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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화두 여행 - 이야기로 묻고 철학으로 답하다
박병기.강수정 지음 / 사유정원 / 2026년 7월
평점 :
고등학교에서 25년간 윤리를 가르치면서 도덕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 강수정이 이 책의 초고를 완성했다. 그의 지도교수이기도 한 공저자 박병기는 초고를 검토하면서 고등학생 정도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말로 바꾸도록 권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철학함이 가능해야 한다고 믿는 우리 두 저자는 이 책을 읽은 시민들이 철학함의 즐거움과 함께, 철학함이 어렵지 않음을 느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 '머리말' 중에서

총 7일간의 강의 형식으로 구성된 책은 행복을 찾다(1일차), 진실을 마주하다(2일차), 자유를 묻다(3일차), 쾌락을 추구하다(4일차), 도덕성을 지키다(5일차), 실존을 선택하다(6일차), 공존의 길을 찾다(7일차)에 걸친 일곱 개 화두에 관해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데카르트, 스토아 철학자, 스피노자, 에피쿠로스, 벤담, 밀, 홉스, 흄, 칸트, 니체, 사르트르, 싱어, 롤스, 하버마스 등의 주요 철학자들의 답을 만난다.
먼저 현대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행복이란 화두를 살펴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작은 키에 뭉퉁한 코를 지닌 못생긴 사람이었다. 그의 직업은 石工이었는데, 워낙 젊은 사람들과 대화 나누기를 즐겨 했다. 스스로 무지無知하다고 판단했기에 델리 신전에 적혀 있던 경구警句인 '너 자신을 알라'를 차용해서 만나는 사람에게 이를 마치 화두話頭처럼 던졌다고 한다. 어쩌면 대화 그 자체가 그에겐 '행복'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단순히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붙들고 '너 자신을 알라'를 외치는 이상한 사람으로 그를 바라보면 곤란하다. 비록 가진 게 적어서 젊은 아내에게 구박을 받는 게 일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한 로열티만은 확실해서 나이 마흔 살까지 세 차례나 步兵으로 전투에 참가했을 정도였다. 참고로 그 당시의 전투에선 보병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이에 반해 전쟁터도 아니고 군에 입대조차 않으려고 온갖 꼼수를 쓰는 청년은 겁쟁이여서 그럴까?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란 자전적 소설의 주인공은 한스 기벤라트이다. 그는 마을에서 촉망받는 학생이었고 아버지, 교장, 목사의 기대를 받으며 경쟁률이 치열했던 신학교에 당당히 입학했다. 모범생이었던 그는 몽상가 친구를 사귀면서 공부에 대한 열의를 잃어갔다. 친구가 퇴교당한 후 우울증과 신경쇠약이 심해져 결국 귀향하고 만다.
신학교를 졸업한 뒤 수도원을 거쳐서 목사가 되려던 한스는 이제 길을 잃고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기계공의 견습 사원이 된다.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힘들었지만 차츰 적응해나가던 어느 일요일 오후, 그는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길에서 실종된 후 다음날 차가운 물 속에서 발견된다.

소크라테스의 말 '너 자신을 알라'는 의미를 다시금 떠올려보자. 자신을 안다는 것은 스스로의 생각과 행위를 끊임없이 반성하며, 자신의 내면 영혼을 돌보는 일임을 가르킨다. 즉 삶의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소크테스가 말하는 지혜의 출발점이다. 무지無知의 자각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는 아테네의 명망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는 감화되었고, 다른 어떤 이는 불쾌감을 갖고 반감을 가졌다. 사실 자신이 모른다는 걸 드러내는 질문은 환영받기 어렵다.
결국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음해陰害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자신만의 신을 믿는다"는 구실로 그를 고소했다. 재판에 넘겨진 그는 사형 언도를 받는다. 이같은 앎은 도덕적 차원의 앎이다. 알면서도 나쁜 행위를 벌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렇다. 그가 말하는 지혜란 단순히 안다는 것을 넘어 스스로의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참된 앎'의 상태를 가르킨다.
한 나라의 대통령에 당선된 범죄 혐의자는 지금도 정적을 무자비하게 음해하면서 자신의 무지無知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진면목을 철저하게 숨긴다. 소크라테스는 재판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이 사람은 재판만은 피하려고 온갖 꼼수를 다 동원하고 있다. 예상 밖의 재판 결과에 대해 여러 추종자들이 제안한 탈옥을 거절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며 당당하게 독배를 들이켰다. 행복한 철학자였다.

그리스인들은 '행복을 잘 살고 잘 행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 아래와 같이 3가지로 구분했지만, 그는 외부 대상에서 의존하는 것은 자족적自足的이 아니므로 관조적 삶을 추구했다.
행복을 쾌락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행복을 정치적 명예나 사회적 성공에서 찾는 사람들
행복을 관조적觀照的 삶에서 찾는 사람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했다. 비이성적인 부분은 욕구적慾求的 측면과 영양 섭취를 통한 성장의 원인이 되는 식물적食物的 측면으로 구분했다. 탁월성은 무엇일까? 탁월하다는 것은 '고유의 가능'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탁월성이란 "그것에 의해 좋은 인간이 되며, 자신의 기능을 잘 수행하게 만드는 품성의 상태"라고 말했다.


즉, 좋은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무작정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좋은 삶인지를 숙고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자신의 기능을 잘 수행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한 능력인 이성을 바탕으로 삶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은 두 가지 탁월성을 배양해야 한다. 바로 지적 탁월성과 성격적 탁월성이다.
지적 탁월성~ 지성의 덕德(교육 과정을 통해 길러짐)
성격적 탁월성~ 품성의 덕德(반복적 습관과 훈련 속에서 길러짐)
성격적 탁월성(품성의 덕)은 맹목적인 습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인간은 상황마다 무엇이 지나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품성적 덕은 지성적 덕중의 하나인 '실천적 지혜phronesis'의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단순히 많은 지식을 아는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 것인지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지혜에 가깝다. 실제 삶에서 마주하는 많은 선택지 중 가장 바람직한 길을 헤아리고, 이를 현실 속에서 적절하게 실현해 내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실천적 지혜란 현실 속에서 인간다운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판단케 하는 삶의 지혜인 셈이다.

이밖에도 책은 진실, 자유, 쾌락, 도덕성, 실존, 공존 등의 화두 여행을 이어간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기계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를 진짜 현실로 믿으며 살아가는데 모피어스는 2개의 선택지를 내민다. 하나는 빨간 약으로 이를 먹으면 환상에서 깨어나 자신이 믿어온 세계의 진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빨간 약을 먹고 깨어난 이들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세계처럼 아름답고 완전한 것이 아니라 더 거칠고, 더 불완전하며, 더 고단한 현실이 펼쳐져 있다. 그래서 차라리 매트릭스 안의 삶이 더 달콤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멋진 신세계(출생하자마자 계급이 정해짐)~ 스피노자가 답하다
비밀의 숲(황시목 검사의 도덕성)~ 칸트가 답하다
설국열차(쾌락의 계산)~ 벤담이 답하다
달과 6펜스(내 삶의 선택)~ 사르트르가 답하다
홍길동전(공정한 사회)~ 롤스가 답하다
나를 찾아가는 7일간의 여행
책은 영화와 드라마, 문학작품, 철학 등이 만나는 화두 여행을 제시한다. 영화(드라마)로는 매트릭스, 인셉션, 인터스텔라, 설국열차, 인사이드 아웃, 비밀의 숲, 옥자 등이 소개되고, 문학작품으론 수레바퀴 아래서, 꽃들에게 희망을, 멋진 신세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어린 왕자, 파리대왕, 황야의 이리, 달과 6펜스, 홍길동전, 변신 등의 작품이 등장한다. 철학으론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데카르트, 스토아 철학자, 스피노자, 에피쿠로스, 벤담, 밀, 홉스, 흄, 칸트, 니체, 사르트르, 싱어, 롤스, 하버마스 등의 철학자 이론들이 소개되면서 각박하고 불안한 삶 속에서 화두 여행을 통해 나를 찾도록 돕는다. 철학을 어렵게만 느끼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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