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 - 한명회부터 이완용까지 그들이 허락된 이유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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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왕과 신하라는 표현이 쓰여서는 안 되는 민주주의 체제인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간신이라는 단어는 언어로서의 생명을 가지고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 실제로 사용 용례에 적합한 인물들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이다. - '시작하는 글' 중에서

 

 

왜 간신은 사라지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 이성주는 시나리오, 전시 기획, 역사교양, 밀리터리 등 어느 한 분야로 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문화 콘텐츠 창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신문 <딴지일보> 에서 군사 분야 논객으로 활동 중이며 포스코의 '포레카 창의 놀이방', SERI CEO 등 다양한 공간에서 역사와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역사는 현실과 괴리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우리 일상과 함께 호흡한다'는 신조를 바탕으로 역사서를 다수 집필했다. 그 가운데 우리 역사 속의 숨은 이야기들을 재치 있게 다룬 <엽기조선왕조실록>, <개정판,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실록>은 서점가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면서 역사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밖에도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아이러니 세계사>,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사 진풍경>,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아리스토텔레스, 이게 행복이다>(1318 청소년 시리즈), <파국으로 향하는 일본>(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완벽하게 자살하는 방법>, <왕들의 부부싸움> 등이 있다.

 

 

 

 

우리들의 본성은 간신에 가깝다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이란 결국 유전자의 '탈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했다. 이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종의 목적은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해주려는 것이다. 이처럼 종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충신의 삶은 잘못된 선택이자 낙제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핵심은 간단하다. 충신이야말로 인간의 속성에 반하는 비정상적인 존재다. 역사로 되새김질되는 이유도 바로 그들이 희귀하고 특별한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충신은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적 아름다움에 가깝다. 즉 인간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한 세계를 구축해놓은 후, 그런 삶은 지향하는 셈이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설파한 철인정치를 실행하려면 수십 년간 욕망을 통제하며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런 덕목을 우리들 일상에 과연 적용할 수 있을까?

 

그렇다. 우리들의 본성은 간신에 가깝다. 인간은 나약하고, 이기적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서 존경받는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의 인격을 시험하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맡겨라"라고 말이다. 보통사람들이 권력을 쥐었을 때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간신은 지옥에서 올라온 별종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나 여상如上하게 마주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다른 모습이다.

 

 

간신은 이를 허용한 왕이 있기에 성립한다

 

간신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간신은 이를 허용한 왕과 시대가 있어야만 비로소 등장할 수 있다. 신하 혼자 욕망한다고 간신이 될 수는 없다. 이를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간신을 바라볼 때 이런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왕은 왜 간신을 받아들였을까?" 왕이 간신을 허용한 까닭은 결코 무능해서가 아니라 왕 자신에게 이익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제대로 제왕학이나 군주학을 공부하면서 스스로의 기본적 소양을 갖추었기에 왕은 선택의 기로에서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굳이 간신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의 욕망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양 당사자 간의 이해 타산이 딱 맞아떨어진 거래였다. 이렇게 상호 간의 이익의 흐름, 그 흐름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간신과 혼군昏君이다.

 

 

정조는 간신의 등장을 막았다

 

역사에서의 가정법이란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만약 그 시절에 홍국영이 없었다면 아마도 정조도 없었을 것이다. 25세에 과거에 합격한 그가 2년 후에 정조와 인연을 처음으로 맺게 된다. 동궁시강원 설서說書로 임명된 이후 그는 정조의 오른팔이 되었다. 당시 세손이었던 영조를 제거하려 했던 이들에겐 지근거리에서 영조를 보필하던 홍국영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위기의 연속이었던 그런 시간이 흘러 마침내 왕으로 등극하자 정조는 홍국영을 동부승지 자리에 앉힌다.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은 풋내기 신하에게 정삼품 당상관 자리를 준 것이니 가히 파격 인사였던 것이다. 이는 시작일 뿐이었다. 반 년이 지나지 않아 홍국영은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견줄 수 있는 도승지 자리에 오른다. 이어서 정조는 자신의 총신寵臣을 양성하는 규장각 직제학 자리와 군을 관장하는 병권까지 그에게 맡긴다. 이제 홍국영은 권력을 한 몸에 지닌 권신權臣이 된 셈이다.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홍국영과 정조는 단순히 신하와 왕이라는 관계에 머물지 않았다. 그 이상의 농밀한 감정적 교류가 있는 관계였다. 같이 죽을 고비를 넘겼고, 온갖 고난 끝에 권력을 쥐게 된 동지였기에, 만약 둘 중에 한 사람이 죽는다면 나머지 사람도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절절한 운명적 관계였다. 그런데 정조는 이 관계를 과감하게 정리했다. 권력을 가진 이에겐 시끄러운 일이 늘 생기게 마련이다. 홍국영도 예외가 아니었다. 홍국영의 세도는 3년 만에 막을 내린다. 더 이상 정조는 권신이 간신으로 변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정조의 판단력과 대처술을 교훈으로 배워야 할 점이다. 

 

첫째는 인정認定이다, 권신이 된 이유가 정조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했다

둘째는 결단決斷이다, 정조는 자신의 과오를 재빨리 제거했다

셋째는 인정人情이다, 정조는 냉혹한 처벌 대신에 피를 보지 않고 무난히 처리했다

 

 

 

매국노일지라도 끝까지 지킨 가치

 

세계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매국노賣國奴들이 있다. 매국노란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려고 나라의 주권이나 이권을 타국에 팔아먹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매국노란 말에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 잇다. 바로 이완용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제국을 일본에 팔아먹는 일에 가장 앞섰기 때문이다.

 

먼저 이완용의 행적을 살펴보자. 당시의 혼란한 국내 정치 상황을 이해함으로써 왜 그가 매국노가 되었는지 아는 데 도움되기 때문이다. 1858년생인 이완용은 경기도 광주(현, 판교)에서 몰락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인생은 10살 때 집안 아저씨뻘인 이호준의 양자로 입적하면서 급반전하게 된다. 슬하에 아들이 없던 이호준은 이완용에게 자신의 대를 이을 생각이었다.

 

당시 양부 이호준은 흥선대원군의 최측근으로 이조참의, 동부승지, 한성부 판윤(현, 서울시장) 등 요직을 두루두루 거친 권력의 핵심 세력이었다. 어릴 적부터 총명한 탓에 이완용은 양부 아래에서 후계자 수업을 차근차근 받았다. 이후 순탄하게 성장한 그는 25살에 증광문과 별시에 병과丙科 18위로 합격한다. 참고로 서재필이 바로 그의 과거 합격 동기다.

 

임오군란~ 흥선대원군 청으로 끌려가고, 개화파가 득세하자 이호준은 명성황후 및 민씨와 제휴

갑신정변~ 김옥균, 서재필 등 3일 천하로 마감, 이완용은 친청노선

육영공원(신지식인 양성소) 입학~ 미국참사관 발령, 미국에서 생활

동학농민운동~ 조정은 동학군을 흥선대원군 잔당으로 간주, 이호준의 정치적 위기

청일전쟁~ 일본의 승리, 박영효 등 개화파 귀국 갑오경장 주도, 이후 삼국간섭(러시아,독일,프랑스)

이후 조정의 반응~ 친러 성향

을미사변~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 고종은 경복궁에 연금

춘생문 사건~ 친미파, 친러파들이 고종을 경복궁에서 탈출 시도(이완용 참여)

아관파천~ 이완용의 활약, 외부대신 겸 농상공부대신으로 임명

독립협회~ 당초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코자 독립문 건립 추진위원회 결성

만민공동회~ 참정권, 민권, 사회개혁 등으로 발전하자 반러 성향을 보임

독립협회 등 해산~ 친러 노선의 고종, 이완용(독립협회 회장)은 전북관찰사로 좌천 후 파직

러일전쟁~ 일본 승리, 조정은 친미파인 이완용을 활용해 미국과 접촉, 믹국 한반도에서 손을 뗌

이완용의 결단~ 친미에서 친일로 갈아탐, 을사늑약부터 경술국치까지 주도   


하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이 끝까지 지켜냈던 가치가 있었다. 바로 조선의 왕통王統이었다. 그는 이씨 왕조의 명맥만은 유지될 수 있도록 일제와 협상했고, 사회 지배계층들의 지위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했다. 조선 왕실은 이완용 덕분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라 잃은 슬픔과 분노는 오직 백성들의 몫이 되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 한반도를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이런 무기력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이완용과 같은 이에게 '기회'를 준 당시의 권력에게 있다. 망국의 역사에서 매국노는 없다. 매국노들이 있을 뿐이다"

 

 

 

 

누구나 간신이 될 수 있다

 

이밖에도 책은 김자점, 윤원형, 한명회, 김질, 임사홍, 원 균, 유자광 등 대표적인 간신들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우리들은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에 항상 유혹엔 노출되어 있다. 소위 고위 공직자를 애초에 제대로 선발했다면 나라와 백성들에게 해를 입히는 그런 이적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또 나라의 위정자인 왕, 왕실, 그리고 왕실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권과 기득권을 챙기려고 언제라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간신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건강한 권력에서는 충신이, 병든 권력에서는 간신이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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