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의 심리학 -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기쁨
가야마 리카 지음, 조찬희 옮김 / 수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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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자의 정년'에는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서, 남자의 경우처럼 '정년=직장 퇴직'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정년 후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다양한 사례를 들어 여자의 나이 듦과 정년의 의미에 관해 하나하나 고민해보기로 하자. - '시작하며' 중에서

 

 

여성들에게 나이 듦이란?

 

이 책의 저자 가야마 리카는 일본의 저명 정신과 의사로 릿쿄대학 현대심리학부 교수이다. 1960년 홋카이도 생으로 도쿄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30년간의 풍부한 임상 경험을 살려 여러 매체에 현대인의 마음 문제와 관련한 글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다. 또 평론가, 사회활동가로도 활발히 활동 중인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아 2016년에는 <한일위안부합의>를 규탄하는 행사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저서로는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마음이 보여?>, <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 <논마마로 살아가기>, <오늘부터 휘둘리지 않기>, <남자는 언제나 이유를 모른다> 등이 있다.

 

'여자의 정년'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현재 일하고 있는 여성이라면 자연스레 '회사의 정년'을 떠올릴 것이고, 남편이 있는 전업주부라면 가계 수입을 책임지는 남편의 정년을 떠올릴 확률이 높다. 그런데, '여자의 정년'이라는 말은 사실 이젠 여자로서의 기능을 다했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일 때가 있기에 여성으로선 듣기 싫은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폐경기를 지난 여성을 여자로 취급하지 않는 고질적인 사고법이 존재한다.

 

이젠 이런 선입견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나이 든 중년 여성이 여전히 직장생활을 유지하고 있고, 결혼 대신 독신을 선택한 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기는 여성들도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라면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그런 생물학적 내지는 사회적 기능을 여성들에게 무조건 수용하라고 할 수도 없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여성들이 어떻게 정년을 맞이하고 어떤 시간을 맞이하게 될지, 정년과 더불어 나이 듦을 직면하게 될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등을 다양한 범주에서 살펴보면서 일, 연애, 친구, 성, 건강, 부모 간병, 집, 경제 문제 등 마흔 이후 직면하는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일러준다. 책은 '여성의 정년'과 '정년 후 여성의 삶'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우리 사회에 제기함과 동시에 우리 개개인에게 화두話頭를 던지는 셈이다.

 

 

 

 

나이가 들어도 정년까지 여전히 일하고 싶다

 

중학교에서 오랫 동안 보건체육교사로 일해온 쉰다섯 살의 아오바 씨는 '정년까지 직장을 다녀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왜냐하면, 댄스 수업이 의무화됨으로써 학생들에게 힙합 춤을 가르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교과를 담당하는 젊은 동료 여교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런 반응을 보임에 따라 그녀는 '얼음 땡'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분이 외국 항로도 타시고 부자니까, 무리해서 계속 알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취미 삼아 문화센터에서 체조 같은 것 가르치면서 느긋하게 사모님 생활 하시면 어때요?"

 

그렇다. 우리 사회는 '여성의 일'을 항상 돈과 결부시키는 잘못된 선입견에 빠져 있다. 젊은 여성들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상, 여성의 일에 대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풍토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젊은 교사가 자신의 능력보다 뛰어날지라도, 새로운 시스템에 늦게 적응할지라도, 경제 사정이 좋든 나쁘든 간에 여성들도 자신의 일을 정년까지 할 수 있으므로 스스로 물러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여성이 일을 하는 것,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훌륭한 일'도 아니다. 이는 그저 '당연한 일'이다. (44쪽)

 

 

남편의 귀농, 귀촌 권유

 

요즈음 유례없는 저성장과 침체된 경기로 인해 회사원의 인생은 점점 회사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처럼 권고 사직을 당하든 자진 은퇴를 택하든 간에 남편의 정년이 앞당겨짐에 따라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편은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귀농, 귀촌의 삶을 즐기자고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사실 시골 생활이 뭘 그리 '로망'이겠는가? 비록 시골 출신일지라도 손에 흙을 묻혀 본 일도 까마득하고, 아예 분뇨 냄새가 싫어서 방학 때에도 도시의 자취방 또는 하숙집에서 시골로 내려가지 않았던 여성들이 어떻게 쉽게 남편의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말이다.

 

이처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있을까? 이 부부는 감정의 골이 갈수록 깊어져서 별거 내지는 이혼으로 치닫게 된다. 남편의 정년이 여성들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퇴직 전부터 '퇴직 후엔 어떻게 살 것인지' 충분한 대화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중요한 점은 '나는 나'라며 "본인 스스로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나아가 취미, 책, 영화, 친구, 직업 등 '나만의 아이템'을 찾는다면 이런 일에 크게 휘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독신은 상태일 뿐, 불행이 아니다


혼자 살아가는 여성의 마음을 살펴보자. 독신의 삶을 즐기는 여성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불편한가라는 구체적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열등감을 느끼는 본인의 감정이나 사고방식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힘들어한다. 이에 저자는 독신 혹은 아이 없는 인생을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할 필요 없이 현재의 자유를 만끽하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를 권한다.

 

 

정년 후 물건들과 잘 사귀는 방법

 

물건이 어느 정도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마음 먹었을 때가 바로 버릴 때다

침실이나 침대 주변은 꼭 깨긋이 정리해둔다

가끔은 호텔에서 묵어본다

 

 

 

 

앞으로의 삶은 당당하게

 

나의 어머니는 90대 노인이다. 그토록 요양원을 완강하게 거부하시던 분이 갑자기 몸에 탈이 나면서 한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퇴원 수속을 마친 후, 맛보기로 몸이 회복될 때까지 식사를 제공하는 요양원 생활을 해보기로 했다. 몸이 회복된 듯해서 아파트로 돌아가자고 해도 이곳 생활에 적응이 되고 편안하다고 느낀 탓인지 3년 째 계속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다. 아무리 과학과 의료기술이 진보할지라도 노인이 하루아침에 이십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 결정 권리는 자신에게 있다.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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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 - 한명회부터 이완용까지 그들이 허락된 이유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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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왕과 신하라는 표현이 쓰여서는 안 되는 민주주의 체제인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간신이라는 단어는 언어로서의 생명을 가지고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 실제로 사용 용례에 적합한 인물들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이다. - '시작하는 글' 중에서

 

 

왜 간신은 사라지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 이성주는 시나리오, 전시 기획, 역사교양, 밀리터리 등 어느 한 분야로 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문화 콘텐츠 창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신문 <딴지일보> 에서 군사 분야 논객으로 활동 중이며 포스코의 '포레카 창의 놀이방', SERI CEO 등 다양한 공간에서 역사와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역사는 현실과 괴리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우리 일상과 함께 호흡한다'는 신조를 바탕으로 역사서를 다수 집필했다. 그 가운데 우리 역사 속의 숨은 이야기들을 재치 있게 다룬 <엽기조선왕조실록>, <개정판,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실록>은 서점가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면서 역사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밖에도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아이러니 세계사>,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사 진풍경>,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아리스토텔레스, 이게 행복이다>(1318 청소년 시리즈), <파국으로 향하는 일본>(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완벽하게 자살하는 방법>, <왕들의 부부싸움> 등이 있다.

 

 

 

 

우리들의 본성은 간신에 가깝다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이란 결국 유전자의 '탈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했다. 이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종의 목적은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해주려는 것이다. 이처럼 종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충신의 삶은 잘못된 선택이자 낙제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핵심은 간단하다. 충신이야말로 인간의 속성에 반하는 비정상적인 존재다. 역사로 되새김질되는 이유도 바로 그들이 희귀하고 특별한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충신은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적 아름다움에 가깝다. 즉 인간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한 세계를 구축해놓은 후, 그런 삶은 지향하는 셈이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설파한 철인정치를 실행하려면 수십 년간 욕망을 통제하며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런 덕목을 우리들 일상에 과연 적용할 수 있을까?

 

그렇다. 우리들의 본성은 간신에 가깝다. 인간은 나약하고, 이기적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서 존경받는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의 인격을 시험하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맡겨라"라고 말이다. 보통사람들이 권력을 쥐었을 때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간신은 지옥에서 올라온 별종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나 여상如上하게 마주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다른 모습이다.

 

 

간신은 이를 허용한 왕이 있기에 성립한다

 

간신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간신은 이를 허용한 왕과 시대가 있어야만 비로소 등장할 수 있다. 신하 혼자 욕망한다고 간신이 될 수는 없다. 이를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간신을 바라볼 때 이런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왕은 왜 간신을 받아들였을까?" 왕이 간신을 허용한 까닭은 결코 무능해서가 아니라 왕 자신에게 이익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제대로 제왕학이나 군주학을 공부하면서 스스로의 기본적 소양을 갖추었기에 왕은 선택의 기로에서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굳이 간신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의 욕망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양 당사자 간의 이해 타산이 딱 맞아떨어진 거래였다. 이렇게 상호 간의 이익의 흐름, 그 흐름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간신과 혼군昏君이다.

 

 

정조는 간신의 등장을 막았다

 

역사에서의 가정법이란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만약 그 시절에 홍국영이 없었다면 아마도 정조도 없었을 것이다. 25세에 과거에 합격한 그가 2년 후에 정조와 인연을 처음으로 맺게 된다. 동궁시강원 설서說書로 임명된 이후 그는 정조의 오른팔이 되었다. 당시 세손이었던 영조를 제거하려 했던 이들에겐 지근거리에서 영조를 보필하던 홍국영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위기의 연속이었던 그런 시간이 흘러 마침내 왕으로 등극하자 정조는 홍국영을 동부승지 자리에 앉힌다.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은 풋내기 신하에게 정삼품 당상관 자리를 준 것이니 가히 파격 인사였던 것이다. 이는 시작일 뿐이었다. 반 년이 지나지 않아 홍국영은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견줄 수 있는 도승지 자리에 오른다. 이어서 정조는 자신의 총신寵臣을 양성하는 규장각 직제학 자리와 군을 관장하는 병권까지 그에게 맡긴다. 이제 홍국영은 권력을 한 몸에 지닌 권신權臣이 된 셈이다.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홍국영과 정조는 단순히 신하와 왕이라는 관계에 머물지 않았다. 그 이상의 농밀한 감정적 교류가 있는 관계였다. 같이 죽을 고비를 넘겼고, 온갖 고난 끝에 권력을 쥐게 된 동지였기에, 만약 둘 중에 한 사람이 죽는다면 나머지 사람도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절절한 운명적 관계였다. 그런데 정조는 이 관계를 과감하게 정리했다. 권력을 가진 이에겐 시끄러운 일이 늘 생기게 마련이다. 홍국영도 예외가 아니었다. 홍국영의 세도는 3년 만에 막을 내린다. 더 이상 정조는 권신이 간신으로 변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정조의 판단력과 대처술을 교훈으로 배워야 할 점이다. 

 

첫째는 인정認定이다, 권신이 된 이유가 정조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했다

둘째는 결단決斷이다, 정조는 자신의 과오를 재빨리 제거했다

셋째는 인정人情이다, 정조는 냉혹한 처벌 대신에 피를 보지 않고 무난히 처리했다

 

 

 

매국노일지라도 끝까지 지킨 가치

 

세계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매국노賣國奴들이 있다. 매국노란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려고 나라의 주권이나 이권을 타국에 팔아먹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매국노란 말에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 잇다. 바로 이완용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제국을 일본에 팔아먹는 일에 가장 앞섰기 때문이다.

 

먼저 이완용의 행적을 살펴보자. 당시의 혼란한 국내 정치 상황을 이해함으로써 왜 그가 매국노가 되었는지 아는 데 도움되기 때문이다. 1858년생인 이완용은 경기도 광주(현, 판교)에서 몰락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인생은 10살 때 집안 아저씨뻘인 이호준의 양자로 입적하면서 급반전하게 된다. 슬하에 아들이 없던 이호준은 이완용에게 자신의 대를 이을 생각이었다.

 

당시 양부 이호준은 흥선대원군의 최측근으로 이조참의, 동부승지, 한성부 판윤(현, 서울시장) 등 요직을 두루두루 거친 권력의 핵심 세력이었다. 어릴 적부터 총명한 탓에 이완용은 양부 아래에서 후계자 수업을 차근차근 받았다. 이후 순탄하게 성장한 그는 25살에 증광문과 별시에 병과丙科 18위로 합격한다. 참고로 서재필이 바로 그의 과거 합격 동기다.

 

임오군란~ 흥선대원군 청으로 끌려가고, 개화파가 득세하자 이호준은 명성황후 및 민씨와 제휴

갑신정변~ 김옥균, 서재필 등 3일 천하로 마감, 이완용은 친청노선

육영공원(신지식인 양성소) 입학~ 미국참사관 발령, 미국에서 생활

동학농민운동~ 조정은 동학군을 흥선대원군 잔당으로 간주, 이호준의 정치적 위기

청일전쟁~ 일본의 승리, 박영효 등 개화파 귀국 갑오경장 주도, 이후 삼국간섭(러시아,독일,프랑스)

이후 조정의 반응~ 친러 성향

을미사변~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 고종은 경복궁에 연금

춘생문 사건~ 친미파, 친러파들이 고종을 경복궁에서 탈출 시도(이완용 참여)

아관파천~ 이완용의 활약, 외부대신 겸 농상공부대신으로 임명

독립협회~ 당초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코자 독립문 건립 추진위원회 결성

만민공동회~ 참정권, 민권, 사회개혁 등으로 발전하자 반러 성향을 보임

독립협회 등 해산~ 친러 노선의 고종, 이완용(독립협회 회장)은 전북관찰사로 좌천 후 파직

러일전쟁~ 일본 승리, 조정은 친미파인 이완용을 활용해 미국과 접촉, 믹국 한반도에서 손을 뗌

이완용의 결단~ 친미에서 친일로 갈아탐, 을사늑약부터 경술국치까지 주도   


하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이 끝까지 지켜냈던 가치가 있었다. 바로 조선의 왕통王統이었다. 그는 이씨 왕조의 명맥만은 유지될 수 있도록 일제와 협상했고, 사회 지배계층들의 지위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했다. 조선 왕실은 이완용 덕분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라 잃은 슬픔과 분노는 오직 백성들의 몫이 되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 한반도를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이런 무기력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이완용과 같은 이에게 '기회'를 준 당시의 권력에게 있다. 망국의 역사에서 매국노는 없다. 매국노들이 있을 뿐이다"

 

 

 

 

누구나 간신이 될 수 있다

 

이밖에도 책은 김자점, 윤원형, 한명회, 김질, 임사홍, 원 균, 유자광 등 대표적인 간신들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우리들은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에 항상 유혹엔 노출되어 있다. 소위 고위 공직자를 애초에 제대로 선발했다면 나라와 백성들에게 해를 입히는 그런 이적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또 나라의 위정자인 왕, 왕실, 그리고 왕실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권과 기득권을 챙기려고 언제라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간신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건강한 권력에서는 충신이, 병든 권력에서는 간신이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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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디자인 1 지식을 만화로 만나다 1
김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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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캐리커처>라는 제목을 달고 이 책의 초판이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할 얘기가 참 많았다. 우리 사회의 놀라운 학습 능력은 짧은 기간에 디자인을 보고 읽는 방법을 체화했고 세세하고 전문적인 영역에서 다루어진 것들까지 대중의 눈높이로 끌어내렸다. 예전이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소비하던 대중이 생산과 설계까지 주무르는 전혀 다른 양상의 좋은 시절이다. 이 좋은 시절에 <디자인 캐리커쳐>는 <더 디자인>으로 개명을 하게 되었다. 이제까지의 디자인이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모양으로 명멸했는지를 더듬는 회상이 될 것 같다. - '서문' 중에서

 

 

디자인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이 책의 저자 김재훈텍스트를 흥미로운 만화로 재가공하는 데 탁월하기로 정평이 난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겸 저술가다. 서울여대와 홍익대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글쓰기 강의를 맡기도 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광고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미술감독 등의 일을 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을 거치면서 글과 기호로만 이루어진 지식을 만화라는 매체에 갈아 태우겠다는 목표로 지식만화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저서로 <어메이징 디스커버리>, <플레이>, <과학자들>, <라이벌> 등이 있다.

 

이 책은 2010년 처음 출간되어 현대 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디자인의 역할과 의미를 짚어주었던 <디자인 캐리커처>의 개정증보판이다. 디자인에 대해 알고 싶지만 마땅한 입문서가 없어 고민하던 독자의 눈높이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내용을 수정, 정보를 업데이트했으며 유의미한 챕터들을 추가하여 보기 쉽게 재편했다.

 

출판사 21세기북스가 새롭게 런칭하는 '지식을 만화로 만나다(이하 지식만만)'궁금하지만 따로 시간 내어 공부하기는 어려운 지식을 만화로 알려주는 어른을 위한 지식교양만화 기획이다. 이 시리즈의 첫 권이 바로 <더 디자인>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누구나 이 시리즈를 통해 단시간을 투자해 상식을 넓힐 수 있다는 기본 취지에 맞게 이 책은 현대 문화사라는 생소한 분야를 디자인이라는 익숙한 주제로 입문하도록 돕는다.

 

책은 브랜드, 패션, 디자이너, 아키텍처, 퍼니처, 라이팅, 카, 에어크래프트, P.S 디자인 등 아홉 파트로 구성되었는데, 디자인 경영의 애플, 한국 자동차 산업의 분수령이 된 포니의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 아이 러브 뉴욕(I♥NY)의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 등등 생생한 현대 디자인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또한, 디자인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메이커의 뒷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애플의 디자인 경영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CEO로 재직하던 시절, 애플의 신화는 곧 디자인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애플의 대표 디자이너는 조너선 아이브로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등 애플의 대표적 제품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애플의 심볼인 사과 이미지를 만든 이는 그래픽디자이너 롭 제노프였는데, 최초의 심볼은 무지개색의 사과였다고 한다. 현재의 심볼은 계속 업그레이드된 결과물인 셈이다.

 

애플 마니아들은 애플의 제품을 단순한 기계가 아닌 '문화'라고 말한다. 한입 떼어져 나간 사과를 통해 사람들은 문화의 싱싱하고 새콤한 맛을 한껏 즐기고 있다. 이것이 바로 경영의 귀재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가 노린 애플의 이미지 전략이다. 그는 애플이 미래에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기술에 걸맞는 감성적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굿 디자인이 굿 비즈니스다"

 

신제품의 디자인 과정에선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들로부터 많은 요구를 받게 된다. 예를 들면, 알뜰 소비자는 새로 출시되는 제품은 이것저것 다 되면서 가격은 저렴하길 원하지만 엔지니어 입장에선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디자인은 아예 사절이다. 나아가 회사의 사장은 경영 실적의 개선을 위해 주구장창 원가 절감만 외친다. 이런 이해관계자들의 요청을 모두 반영한다면 볼품 없는 디자인의 제품이 나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애플 디자인 팀은 '아이팟'이라는 불세출의 디자인 제품을 탄생시켰다. 결국 대중들은 다소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이 제품을 선택했다. 훌륭한 디자인을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것마저 빼버려야 함을 보여준 사례이다.

 

 

 

코코 샤넬의 패션디자인

 

12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고아원에 맡겨진 소녀는 나중에 역사에 길이 남을 디자인계의 레전드로 성장한다. 이 소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코코라는 별명을 가진 가브리엘 샤넬이다. 그녀는 여성 패션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다. 샤넬 이전의 패션은 사회적인 관습과 통념에 따라 여성들이 활동하기에 매우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어야만 했다.

 

샤넬은 여성들에게 편한 옷차림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었다. 즉 주머니가 달린 가벼운 차람의 재킷, 양손을 자유롭게 해준 숄더백, 다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준 치마 길이 등 그녀가 만든 옷과 여러 잡화 등의 스타일은 '토털룩'이라 불리는 현대 여성복의 기초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수많은 제약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혁명가'라고도 말한다.

 

 

 

이밖에도 책은 마시는 문명 코콜라, 리바이스 청바지,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현대차 포니 쿠페의 디자인, 프랑스의 콩코드 비행기 등에 얽힌 디자인 이야기들을 연이어 펼친다. 20세기아 21세기에 탄생한 대표적인 디자인과 이를 디자인한 다자이너의 이야기를 만화로 유쾌하게 그려낸다. 아마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마침내 디자인에 관한 일반 상식이 레벨업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디자인 없이 성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없다

 

역사 속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기능했는지, 각각의 시대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분석하고 정의한다. 또 우리가 '디자인'을 통해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개선해나가야 하는지,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올바른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평소 디자인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거나 디자인에 관한 상식을 넓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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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리시 월드 - 자본가들의 비밀 세탁소
제이크 번스타인 지음, 손성화 옮김 / 토네이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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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개인재산은 최근 몇 년 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10년 121조 8,000억 달러였던 것이 2016년에는 166조 5,000억 달러로 늘었다. 세계 가계 금융자산의 약 8%를 비밀세계가 장악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3개국이 최근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개인자산이 4,000만 달러가 넘는 상위 0.01%에 속하는 이들의 경우 30%가 세금을 떼먹는다는 대단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만연하게 된 데는 비밀세계를 통한 부의 이전이 용이해진 탓이 제일 컸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자금세탁 기술자들

 

이 책의 저자 제이크 번스타인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팀의 선임기자였던 시절, 2011년 금융 위기에 관한 기사로 처음 퓰리처상 국내보도 부문을 수상한 이후, 2017년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로 퓰리처상 해설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현재〈워싱턴포스트〉〈블룸버그〉〈가디언〉등 세계적 언론기관에 기사를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바이스>(VICE: DICK CHENEY AND THE HIJACKING OF THE AMERICAN PRESIDENCY) 등이 있다.

 

대기업과 유럽 국무총리, 독재자, 왕족, 마피아, 밀수꾼, 비밀 요원, FIFA 임원, 슈퍼 리치, 유명 인사들이 베일 뒤에 가려진 조세피난처의 세계에서 수억 달러대의 자금을 관리하고, 거래하고, 은닉해오고 있었다. 총 18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파나마 페이퍼스'라 불리는 프로젝트의 발단과 결말의 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들은 이를 통해 글로벌 경제를 조종하는 권력과 욕망의 놀라운 실체를 파악하고 권력의 공포 속에서도 일반 대중들의 알 권리와 보편타당한 정의를 위해 그 진실을 추적한 피땀 흘린 기자들의 노고를 느끼게 한다. 특히, 이 책의 내용을 소재로 하여 메릴 스트립(여우 주연)과 개리 올드만(남우 주연)이 연기를 펼치는 스릴러 영화 <더 런드로맷The Laundromat>로 제작 중이라는 소식이다.

 

 

 

 

스위스 은행들은 부패의 문지기

 

은행 계좌가 없는 역외회사域外會社(조세 회피 목적의 페이퍼컴퍼니)는 용도가 한정적이다. 중요한 금융 활동을 하려면 은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금융 분야에서 비밀 유지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금융기관들이 위치한 나라는 바로 스위스였다. 이는 국제적인 기준이되었다. 스위스 은행가들이라면 예금주의 신원을 누설하거나 고객의 범죄를 폭로하는 일이 없다고 안심해도 되었다. 실제로 은행가가 고객의 개인 정보를 누설하는 것은 스위스 실정법을 위반하는 일이었다. 이에 스위스 은행들은 돈의 출처가 합법적인지에 관해서는 개의치 않았다. 단지 예금주는 납세와 스위스 법 준수라는 책임만 지면 그만이었다.

 

 

지하 금융 시스템의 폭로와 협업

ICIJ 팀(국제탐사보도 언론인협회)은 말로는 그 존재를 당연시했으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적이 없었던 지하 금융 시스템을 폭로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이 지불해야 할 당연한 몫을 부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이런 사실의 폭로에 관해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비밀세계에 대한 전대미문의 탐사보도만이 아니었다. 협업 자체가 화제가 되었다. 즉, 46개국의 탐사보도 기자 86명이 참여한, 언론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경을 초월한 탐사보도 공조였다.

 

 

 

모색 폰세카의 급성장, 그리고 소득 불평등의 심화

 

2015년 2월 24일, 독일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금융 당국이 주축이 된 독일 정부 수사관들이 합동으로 현장을 잇달이 급습했다. 이들은 수개월간 작전 계획을 수립햇다. 주된 표적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의 2대은행 코메르츠방크였다. 검사와 수사관들은 세금사기극의 증거를 찾기 위해 관련자들의 자택도 수색했다. 하지만 코메르츠방크는 이미 10년이 훨씬 더 지난 케케묵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독일 세무당국이 '모색 폰세카 그룹'이라는 파나마 역외 법인 설립 기업의 룩셈브르크 자회사에서 나온 데이터를 114만 달러에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독일 당국이 입수한 정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사는 정보원을 통해 모색 폰세카에서 빼돌린 방대한 고객 및 계좌 데이터를 이미 확보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르겐 모색, 라몬 폰세카 2명으로 시작한 모색 폰세카, 일명 '모스폰'은 버진아일랜드에 껍데기뿐인 위장회사를 만들어 중개인들에게 최소 750달러를 받고 팔았다. 빈껍데기 회사였지만 실제론 뭐든 가능한 법인이었다. 모스폰은 급성장해 파나마 본사 외에 전 세계 42개의 사무소에 6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 회사는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그 무렵 정보원이 보낸 문서는 10만 건이나 되었다. 독일 기자들이 자체적으로 모든 자료를 검토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데이터에서 찾아낸 회사들과 소유주들은 국적이 제각각이었다. 유명한 독일 정치인은 한 사람도 없었지만,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은 수두룩했다. 매우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몇몇 사항들은 알아보기 쉽도록 정보원이 표시해두긴 했으나 해당 국가에서 나고 자란 현지 기자들만이 모든 관련성과 눈에 띄는 이름들을 찾아낼 수 있을 터였다. 최대의 효과를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은 '협업'이었다. 한국도 이 데이터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시대를 규정하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인 소득 불평등의 확대를 조장한 것이야말로 모스폰과 모스폰이 돌아가게끔 만든 시스템이 저지른 가장 나쁜 해악이 아닐까 싶다.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도덕적 구조를 부패시킨 원인은 바로 그 시스템이었다. 모스폰은 외부와 단절된 진공 상태에서 움직인 게 아니었다. 사실상 거의 모든 국가의 주요 로펌들에서 협력자와 고객을 찾아냈다. 결국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이런 일을 만들어낸 셈이다.

 

 

 

"우리는 천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악마도 아니죠"

 

라몬 폰세카는 파나마시티의 텅 빈 사무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스폰의 두 창립자는 자신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준 비밀세계가 앞으로도 계속 융성하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파나마 페이퍼스가 공개되기 전부터 법인 설립과 비밀 은행 계좌는 BVI(브리티시 버진 아일랜드)의 주의확인 의무 강화 및 스위스은행 비밀주의 상실에 대응하여 두바이와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있었다. 달라진 거라곤 예전보다 비용이 더 든다는 점뿐이었다. - '에필로그' 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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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4 - 1926-1930 학생 대중아 궐기하자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4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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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 35년의 역사는 부단한, 그리고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다. 비록 독립을 가져온 결정적 동인이 일본군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임을 부정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설명은 무지 혹은 의도적 왜곡이다. 자학이다. 우리 선조들은 한 세대가 훌쩍 넘는 3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줄기차게 싸웠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일제 35년은 자랑스런 투쟁의 역사

 

이 책의 작가 박시백은 시사만화가로 1964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면서 총학생회 신문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1996년 한겨레신문 만평담당자 모집에 응모해 당선되었다. 이어 박재동 화백의 뒤를 이어 2001년 4월까지 한겨레신문에서 '박시백의 그림세상'을 연재했으며, 그 외에도 〈말〉, 〈출판저널〉, 〈뉴스피플〉 등의 매체에 만평을 연재한 바 있다.

그의 연재만화는 네컷 만화나 한컷짜리 만평이 아닌, 지면이 넓은 편인 페이지 만화이다. 왜냐하면 한 이슈의 이해를 돕기 위해 희화화하거나 패러디를 하는 보통의 다른 만평들과 달리, 그는 사건의 전후관계 및 배경과 진행, 그리고 논평 등의 과정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려는 시사만화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신문사를 그만둔 후에는 집에 칩거하며 하루 종일 '조선왕조실록' 국역CD를 공부했고, 2003년에 콘티부터 그림과 채색까지 모두 혼자서 작업한 만화 <조선왕조실록>을 출간했다. 이는 총 20권으로 기획된 대하역사만화로, 조선의 정치사를 철저히 '실록'을 바탕으로 했다. 35년은 총 6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910년 8월 29일 국권피탈에서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의 일제식민지 35년의 역사 중 1926년 부터 1930년 까지 일어난 학생과 대중의 운동사를 다루고 있다.

 

 

 

 

1926년~ 6.10 만세운동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근우회 출범

1929년~ 광주 학생항일운동

1930년~ 평양 고무공장 노동자 파업

 

 

먼저 1920년대 후반의 세계를 개괄적으로 살펴보자.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전쟁의 참화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특히, 패전한 독일의 상황이 가장 처참했다. 천문학적인 전쟁배상금 때문에 최악의 경제 상황이었으며, 공포스런 인플레이션 탓에 우유 한 병을 사려면 마르크 지폐를 한 가방 들고 가게를 방문해야 했을 정도였다. 이후 미국의 중재로 배상금이 대폭 삭감되고, 차관을 제공받아 숨통이 트였지만, 독일 국민들의 마음 속에 불만이 가득했다. 이 불만이 결국엔 나치즘의 히틀러를 등장시키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에선 무솔리니가 등장해 강력한 국가주의를 부르짖으며, 이탈리아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전만 해도 잘나가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사회주의 이론을 포기하고 국가파시스트당을 조직해 1921년 총선에서 37명의 당선자를 배출했으며, 1922년 추종자들인 검은셔츠단을 이끌고 로마로 진군하는 쿠데타를 일으켜 국왕으로부터 내각 구성권을 부여받는다. 이후 그는 의회를 해산하고 일당 독재체제를 구축한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전쟁 특수로 호황을 누렸던 미국은 친기업정책으로 독점기업들의 성장을 가속화시키면서 공장들은 쉴새없이 상품들을 제조, 출하했다. 1920년대 말, 미국의 총생산은 전 세계의 50%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주식시장의 규모도 날로 성장하면서 5년 전에 비해 시총 규모가 3배로 커졌다. 노동자들도 주식으로 돈을 버는 그런 형국이었다. 거리엔 자동차가 넘쳐났고, 50층 이상의 고층 빌딩들이 경쟁적으로 올라갔다. 여가 시간엔 프로야구를 즐기며 홈런왕 베이브 루스에 열광했다.

 

한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후계자인 레닌이 소련을 세웠지만 내전과 반혁명으로 국가의 생산력은 너무나도 미약했다.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완수하기엔 자본주의의 유럽국들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했다. 병석에 든 레닌의 뒤를 이어 스탈린이 전면에 나서 삼두체제를 거쳐 완전하게 독재의 힘을 거머쥐었다. 민주주의는 위축되고 급격한 좌경화로 로선이 변경된다. 중국은 장제스가 북벌에 성공하여 중국을 재통일했지만 마오쩌둥이 혁명군을 구축한다. 대륙으로의 진출을 꿈꾸는 일본은 군부와 우익 세력이 날로 강성해지면서 만주를 거쳐 중국 본토를 유린할 계획을 도모한다.

 

미국 번영과 함께 연일 상승세를 유지했던 뉴욕 월스트리트의 주식시장이 갑자기 팔자 주문이 쇄도하면서 대폭락 사태가 발생했다. 1929년 10월 24일, 대공황의 전주곡이 울렸던 것이다. 공장마다 재고가 쌓이고, 주가가 폭락하자 도산하는 기업들이 줄을 이었다. 이에 실업자가 덩달아 발생하고 공업 생산량이 급속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를 이끌던 미국발 경제공황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것이 바로 경제대공황이다.

 

 

조선공산당의 등장, 신간회 결성, 그리고 광주학생운동

 

1925년 화요파를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이 창당되지만 일제의 탄압에 직면하고, 만주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중국혁명과 조선혁명이라는 양대 과제를 안고 일본 제국주의와 싸워나간다. 만주 지역 독립운동세력은 국공합작의 영향을 받아 일제에 맞서기 위해서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민족유일당 건설 운동이 일어나는데, 만주에서의 유일당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자고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법. 

 

국내에서는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협동전선을 모색하는 신간회 결성으로 이어진다. 신간회는 총독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원산총파업, 광주학생운동 등을 지원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또 자매단체인 근우회근우회가 기독교 중심의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 여성들에 의해 1927년 5월 조직된다. 한편, 3·1혁명 이후 항일운동의 핵심이 된 학생들은 동맹휴학, 독서회 같은 비밀결사 조직을 통해 일제에 맞서고, 1929년 광주에서는 대규모 항일 민족운동인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난다.

 

 

신간회 발기인 

 

광주에서의 학생운동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됐다. 광주와 송정리 간을 운행하는 열차로 통학하는 광주고보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인 광주중학교 학생들 사이엔 늘 가벼운 신체 접촉이 있었다. 그래서 양교에선 교직원이 상시 배치되어 사고 방지에 힘을 기울였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역을 출발해 나주역에 정차한 열차에서 승객들이 개찰구를 빠져나가는데, 광주중학교 3명의 학생들이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목격자인 여학생의 사촌동생이 이를 따지자 순간 싸움이 벌어졌고 출동한 일본인 순사는 한국 학생의 뺨을 때렸던 것이다. 억울했던 학국 학생은 다음날 일본인 학생들이 타고 있는 열차간으로 찾아가 또다시 싸움을 벌였다.

 

11월 3일, 일요일임에도 메이지 천황의 탄생일 가념식을 위해 학교에 등교토록 지시가 떨어졌다. 11시경, 기념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양교 학생들이 충돌했다. 순사와 교사들의 제지로 잠시 산회했던 학생들이 무장을 하고 교문을 나섰다. 이때 광주농업학교생 300명, 광주여고보생, 광주사범학교생 등도 이에 합류했다. 이후 광주 학생들의 시위는 전국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학생 대중아 궐기하자!"

"조선 민중아 궐기하자!"

 

 

노동운동의 성장

 

1920년대 중반 이후 노동운동엔 사회주의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다. 전국적 대표 조직으로는 조선노동총동맹이 있었다. 이는 사실상 조선공산당의 장악 하에 있었다. 따라서 노동자의 권익 문제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경향을 띄고 있었다. 순수 일본 자본으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목포제유공장의 파업, 영국인이 경영하는 원산의 문평제유공장의 파업, 원산노동연합회의 총파업, 부산 조선방직 노동자 파업 등으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저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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