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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센스 - 컬리, ‘좋은 것’에 대한 기준이 전략이 되는 사람들
(주)컬리 지음 / 세미콜론 / 2026년 5월
평점 :
유통업에서 '좋은 것'이란 주로 싸고, 빠르고, 양이 많은 상품과 동일시돼왔다. 누구에게나 단번에 이해되는 기준이다. 그러나 컬리는 묻는다. "가장 저렴한 것이 항상 고객에게도 가장 좋은 것인가?" 그리고 답한다. "결코 그럴 리 없다" 컬리가 추구하는 '좋음'이 직관적이기보다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직관적이지 않음이야말로 자연스럽다. 정말 중요한 가치들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 않은가.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컬리는 식재료를 중심으로 뷰티와 리빙 상품까지 아우르는 온라인 커머스 기업이다. 창업자 김슬아는 2016년 '마켓컬리'를 설립해 국내 최초로 새벽 배송 시대를 열었다. 채소와 과일 등 신선 식품을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 전에 배송하는 '샛별배송'을 도입했고, 상품 입고부터 배송까지 전 과정을 일정 온도로 유지하는 풀 콜드 체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좋은 것'의 재정의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경과한 컬리는 회사의 정체성을 "우리는 좋은 것을 추구하는 조직"이라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좋은 것'이란 말은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는 건 사실이다. 이에 컬리는 좋은 것에 대한 고집을 조직의 DNA로 삼아 지속 가능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창업가든, 회사 구성원이든, 일을 가장 행복하게 지속하는 방법은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를 푸는 거예요. 나에게 절실한 문라면, 해결될 때까지 멈출 수 없으니까요." - 김슬아
2015년 5월, 컬리는 온라인 새벽 배송 서비스를 개시, 서울 지역의 워킹맘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탔다. 전날 밤 주문한 식재료를 다음 날 이른 새벽에 배송받는 아런 서비스 경험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가입한 회원은 1년 만에 10만 명을 돌파했다. 겉보기엔 성장 궤도에 올라선 것 같았다. 그런데, 회사 내부에선 곧 망할 거란 분위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문제는 현금 흐름의 악화였다. 식재료 매입 대금을 선지급하고 나중에 판매 대금으로 회수하는 방식이라 자금 회전이 잠시만 막혀도 기업 운영이 어려운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하려면 먼저 망하지 않아야 했다. 김슬아 대표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그렇다. 자금 유치였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에 등록된 회사를 접촉했다. 절반 이상이 만나주지 않아도 컨택을 멈추지 않았다. 무작정 회사 빌딩 로비를 찾아가 '얼굴만이라도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기다렸다. 이렇게 매일 투자사와 미팅을 잡기 위해 애썼다. 역삼에서 삼성까지 테헤란로를 따라 정처없이 걷던 날까지 있었다. 과거 인베스트먼트업계에서 활동했던 내 기억을 떠올려 볼 때 김슬아 대표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결혼을 했는지, 출산 계획은 있는지 등 심사역들의 질문 속엔 한국 사회에서의 성공에 몇 가지 조건이 있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출신 지역, 학력, 회사 등의 인맥이었다. 심지어 같은 고향 출신의 같은 학교와 같은 회사 출신인 남성 창업가에게도 투자 여부를 고민하는 판에 왜 조건도 하나 없는 여성에게 투자해야 하느냐고 거꾸로 묻기까지 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린 투자 유치에 한줄기 빛이 들었다.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박희덕 대표)가 41억 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이후 김슬아의 약속을 지키는 성실한 보고 태도를 신뢰, 2016년 12월에 17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마무리했다.
컬리에는 ‘은퇴위원회’라는 제도도 있다. 상품위원회가 ‘무엇을 팔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리라면, 은퇴위원회는 ‘무엇을 더 이상 팔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리다. 이는 컬리의 큐레이션을 더 좋게 만들려는 시스템이다. 상품위원회가 고기와 생선을 굽는 소리, 도마 위에서 과일이나 해산물을 손질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면, 은퇴위원회는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무겁지만 핵심은 '왜 팔리지 않는지?', '더 해볼 수 있는지?' 등을 물으며 답을 찾는 과정이다.
은퇴위원회는 분기에 한번 열리는데, 론칭한 지 6개월 경과했고 월평균 매출이 100만 원 미만인 상품이 안건에 올라온다. 이를 통해 모인 구성원들은 컬리의 기준을 체감하고, 감각을 맞추고, 이견異見을 조율하는 자리이며, 함께 더 좋은 것을 찾고 발전시키자는 컬리의 핵심 프로세스인 셈이다.
컬리다움의 확장
'좋은 것을 추구한다'는 마음만으론 브랜드가 되지 않는다. 그 진심이 고객에게 발견되고, 공감받아, 결국 선택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브랜드로서 생명력을 얻는다. 더 많은 고객들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아 '선택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컬리는 지난 10년 동안 단순한 외형 성장을 넘어 전략적 차별화에 힘써 왔다.
컬리는 어떻게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는지를 책은 상품 기획, 광고오 마케팅, 운영과 물류, 고객 경험 등 4가지에서 찾아본다. 컬리는 기존 리테일의 공식을 흔들며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왔다.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이는 디테일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태도에서 나온다.
수요자 중심 서비스는 ‘아보카도 한 개’를 전달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보통 아보카도는 한 망에 대여섯 개를 넣어 판매하는데, 컬리는 한 알씩도 판매한다. 아보카도는 먹고 싶은데 한 망을 구매하자니 너무 많아 구매하지 않거나 사더라도 다 먹지 못하고 버리곤 하는 1~2인 가구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기획이다. 물류 효율만 고려하는 기존 유통과 달리, 컬리는 고객의 실제 필요를 기준으로 제품 판매 단위를 바꾼 것이다.
나 또한 이런 경험을 했다. 컬리에서 구매한 계란 한판은 20개 들이였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15개라 아쉽다고 느껴지고 마트에서 파는 한판 30개는 혼자 사는 나에겐 좀 부담스러웠다.
2025년 6월 도입된 대파 박스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선택이다. 길쭉한 대파 한 단을 담기 위해 길이는 길고, 높이는 낮은 대파 전용 박스를 새로 설계했다. 작은 불편을 지나치지 않는 선택, 물류업 경력 25년 차 FC운영본부장 김지훈이 말하는 ‘컬리다운’ 지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비용보다는 고객 경험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컬리다움의 미래
컬리는 시장에서 고객의 선택을 받으며, 좋은 것을 향한 고심이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지난 10년의 성공과 실패 속에 쌓인 방대한 경험치를 자양분 삼아 이제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컬리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 해외시장 개척, 신사업 실험, AI 네이티브 기업으로의 전환 등 지속 성장을 위한 스스로의 질문을 살펴본다.
비식품 판매를 본격적으로 확장한 계기는 고객의 행동 데이터에서 비롯됐다. 컬리의 주 고객은 30~50대 여성으로, 먹는 것에 유독 기준이 높은 집단이다. 좋은 식재료와 함께 조리 도구, 그릇, 생활용품을 장바구니에 담는 패턴이 반복적으로 관측됐다. 바쁜 일상에서 수많은 제품들을 일일이 비교하고 선택할 여유가 없는 고객들이 먼저 “치약이나 세제도 컬리가 골라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보내오기도 했다. ‘잘 먹는 것’에 대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으로 이어졌다.
처음 '뷰티컬리'를 론칭했을 때 시장에선 컬리의 화장품 판매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내부 분위기는 달랐다. 이를 자연스런 확장으로 수용했다. 그 배경엔 한우 등심과 주물 팬, 치약과 달걀 등을 함께 담는 고객의 장바구니 데이터를 보며 컬리는 고객이 원하는 바가 단순 식품 구매가 아닌 잘 먹고 잘 사는 삶, 즉 웰빙에 대한 큐레이션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기존 쇼핑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구매자들의 체류시간이 길어진다. 예를 들어 올리브 오일 구매자가 검색창에 “오일 파스타에 어울리는 올리브 오일을 추천해줘.” 하고 요청하면 AI가 컬리의 방대한 상품 데이터와 큐레이션을 학습해 최적의 상품을 제안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기획본부장 고규환은 일방적인 검색보다는 대화에 가까운 경험의 구현을 꿈꾼다. 그 결과, 고객은 입이 심심할 때 냉장고 문을 열어보듯, 딱히 살 것이 없어도 컬리 앱을 켜게 될 미래를 그리고 있다.
컬리다움의 정수
어떤 조직의 구성원이 동일한 가치와 신념을 바탕으로 일할 때, 우린 이를 '기업(조직)문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문화를 형성하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 말 그대로 '오늘부터 우리의 조직 문화는 무엇입니다'라고 결정하는 대로 행해지는 것이 결코 아니기에 그렇다. 문화가 형성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컬리의 집념 문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은 물류센터다. 매일 10만~20만 개의 상품을 출고하는 이곳에선 0.1% 개선이 모여서 큰 변화로 이어진다. 수많은 상품, 일용직 노동자, 계속 늘어나는 배송지 등 이 복잡성을 관리하려면 많은 장치들이 필요하다.
컬리에서 판매 중인 바나나는 11종이 넘는다. 냉장 구역에 나란히 놓인 11종 이상의 바나나 중 고객이 주문한 바나나를 찾아 담는 과정에서 실수가 자주 발생했다. 하지만 한 직원이 가장 많이 헷갈리는 B 바나나와 C 바나나 옆에 “다시 한번 확인하세요.”라고 적어 붙여둔 후에 실수가 크게 줄었다.
상품이 잘못 출고되면 원인을 확인하고, 오출고 가능성이 높은 상품과 상황을 매일 점검한다. 그렇게 매일매일 필요한 장치를 하나씩 보완해나간다. 이런 작은 개선들이 모여 오배송률을 압도적으로 낮췄다. 고객들은 이런 작은 개선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컬리는 그저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할 뿐이다. ‘컬리는 배송이 참 정확하네.’라고 말이다.
좋은 것이란?
사업자등록을 마치고도 한동안 김슬아 창업자에겐 이렇다 할 사무실 하나 없었다. 초기엔 스타벅스에 모여서 노트북을 펴놓고 일했다. 망한 조명가게를 3개월 임시 계약하고 쌓인 먼지로 인해 기침과 재채기로 일상을 보내기도 했다. 비록 작고 초라한 공간일지라도 창업자는 좋은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전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고 이것이 바로 구성원들에게 작동한 원동력이었다. 컬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등 모든 것이 궁금한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특히 창업을 했거나 창업을 꿈꾸는 분들에겐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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