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리더십 - 심리적 안전감을 넘어 책임 안전감을 만드는 ‘AI 시대 리더’의 조건
김유리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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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판단을 빠르게 한다. 데이터는 점점 정확해진다. 추천 알고리즘은 인간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제시한다. 회의실에서 "AI가 이렇게 분석했습니다."라는 문장은 이제 낯설지 않다. 보고서는 더 정교해졌고, 예측은 더 빨라졌다. 리더의 책상 위에는 더 많은 정보가 쌓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리더들은 더 불안해졌다. - '서문' 중에서



책의 저자 김유리는 기업교육연구소 '해피투게더컨설팅' 대표로 대한민국 인적자원개발 명강사 대상을 수상한 기업교육 전문가다. 중앙대학교 글로벌인적자원개발대학원에서 인적자원개발학을 전공했으며, 리더십과 성취 목표 지향성을 연구했다.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활발한 강의와 컨설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총 다섯 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AI 시대, 리더십의 본질을 다시 묻다(파트1), 책임 안전감 - AI 시대 리더가 서야 할 자리(파트2), 책임 안전감을 설계하다 - 존재 자체가 기준이 된다(파트3), 판단/책임/습관 - 리더십을 단단하게 만드는 반복(파트4), 남는 리더십(파트5)에 걸쳐 보이는 리더십을 제시한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AI(인공지능)라는 보조 도구로 인해 리더들의 입장에선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더가 마치 '판단하는 기계'처럼 느껴짐에 따라 오히려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AI 시대에 리더가 해야 할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뚜렷해진다. AI의 빠른 판단 이후의 단계에 당당하게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리더인 것이다.


"AI가 추천한 대로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누구 책임인가?"

"데이터는 그렇게 말했는데 팀원은 불안해한다."

"객관적으로 맞는 결정인데 왜 조직 분위기는 차가워지는가?"


AI 시대의 리더들은 지금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역할이 바뀌어서 흔들리고 있다. 예전의 리더들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AI가 제시한 결정을 조직 구성원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요즘 리더들의 고민은 '내 말에 잘 반응할까?'이다. 그렇다. 속도의 시대에 리더십의 가장 큰 적은 '공감 결핍'이다. 한 글로벌 기업의 중간 관리자는 이런 고백을 했다.


"회의 때마다 '좋은 의견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팀원들은 여전히 긴장합니다.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비록 이 리더는 긍정적인 말을 하지만, 시선은 차갑고 표정은 굳어 있다. 팀원들은 말보다는 먼저 그 신호를 읽는다. 그렇다. 문제는 언어 자체가 아니다. 리더의 긍정적 말과 리더가 취하는 표정, 시선, 태도 등이 불일치함에 있다. 이를 비언어적 불일치라고 한다.


AI는 빠르다. 그러나 빠름은 언제나 차갑다. 리더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해석을 추가하는 것이다. AI 시대 리더십의 위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해석의 공백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존재다. 리더는 숫자를 발표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붙들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이브리드 시대, 리더에게 주어진 과제



AI 시대 조직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강조한다. 그러나 데이터는 만능이 아니다. 비록 과거의 패턴을 분석하지만 인간의 감정, 맥락, 관계를 담지 못한다. 기술이 발전하면 문제들이 쉽게 해결될 것으로 믿기 쉽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데이터와 더 빠른 자동화가 성과와 효율이 향상되리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영학에선 '더 좋은 쥐덫의 함정'이란 사례가 있다. 1920년대 미국에서 기존의 나무 쥐덫보다 훨씬 진보한 플라스틱 소재의 제품이 개발되었다. 이는 기존 제품보다 훨씬 위생적이고 성능이 뛰어났다. 또한 세척해서 이를 재활용할 수도 있었다. 기술만 놓고 보면 '더 좋은 쥐덫'임에 분명하다.


처음엔 시장의 관심도 높았으나, 판매의 호응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은 세척해서 재활용하는 것을 불쾌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 소비자의 니즈는 위생적인 쥐덫이 아니라 쥐를 잡은 뒤 이를 바로 버릴 수 있는 덫을 원했던 거다. 다시 예전의 목재 쥐덫으로 돌아갔다.


위 사례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람의 감정과 경험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직에서도 이같은 일이 반복된다. 데이터는 많아지고, 시스템은 더 정교해진다. AI는 최적의 선택지를 제시하고, 대시보드는 실시간으로 성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팀원들의 얼굴은 갈수록 굳어진다. 마음이 결코 편하지 않기에. 나아가 기술 만능주의는 리더들을 착각에 빠뜨린다.



과거 난 금융기관에서 여러 해 근무했었다. 금융기관은 수시로 '실적 유치 캠페인'을 벌인다. 이 캠페인은 금전적 보상과 인사 고과에도 반영된다. 성격상 다함께 실적을 올려 조직에 기여하자는 취지이지만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피해를 당하므로 이를 싫어하는 구성원들도 있다. 심지어 실적 유치한다고 오후 시간엔 자리를 비우고 계속 회사 밖에서 영업만 하다가 퇴근한다. 이또한 실적 만능주의의 폐해다.


리더십의 새로운 공식


기준울 보이는 역할로

감정의 온도를 설계하는 역할로

성장 신호를 보내는 역할로

에너지와 리듬을 조율하는 역할로



리더십의 본질은 '신뢰'다. 한번의 좋은 말로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여러 작은 신호에서 발생된다. 리더의 말이 번번이 바뀌고 표정 또한 수시로 변하면 리더에 대한 믿음이 생기겠는가. 신뢰의 핵심은 '일관성'이다. 팀원들은 지난 번 회의 때 리더의 표정이 어떠했는지를 기억한다. 이처럼 리더의 감정은 빠르게 팀 전체로 퍼진다. 같은 회의, 같은 주제라도 리더의 감정 톤에 따라 팀의 집단 에너지는 완전 달라진다. 리더의 존재감은 감정의 리듬으로 측정된다.


동일한 문장임에도 한 리더의 “결정한다”는 팀을 움직이고 다른 리더의 “결정한다”는 공기를 얼린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그렇다. 그 말이 책임 선언인지 아닌지다. 책임 선언으로서의 결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말이 짧다. 속도가 느리다. 결론을 말할 때 몸이 앞으로 나온다. "리스크도 변수도 있지만 이 방향으로 간다." 그리고 멈춘다. 이 팀은 그 결정을 리더의 것으로 인식한다.

만약 갈등 상황이 발생했다면 리더는 누가 옳은지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감정의 온도를 낮추는 일이 먼저다. 왜냐하면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선 논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의는 몸의 흐름이 만든다. 이때 리더의 손과 몸은 말보다 빠르게 상황을 진정시킨다. 손은 중재자 역할을 한다. '비언어 갈등 중재 5단계 솔루션'은 아래와 같다.

손바닥을 보이며 '무위험'을 먼저 선언한다.
손의 높이로 감정의 강도를 맞춘다.
한 손은 '중재', 한 손은 '경청' 역할을 맡는다.
몸의 방향으로 '편 가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손으로 '다음 단계'를 시각화한다. 


책임감 있는 리더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리더는 많다. 하지만 막상 회의가 시작되면 뇌는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뇌는 그렇게 작동한다. 행동과학 연구에서 이는 반복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사람은 '결심'보다 '상황'에 반응한다. 금주를 결심한 사람이 막상 술자리에 앉으면 그 다짐이 흔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환경 설계란 무의식적으로 흘러간 장면들에 의도를 심는 것이다. 아침 인사를 먼저 한다고 결심하는 게 아니다. 회의 전 5분을 노트북 대신 팀원 얼굴을 보는 시간으로 고정해둔다. 메신저 답장 한 줄에 마침표 대신 물음표를 하나 더 넣는다. “확인했습니다. 혹시 어려운 점은 없나요?” 보이는 리더십은 반복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먼저 만든 사람이 완성한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이 대목에서 과거 나의 금연 프로젝트를 소개해 본다. 흡연은 습관이므로 습관적인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제거했다. 환경 설계인 셈이다. 내 주변에 있는 담배를 모두 버리고 더 이상 구매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이 고착될 때까지 임원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식사도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함께 식사하면 식사후 흡연 유혹을 받게 되므로. 그리고 술자리도 금했다. 거래처 술접대는 내가 정한 술상무가 대신하게끔 했다. 한약 복용중이라고 둘러댔다. 이렇게 6개월을 보내며 흡연 습관을 없앴다. 칠십대 중반의 나이에 되돌아보면 가장 잘한 일로 기억에 남는다.


AI 시대의 리더

AI 시대의 리더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과 책임을 도망치지 않고 조용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불안해할 때 먼저 중심을 ㄷ잡는 사람이다. 답이 없을 때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시 시도해볼 용기를 잃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리더로 보이고 있는가", 바로 보이는 리더십이다.

#책추천 #자기계발 #리더십향상 #보이는리더십 #김유리 #나비의활주로 #리더십향상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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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테이프 - 관계의 무게
문재웅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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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는 소개글에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푸른 테이프는 보통 마트 쇼핑 물건, 이삿짐이나 중고 판매용 도서를 박스에 포장할 때 무언가를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사용되므로 왠지 '구속'을 상징하는 단어로 느껴져서다. 아무튼 이런 나의 선입견이 맞아 떨어지는지는 읽으면서 확인해 볼 참이다.



작가 문재웅을 소개하는 글에 따르면, 그는 13년간 LG CNS, 4년간 SK C&C에서 근무, 조직 안에서 살아온 시간과 실제 삶의 기억들을 바탕으로 인간과 관계의 균열을 소설로 써왔는 데, 총 18편의 이야기들로 구성된 '푸른 테이프'(부제, 관계의 무게)는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스토리 중 인상적이거나 나의 경험을 소환시키는 그런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서평에 갈음하려 한다. 먼저 제목만 보고 책을 펼쳐 읽는 부분은 '무너지는 집'이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 온 집안에 빨간 차압 딱지가 더덕더덕 붙은 있는 광경을 목격했고, 이후 난  친척 집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해야만 했다. 그런 옛 슬픈 경험이 소환되는 듯해서 읽고 있다.


"니가 누구야?"


소설의 주인공 재웅은 은행원이다. 1994년 여의도역 2번 출구 근처로 첫 출근했던 그는 현재 56세의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현재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 기억은 나이 스물여섯에 정장 입고 첫 출근한 까만 머리카락의 아들에 머물러 있었다.


새벽 늦게 만취 상태로 퇴근한 아버지가 회사 대표에게 전화했다는 사실을 아들 성현이 말해주었다. 재웅은 방 안 충전기에 꽂혀 있던 휴대폰을 확인했다. 새벽 1시 15분에 발신, 통화시간 20분 33초였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들에게 물었다. 뭘 들었는지. 이에 아들은 '대명기업이란 회사에 절대 대출을 승인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고 했다.


몸이 불편해 회사에 출근할 수 없다고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오후 5시 뜨거운 물에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환복했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옆집 몸이 또 가스를 틀어 괴롭히고 있다'는 호소였다. 의사는 이를 알츠하이머에 동반된 행동심리증상인 망상이라고 했다. '지금 집에 안오면 죽는다'는 말에 곧바로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1980년대 초 동네에서 제일 잘나가던 미용실 '숙녀의 집' 원장이었다.


집 안에서 선풍기 3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방향은 제각각이었다. 천장을 보았다. 전체가 푸른색이었다. 처음엔 벽지를 교체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테이프였다. 천장 모서리에서 시작하여 사방으로 뻗어나가 중앙에서 만나는 형상이었다. X자와 십자와 평행선과 사선이 교차하고 중첩되어 있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벽도 마찬가지였다. 벽지의 이음새마다 수직과 수평으로 또 대각선으로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가스 냄새를 막으려던 시도였음이 분명하다. 창틀도 완전히 봉인되었고, 화장실 문과 벽 사이의 모든 틈이 푸른 테이프로 몇 겹씩 덧발라져 있었다. 84세의 몸으로 이 정도로 했으니 놀랍기만 했다. 방문했던 가스 안전 점검원이 배관이 노후화되어 위험하다는 말을 듣은 이후부터 가스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꺼내 어머니에게 저녁을 챙겨 주던 아들이 이젠 늙었음을 알고 손으로 아들의 뺨을 쓰다듬고 주름을 더듬었다. '무섭다. 내가 나를 잃어가는 게 무서워, 니 얼굴도 잊어버리는 게 무서워'란 말에 재웅은 어머니를 껴안았다. 작고 마른 몸에 뼈만 남은 것 같았다. 경희가 기다린다며 빨리 귀가하라는 말에 내일 다시 오겠다고 인사하며 어머니 집을 나섰다. 아내 경희는 4년째 암 치료 중이다. 항암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아들 성현의 도시락을 챙겨놓고 1박 일정으로 친정에 내려가 있다. '내일 오후 7시에 도착하니까 성현이 밥 챙겨줘' 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재웅은 집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천장이 보였다. 테이프가 없는 천장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 대기실, 재웅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옆집 놈들이 계속 가스를 틀어요'라는 어머니 말에 50대 중반의 여성 의사는 지난 번 검사 결과로는 알츠하이머가 많이 진행되었고 망상 증상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들러 한 달 치 약을 받았다.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하얀 거짓말을 했다. 괜찮다고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말이다.


그 시각 친정에 가 있던 경희는 휴대폰에서 '디그니타스 스위스 조력 사망 절차'라는 화면을 스크롤하면서 자세한 내용을 메모 앱에 적고 있었다. 오후 2시 정각, 대회의실에서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조 대표는 재웅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대표이사의 업무 판단에 대한 모욕적 표현이 있었음을 징계 사유로 지적하고 명예퇴직 형태의 권고사직을 제안했다. 만약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징계위원회로 회부되고 위로금도 삭감된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재웅은 권고사직을 수용했다. 사실상 이같은 일은 지금도 많은 기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사의 갑질이다. 


악성 대출의 후환이 두려운 상사는 이를 지적하는 여신 부장을 잘라내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회사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진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개인 사물을 챙긴 박스를 들고 오후 3시 술 냄새 풍기는 가게에 들어갔다. 음주 시 복용 금지인 알약 2개를 소주 1잔과 함께 입속에 털어넣었다. 한참 후 젊은 경비원이 깨웠다. 공원이었다. 집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떨렸다. 거실엔 경희와 아들 성현이 있었다.



경희는 혼자서 병원에 갔다. 그냥 검사받으러 간다고만 했다. CT 결과와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난소암 4기였다. 여러 장기까지 이미 전이된 상태라고 했다. 가능한 한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첨언했다. 병원 밖으로 나왔다. 12월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한편, 재웅은 금융 경력직 채용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작성했다. 캐피탈 대출심사 계약직이었다. 세 곳이나 지원했다. 평균지원자 347명, 평균 합격률이 0.8%였다.


치료를 시작한 경희는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담당 의사는 CT 이미지를 살펴보더니 종양의 크기가 전보다 조금 더 커졌다고 말하면서 간으로의 전이 부분도 더 진행됐고 새로 진행된 부위는 없지만 기존 부위는 모두 진행됐음을 알려줬다. 적극적 치료를 하더라도 6개월에서 1년 정도라는 시한부 결정을 내렸다. 항암 치료를 중지하기로 했다. 성현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경희는 디그니타스 신청 절차를 다시 읽엇다. 마지막 항목엔 자기 투여 원칙이 적혀 있었다. 즉 약을 본인이 직접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이를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안락사가 아니라 조력사망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쉽게 말해서 죽음은 본인의 선택임을 강조하는 셈이다. 가족 회의에서 이를 밝혀야 할지 말지 고민되었다. 며칠 후 마침내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성현에게 '엄마는 환자로 죽고 싶지 않아. 엄마로 죽고 싶어'라고 말하면서 스위스 디그니타스로 갈 계획임을 밝혔다. 성현은 자살이라며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재웅은 경희 편이 되어 주었다.



#책추천 #장편소설 #푸른테이프 #문재웅 #부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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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AI 기업
어비(송태민) 지음 / 시공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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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동안 대기업에 디녔던 나는 안정적인 월급을 받았고, 조직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에는 늘 다른 질문이 있었다. "개인도 스스로 하나의 경제 단위가 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경험과 아이디어를 회사 밖에서도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퇴근 후와 주말을 쪼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책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강의를 했다. 하나씩 만들고, 올리고, 실험하고, 실패하면서 나만의 자산을 쌓아갔다. 그렇게 쌓인 콘텐츠들은 어느 순간 본업 수입을 넘어섰고, 나는 비로소 회사를 나와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확신을 얻었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책의 저자 어비UhBee(송태민)은 IT 전문가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24년간 SK, LG,현대, 이베이 등에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을 포함한 신사업을 기획/추진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KBS TV와 라디오 등에서 IT 트렌드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는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총 6부로 구성된 책은 AI 시대, 1인 비즈니스의 패러다임 전환(1부), AI로 '돈 되는 콘텐츠 자산' 만드는 법(2부), 유튜브/쇼츠/틱톡 완전 자동화 제작 시스템(3부), SNS/커뮤니티 기반 AI 수익화 모델 만들기(4부), AI 기술로 만드는 새로운 직업/서비스 모델(5부), 지속 가능한 1인 AI 비즈니스 운영 전략(6부) 등을 23장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다.


왜 지금 'AI 기반 개인 수익화' 인가?


AI에는 ‘영혼’이 없다. 겉모습은 그럴듯하지만, 방향을 잡고 의미를 부여하며 실제로 시장에서 통하는 결과로 완성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즉 결정적인 순간에는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통찰력, 판단력이 필요하다. AI가 빠르고 쉽게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그 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바로 이 지점을 어려워한다. 그럼에도 지금이 기회란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니치 시장에서는 소수의 열성 고객만 확보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수익을 만들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큰 조직에 속해 있지 않아도 괜찮다. 자신의 경험과 관심사를 AI와 결합하면 충분히 가치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신뢰에 돈을 지불한다


지속적으로 돈을 벌어다주는 콘텐츠는 문제의 반복성을 다룬다. 사람들의 고민은 생각보다 크게 변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들은 비슷한 질문을 반복한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지금 이 판단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이런 반복되는 문제를 다루는 콘텐츠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검색되고 다시 소비된다. 수익형 콘텐츠의 출발점은 언제나 유행이 아니라 반복이다. (마음속으로 외쳐보자. ‘반복!’)


일회성 이슈를 다룬 콘텐츠는 빠르게 주목받을 수는 있지만 빠르게 잊힌다. 반대로 반복되는 문제를 다룬 콘텐츠는 처음에는 조용할 수 있지만 시간이 쌓일수록 힘을 가진다. 검색을 통해 유입되고 추천을 통해 다시 소비되며 상황이 바뀔 때마다 다시 참고된다. 이 ‘누적성’이 지속 수익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하나의 입력에서 여러 출력을 뽑아내는 구조


다음으로 중요한 전환은 판단과 실행을 분리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제작자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려다 지친다. 어떤 주제를 다룰지 고민하면서 동시에 문장을 다듬고, 편집을 하면서 다시 방향을 수정한다. 이 방식은 에너지를 빠르게 소모한다. 반대로 판단을 한 번에 모아 처리하고, 실행은 반복 가능한 흐름으로 넘기면 제작 과정은 훨씬 가벼워진다. 


저자가 AI 도구를 활용하기 시작한 뒤 체감한 가장 큰 차이도 여기에서 발생했다. AI는 문장을 늘리고 줄이고 바꾸는 일을 빠르게 해주지만, 그 전에 ‘무엇을 말할지’가 고정되지 않으면 결과는 오히려 산만해진다. 이 구조에서는 하루에 한 번만 중요한 판단을 내리면 된다. 오늘 다룰 메시지는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말할 것인지, 어떤 톤을 유지할 것인지를 정한다. 이 판단이 끝나면 그 이후의 작업은 선택이 아니라 실행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인스타그램/블로그/틱톡의 AI 활용

인스타그램, 블로그, 틱톡을 함께 운영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부담을 느낀다. 플랫폼마다 규칙이 다르고, 콘텐츠 형식도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화를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동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 플랫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이유는 분명하다. 각 플랫폼이 맡고 있는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화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오해는 “플랫폼마다 콘텐츠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을 버리는 순간 구조는 훨씬 단순해진다. 자동화는 복사가 아니라 분업이다. 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번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역할로 나누는 구조다.


도구는 바뀌지만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

저자는 특정 도구에 집착하지 않는다. 도구는 계속 바뀐다. 하지만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 문장을 정리하는 역할, 화면을 구성하는 역할, 반복 작업을 처리하는 역할만 명확하면 어떤 도구로든 대체할 수 있다. 이 유연함이 서비스를 오래 유지하게 만든다.


AI 편집 도구 조합은 시간을 파는 일을 구조를 파는 일로 바꿔준다. 직접 편집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시스템을 관리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 편집 서비스는 노동이 아니라 사업이 된다. 저자가 1인 미디어 편집 서비스를 운영하며 가장 크게 체감한 한계는 시간이었다.


시간/노력 최소화 운영 루틴

저자는 AI를 잘 쓰는 사람일수록 하루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매일 다른 방식으로 일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흐름으로만 움직인다. 이 반복이 결과를 만든다. 여기에선 하루 종일 일하지 않아도 결과가 쌓이는 구조를 다룬다. 핵심은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하루 2시간 집중 운영을 추천한다. 하루 2시간 운영은 느슨함이 아니라 집중이다. 하루 중 가장 안정적인 시간을 하나 고정하고 그 시간에는 이미 정해진 일만 실행했다. 판단은 다른 시간에 몰아서 했다. 이 구조에서 핵심은 묶음 작업이다. 기획-제작-정리를 한 흐름으로 끝내도록 한다.


#경제경영 #나혼자AI기업 #어비 #송태민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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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 - AI 시대, 새로운 인재의 조건
백영재 지음 / 세상을바꾸는시간15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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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거대한 질문 앞에 서 있다. "AI가 모든 정답을 알려주는 시대에 인간은 어떤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가?",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AI에게 대체되지 않을까?", "기업은 어떤 인재를 뽑아 어디에 앉혀두어야 하는가?" 나는 이 답을 찾기 위해 이른바 AI 시대를 주도한다는 대가들의 인터뷰와 글을 샅샅이 파헤쳤다.(중략) 그들이 강조하는 미래 인재의 조건은 내가 오랜 시간 관심을 가져온 경계인의 특성과 소름 끼칠 정도로 일치했다. - '서문' 중에서


책의 저자 백영재는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인류학자 출신 경영자다. 새로운 가치와 혁신이 싹트는 '경계Margin)' 위에 서서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지식과 분석이 자동화되는 시대에 흩어진 경험을 연결해 자산만의 고유한 관점으로 커리어를 만들어 나간 사람들의 독보적인 생존 전략을 이 책에 담았다.

먼저 저자가 말하는 '경계인'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서로 다른 문화나 사회 집단의 경계에 위치하며 어느 한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사회학적인 개념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규칙에 안주하지 않고, 서로 다른 분야의 언어와 관점을 연결 지어 새로운 해석과 의견을 만들어내는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책에선 이 개념을 커리어에 적용, 여러 산업 분야 또는 직무를 넘나들며 경력을 쌓아온 사람을 지칭한다.

'한 우물을 판' 전문성은 언제 벽이 되는가

우리들은 성장하면서 '한 우물을 파라'는 가르침을 자주 들어왔다. 한 분야를 더 깊게 파고드는 사람이 주목받기 때문이었다. 공장은 생산을 높여야 했고, 기업은 효율을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그 시대엔 한 가지 일을 정확하고 빠르게 해내는 사람이 더욱 필요했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는 핀 하나를 만들더라도 공정을 나눠서 각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면 생산성이 극대화된다고 설명했다. 즉, 분업分業을 강조했다. 이는 곧 지식의 영역까지 확산되었다. 학문의 분류는 더욱 더 세분화되었다. 프레데릭 테일러는 이런 흐름을 더 밀어붙였다.

학교도 이런 시스템에 최적화된 인재를 찍어내는 공장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정답을 찾는 능력이 생각하는 능력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주어진 정보를 잘 요약하는 사람이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 되었다. 경계인들의 연결 감각은 중심부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전문성이란 벽이 다른 세계를 보지 못하게 가리면, 지식은 맥락을 잃고 조각조각 찢어진다.

AI 시대에는 그 벽이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지식은 유례없이 빠르게 공유되고, 기술은 순식간에 복제된다. 한 분야 안에서만 쌓은 지식은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산업화 시대의 전문성만으로는 AI 시대를 헤쳐나가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다시 스스로에게 물을 때다. “전문성의 벽 안에 스스로를 가둘 것인가? 아니면 그 벽 너머의 세계와 연결될 것인가?”

경계인을 움직이는 5가지 힘

메타인지Metagognition
적응력Adaptability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
생산적 혁신Generative Innovation
호기심Novelty-seeking


모른다고 말할 때 길이 열린다


“도전해본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배를 버려야 할 때는 과감히 버리고 오토바이로 갈아타면 되니까요.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겠습니까?”

허명행 영화감독에게 메타인지는 자신을 작게 보는 태도가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긋는 선인 동시에, 그 선을 넘어 새로운 지도로 뛰어들게 하는 나침반이다. 그는 지금도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묻는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나한테도 좀 알려줘봐."

다시 초보자가 되어야 살아남는다

"21세기의 문명은 읽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지 못하고, 배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 앨빈 토플러

심리학에선 이렇게 내려놓는 과정을 '탈학습'이라고 한다. 앨빈 토플러는 빈자리에 새로운 감각과 방식으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재학습'이라 불렀다. 이 둘 모두 적응에 필요한 요소들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의 오해가 있다. 탈학습을 단순히 머릿속을 비우는 ‘삭제Delete’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이는 ‘기존의 성공방정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 구조를 해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 이미 익숙해진 습관이나 사고를 버리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한다. 뇌에 깊게 파인 ‘생각의 골’을 메우고 새로운 길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경계인이야말로 이 과정을 가장 기민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안전한 길이 가장 위험한 길

새로운 길로 들어간다고 모든 선택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계인들은 오히려 실패 가능성을 꽤나 현실적으로 계산하는 편이다. 구글 HR 헤드 민혜경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회사에 "딱 한두 명만 해보시고 안 되면 마시죠."라고 제안한다. 참고로 민혜경은 방송 작가로 시작해 미국 유학을 거쳐 구글에서 엔지니어링, 마케팅, 인사 등까지 많은 경계를 넘나들었다. 실패해도 타격이 없을 만큼 작게 시작했다.

민혜경의 리스크 줄이기 방법과 달리 프리미엄 숙성 한우 브랜드 설로인(대표 변준원)은 리스크를 수치화했다. 변 대표가 컨설팅을 거쳐 창업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은 탐탁지 않아 했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화에서 미사일을 만드는 엔지니어로 탄탄한 커리어를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살펴보면 최악의 상황을 계산하고 있다.

“망했을 때의 상황을 계산해봤어요. 제가 여기서 실패해서 다시 대기업에 취업한다면? 남들보다 3, 4년 정도 뒤처지는 수준이더라고요. 지하 10층으로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막상 계산해 보니 지하 2, 3층 정도였어요. 그 정도면 제가 지불할 수 있는 수업료라고 생각했죠.”

낯선 연결이 새로운 지도를 만든다

박형진은 마케터의 시각으로 바를 열었다가 바텐더들에게 외면당했고, 안경 업계에서도 외부인 취급을 받았다. 김소영은 과학자로서 보수적인 낙농업계 문을 두드렸다. 박지연은 인문학도 출신으로 컨설팅을 거쳐 HR에 입사했다. 황현욱은 출판과 노트북 유통을 거쳐 신발 업계로 넘어왔다. 광고와 마케팅, 기획 업무를 넘나들었던 정혜윤은 아직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형태를 스스로 만들었다. 

어디에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경험은 이들을 자연스럽게 관찰자의 자리에 세웠다. 내부자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왜 꼭 이 방식이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익숙한 풍경을 낯선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였다. 그 자리에서 기존에 속해 있던 세계의 언어와 감각을 새로운 판에 이식하는 일이 시작됐다.

괄시를 받고, 직접 배우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그 시간들이 쌓였을 때 비로소 각자만의 관점이 생겨났다. 어느 한곳에 완전히 속했더라면, 다른 세계의 언어를 굳이 배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어느 한 정체성에 안주하지 못했던 경험이 오히려 다양한 세계를 잇는 원동력이 됐다. 새로운 길이 늘 새로운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지나온 점들 사이에 숨어 있다.

호기심

뇌과학자 정재승을 물리학계에선 순수 과학을 버리고 의대로 향한 사람으로 보았다. 의학계에선 의사 면허가 없는 외부 연구자로 여겼다. 어느 쪽에서도 완전한 내부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경계에 머무는 일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새로운 분야로 건너갈 때마다 이전엔 보이지 않던 질문들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의대로 건너가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밟았고, 다시 공대로 자리를 옮겼다. 무모한 이동처럼 보였지만, 그를 움직인 것은 소속보다는 '호기심'이었다.

결국 호기심은 특별한 사람만 타고나는 천재적 재능이 아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세계에 다시 한번 의문을 품는 용기이자 습관이다. 익숙해진 순간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억누르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호기심의 시작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경계를 걷는다

흥미로운 것은, 경계를 자주 넘나드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이 더 단단해진다는 점이다. 지나온 경험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하고, 그 연결 속에서 자기만의 기준과 관점이 만들어진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하고 최적의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인간은 여전히 현장의 '맥락'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간다. 불편함과 이질감을 견디고, 서로 다른 세계를 오가며,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연결을 발견한다. 인간의 통찰은 바로 그 경계에서 만들어진다.

#자기계발 #경계인 #백영재 #세바시 #AI시대의새로운인재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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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풍요의 시대 - AI와 인류의 미래
피터 디아만디스.스티븐 코틀러 지음, 김태훈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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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함께 안고 살아가는 나라. 우리는 물질의 결핍은 상당 부분 극복했지만, 여전히 ‘의미의 허기‘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그래서 저자들의 경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목적과 만나지 못한 풍요는 붕괴로 향하고, 지혜와 만나지 못한 지능은 멸종으로 향한다. 진보나발전이란 결국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이어야 한다는 이책의 메시지는, 속도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온 우리 사회가 가장먼저 새겨야 할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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