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은 실패하지도 않고 질리지도 않아서 든든하게 먹곤 했다. 늘 가까이에 있어서 당연한 그런 음식이 미역국이다.


나는 좀 이상하지만 미역국은 아주 뜨겁게 먹거나, 밥을 말아먹을 때에는 국물이 거의 없이 뻑뻑하게 먹거나, 또 식어버린 또는 데우지 않은, 차가운 미역국을 후루룩 먹거나 식은 밥을 말아서 차갑게 먹는 걸 좋아한다. 나 자신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주 뜨거울 때 입천장이 홀라당 다 벗겨질 정도로 미역을 입에 가득 넣고 후후 하며 먹는 맛이 좋다. 뜨거운 미역국을 먹고 나서 입천장에 벗겨지지 않으면 어쩐지 섭섭했다. 밥을 말아먹을 때에는 국물을 조금 남겨두고 밥을 가득 말아서 뻑뻑한 채로 우걱우걱 먹는 게 좋다.


너는 왜 미역국을 그렇게 먹는데?라고 해 봤자 나도 모른다. 그렇게 먹는 게 좋단 말이다.


아무튼 미역국은 실패하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은 맛에서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떤 때에 먹어도 좋다는 말이다. 배가 고플 때에도, 머릿속에 라면이 막 생각났어도, 방금 어묵을 먹었어도 미역국이 있으면 먹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미역국을 끓여 먹고서는 미역을 덜 삶았는지 아다리 걸려서 고생고생했다. 토하고 싸고 약 먹고 또 약 먹고. 그렇게 하루이틀 고생을 하다가 제대로 미역국을 끓여서 미역국으로 망친 속 미역국으로 달래줬다. 그렇게 미역국을 먹고 있으니 예전에 미역국은 문학적인 맛이라고 한 것이 생각났다. 그래, 다른 음식들은 대체로 다큐적인데 미역국은 문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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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미역국을 검색해서 죽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미역국도 감치만큼 집집마다 먹는 방법, 들어가는 재료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보통 미역국이라고 하면 소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을 떠올리고 나 역시 소고기 미역국을 가장 좋아하지만 집집마다 다양한 미역국을 끓여 먹고 있었다. 별거 아닌데 대단히 신기했다.


어떤 집은 들깨가 잔뜩 들어간 미역국을, 참치로 만든 미역국도 끓여 먹고, 성게알로 멋들어지게 끓여낸 미역국, 가자미 미역국, 전복 미역국 등 정말 맛나고 사연이 가득한 미역국들이 많았다. 어묵을 넣은 미역국, 새우를 넣은 미역국, 담치를 넣은 미역국 또 양파를 통째로 넣은 미역국도 있었다. 가자미는 가자미가 그대로 들어가는 미역국도 있고 가자미의 살을 다 발라내서 푹 삶아서 미역국을 떠먹으면 고소한 맛이 나는 가자미 미역국도 있었다.


미역국에 담긴 이야길 읽고 있으면 큭큭 거리는 사연도 있고, 오 하는 사연도 있고, 훌쩍하는 사연도 있었다. 미역국에 관한 글들을 보면서 관통하는 단어는 생명, 엄마, 슬픔, 눈물, 생일이었다. 미역국은 생명의 연장선에 놓인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랑이 있었다.


미역국은 생일에 먹는 음식이지만 생일에 미역국은 밥상 위에 놓이지만 정작 생일을 맞이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서 슬픔의 음식이기도 하다.


어떤 미역국 사연에는 강아지를 낳은 어미 개에게 미역국을 끓여서 먹이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집도 강아지를 여럿, 오래 키워서 마당이 있던 집에 살 때 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서 새끼를 낳은 어미에게 고생했다며 먹였다. 나는 그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 소설에 쓰기도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810

개에게 미역국을 먹이는 이야기를 읽으며 괜스레 움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생일의 대표적인 음식이라 미역국은 자신이 먹고 싶어서 잘 끓여 먹지는 않는다. 미역국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먹이고 싶은, 그래서 미역국을 끓이는 동안 만드는 이의 사랑이 그 안에 담긴다.


기쁘면서 슬픈 노래 조용필의 걷고 싶다 속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국이 미역국이 아닐까 싶다. 뮤직비디오 내용이 너무나 아름답지만 너무너무 슬프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슬프게 다가올 것 같다. 조한선의 근래의 영화를 봤는데 이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연기가 제일 좋은 것 같다. 미역국은 그렇게 사랑은 두배로, 슬픔은 반으로 나누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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