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 - AI 시대, 새로운 인재의 조건
백영재 지음 / 세상을바꾸는시간15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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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거대한 질문 앞에 서 있다. "AI가 모든 정답을 알려주는 시대에 인간은 어떤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가?",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AI에게 대체되지 않을까?", "기업은 어떤 인재를 뽑아 어디에 앉혀두어야 하는가?" 나는 이 답을 찾기 위해 이른바 AI 시대를 주도한다는 대가들의 인터뷰와 글을 샅샅이 파헤쳤다.(중략) 그들이 강조하는 미래 인재의 조건은 내가 오랜 시간 관심을 가져온 경계인의 특성과 소름 끼칠 정도로 일치했다. - '서문' 중에서


책의 저자 백영재는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인류학자 출신 경영자다. 새로운 가치와 혁신이 싹트는 '경계Margin)' 위에 서서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지식과 분석이 자동화되는 시대에 흩어진 경험을 연결해 자산만의 고유한 관점으로 커리어를 만들어 나간 사람들의 독보적인 생존 전략을 이 책에 담았다.

먼저 저자가 말하는 '경계인'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서로 다른 문화나 사회 집단의 경계에 위치하며 어느 한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사회학적인 개념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규칙에 안주하지 않고, 서로 다른 분야의 언어와 관점을 연결 지어 새로운 해석과 의견을 만들어내는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책에선 이 개념을 커리어에 적용, 여러 산업 분야 또는 직무를 넘나들며 경력을 쌓아온 사람을 지칭한다.

'한 우물을 판' 전문성은 언제 벽이 되는가

우리들은 성장하면서 '한 우물을 파라'는 가르침을 자주 들어왔다. 한 분야를 더 깊게 파고드는 사람이 주목받기 때문이었다. 공장은 생산을 높여야 했고, 기업은 효율을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그 시대엔 한 가지 일을 정확하고 빠르게 해내는 사람이 더욱 필요했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는 핀 하나를 만들더라도 공정을 나눠서 각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면 생산성이 극대화된다고 설명했다. 즉, 분업分業을 강조했다. 이는 곧 지식의 영역까지 확산되었다. 학문의 분류는 더욱 더 세분화되었다. 프레데릭 테일러는 이런 흐름을 더 밀어붙였다.

학교도 이런 시스템에 최적화된 인재를 찍어내는 공장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정답을 찾는 능력이 생각하는 능력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주어진 정보를 잘 요약하는 사람이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 되었다. 경계인들의 연결 감각은 중심부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전문성이란 벽이 다른 세계를 보지 못하게 가리면, 지식은 맥락을 잃고 조각조각 찢어진다.

AI 시대에는 그 벽이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지식은 유례없이 빠르게 공유되고, 기술은 순식간에 복제된다. 한 분야 안에서만 쌓은 지식은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산업화 시대의 전문성만으로는 AI 시대를 헤쳐나가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다시 스스로에게 물을 때다. “전문성의 벽 안에 스스로를 가둘 것인가? 아니면 그 벽 너머의 세계와 연결될 것인가?”

경계인을 움직이는 5가지 힘

메타인지Metagognition
적응력Adaptability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
생산적 혁신Generative Innovation
호기심Novelty-seeking


모른다고 말할 때 길이 열린다


“도전해본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배를 버려야 할 때는 과감히 버리고 오토바이로 갈아타면 되니까요.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겠습니까?”

허명행 영화감독에게 메타인지는 자신을 작게 보는 태도가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긋는 선인 동시에, 그 선을 넘어 새로운 지도로 뛰어들게 하는 나침반이다. 그는 지금도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묻는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나한테도 좀 알려줘봐."

다시 초보자가 되어야 살아남는다

"21세기의 문명은 읽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지 못하고, 배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 앨빈 토플러

심리학에선 이렇게 내려놓는 과정을 '탈학습'이라고 한다. 앨빈 토플러는 빈자리에 새로운 감각과 방식으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재학습'이라 불렀다. 이 둘 모두 적응에 필요한 요소들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의 오해가 있다. 탈학습을 단순히 머릿속을 비우는 ‘삭제Delete’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이는 ‘기존의 성공방정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 구조를 해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 이미 익숙해진 습관이나 사고를 버리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한다. 뇌에 깊게 파인 ‘생각의 골’을 메우고 새로운 길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경계인이야말로 이 과정을 가장 기민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안전한 길이 가장 위험한 길

새로운 길로 들어간다고 모든 선택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계인들은 오히려 실패 가능성을 꽤나 현실적으로 계산하는 편이다. 구글 HR 헤드 민혜경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회사에 "딱 한두 명만 해보시고 안 되면 마시죠."라고 제안한다. 참고로 민혜경은 방송 작가로 시작해 미국 유학을 거쳐 구글에서 엔지니어링, 마케팅, 인사 등까지 많은 경계를 넘나들었다. 실패해도 타격이 없을 만큼 작게 시작했다.

민혜경의 리스크 줄이기 방법과 달리 프리미엄 숙성 한우 브랜드 설로인(대표 변준원)은 리스크를 수치화했다. 변 대표가 컨설팅을 거쳐 창업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은 탐탁지 않아 했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화에서 미사일을 만드는 엔지니어로 탄탄한 커리어를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살펴보면 최악의 상황을 계산하고 있다.

“망했을 때의 상황을 계산해봤어요. 제가 여기서 실패해서 다시 대기업에 취업한다면? 남들보다 3, 4년 정도 뒤처지는 수준이더라고요. 지하 10층으로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막상 계산해 보니 지하 2, 3층 정도였어요. 그 정도면 제가 지불할 수 있는 수업료라고 생각했죠.”

낯선 연결이 새로운 지도를 만든다

박형진은 마케터의 시각으로 바를 열었다가 바텐더들에게 외면당했고, 안경 업계에서도 외부인 취급을 받았다. 김소영은 과학자로서 보수적인 낙농업계 문을 두드렸다. 박지연은 인문학도 출신으로 컨설팅을 거쳐 HR에 입사했다. 황현욱은 출판과 노트북 유통을 거쳐 신발 업계로 넘어왔다. 광고와 마케팅, 기획 업무를 넘나들었던 정혜윤은 아직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형태를 스스로 만들었다. 

어디에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경험은 이들을 자연스럽게 관찰자의 자리에 세웠다. 내부자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왜 꼭 이 방식이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익숙한 풍경을 낯선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였다. 그 자리에서 기존에 속해 있던 세계의 언어와 감각을 새로운 판에 이식하는 일이 시작됐다.

괄시를 받고, 직접 배우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그 시간들이 쌓였을 때 비로소 각자만의 관점이 생겨났다. 어느 한곳에 완전히 속했더라면, 다른 세계의 언어를 굳이 배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어느 한 정체성에 안주하지 못했던 경험이 오히려 다양한 세계를 잇는 원동력이 됐다. 새로운 길이 늘 새로운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지나온 점들 사이에 숨어 있다.

호기심

뇌과학자 정재승을 물리학계에선 순수 과학을 버리고 의대로 향한 사람으로 보았다. 의학계에선 의사 면허가 없는 외부 연구자로 여겼다. 어느 쪽에서도 완전한 내부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경계에 머무는 일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새로운 분야로 건너갈 때마다 이전엔 보이지 않던 질문들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의대로 건너가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밟았고, 다시 공대로 자리를 옮겼다. 무모한 이동처럼 보였지만, 그를 움직인 것은 소속보다는 '호기심'이었다.

결국 호기심은 특별한 사람만 타고나는 천재적 재능이 아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세계에 다시 한번 의문을 품는 용기이자 습관이다. 익숙해진 순간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억누르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호기심의 시작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경계를 걷는다

흥미로운 것은, 경계를 자주 넘나드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이 더 단단해진다는 점이다. 지나온 경험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하고, 그 연결 속에서 자기만의 기준과 관점이 만들어진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하고 최적의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인간은 여전히 현장의 '맥락'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간다. 불편함과 이질감을 견디고, 서로 다른 세계를 오가며,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연결을 발견한다. 인간의 통찰은 바로 그 경계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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