랑은 두배로, 슬픔은 반으로 나누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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