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리시 월드 - 자본가들의 비밀 세탁소
제이크 번스타인 지음, 손성화 옮김 / 토네이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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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개인재산은 최근 몇 년 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10년 121조 8,000억 달러였던 것이 2016년에는 166조 5,000억 달러로 늘었다. 세계 가계 금융자산의 약 8%를 비밀세계가 장악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3개국이 최근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개인자산이 4,000만 달러가 넘는 상위 0.01%에 속하는 이들의 경우 30%가 세금을 떼먹는다는 대단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만연하게 된 데는 비밀세계를 통한 부의 이전이 용이해진 탓이 제일 컸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자금세탁 기술자들

 

이 책의 저자 제이크 번스타인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팀의 선임기자였던 시절, 2011년 금융 위기에 관한 기사로 처음 퓰리처상 국내보도 부문을 수상한 이후, 2017년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로 퓰리처상 해설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현재〈워싱턴포스트〉〈블룸버그〉〈가디언〉등 세계적 언론기관에 기사를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바이스>(VICE: DICK CHENEY AND THE HIJACKING OF THE AMERICAN PRESIDENCY) 등이 있다.

 

대기업과 유럽 국무총리, 독재자, 왕족, 마피아, 밀수꾼, 비밀 요원, FIFA 임원, 슈퍼 리치, 유명 인사들이 베일 뒤에 가려진 조세피난처의 세계에서 수억 달러대의 자금을 관리하고, 거래하고, 은닉해오고 있었다. 총 18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파나마 페이퍼스'라 불리는 프로젝트의 발단과 결말의 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들은 이를 통해 글로벌 경제를 조종하는 권력과 욕망의 놀라운 실체를 파악하고 권력의 공포 속에서도 일반 대중들의 알 권리와 보편타당한 정의를 위해 그 진실을 추적한 피땀 흘린 기자들의 노고를 느끼게 한다. 특히, 이 책의 내용을 소재로 하여 메릴 스트립(여우 주연)과 개리 올드만(남우 주연)이 연기를 펼치는 스릴러 영화 <더 런드로맷The Laundromat>로 제작 중이라는 소식이다.

 

 

 

 

스위스 은행들은 부패의 문지기

 

은행 계좌가 없는 역외회사域外會社(조세 회피 목적의 페이퍼컴퍼니)는 용도가 한정적이다. 중요한 금융 활동을 하려면 은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금융 분야에서 비밀 유지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금융기관들이 위치한 나라는 바로 스위스였다. 이는 국제적인 기준이되었다. 스위스 은행가들이라면 예금주의 신원을 누설하거나 고객의 범죄를 폭로하는 일이 없다고 안심해도 되었다. 실제로 은행가가 고객의 개인 정보를 누설하는 것은 스위스 실정법을 위반하는 일이었다. 이에 스위스 은행들은 돈의 출처가 합법적인지에 관해서는 개의치 않았다. 단지 예금주는 납세와 스위스 법 준수라는 책임만 지면 그만이었다.

 

 

지하 금융 시스템의 폭로와 협업

ICIJ 팀(국제탐사보도 언론인협회)은 말로는 그 존재를 당연시했으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적이 없었던 지하 금융 시스템을 폭로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이 지불해야 할 당연한 몫을 부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이런 사실의 폭로에 관해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비밀세계에 대한 전대미문의 탐사보도만이 아니었다. 협업 자체가 화제가 되었다. 즉, 46개국의 탐사보도 기자 86명이 참여한, 언론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경을 초월한 탐사보도 공조였다.

 

 

 

모색 폰세카의 급성장, 그리고 소득 불평등의 심화

 

2015년 2월 24일, 독일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금융 당국이 주축이 된 독일 정부 수사관들이 합동으로 현장을 잇달이 급습했다. 이들은 수개월간 작전 계획을 수립햇다. 주된 표적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의 2대은행 코메르츠방크였다. 검사와 수사관들은 세금사기극의 증거를 찾기 위해 관련자들의 자택도 수색했다. 하지만 코메르츠방크는 이미 10년이 훨씬 더 지난 케케묵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독일 세무당국이 '모색 폰세카 그룹'이라는 파나마 역외 법인 설립 기업의 룩셈브르크 자회사에서 나온 데이터를 114만 달러에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독일 당국이 입수한 정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사는 정보원을 통해 모색 폰세카에서 빼돌린 방대한 고객 및 계좌 데이터를 이미 확보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르겐 모색, 라몬 폰세카 2명으로 시작한 모색 폰세카, 일명 '모스폰'은 버진아일랜드에 껍데기뿐인 위장회사를 만들어 중개인들에게 최소 750달러를 받고 팔았다. 빈껍데기 회사였지만 실제론 뭐든 가능한 법인이었다. 모스폰은 급성장해 파나마 본사 외에 전 세계 42개의 사무소에 6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 회사는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그 무렵 정보원이 보낸 문서는 10만 건이나 되었다. 독일 기자들이 자체적으로 모든 자료를 검토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데이터에서 찾아낸 회사들과 소유주들은 국적이 제각각이었다. 유명한 독일 정치인은 한 사람도 없었지만,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은 수두룩했다. 매우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몇몇 사항들은 알아보기 쉽도록 정보원이 표시해두긴 했으나 해당 국가에서 나고 자란 현지 기자들만이 모든 관련성과 눈에 띄는 이름들을 찾아낼 수 있을 터였다. 최대의 효과를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은 '협업'이었다. 한국도 이 데이터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시대를 규정하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인 소득 불평등의 확대를 조장한 것이야말로 모스폰과 모스폰이 돌아가게끔 만든 시스템이 저지른 가장 나쁜 해악이 아닐까 싶다.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도덕적 구조를 부패시킨 원인은 바로 그 시스템이었다. 모스폰은 외부와 단절된 진공 상태에서 움직인 게 아니었다. 사실상 거의 모든 국가의 주요 로펌들에서 협력자와 고객을 찾아냈다. 결국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이런 일을 만들어낸 셈이다.

 

 

 

"우리는 천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악마도 아니죠"

 

라몬 폰세카는 파나마시티의 텅 빈 사무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스폰의 두 창립자는 자신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준 비밀세계가 앞으로도 계속 융성하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파나마 페이퍼스가 공개되기 전부터 법인 설립과 비밀 은행 계좌는 BVI(브리티시 버진 아일랜드)의 주의확인 의무 강화 및 스위스은행 비밀주의 상실에 대응하여 두바이와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있었다. 달라진 거라곤 예전보다 비용이 더 든다는 점뿐이었다. - '에필로그' 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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