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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효재의 K-조선 대전환 - 조선업의 태동부터 마스가 프로젝트까지
권효재 지음 / 동아시아 / 2026년 1월
평점 :
군함 엔지니어로서 일하던 시절, 월요일 새벽 2시에 출근해 테스트를 하던 그날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중략) 새벽 1시에 이미 현장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작업자들을 보며 “이 사람들은 배에 진심이다”라고 느꼈습니다. 그날 마침내 테스트에 성공하고 며칠 후 조선소를 떠나는 배를 배웅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중략)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가 된 것은 단순히 기술이나 자본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사람들의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권효재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 20년 넘게 한국, 중국, 미국 등지에서 중공업과 에너지 분야에 종사했다. 주요 관심사인 천연가스, 조선해양, 재생에너지, 산업정책과 관련된 LNG와 친환경 선박 연료에 대해 교재를 집필하고 논문과 칼럼을 발표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 해양시스템공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총 4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한국 조선업,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50년(파트1), 네 번의 혁신, LNG선 시장을 장악한 한국 조선업의 비밀(파트2), MASGA, 기회인가 위기인가(파트3), 기회와 위기 사이, 한국의 선택은?(파트4) 등을 통해 한국 조선업의 성장사를 얘기한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에 앞서 지난 직장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상고를 졸업하고 초급행원으로 은행에 첫발을 내딛었지만 학벌이 중요함을 깨닫고 뒤늦게 주경야독 끝에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시절이 어수선해 유신독재 반대 시위로 인해 상아탑은 최루탄 냄새 가득하고 툭하면 휴강에 공강이었다. 난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 34개월 넘게 복무하고 1976년 6월 만기 전역을 했다.
복학 후 학생들 시위는 여전했다. 반골 기질이 강한 나는 학우들과 어울리며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강하게 내비치곤 했다. 이후 학우들의 추천과 응원에 힘입어 경영대학 학생회장이 되었는데, 3학년 겨울방학 때 중앙정보부 요원의 인솔로 산업시찰에 동원되었다. 방학 때 데모 계획을 구상하는 걸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였다. 이때 울산 바닷가에 위치한 현대조선을 견학했었다. 박정희 정부의 중공업 진흥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한 산업 현장이었다. 지금 난 이 책을 통해 걸음마 수준의 병아리가 공룡으로 변신한 한국 조선업의 실태를 마주하고 있다.
한국 조선업 50년 역사
제2차 세계대전 후 조선업의 세계 최강국은 미국이었다. 전 세계 배의 절반 이상을 미국이 생산했다. 그랬던 미국의 조선업이 이후 쇠퇴의 길을 걷더니 1980년대 이후 군함을 제외한 선박 생산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반면 한국 조선업은 1980년대에 급성장해 1990년대엔 일본과 세계1위를 놓고 경쟁했다.
마침내 2000년대 중반엔 종합 지표에서 한국이 1위를 달성했다. 2017년 이후 저가 수주에 나선 중국에 양적 지표에서 밀려 1위 자리를 내놓기도 했지만 단위 설비당 생산성은 여전히 한국이 1위다. 더구나 기술 수준이 높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주로 생산하는 한국 조선업을 전체적인 통합 지표에서 압도적인 1위라고 세계 조선업계는 평가다.
한국 조선업은 동일한 여건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배를 더 빠르고 잘 만든다. 우리는 마치 건물을 쌓듯 대형구조물을 하나하나 올리는 그런 공법으로 배를 건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레고 블록처럼 선박의 각 파트를 쪼개 만든 다음 도크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쌓아 올린다. 이 방식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와 고도화되었고, 이후 일본이 엔고와 설비 과잉으로 흔들릴 때 한국은 다시 발전시켰다. 즉 조선소 밖에서 가능한 한 많은 부분을 만들고, 안에서 모듈화와 블록화로 빠르게 쌓아서 배를 완성한다. 이렇게 한국 조선소는 지난 30년 동안 공정 선행화를 치열하게 진행해 왔던 것이다.
그 시절, 조선소에서 "할 수 없다"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낼 수 없었습니다. 변명을 금하고 방법을 찾는 태도였습니다. 생산성 목표와 인도 날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지상 과제였습니다. 지금 사회 전반에 그대로 이식되기는 어렵지만, 조선소 내부에는 아직 “할 수 있다”라는 기풍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한때 조선업 국가 순위 1위였고, 전 세계 상위 1~5위 조선소가 모두 한국 회사였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선박 설계는 우리 손으로 모두 직접하고, 배에 들어가는 자재의 90% 이상을 국내에서 생산합니다.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한국 조선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그에 대한 자부심이 큽니다.(056쪽)
후발주자로 LNG선 건조에 도전하다
이제 '지속적인 제품 혁신'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과거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칩의 개발을 압도적으로 앞서 나간 덕분에 초격차를 유지함으로써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했다. 마찬가지로 한국 조선업은 누구나 만들 수있는 범용 제품이 아닌 새롭고 혁신적인 선박을 만들어 고부가가치 시장을 만들어 냈다. 인건비는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 이에 반해 인건비가 훨씬 싼 중국은 저가 수주 전략으로 한국 조선업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이젠 가장 비싸고 가장 어렵고 가장 돈이 많은 배를 제조해야 한다는 소명이 생긴 것이다. 바로 LNG 운반선이다. 천연가스를 섭씨 영하 163도로 냉각하면 그 부피가 600분의 1로 줄어들기에 대량 운송에 매우 유리해진다. 세계적으로 연간 4억 톤이 거래되는 LNG를 운송하는 특수 화물선인 LNG선은 2025년 현제 전 세계에서 약 750척이 운항 중인데, 3년 내로 1000척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중 한국 조선이 4분의 3 이상을 건조했으니 절대 강자임에 분명하다.
한국의 조선업은 현대, 대우, 삼성 등 3개사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새로운 시장 수요를 개척하고 있다. 초기에 현대조선이 건조했던 유조선의 경우 20년 전에 만든 배나 지금 만드는 배나 운항 장비나 내부 구성이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이들 3사는 철저한 고객맞춤으로 선박을 건조할 뿐만 아니라 LNG선 또한 파생 상품들을 속속 등장시켰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셈이다.
LNG-RV~ LNG선이면서 동시에 해상 터미널로 사용
쇄빙 LNG선~ 두꺼운 얼음을 깨뜨리며 LNG 운송
FSRU~ 액체 상태의 LNG를 기화해서 육상에 공급하는 LNG선
1980년대 후반 조선 불황의 고통이 이어지고, 준비도 부족했지만, 후발주자였던 우리가 국산 LNG선 건조에 도전한 것은 대단한 결단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무모하다고 했지만, 그 결단이 1,000억 달러 이상의 시장을 열었습니다. 이런 도전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129쪽)
MASGA, 기회인가 위기인가
한국 조선업에 의지하려는 미국의 조선업 부활이 바로 MASGA이다. 그 주요 내용은 한국 조선사의 미국 현지 투자와 미국 조선소의 현대화 및 재건을 돕는 프로젝트이다. 이는 미국의 국방산업기반 전략과 맞물려 구체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첫째, 이게 돈이 되는 사업인가? 미국은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둘째, 트럼프만의 사업구상이 아닌가? 뒤집기를 밥 먹듯 하니까
셋째, 미국 해군력이 정말 위협을 받고 있나? 정치적인 과장 의혹
그렇다. MASGA가 과연 사업적으로 타당한지, 돈이 되는지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다. 미국의 절박함을 감안하면 어쨌든 돈이 될 거라는 기대들이 높다. 그 이유는 미국 해군은 최신 함선들을 빨리 건조해야 하는데 반면 한국은 안 해도 되는 상황이므로 주도권은 한국에 있다는 논리 때문이다. 따라서 참여하는 한국 조선사에겐 좋은 비즈니스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기회와 위기 사이
항공기나 자동차 모두 실내 공장에서 조립 작업이 이뤄지므로 로봇 자동화로도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쇠퇴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보다 절대 생산 대수가 많다. 또한 인력 기반도 탄탄해 많은 스타트업들이 미래 자동차 기술을 개발하면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조선은 결국 사람이 마무리해야 하므로 자동화와 기계화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자동차처럼 디자인 프리미엄과 브랜드 스토리로 선가를 현저하게 더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에서는 품질과 사양, 납기 신뢰도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225쪽)
한국 조선업의 미래
현재의 성공이 향후 50년을 보장해 줄까? MASGA 딜레마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그렇기에 한국 조선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과도한 미국의 요구와 중국의 보복 가능성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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