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풍요의 시대 - AI와 인류의 미래
피터 디아만디스.스티븐 코틀러 지음, 김태훈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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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함께 안고 살아가는 나라. 우리는 물질의 결핍은 상당 부분 극복했지만, 여전히 ‘의미의 허기‘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그래서 저자들의 경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목적과 만나지 못한 풍요는 붕괴로 향하고, 지혜와 만나지 못한 지능은 멸종으로 향한다. 진보나발전이란 결국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이어야 한다는 이책의 메시지는, 속도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온 우리 사회가 가장먼저 새겨야 할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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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풍요의 시대 - AI와 인류의 미래
피터 디아만디스.스티븐 코틀러 지음, 김태훈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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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특히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게 읽힌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풍요를 이뤘지만 동시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과 사회문제가 될 정도의 번아웃, 치열한 경쟁의 그늘을 함께 안고 살아가는 나라. 우리는 물질의 결핍은 상당 부분 극복했지만 여전히 ‘의미의 허기’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그래서 저자들의 경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목적과 만나지 못한 풍요는 붕괴로 향하고, 지혜와 만나지 못한 지능은 멸종으로 향한다. 진보나 발전이란 결국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이어야 한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속도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온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새겨야 할 명제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책의 공저자 피터 디아만디스는 미래학자이자 혁신기업가로, AI·우주·헬스테크를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에서 25개가 넘는 기업을 설립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분자유전학과 항공우주공학 학위를,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엑스프라이즈 재단 설립자 겸 이사장이며, 구글과 NASA 등이 후원하는 실리콘밸리의 창업교육기관 싱귤래리티 대학교의 학장이다.


공저자 스티븐 코틀러는 과학 전문 작가로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다수의 상을 받은 기자이기도 하다. 위스콘신 주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세계 최고의 신경과학 기반 퍼포먼스 연구·교육 기관인 '플로 리서치 콜렉티브'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은 아홉 개 장에 걸쳐 인간, 신의 영역에 닿다(제1장), 풍요의 기적과 6D(제2장), 데이터로 보는 풍요의 증거(제3장), 인간보다 10억 배 더 똑똑한 존재(제4장), AI와 기술 융합이 만드는 새로운 문명(제5장), 풍요의 디스토피아(제6장), 인간의 세 가지 무기(제7장), 우리는 안드로이드다(제8장), 낙원의 문 앞에서(제9장) 등을 통해 초풍요 시대의 모습과 함께 우리들이 어떻게 이에 대응해야 할지에 관해 화두를 던진다.


기적 속에 살지만 체감하지 못한다


유추는 뇌가 새로운 것을 익숙한 것으로 압축하는 수단이다. 세상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기 시작할 때,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오랜 인지적 도구(구조 매핑)는 현대 기술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의 비교 장치는 쉽게 빗댈 수 있는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호주머니에 든 신과 같은 힘을 무엇에 빗댈까? 비교할 기준이 없으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결과 우리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돌아간다는 감각, 즉 인지적 현기증을 느낀다. 변화의 흐름을 이성적으로 헤쳐 나갈 수 없을 때 우리는 신화를 통해 진보를 이해한다. 유추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인간은 더 깊은 패턴을 찾아나선다. 이는 일종의 메타-유추 또는 정신과 의사 카를 융이 말한 ‘원형’(archetype)에 해당한다.

세상에 원형이 넘치는 이유는 기적이 넘치기 때문이다. 한 예로 구약성서에 나온 기적 중 창조의 기적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합성생물학과 유전공학은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를 창조하거나 기존 생명체를 변형變形한다. 3D 프린팅은 한 층씩 재료를 쌓아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생성형 AI는 새로운 경제, 종교, 사회를 형성하는 자율형 에이전트로 가득한 가상 세계를 창조한다.

융의 정의에 따르면 원형은 유전을 통해 인류의 집단무의식에 보편적으로 내재된 사고, 이미지, 관념의 패턴이다. 원형은 원초적 상징으로서 여러 문화와 세대에 걸쳐 강력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영웅, 그림자, 위대한 어머니, 늙은 현자 같은 인물상은 우리의 신화 속에서 구체화되고 꿈속에서 현현하며, 우리의 예술 속에 형체를 갖춘다. 또한 자아와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인류의 서사를 바꿔나간다.

풍요는 미래다

이미 시작된 풍요는 양날의 검이다. 엄청난 장점과 더불어 대단히 실질적인 단점도 있다. 우리의 결론은 단순하다. 풍요는 우리의 미래다. 다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다. 

풍요의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완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속하는 기술의 혜택은 문명을 보호하기에 충분치 않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창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이 책의 초점이다. 책은 가속화 시대에 번영을 누리기 위한 청사진이다. 또한 현재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여정을 위해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풍요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그 시대는 당도해 있다. 책의 공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풍요의 규모가 놀라울 정도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풍요의 6D

1단계, 디지털화~ 컴퓨터 코드로 바꿔 디지털화 
2단계, 잠복기~ 코드로 바뀐 기하급수적 성장은 눈에서 사라짐 
3단계, 파괴적 혁신~ 기하급수 기술은 파괴적 혁신의 시작
4단계, 무료화~ 저렴한 것은 더 저렴해지거나 공짜가 됨
5단계, 소멸화~ 형체가 있던 것이 갑자기 사라짐
6단계, 대중화~ 폭넓은 확산

AI를 이해해야 미래를 이해할 수 있다 

이미 AI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풍요의 동력원이 됐다. 2022년 매킨지는 AI 기반 자동화가 세계 경제에 2조 달러의 가치를 더했다고 추정했다. 프라이스 워터 쿠퍼스는 이 수치가 2030년에는 15조 7,000억 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의료 분야에서 AI는 진단 기술을 향상시켰다. 구글의 딥마인드 같은 시스템은 유방암 진단에서 90퍼센트가 넘는 정확도를 달성했다. 또한 엑시엔티아(Exscientia) 같은 플랫폼을 통해 신약 개발 기간을 다섯 배에서 10배까지 단축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AI로 최적화된 스마트 전력망이 이미 주요 대도시에서 정전과 낭비를 25퍼센트 줄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농업 분야에서는 '블루 리버 테크놀로지' 같은 AI 기업이 수확량을 20퍼센트 늘렸고, 농약 사용률을 90퍼센트 줄였으며, 캘리포니아처럼 가뭄에 취약한 지역에서는 물 낭비를 50퍼센트 줄였다. 이 모든 이유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이유들로 볼 때, AI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래를 이해할 수 없다.

AI와 휴머노이드 융합, 노동의 한계를 넘어서다

최근 집계에 따르면 AI로 구동되는 인간형 로봇 50여 종이 곧 선보일 예정이다. 아마존은 애질리티 로보틱스와 손잡고 배송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이미 샌프란시스코에 조성된 '휴머노이드 파크'에서 시범 운용 중이다. 이 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리비안 전기 자동차에서 로봇이 뛰어내려 집까지 택배를 배달하게 하는 것이다. 한편 IX 테크놀로지스의 네오는 신장 약 168센티의 인간형 로봇으로, 식탁 정리부터 세탁까지 다양한 집안일을 돕기 위해 빠르면 2026년부터 우리 가정에 들어오게 될 전망이다.

인간형 로봇의 확산은 일회성 제작에서 대량 생산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로봇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준비가 돼 있다. AI, 구동 기술, 배터리 효율이 발전한 덕분에 2020년 이후 제작 비용이 50% 이상 감소했다. 테슬라는 인간형 로봇의 단가를 약 2만 달러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가격대가 유지된다면 광범위한 보급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설계된 중독

풍요는 공짜가 아니다. 지금까지 살핀 돌파구들 뒤엔 점점 커져가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 문제들은 기하급수적 가속의 의도치 않는 결과라는 새로운 범주를 이룬다. 부록엔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풍요의 증거들로서 우리가 결핍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른 유형은 풍요의 어두운 면을 반영한다. '모어의 법칙'에 딸린 단서 조항이라 할 수 있다.

의도치 않은 결과(최상위 목록)

기후 위기
비만 유행
약물 남용 및 과용
정신 건강 위기 및 정보 과부하
미세플라스틱과 영구 화학물질
인구 변동성
빈부 격차 확대와 정치적 양국화
생물다양성 감소와 생태계 붕괴
잠재하는 팬데믹과 바이오 테러의 위협
AI의 위험 

풍요의 시대는 곧 중독의 시대다. 이것은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우연히 일어난 일도 아니다. 인간의 주의를 붙잡도록 설계된  모든 것(화면,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게임, 합성 마약)이 동시에 기하급수적 성장 곡선에 올라탔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AI는 우리의 강박적 행동을 추적하고 조정하고 확장했다. 우리는 효능 극대화와 비용 최소화를 위해 화학적으로 설계된 인공적 쾌락을 쏟아내고 있다. 알고리즘, 실험실, 시장의 힘,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뇌라는 하나의 목표로 수렴했다. 이는 세계적 규모로 쾌락을 전면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소셜 미디어가 첫 번째 물결이었다. 원래 사람들을 연결하는 도구로 홍보됐던 소셜 미디어는 주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변했다. 소통을 촉진하기 위해 구축된 플랫폼은 중독을 가속하는 도구가 됐다. 인스타그램, 구글, X,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는 가끔 찾아오는 지루함마저 끝없이 이어지는 콘텐츠로 대체했다. 진정한 소통의 자리를 디지털 인정 욕구가 차지했다. 그러던 와중에 AI가 등장했다. AI는 습관을 강박으로 바꾼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갖고 우리를 추적했다. 그 결과 편향된 관점이 강화됐고, 분노가 증폭됐으며, 비교는 타인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 산만함은 의존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우리는 정신 질환의 바다를 표류하게 됐다.

몰입은 AI 시대 인간의 경쟁력이다

인간은 원래 수평적 사고 능력을 타고났다. 게다가 몰입까지 한다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게 더 중요한 점이다. 왜 그럴까? 몰입은 수평적 사고, 즉 서로 관련 없는 아이디어들을 기발한 방식으로 연결하는 능력을 증폭하기 때문이다. 

이는 AI에 부족한 능력이다. '아홉 점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3 X 3 정사각형 형태로 배열된 9개의 점을 떠올려보라. 연필을 종이에서 떼지 않고 4개의 직선만으로 모든 점을 연결하는 것이 과제다. 제한시간은 10분이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는 가정 때문이다. 선이 반드시 정사각형 틀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가정 말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이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를 풀지 못한다. 전체 인구의 5%도 되지 않는 사람만 정답을 맞힌다. 하지만 시드니대학교 연구자들이 '경두개 자기 자극'을 통해 사람들을 몰입 상태로 유도하자 정답을 맞히는 확률이 58%나 상승했다. 말하자면 수평적 사고 능력이 엄청 증가한 셈이다.  

요점은 이것이다. 수평적 사고는 AI에 부족한 능력이다. 대규모 언어 모델은 연역적 추론을 통해 비슷한 것끼리 연결하는 수렴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덕분에 AI는 효율성, 속도, 순수 계산 능력에서는 뛰어나다. 그러나 엉뚱한 아이디어 사이를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도약에서는 한계에 부딪힌다. 

인간이 몰입 상태에서 AI와 협력하면 새로운 것이 나온다. 정밀함과 상상력이 결합된다. 논리와 수평적 통찰이 결합된다. 이것이 바로 일의 미래를 말해주는 진정한 이야기다. 인간 대 기계의 싸움이 아니다. 몰입 상태의 인간은 기계와 협력한다.

목적 없는 풍요는 붕괴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교외 지역이 번영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이 꽃을 피웠다.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국립정신보건 연구소에서 존 칼훈이라는 동물행동학자가 하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시작했다. '모든 물질적 필요가 충족되는 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는 연구 목적으로 설치류 서식지를 20개 넘게 만들었다. 그중 모든 것의 정점은 '유니버스 25'였다. 낙원이 감옥이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드러내기 위해 설계된 완벽한 세계였다.  

유니버스 25는 생존과 안락함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했다. 포식자도 없었고, 질병도 없었으며, 결핍도 없었다. 전례 없는 풍요를 누리는 삶이 주어졌다. 그러나 결과는 디스토피아였다. 칼훈은 나중에 이를 ‘사회성의 죽음’(death of the social)이라 불렀다. 

1972년 그는 연구 내용을 정리한 논문 <쥐 개체군의 폭발적 증가와 붕괴>를 발표했다. 그가 내린 결론을 곱씹어볼 만하다. 즉, “인간처럼 복잡한 동물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련의 전개가 종의 멸종으로 이어지지 않을 논리적 이유는 없다.”였다.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최종적인 개체 수 감소가 아니었다. 개체 수가 과밀한 상태라면 그런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진정 충격적인 부분은 그 원인이었다. 그의 유토피아를 무너뜨린 것은 굶주림도, 질병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적 유대와 사회적 행동의 완전한 붕괴였다. 이 생쥐들은 모든 육체적 필요를 충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잃었고 결국에는 생존 능력 자체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그렇기에 그 역할을 잘해내야 한다."

이는 1968년 '홀 어스 카탈로그'에서 스튜어트 브랜드가 한 말이다. 책을 통해 풍요의 시대로 전환해온 과정을 우리들은 읽고 알 수 있었다. 이제 우리들 앞에 남겨진 숙제가 있다. 앞으로의 미래는 길다. 우리 모두는 이 질문에 현명하게 답해야 한다.

#경제경영 #경제전망 #초풍요의시대 #AI와인류의미래 #피터디아만디스 #스티븐코틀러 #비즈니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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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도 않다는 착각
이은실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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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안부를 묻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적어 내려간 글들은 어느새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기 위해 시작한 글이 아니었는데, 가장 먼저 나를 다독인 것은 내가 써 내려간 문장들이었다. - '머리말' 중에서



책의 저자 이은실은 27년간 삼성생명에서 보험심사, 고객상담, 영업, 교육과 코칭, 강의 등 다양한 역할을 통해 많은 사람의 불안과 삶의 전환점을 지켜보았음에도 정작 자신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후 예상치 못한 퇴사로 비로소 처음으로 '나'를 마주했고, 스스로 회복의 길을 찾아나갔다. 책은 바로 그 과정의 기록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인정과 회복(1부), 색채와 감각(2부), 미각과 온기(3부), 실천과 지속(4부)에 걸쳐 마흔 가지 이야기를 통해 나를 다시 껴안는 시간, 마음을 돌보는 일상의 온도, 밥상 앞에서 만나는 위로, 습관을 바꾸는 일상의 리듬 등에 대해 이야기를 펼친다.


괜찮은 척하다


저자의 갑작스런 퇴사 소식에 회사 동료와 선배들의 연락이 잇따랐다. 대부분 걱정과 인부였다. 평소 마음이 잘 통했던 동료완 서로 울먹이며 대화를 나누었고, 선배에겐 하소연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통화를 마칠 때마다 "과연 내 감정이 저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평판 관리가 중요함을 조언했던 상사의 말이 오래 마음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안부를 묻는 사람들 앞에서도 저자는 괜찮은 척을 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저자의 어머니는 작은 키에 몸이 왜소한 딸이 놀림받을까 봐 걱정했고, 입학 후에도 걱정은 멈추지 않았다. 이는 저자를 애늙은이로 만들었다. 엄마가 걱정할까 봐 실제로 뭔가 나쁜 일을 당해도 안 그런 척을 했다.


나 또한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다. 부잣집 자식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살던 나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다. 온 집안 물건에 차압 딱지가 붙을 정도로 아버지 사업체는 쫄딱 망했다. 그해 겨울 난 친척 집에 기거하며 국민학교를 마쳐야만 했었다. 어머니는 데리러 올 때까지 친척 어른 말씀을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당부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눈칫밥을 먹으며 억울한 일을 당해도 감수하며 지냈던 1년 여의 시간이 그토록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진짜 감정과 마주하는 4단계


1단계, 가장 오래 머문 감정 하나 적기

2단계, 그 감정에 이름 붙이기

3단계, 그 감정을 느낀 핵심 이유 써보기

4단계, 그 감정에게 다정한 메시지 건네기


            

마음을 살리는 아주 작은 응급처치    


우리는 흔히 ‘위로’를 거창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위로는 현실에서 자주 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위로는 아주 작다. 지나가듯 건넨 말, 무심코 마주친 풍경, 가벼운 터치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도 그 작은 순간들이 마음을 붙잡아주고 하루를 버틸 힘을 준다.


저자는 마음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꿔보았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들판에 핀 야생초라고 생각했다. 억지로 뽑아내려 하면 오히려 마음이 다치지만, 그냥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면 하나의 멋진 풍경이 된다. 잡초를 보며 ‘지금은 이런 풍경이구나’ 하고 지나가는 태도, 내 감정에 거리를 두는 태도가 곧 회복의 시작이다. 몸이 먼저 움직이면 마음은 그 뒤를 따른다.

색으로 관계를 여는 방법

색을 다각적으로 경험하라
색의 온도와 분위기를 활용하라
색을 언어로 불러내라
색을 관계의 매개로 사용하라
색과 꾸준함을 결합하라



좋아하는 색과 행복해지는 색

좋아한다는 것과 행복해진다는 것은 분명 다르다. 누군가 좋아하는 색은 뭔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바로 연두색이라고 즉답할 것 같다. 그런데, 또 연두색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달라질 것 같다. 사실 꽃나무를 좋아하는 나는 특히 등나무, 무스카리, 비비추, 붓꽃, 산수국 등의 보라색 꽃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음식과 행복해지는 음식도 엄연히 다르다. 이는 기억이나 추억의 감정 탓일 것이다. 난 대학시절 사귀던 여학생과 첫 데이트를 한 후 연인관계로 성장했는데, 보통은 입에 묻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짜장면을 같이 먹고 하지 않는다지만 나의 연인은 데이트하는 날이면 늘 짜장면을 먹자고 했다. 이는 나의 어릴 적 추억을 익히 잘 알고 있어서 나를 배려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색은 파랑(36%), 검정(29%), 노랑과 초록(각 28%) 순이다. 반면 갈색(5%), 자주색(6%)은 선호하지 않는 색의 상위권이다. 이처럼 특정한 색이 누군가에게는 매혹적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색과 감정의 연결성이 무척 흥미롭다.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는 색으론 남녀노소 상관없이 노랑(48%)이 압도적인 반면, '슬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으론 회색(34%), 검정(32%)이 꼽혔다. 아무튼 색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 심리 상태와 깊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심리학적으로 색은 호르몬 분비와 심박수 등 감정 조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활력을 찾아서

내 몸이 아프면 우린 즉각 반응한다. 열이 심하고 기침마저 수반하면 바로 병원으로 향한다. 이렇게 증상이 명확하면 이에 대처하는 대응법 또한 분명해진다. 그런데, 마음에 찾아오는 감기는 다르다. 무력감, 허무함, 불안 등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서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식의 미온적인 대응에 그치기 일쑤다. 그래서 대체로 마음의 감기는 몸의 감기보다 더 오래간다. 따라서 효과적인 대응은 오히려 선제적인 예방이 요구되는 셈이다.

활력을 찾기 위해선 잘 먹는 것이 최고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보양식, 활력식 등에 대해 지혜를 갖춘 혜안慧眼이 있었다. 이를 DNA로 물려받은 우리 후손들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의 눈에 선뜻 이해되지 않는 '이열치열以熱治熱' 식사에 대해 어리둥절할 수밖에.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 왜 뜨거운 음식을 먹느냐는 반응을 보이지만 처음엔 억지로 먹어본 이 음식의 매력에 빠져든 재한 외국인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 음식은 몸에 활력을 채워주고 나아가 막혔던 마음을 뻥 뚫어주는 처방전이 된다. 우울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단 한 번의 회복으로 완치될 리 없다. 왜냐하면 우울감과 불안감이 또 찾아올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조짐이 보이기라도 하면 활력을 찾아주는 음식으로 대응하는 선제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최근에 찾아온 여름날의 폭염은 나에겐 매우 힘든 고비였다. 체력과 영양이 부족한 독거 노인에겐 이를 뿌리칠 면역력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탓이다. 외출 일정을 모두 뒤로 미루고 집에 머물며 독서로 소일하는 가운데 내 몸의 피곤함이 갈수록 심해졌다. 더구나 집안에 에어컨도 없이 실내의 뜨거운 공기를 선풍기 1대로 식히기엔 역불급이었다. 

점점 입맛도 떨어지자 식사도 건너뛰기 일쑤였다. 허기는 대충 물로 채웠다. 그나마 작은 냉장고가 차가운 물을 공급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물에 의존하던 몸은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어지러움과 꾸역질로 인해 결국 몸져 눕게 되었다. 뜨거운 바람만 내뿜는 선풍기에 의지한 채 이부자리에 누워 한동안 이렇게 숨만 쉬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발걸음이 뚝 떨어진 노인의 안부가 궁금했던 동네 편의점 사장이 내 집을 방문했다.  

내 몰골을 보고선 바로 나를 동네 병원까지 승용차로 데려가 주셨다. 의사는 더위 먹은 증상이라며 이에 대한 응급처치와 함께 회복에 필요한 약 처방까지 해주었다. 워낙 내 몸이 허약한 탓인지 몸을 회복하는 데 약 2주 정도 소요된 것 같다. 한 낮 더위를 이겨내라고 동네 상가의 피씨방으로 나를 실어 날라 준 것도 부족해 묵밥, 냉모밀 등 찬 음식과 삼계탕과 추어탕 등 보양식을 공급해준 단골 가게 주인의 따스한 정이 나를 살린 셈이다.



다시, 정장을 꺼내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2년 넘는 동안 회복에 주력하던 저자는 때로 길을 잃어 헤매기도 했지만,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더욱 단단한 내면 근력을 키울 수 있었다. 정장을 입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딸의 말을 상기하면서 저자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마음의 감기를 앓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에세이 #아무렇지도않다는착각 #이은실 #마음의감기 #극복한시간의기록 #스노우폭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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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입문하기 - 삶의 방식에서 살아 있음의 철학까지, 인류학의 가장 위대한 질문들
오쿠노 카츠미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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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이 탄생한 이래 이 학문이 계속 질문해온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류학자들은 이 근원적인 문제를 계속 좇으며 고민하고 악전고투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해낸 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과 살아가는 법을 바꾸고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도 될 수 있습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오쿠노 가쓰미는 문화인류학자이자 릿쿄대학 교수이다. 대학생이던 스무 살 때 멕시코로 떠나 시에라마드레 산맥의 선주민 테레우아노인 마을에 머물렀다. 이후 방글라데시에선 잠시 불교 승려로서 생활했고, 터키의 쿠르디스탄과 인도네시아를 여행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에 2년간 보르네오섬에서 화전민 카리스인을 연구했고, 2006년엔 보르네오섬의 수렵채취인 푸난인과 함께 생활해 현재까지 계속 그들의 삶을 탐구해왔다.


총 여섯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근대 인류학이 탄생하기까지(1장), 말리노프스키 - 삶의 전체(2장), 레비스트로스 - 삶의 구조(3장), 보아스 - 삶의 방식(4장), 잉골드 - 삶의 변화(5장), 앞으로의 인류학(종장) 등을 통해 인류학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말리노프스키


1884년 폴란드 남부의 옛 수도 크라쿠프에서 출생한 그는 저명한 슬라브어 학자였던 아버지가 일찍 사망함으로써 홀어머니의 손 아래에서 성장했다. 19세기 말 유럽의 문예사상을 가까이하는 소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크라쿠프에 있는 야기엘론스키대학에 입학해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뒤 서서히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에 다니며 민족학자 카를 뷔허와 민족심리학자 빌헬름 분트 아래에서 사사받기도 했다. 1910년 영국으로 건너가서 런던정치경제대학 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말리노프스키가 사망한 직후(1942년)에 한 친구가 연구실에서 장서와 원고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일기를 발견했다. 영어로 번역되어 1967년에 출간되었는데, <말의 엄격한 의미에서의 일기>(A Diary in the Strict Sense of the Term)에는 현지인들에 대한 혐오감과 적의 등이 노골적으로 쓰여 있었다. 이에 '20세기의 인류학을 개척한 위대한 말리노프스키'라는 영웅적인 우상은 파괴되었고 다방면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어젯밤도, 오늘 아침도, 노를 저어줄 사람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백인으로서의 분노와 구릿빛 피부의 현지인들에 대한 혐오가 강해지고 우울도 덮치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으며, ‘이런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절망했다.”

인류학자가 현지 조사에서 겪는 어려움은 어느 정도였을까? 2006년 저자는 1년간 말레이시아 사라왁주(보르네오섬)의 브라가강 상류에 살고있는 수렵민 푸난을 연구하기 위해 필드에 나선 적이 있었다. 처음엔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푸난어는 잡음으로만 들려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화장실이 없어서 숲속에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해야 했다. 사람들은 여러 이유를 대며 염치없이 현금을 요구하는데, 빌려줘도 갚는 일이 없었다. 이들이 숲에서 사냥해온 것들 가운데 검은잎원숭이, 긴꼬리마카크원숭이 고기는 너무 맛이 없어서 삼킬 수조차 없었다. 왜 일부러 이런 오지까지 왔는지 뼈저리게 후회했다.

트로브리안드제도의 쿨라kula 교역

쿨라 교역交易이란 트로브리안드제도, 우드라크섬, 미시마섬,노먼비섬, 퍼거슨섬 등, 뉴기니 동쪽의 섬들을 잇는 교환交換 제도를 가리킨다. 시계 방향으로 섬들을 따라 교환되는 '빨간 조개 목걸이(소울라바)'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섬들을 따라 교환되는 '흰 조개 팔찌(음왈리)'이다. 


쿨라는 현대적인 경제 현상의 ‘외부’에 존재하는 제도이지만 매우 합리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섬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쿨라 교역에 따라 바이구아(귀중품)가 오감으로써 재화를 교환하는 상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천천히 교환을 하기에 관계를 오랜 기간 이어갈 수 있다. 즉 쿨라 교역은 떨어져 살아가는 여러 공동체를 연결하고 충돌을 피하기 위한 ‘구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쿨라 교역은 화폐를 통해 타자와의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는 없는, 매우 흥미로운 행동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말리노프스키가 묘사한 쿨라는 서양 근대의 ‘외부’에 존재하는 하나의 증여 교환 모델이다.


쿨라에 대한 이러한 착안은 불교의 ‘화엄사상’의 근본 원리와 비슷하다. 대승불교의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경 중앙아시아에서 정리된 불경인데, 그 속의 한 장章인 '보살십주품'에서는 ‘일즉다, 다즉일(一即多, 多即一)’이라는 개념이 시사된다. 한 알의 모래 속에 무한대의 우주가 있고, 또 그 무한대의 우주는 티끌 하나와 같다는 이야기이다. 화엄사상에서는 ‘인드라망’이라는 비유로 이를 설명한다. 인드라는 '제석천帝釋天'을 말한다.

레비스트로스

우리들은 통상 멀리 떨어진 변방에 사는 사람들을 '야만인' 또는 '미개인'으로 여겼다. 이는 일방적인 편견을 갖고 그들을 아래로 내려보며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했던 사고였다. 반면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연구를 통해 '미개인'의 세련된 사고를 인류학적으로 밝혀냈다. 이들의 사고방식을 우리들이 몰랐을 뿐, 사실 그들은 매우 세련되고 이성적이었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그의 책 <슬픈 열대>(1955년)에 잘 드러난다. 그는 1930년대 말에 브라질 오지 여행에서 체험한 내용들을 이 여행기에 소개했다. 그는 화가였던 아버지가 머물던 벨기에에서 탄생(1908년), 이듬해에 가족들은 프랑스로 귀국했다.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외할아버지는 랍비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피카소 그림에 감동을 받고, 바그너와 스트라빈스키 등의 음악을 사랑했다. 예술가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청년 시절에 겪으며 막 창설된 프랑스 사회주의학생연맹 사무총장에 취임, 정치에 열중했다. 이 무렵 그는 전쟁, 식민주의, 자본주의, 브루주아지로 인해 타락한 유럽을 버리고 아라비아 아덴으로 여행을 떠난 폴 니잔의 <아덴 아라비아>을 읽고 니잔의 모험 정신을 칭찬하는 서평을 썼다.

1935년 배를 타고 브라질로 향한 레비스트로스는 상파울루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카이강 사람들을 방문했다. 1938년대 후반에 자연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과 만난 일과 브라질 체류 경험을 책으로 출간한 <슬픈 열대>(1955년)를 통해 2차세계대전 후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예감하도록 만들었다.   

1939년 파리로 귀국한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군에 소집되어 국경에 구축된 마지노선에 배치됐다. 어느 날 마지노선을 따라 산책하던 그는 민들레 홀씨를 멍하니 바라보던 순간 민들레의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식물과 민들레를 대비함으로써만 처음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형태, 색, 식생 등, 민들레와 다른 식물의 어디가 다른지, 그 ‘차이’를 앎으로써만 민들레의 독자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때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이 전 세계 이곳저곳에 있는 ‘차이’를 통해 이 세계를 이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사고법이야말로 구조주의의 원점이다.

레비스트로스는 ‘토테미즘’과 ‘히스테리’가 19세기 말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두 주제가 탐구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시각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자신 안에 있는 껄끄러운 부분을 ‘미개인’과 정신병 환자에 투영하여 자신들의 정상성을 확인하려 했다. ‘미개인’과 정신병 환자라는 주제에는 연구자의 바람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서양을 ‘미개’와는 다른 합리적인 세계로 보기 위해 탄생된 ‘환상’이 토테미즘이라고 생각했다. 토테미즘은 연구자들이 창조한 산물이었다. 토테미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토템 환상’만 있을 뿐이었다.

보아스

미국 인류학은 남북전쟁(1861~1865년) 이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형성되었는데, 바로 가까이에 선주민이 있었다는 사실이 큰 영향을 미쳤다. 즉 멀리 떨어진 땅이 아니라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에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선주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것이다.

20세기 미국에선 급속한 공업화가 진행됐다. 이에 도시 환경이 악화되었고 빈부 격차와 흑인의 시민권 문제 등이 분출해 미국 사회는 사회 개선과 제도 조정에 착수해야 했다. 미국 인류학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힘입어 발전했던 거다. 문화라는 개념에 근거해 발전했기에 이를 '문화인류학'이라고 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삶의 방식'이다.

미국의 선주민 연구를 크게 발전시킨 인물이 독일 태생 이민자인 보아스였다. 그는 독일 베스트팔렌 지역 민덴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1858년), 독일 북부의 킬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물의 색채 인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1881년)를 취득했다. 1886년 북아메리카 서해안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후 뉴욕에서 시민권(1887년)을 얻고 클라크대학에서 인류학 강의(1889~1892년)를 했다. 이후 후진 양성에 힘쓰다가 1936년 컬럼비아대학을 퇴임했다.

안류학에서 문화상대주의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보아스의 제자인 멜빌 허스코비츠라고 여겨진다. 그는 보아스의 '문명'상대주의를 이어받으면서도 미개와 문명을 불문하고 모든 문화가 대등하다고 주장했다. 내 나라 문화와 남의 나라 문화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에 우열優劣은 없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전에 이러한 개념은 ‘상식에 어긋난’ 것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문화상대주의라는 말은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문화상대주의라는 사고방식은 미국 인류학의 근저에 흐르는 이념으로서 계승되어 인류학뿐만 아니라 세계화하는 현대에서도 공유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와 더불어 문화상대주의는 인류학이 탄생시킨 개념들 가운데서도 세상에 특히 큰 영향을 미쳤다.

같은 미국 선주민이지만 더 거칠고 투쟁적인 콰키우틀인의 문화는 도취를 상징하는 신 디오니소스에 빗대어 ‘디오니소스형’이라고 정의한다. 의례에서 춤추는 자는 깊은 황홀경에 빠지며 입에서 침을 흘리고 심하게 경련한다. 과거에 콰키우틀 사회에는 식인 습관이 존재해서 노예의 사체를 먹는 동안 성스러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파푸아뉴기니의 도부섬에서는 많은 이가 부정不貞을 저지르는데, 발각되면 격렬한 말다툼이 벌어지고, 요리 솥을 부수거나, 자살을 시도하거나, 주술을 걸기도 한다. 끝나지 않는 의심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지만 도부인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잉골드

잉골드 인류학의 주제는 '살아 있다'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삶'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고정되고 명사적인 '삶'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동사인 '살아 있는' 삶의 변화에 눈을 돌리는 것이 잉골드의 인류학이다.

잉골드는 영국 버크셔주 레딩에서 출생(1948년)했다. 아버자는 유명한 균류학자인 세실 테런스 잉골드로 영국 균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그는 인간을 그물망 모양의 선으로서 파악해야 한다고 보고 '균류 인간'이라는 신조어를 만든다.  

‘도보여행’ 같은 ‘선’이야말로 살아가는 길과 다름 없다고 이야기하는 잉골드는 우리 모두에게 ‘도보여행’을 하는 여행자가 되어 지식을 쌓으며 “따라 나아가기”를 권한다. 말하자면 살아 있다는 것은 만사가 예정조화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아니다. 우발적으로 ‘무언가’와 만나고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선’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우리는 지금 앞이 보이지 않는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공동체에서 공유될 만한 ‘이렇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가치관은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스스로 꿈꾸는 삶이 있는 미래를 찾아내야 한다.



이 대목에 책의 목적만이 아니라 잉골드 인류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 잉골드는 그동안 먼저 이론이 존재했고 그 결과의 파생물로서 사람의 ‘살아 있다’가 다루어져왔다고 이야기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사람의 ‘살아 있다’를 인류학의 주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선언한다. 과거의 인류학에 결별을 고하고 새로운 인류학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류학 100년을 다시 독해하고 인류학이 인간의 ‘살아 있는’ 모습을 탐구해왔음을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이다.

그리고 점들이 연결된 네트워크가 아니라 선들이 서로 얽힌 그물망, 주체와 객체의 고정적인 이원론이 아니라 생성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살아 있음’, 현실에서 격리된 학지學知가 아니라 신체 경험을 수반하는 실천의 지知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인류학의 목적은 인간의 삶 그 자체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다.”
- <팀 잉골드의 인류학 강의> 중에서 

#인문 #인류학 #인류학입문하기 #오쿠노가쓰미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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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번은 오디세이아 - 삶이 흔들릴 때 나를 지키는 고전 수업
샘 아크바 지음, 박미경 옮김 / 부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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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 역시 불확실성과 상실을 마주하고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흔들리는 정체성 사이로 항해하며, 마침내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가는 과정이다. (중략)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결코 곧게 뻗어 가지 않는다. 빙빙 돌아가고 엇나가고 무너진다. 하늘 끝까지 치솟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지옥 같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도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낙원이 족쇄가 될 때

오디세우스가 타고 귀국길로 향하던 배는 난파당하고 그는 나홀로 오기기아섬에 떠밀려 왔다. 이곳에서 그는 여신 칼립소의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 하지만 칼립소란 '숨기는 자'를 뜻하듯이 오디세우스를 자신의 섬에 붙잡아 두고 남편으로 삼고자 했다. 그렇기에 오디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를 만나러 떠나지도 못한 채 무려 7년이나 이 섬에서 지내야만 했다.  

칼립소는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오디세우스에게 자신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 그치지 않고, 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제안을 한다. 바로 '불멸과 젊음'이다. 나이를 먹지 않는 불멸이기에 고통도 괴로움도 없이,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여신과 함께 낙원과 같은 섬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를테면 늙지도 죽지도 않고 끝없는 만족만이 이어지는 삶이다.

어쨌든 몸매는 내가 그녀보다 낫잖아요.
키도 더 크고,
아름다움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 불멸의 존재를 뛰어넘을 수는 없으니까.
- <오디세이아>5권, 211~214행 

이는 성취와 소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오늘날의 사회가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렇게 끊임없이, 그리고 집요하게 현대판 칼립소의 거래를 제안받고 있다. 위로와 쾌락을 줄 테니, 진짜 나 자신을 내놓으라는 제안이다. 

아무튼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쾌락을 뿌리치고 자신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 즉 집과 가족이란 정체성을 끝까지 놓치 않았다. 이에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뗏목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라고 했다. 탈출이 절실한 순간임에도 그는 덥썩 이 제안을 물지 않는다. 속임수와 배신의 경험 때문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결국 그는 나무 스무 그루를 베어 다듬어서 돛대와 가로대를 만들고 키를 달았다. 또 틈새를 메워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뗏목을 만들었다.   

함께할 선원, 나를 지탱해 줄 관계

바다로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디세우스의 뗏목은 산산조각나고 만다. 분노한 포세이돈의 짓이다. 포세이돈은 자신의 아들인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한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하려 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할 사람은 오직 자신 뿐임을 직시한다. 뗏목 널판지를 부여잡고 파도에 떠밀려 가까스로 도착한 곳은 파이아키아의 해안이었다. 이곳에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과연 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까?라는 절박한 질문 앞에 섰다. 이곳은 안전한 피난처일까, 아니면 여기서 나홀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해야 할까.

이번에 다다른 곳은 어떤 나라일까?
여기 사람들은 모두 거칠고 난폭할까?
아니면 나그네에게 선을 베풀고 환대하며 신을 두려워할까?
-<오디세이아>6권, 119~121행 
 
고대 그리스인들은 회복력과 재再起가 팀 스포츠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 왕위를 되찾은 것도 개인의 의지와 노력 덕분만은 아니다. 길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 친구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주변에 협력자가 있을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

때로는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여정의 방향을 좌우한다. 크게 도약하는 순간이든 바닥까지 가라앉는 시기든, 당신 곁에도 거의 언제나 당신을 끝까지 버티게 해 준 선원들이 있었다. 힘겨운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자체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마주하느냐는 선택할 수 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선원들과 함께 삶의 굴곡을 헤쳐 간다면, 당신은 끝까지 나아갈 수 있다.

노맨 전략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를 외치던 노래가 있었다. 가수 조성모의 '가시나무새'이다. 오디세우스에서도 다양한 정체성을 볼 수 있다. 트로이 목마를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략의 대가, 파이아키아인들 앞에서 좌중을 사로잡는 노련한 이야기꾼, 아무도 아닌 사람인 '노맨' 등이 바로 그것이다.

키클롭스, 그대가 내 이름을 물으니 알려 드리리다.
그 대신 그대가 약속한 환대의 선물을 주시오,
내 이름은 노맨이오.
- <오디세이아> 9건, 364~367행

사실 부하들이 말렸을 때 오디세우스는 동굴을 떠났어야 했다. 그는 이를 인정했다. 오디세우스의 실수는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기지機智가 인정받지 못한 채로 묻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 인정 욕구가 더 나은 판단을 압도하면서, 완벽했던 탈출은 파국적인 결말로 바뀌고 만다. 키클롭스의 아버지 포세이돈의 분노를 불러왔으까 말이다.

‘노맨’ 전략은 역설적으로 ‘확고한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자신을 노맨이라 부를 때, 오디세우스는 자존심을 앞세우는 자아를 내려놓을 힘이 있었다. 잠시 이름을 숨긴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 큰 목적을 위해 자기중심성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이들은 위기를 겪고도 더 큰 회복력을 보이고, 타인과 더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더 오래 지속되는 성취를 이룬다. 진정한 힘은 내가 누구인지를 앞세우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존감에 있다.

실패도 성공도 삶을 완성하는 조각이다

식인족 라스트리고네스에게 부하를 몇 명 더 잃은 뒤, 오디세우스는 아이아이에 섬에 도착한다. 이번엔 태도가 한결 신중해졌다. 먼저 부하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격려를 하면서 소수의 정찰대를 보내어 이곳이 어떤지를 살펴보게 한다. 그는 실수를 통해 확실히 배운 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들도 지나온 삶을 풀어내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될지 모른다. 

한때는 도저히 넘을 수 없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실은 삶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깊은 변화를 이루어 낸 시간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과거를 되짚는 것은 고통에 머무르거나 지난 영광에 기대는 일이 아니다. 힘겨운 시기를 지나오며 그때의 선택과 대응 속에 자신도 몰랐던 단단함과 내면의 회복력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책임져야 하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도 조금씩 분명해진다.(180쪽)

목적지가 분명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란 무엇일까? 이타카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여러 의미를 함께 품고 있기 때문이다. 왕이자 남편이며 텔레마코스의 아버지라는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고향이란,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고, 그런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자리다. 삶을 뒤흔드는 시련 속에서 진짜 자신을 잃어버렸다면, 그때 고향은 더 이상 벽돌과 시멘트로 이루어진 장소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할 곳이 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이타카가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 명확한 목적지 없이 항해를 계속한다면, 자신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을 법한 고향의 환상을 좇으며 제자리만 맴돌게 될지도 모른다. 타인의 목표를 자신의 목표로 착각하거나, 남들이 규정한 목적지를 무작정 따른다면, 정작 목적지에 도달해도 마음 한 켠엔 공허감과 불만이 자리잡을 수 있다.

오디세이아가 전하는 교훈

오디세이아가 전하는 가르침은 분명하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마찰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점이다. 멀리 돌아가는 길, 예상치 못한 샛길 등에서 생기는 저항도 마찬가지다. 목표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서 마찰, 지혜, 인내, 통찰, 회복력 등을 만나는 기회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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