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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서생 노상추의 눈물나는 과거합격기 1 - 청년 가장 ㅣ 맹렬서생 노상추의 눈물나는 과거합격기 1
김도희 지음 / 제이에스앤디(JS&D) / 2024년 3월
평점 :
양반집 자제라고 하면 얼핏 음풍농월하며 책장이나 넘기고 살았을 것 같지만 실제 그의 삶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극한적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노상추는 다산 정약용이나 퇴계 이황 같은 역사적 스타는 아닐지 몰라도, 삶에 임하는 맹렬한 자세만큼은 이순신 장군 못지않은 것 같습니다. - '양반가 청년 선비의 일상을 들여다보다' 중에서

(사진, 책표지)
<맹렬서생 노상추의 눈물나는 과거 합격기>(전 3권)을 쓴 작가 김도희는 대학에서 아동학과를 졸업하고 방송작가, 어린이책 저자, 편집자로 유아,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TV 교양, 교육 프로그램을 다수 집필했다. 작가는 소장자 노용순의 '노상추일기'를 근간으로 노상추 가계의 삶을 통해 조선시대의 생활을 보여준다.
작품의 주인공 노상추는 영조 22년(1746)에 경상북도 선산의 양반 안강 노씨 집안에서 출생해 무과 시험에 급제하고 무관으로 활동했던 선비였다. 그는 17살 때부터 사망 이틀 전인 84살까지 무려 67년 동안 일기를 썼다. 이중 53년 간의 일기가 현재까지 전해져 그 원본은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되어 있다.
이제 그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나이 열일곱에 집안 일을 책임져야 하는 청년 가장 노상추의 가계는 부모, 아내, 형수, 조카 둘, 남동생(완복), 여동생(효명)과 노비 식솔 열 등 총 19명이나 된다. 가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노비들과 함께 논밭 농사를 잘 경영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양반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 과거에 급제해야 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인생 최대 미션이다. 오늘도 공자의 <논어論語>를 펼쳐 소리내어 읽는다. 제1편(학이學而)에 실린 글이다. 그런데, 안강 노씨 가문은 관직 금지령인 '금고禁錮' 처벌을 받고 있다. 과거에 급제하더라도 관직을 제수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사진, 16쪽)
노상추 일기는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걸쳐 조선 사회의 생활, 풍속 등에 대해 상세하고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사료史料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 기록 속엔 당시 양반집 가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상, 향촌 사회의 모습, 중앙 및 지방 관료 조직 등에 대해 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므로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노상추의 새벽 독서는 오늘도 이어진다. 그는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여종이 준비한 세숫물로 세수를 한 후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의관을 갖춰 입고 서안에 앉아 논어論語를 읽기 시작한다. 늘 그러하듯 이는 그의 일상 중 인시寅時(새벽 3~5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자왈 사부모 기간 견지부종 우경불위 노이불원'
子曰 事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음력 정월 스무아흐렛날 새벽이니 밖은 어두워 캄캄하고 추운 날씨다. 게으름을 피우기 쉬울 17살 나이임에도 아내까지 둔 어였한 성인인지라 이처럼 대견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공자의 가르침으로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 부드럽게 간해야 하니 자기 뜻이 부모를 따르지 않음을 드러내면서도 부모를 공경하여 어기지 않고 힘들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상추는 이 뜻을 새기며 마땅히 실천하는 군자가 되리라 다짐한다. 사실 상추는 셋째 아들임에도 집안 가장 노릇을 한다. 왜냐하면 위로 두 형들은 모두 죽어서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맏이였던 큰형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기에 소상小祥(첫 기일 제사)을 며칠 앞두고 노비를 대동하고 삼척으로 가셨다. 장례식 때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분이니 제사상을 보고 싶겠는가.
기일이 지나고 열흘째 되는 날 귀가했다. 사랑채로 들며 모두 따라오라고 했다. 소상 때 하루종일 비가 내려 가족들 모두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 아직 감기가 떨어지지 않은 상추는 콧물을 훌쩍이며 사랑채에 들었다. 운곡으로 이사하자는 제안이었다. 풍양 조씨 집성촌인 운곡은 어머니 친정집이 있는 곳이다.

(사진, 노상추와 친인척 반경 지도)
이사 갈 집은 사돈어른이 사용하다 지금은 비어 있는 27 칸 기와집이라고 했다. 비어 있다곤 하나 수리해야 할 곳도 많을 것 같고 이 많은 살림을 몽땅 운곡으로 옮긴다는 게 영 마음 내키지 않았다. 심지어 친정이 있어 좋아할 법한 어머니조차 별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다.
허나 상추는 아버지가 갑자기 이사를 제안한 이유를 헤아릴 수 있었다. 현재의 선산 집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을 잊고 싶은 거다. 큰형과 둘째형의 죽음, 아버지의 첫 아내이자 큰형의 생모인 큰어머니도 이곳에서 죽었으니 모두 잊고 새로 태어나고 싶은 거다. 이에 젊은 가장인 상추는 아버지 제안을 동의했다. 새벽에 읽은 논어 귀절도 떠오르고 말이다.
더구나, 지금 당장 이사 준비를 하라는 아버지의 영이 떨어지자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먼저 출발하겠다며 동생 완복과 조카 술증에게 짐을 싸라고 하자 놀란 어머니도 뒤따라 이를 지시했다. 이에 형수는 얼굴이 하예지며 허둥지둥 옷가지와 먹거리를 챙겨 노비를 시켜 말에 싣도록 했다. 동지섣달에 이사란 날벼락을 맞은 노비들 모두 한 마디씩 투덜대자 상추는 불호령을 내렸다.
노상추 식구의 이사 소식에 외가 친척들이 많이 와 하루 종일 시끌벅적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이 좋은날에 고모가 크고 높은 사랑방의 큰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구경하려다가 아래로 떨어져 머리를 다쳐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죽고 말았다. 빈소를 차리고 초상을 치르게 되었다. 슬픔에 빠진 아버지는 이 변고는 모두 자신 탓이라며 다시 선산으로 가자고 해서 다시 이삿짐을 쌌다.
완연한 봄, 집의 소가 연이어 두 마리가 죽자 농사에 큰 차질이 발생했다. 소가 쟁기를 끌어야 논밭의 땅갈기가 쉬울텐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운곡의 충격적인 사고 탓인지 아버지는 몸져 누웠다. 선산 부사의 요청을 받아 상추는 금오산에서 거행되는 기우제 헌관으로 참여했다. 6월 첫날, 드디어 비가 왔다. 6일 동안 연속 비가 내려서 이젠 논이 물에 잠길까 걱정될 정도다. 결국 산사인 미봉사로 피난을 갔다.
행여여력 즉이학문
行有餘力 則以學文
9월 새벽, 노상추는 여느 때처럼 인시에 기상해서 의관을 갖추고 공부를 시작했다. 집에서 효孝를 실천하고 밖에 나가면 인仁을 실천하는 것이 학문을 닦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이었다. 이또한 공자의 가르침으로 논어 학이편에 실린 글이다. 즉 자제子弟된 자는 맡은 소임을 다하고 남은 힘이 있으면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사진, 50쪽)
우리들은 뭐든 '나중에'라는 말을 자주한다. 또 공부하는 게 무슨 벼슬이라도 받은 양 공부 외의 다른 일은 뒷전이다. 이는 인생 말년에 큰 후회감이 밀려올 수도 있음을 빨리 깨닫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내 가슴이 떨릴 때 하는 것인데 나이 들어 다리가 흔들거릴 때 하면 되겠는가. '금' 중에서 최고의 금이 뭔지 아는가? 황금, 소금 등 좋다지만 사실 '지금'이 최고다. 이 순간이 최고임을 깨달은 사람은 '나중에'를 외치지 않는다. 공부를 한답시고 정말 행해야 할 도리를 뒷전에 돌린다면 부모님 사망한 후 어떻게 효孝를 행할까?
어머니(44세)가 상추의 동생을 가졌다. 상추(18세)의 아내도 임신을 했다. 한 집에 임산부가 둘이라니. 허리가 아파 미봉사에 계신 아버지에게 새해 인사차 들러 이 사실을 알렸다. 뜻밖의 어머니 임신에 놀라더니 며느리의 손주 잉태 소식엔 파안대소했다. 선산 노상추 집안에 부자가 함께 자식을 보게 될 것이다.
해지기 전에 선산 집에 도착하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노비 덕돌이가 절에서 스님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며 '문경새재를 다녀오던 스님이 산에서 커다란 호랑이 발자국을 보았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후 새끼를 죽인 복수를 위해 민가로 내려와 그 당사자 집을 급습하여 모두 죽이고 호랑이 자신도 포수의 총에 사살되는 사건이 정말로 발생했다.
친정에서 몸조리하라고 보냈던 아내가 4월이 되어 선산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배는 불러오는 중이다. 기력이 부족해 숨이 차 하고 손발이 부었다. 집안에 임산부가 두 명이라 조심 또 조심을 해야 한다. 여동생과 아내는 곧 태어날 신생아를 위한 옷, 이불, 기저귀까지 준비한다고 바빴다.
상추는 효득 형이 구해온 과거 시험 기출 문제를 놓고 사랑채에서 본격적으로 과거 준비를 시작했다. 생원 시험에 출제된 네 문제 중 한 문제 정도는 답안을 작성할 수 있을 것 같아도 나머지 세 문제들은 도무지 깜깜했다. 생원시나 진사시에 합격하면 그 다음 대과 시험을 치르게 된다. 효득 형은 8일 정도 사랑채에 머물며 노상추의 문과 급제를 위한 공부를 도왔다.
올해도 날이 가물어 금오산에서 기우제를 위해 야단법석이었다. 유월이 되자 관아에서 여헌 선생(장현광)의 사적事迹을 정리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이에 노상추도 회의에 참석해 여러 어른들의 심부름을 하며 일을 도왔다. 작업을 마친 글과 책을 관아에 제출하는 일을 상추가 맡게 되었다. 선산부 읍성에 두창(천연두)가 돌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동헌에 들러 관련 서류를 전하고 서둘러 관아를 빠져 나왔다. 상추는 귀가하지 않고 노비 덕돌이와 함께 미봉사에 들러 이틀 머물다 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집으로 내려갔다.
상추는 모 이앙을 마친 논을 둘러보고 귀가하는 길에 산파와 산바라지를 할 동네의 간난네와 안동댁 집에 들러 부탁 인사를 했다. 저녁 식사 후 안방으로 건너 가 어머님 상태를 살폈다. 이제 출산이 며칠 남지 않았다. 설사기가 멈추지 않고 토하고 열까지 있었다. 태아에 좋지 않다며 약을 먹지 않고 버티다 출산이 시작되었다. 딸을 낳았다. 피를 많이 흘리셨다. 이 일로 어머니가 사망할 줄이야.

(사진, 130쪽)
10월, 마침내 상추도 득남을 맞았다. 아내는 출산후 狂症을 보였다. 소식을 들은 장인이 방문해 아내는 회복 중에 있다. 상태가 호전되어 장인은 돌아갔다. 이후 아내는 발작증을 보이며 피가 나도록 긁어댔다. 옆에서 간호하던 여동생 효명도 옷매무새가 흐트려져 있었다. 증세가 점점 더 심해졌다. 11월 26일 눈이 펑펑 내렸다. 이틀 후인 28일 아내는 사망했다.
그런데, 아내의 상태가 이토록 악화되었는데도 몹쓸 말을 아내로부터 들어 화가 난 형수는 이 집에선 더 이상 못살겠다며 눈이 내리는 오후에 만류를 뿌리치고 떠나버렸다. 야속하고 또 야속했다. 초상을 치른 지 넉달 만에 또 빈소를 차렸다. 땅이 돌처럼 얼어붙어 며칠간 동네 장정들이 도끼로 파낸 끝에 12월 20일 겨우 아내를 매장했다. 이토록 무서운 한 해가 저물어갔다.

(사진,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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