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 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질문의 책 27
자크 파월 지음, 박영록 옮김 / 오월의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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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기업가와 은행가는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도록 지원했고, 그가 추진한 퇴행적인 사회 정책과 재무장 프로그램, 그리고 전쟁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미국의 대기업가와 은행가 역시 히틀러가 성공 가도를 달리는 동안 그를 지원했고, 그들 회사의 수익성도 나치 정권의 대표적인 정책 덕분에 극대화되었다. 미국 기업들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 자국과 그 동맹국뿐만 아니라 독일까지 포함한 모든 참전국에 전쟁물자 등을 공급해서 전례가 없을 만큼 큰돈을 벌 수 있었다. - '서문' 중에서

 

 

자본과 전쟁은 상호 협력관계

 

책의 저자 자크 파월은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로, 1946년 벨기에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토론토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요크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토론토대학, 요크대학, 워털루대학에서 유럽사를 가르쳤다. 제2차 세계대전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는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그동안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로 출판되었으며,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그는 책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대항한 미국의 위대한 성전, 즉 '좋은 전쟁'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돈과 사업 관계, 그리고 이윤에 따른 충돌로서 기술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엄청난 계급전쟁The Great Class War 1914-1918>, <시간의 먼지 아래Beneath the Dust of Time> 등이 있다.

 

책은 크게 2부('독일 재계와 히틀러', '미국 재계와 나치 독일')로 구성되었는데, 미국 및 독일 대자본과 히틀러 사이의 협력 관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수많은 책과 자료를 참조해 나치즘과 파시즘이 어떻게 등장했으며, 자본주의와 어떻게 결탁했는지, 독일과 미국 및 기타 국가의 자본가들이 나치즘과 파시즘의 성장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낱낱이 밝혀낸다. 나치즘과 자본주의의 역사는 일종의 러브스토리로 볼 수 있으며, 그리고 히틀러를 뒤에서 떠받친 자본가들과 대기업들은 최종적으로 이익을 본 주체라고 말하고 있다.

 

 

 

독일 재계와 히틀러

 

1929년 말, 전 세계적으로 재앙과도 같은 경제 위기가 발발하자 독일도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의 바이마르 연립정부는 긴축 정책을 펼쳤는데,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독일의 기업계와 금융계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히틀러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심각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을 타개할만한 의지와 능력을 지닌 인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독일의 경제활동인구 중 절반을 차지했던 공장 노동자들은 세계 위기를 자본주의체제가 사망 직전에 겪는 고통이라고 여겼을 정도로 러시아식 혁명을 꿈꾸며 공산당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갔다.

 

히틀러의 계획이 끔찍한 전쟁을 초래할 게 분명한데도 독일의 기업가와 은행가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독일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충분히 강해서 어떠한 전쟁에서도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전의 전쟁(1918년)에서 패전국이 된 것은 배신, 즉 독일 내부의 적색 혁명론자와 유대인이 '등 뒤에서 칼을 꽂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다음 전쟁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이러한 '배신자'들을 제거하는 것뿐이었다. 독일 지배층 역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이는 총알받이가 될 사람이 자신들이 아니라 서민들이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독일 유권자 다수의 표를 받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심하게 조작되었던 1933년 3월 5일 선거에서조차 그는 과반이 넘는 표와 의석을 얻는 데 실패했다. 광범위한 폭력과 협박, 그리고 독일 재계의 엄청난 재정 지원으로 실행한 프로파간다와 대규모 선거운동에도 불구하고,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은 43.9퍼센트라는 실망스러운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그가 무한한 권력을 누리게 된 것도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게 아니었다.

 

히틀러는 자신이 집권하면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몰아낼 것이며, 노동조합을 무력화할 것이고, 소유주들은 다시 '자기 집의 주인'이 될 것이며, 임금을 올리지 않은 채 노동시간을 늘릴 것이고, 사회적 비용 또한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더불어 재무장 프로그램을 통해 강한 독일을 만들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러한 주장은 기업가와 은행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점점 히틀러를 지원하는 자본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히틀러 정권은 독일에서 자본주의체제를 결코 위협했던 적이 없다. 이 정권이 여러 의미에서 사실상 독일 자본주의의 산물 그 자체라는 사실 또한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많은 역사학자의 주장과는 다르게, 나치스는 민간기업을 국영기업으로 전환하여 독일의 자본주의체제를 위협하려는 계획을 세운 바가 없다. 나치즘하의 독일 경제에 대한 책을 집필한 샤를 베틀레임은 약간의 과장을 섞어 이렇게 설명한다.

 

"나치 정권하에서, 독일 경제는 점점 더 몇몇 독점기업에 장악되어갔다. …… 나치 정부가 기반으로 삼았던 재산이, 나치 정부가 유지·보호·옹호·육성했던 재산이 바로 독점자본가들의 재산이었던 것이다"

전쟁 기간 동안에 유럽 내 유대인 수백만 명이 아우슈비츠나 트레블링카 등의 절멸수용소에서 살해되었다. 어린이나 노인처럼 노동할 만한 힘이 없는 사람들은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가스로 살해되어 화장되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고된 노동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독일 기업들은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수용소 근처에 공장을 지었다. 이게파르벤은 아우슈비츠에 이른바 부나베르크라는 거대한 공장을 지어 합성고무를 생산했다. 특히, 도이체 방크가 자금을 댄 사업이었다. 지멘스와 크루프 역시 유대인들에게 노예노동을 강요했다.

독일에서 나치즘과 자본주의의 역사는 친밀한 관계의 연대기이자 일종의 러브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끝을 향해 가는 동안, 그 관계는 힘겨운 시기를 겪으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전쟁이 끝난 바로 그 순간까지, 독일 재계는 나치 정권에 충실했고, 히틀러가 절망적일 만큼 참혹한 전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물자를 생산했다. 역으로 나치 정권도 몰락하는 그날까지 거대 기업과 은행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보여주었다.

 

미국 재계와 나치 독일

유럽의 파시즘은 유럽의 전통적 지배층이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그리고 경제 위기인 대공황의 여파로 발생한 문제들을 과격하게 해결하려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가장 핵심 권력층인 재계財界는 '파시스트 옵션'이 매우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파시즘식 해결책은 값싼 노동력과 함께 새로운 시장과원료 공급처를 확보할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이유들도 여럿 있었다.

 

반면 미국에선 이미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려, 파시즘이 발흥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쉽게 추정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1920년 대와 1930년 대의 믹국 기득권층도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 촉발한 대공황을 심히 우려하고 있었다. 파시즘의 싹이 미국 당에도 퍼지고 있었다. 미국 권력층 일부는 실제로 미국의 파시스트 조직을 지원하고 해외의 파시스트와 교분을 가졌다. 그런데, 이들은 파시스트 정권 없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을 찾았던 것이다. 바로 '전쟁'이었다.

 

반유대주의는 히틀러가 출생하기 전에도 최소 1천년 동안 존재해왔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경엔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드레퓌스 사건) 등 여러 나라에 상당히 퍼져 있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고 1918년이 되자 반유대주의는 좌파 혁명에 대한 공포가 덧붙여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공포가 유럽과 미국의 중산계급과 지배계급에 퍼져나갔던 것이다. 유럽의 반대유대주의자는 반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고, 반마르크스주의자는 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  

 

1930년대에 미국 재계의 반유대주의는 반사회주의 및 반마르크스주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며 이른바 '빨갱이 사냥'이라고 불리던, '붉은'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로 표출되었다. 재계의 대다수 거물들은 루스벨트의 뉴딜이 '사회주의적' 정책으로, 경제생활에 대한 정부의 불법적인 개입이며, 유대인이 영감을 주고 지휘한 미국 볼셰비키화의 서곡이라며 반감을 표출했다. 산업계와 금융계 지배층에 속한 반유대주의자들은 루스벨트를 유대인이거나 유대인의 꼭두각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1939년과 1940년의 독일군 승리는 '전격전' 덕분에 가능했다. 전격전이란 기동성을 최대한 높인 새로운 전투 형태로, 육상과 공중에서 완벽하게 보조를 맞추어 매우 빠른 속도로 공격하는 게 주요한 특징이었다. 이런 전격전의 수행에 엔진, 탱크, 트럭, 비행기, 연료, 엔진 오일, 고무 등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이들 중 상당 부분은 미국 기업에서 공급했던 것이다. 미국의 이런 도움이 없었다면 '전격전'은 히틀러의 꿈으로만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나치 독일에 지사를 둔 미국 기업의 소유자와 경영진은 히틀러의 승전에 기여한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일정 부분 자랑스러워했는데, 히틀러의 승리가 곧 그들 자신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치가 승전을 자축할 때, 제너럴모터스, 포드, 아이비엠 등의 기업이 그들과 함께했다. 1940년 6월 26일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변호사 게르하르트 베스트리크가 이끌던 독일 기업 대표단이 독일군 승전을 축하하는 행사를 개최, 당시 미국의 수많은 기업가가 참석했던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전에 없던 호황을 맞았다. 미국 기업의 독일 내 자회사들은 히틀러의 승전으로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수익 극대화라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다. 미국도 전쟁 준비에 속도를 내면서 기업들이 정부로부터 트럭, 탱크, 항공기를 비롯한 여러 물자들에 대해 엄청난 양의 주문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경제적 수요 측면에서 뉴딜보다 '펌프에 더 많은 마중물'을 부은 셈으로, 이는 강력한 케인스식 경제 부양으로 작용했다. 이로써 미국의 대공황은 마침내 끝나고 말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무기대여법'을 도입, 미국 군수사업은 영국에 전쟁 물자를 공급함으로써 노다지를 캘 수 있었다. 영국은 막대한 빚을 2006년 12월 29일에서야 완전히 갚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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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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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을 떠나는 게 집에서 멀어지는 건지 가까워지는 건지, 보라보라에 도착하면 여행이 시작되는 건지, '그'가 외간 남자인지 남편인지조차 몰랐던 , 아직은 모든 것의 경계가 희미했던 나의 첫 보라보라. 그 시작을 함께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결혼식 없는 결혼을 했고 검은 고양이 쥬드와 함께 보라보라섬에 살고 있다.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 '프롤로그' 중에서

 

 

남태평양의 보라보라섬에서 살다

 

책의 저자 김태연은 언제나 여름인 남태평양의 외딴섬 보라보라에서 9년을 살았다. 맨몸으로 바다를 헤엄치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별자리를 바라보며 온갖 나무와 꽃 이름을 알게 되는 근사한 삶을 꿈꿨지만, 사실은 암막 커튼 쳐놓고 넷플릭스 보는 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먼 북소리가 아닌 인생 종 치는 소리가 들려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 ‘보라보라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약 4년간 칼럼을 연재했다. 지금은 잠시 섬을 떠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으며, 다시 심심한 세계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남태평양 폴리네시아는 백 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이 제도 중 한 곳이 보라보라섬이다. 흔히 요즘 젊은이들에겐 '신혼여행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그런 휴양지이다. 그 유명한 화가 폴 고갱이 인생의 말년을 보낸 곳이 인근의 타히티섬이다.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니 폴리네시아의 풍광은 푸른하늘과 넓게 펼쳐진 비취빛 바다가 가히 쉬어감직해 보인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섬이라곤 우리나라 남쪽의 제주도와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아버지를 모시고 온천여행을 갔던 일본의 삿포로가 전부다. 요즘 신혼부부들은 괌, 하와이, 몰디브, 타히티 등지로 하니문 여행을 떠난다고 하지만 난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었다. 당시 처음 가 본 제주도는 멋진 이국적인 풍광 탓에 무척 인상이 깊었기에 이후에도 휴가철엔 가족여행으로 종종가곤 했다.

 

그런데, 저자가 살고 있는 보라보라섬은 잠간이면 몰라도 여기서 줄곧 살아간다는 게 다소 단조로와서 지겹겠다는 개인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기사 인생이 뭐 별건가? 하루하루 행복하면 그뿐이지. 그래서일까, 이 책 속엔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빛의 바다와 하늘에서 힐링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시끄럽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와 동떨어진 섬에서 살아간다는 게 마치 떠다니는 배에서의 선상생활과 비슷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 양식과 기름 등을 충분히 비축해둬야겠기에 말이다. 화창한 날씨가 일년 365일 내내 이어질 수는 없는 법, 혹여 태풍이라도 들아닥치거나 폭풍우가 몰려온다면 외출은 아예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꼼짝 없이 실내에서만 지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필품이 동이 나더라도 인근에서 쉽게 구할 수도 없을 것이기에 뭍으로 나가기 전까지는 그냥 버텨야만 할 것이다. 하기사 제주도에 살던 과거의 젊은이들도 늘 뭍을 그리워했다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돈 쓸 곳이 없어서 소비생활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그들이 소비생활을 안 하니까 파는 곳이 안 생기는 건지 궁금했다. 모아나의 가족들을 만나고 나니 후자가 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제한된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더 풍요롭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아이러니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소비할수록 우리는 더 결핍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34쪽)

 

함께사는 고양이 쥬드는 네 살이다.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30대, 얼추 저자의 나이와 비슷한 셈이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들 고양이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을 성큼 앞질러 갈 것이다. 당연히 쥬드도 그럴 것이다. 아무튼 쥬드는 보라보라섬에서 저자의 한국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다. 말이 통하겠냐마는. 어쩌면 쥬드가 말을 할 수 없기에 안심하고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잠결에 가족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빠는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언니와 남동생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누워 과일을 먹고 있다. 눈을 뜨니 보라보라섬. 모든 것이 꿈이었다. 이럴 때 나는 깜짝 놀란다.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낯설다. 막상 한집에 살았을 때는 그렇게 당연하게 여겼으면서, 사소한 일로 미워하고 지겨워했으면서. 가족이란 정말 뭘까. 사랑하고 미워하는, 힘 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약이고 병인 사람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일,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 가능한 태도로 표현하는 일. 아마 자주 짜증이 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반복해서 실패하겠지만,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끝내 서로를 제대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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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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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마지막 선비를 자처하는 할아버지, 시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한 아버지, 동네 슈퍼를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 사학과 전임강사인 이혼녀 여동생, 갖은 고생 끝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고모. 그리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기고도 그에게 술을 얻어먹고 다니는, 입사시험 88연패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동석. 동석의 가족들에게는 각각 돈이 필요한 사연이 있다. 그때 일본 군인과 눈이 맞아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도망쳤던 할머니가 67년 만에 돌아와 60억 유산이 있다고 말하는데

 

 

 

 

거액의 유산을 갖고서  67년 만에 귀환한 할머니

 

 

<할매가 돌아왔다>(2012)는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자신의 일생을 인정받기 위한 할머니의 투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 김범은 1963년 서울 출생으로, 2001년 조동선 소설 창작반에서 소설 공부를 시작, 90번에 가까운 낙방 끝에 2009년 단편소설 <치즈버거>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재미로만 따지면 최고", "한국의 오쿠다 히데오"라는 평가를 받으며 출간 즉시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판권이 모두 계약되는 등 이례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2015년 20부작으로 방영되었던 SBS 주말드라마 '떴다! 패밀리'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그 밖의 작품으로 장편소설 <공부해서 너 가져>(2014)와 <천하일색 김태희>, <5번 교향곡>(2013년, 전자책) 등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제니 할머니가 자신의 일생을 인정받고자 벌이는 투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이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일본 군인과 눈이 맞아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도망쳤고 세상에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완전히 잊혀졌던 할머니가 67년 만에 귀환했지만 정작 할아버지는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더러운 잡년'이라고 쌍욕을 하고, 고모는 '이봐요'라고 부르며 존재를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이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무슨 낯으로 이제야 돌아왔냐며 야단이다.

 

 

 

 

"너희에게 줄 유산 60억이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 말 한 마디에 다들 자신도 모르게 바뀌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다. 워낙 거액이다 보니 이를 무시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이후 소설은 뻔하게 예상되는 대로 전개된다. 가족들의 60억 쟁탈전은 어떻게 될까. 60억은 진짜로 있는 걸까. 아무도 관심 없는 할머니가 돌아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등등. 재미로만 따지면 최고라는 평가와 함께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

 

2012년  한여름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최달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으로 불시에 들이닥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할머니의 이름은 정끝순 여사로 달수네 가족들이 광복 직전 염병에 걸려 죽었다고만 알고 있는 바로 그 할머니의 귀환인 것이다. 잠결에 벨 소리를 들은 달수의 아들이자 청년 백수인 동석은 현관문 확대경을 통해 누가 왔는지 살펴보았다.

 

몸이 조그마한 노파가 깃털 달린 밤색 벙거지 모자를 쓰고 동전 사이즈의 은빛 반짝이가 주렁주렁 달린 요상한 원피스 정장을 입었는데, 눈은 커다랗고 뺨이 빨간 모습을 하고 문 앞에 차렷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무런 답이 없다. 재차 물었더니 자신은 정끝순이라고 밝히면서 최달수 집이 맞냐고 물어왔다. 동석은 아버지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노인인지라 별 생각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잽싸게 집 안으로 들어와 응접실 소파에 덜컥 앉더니 동석이 최달수의 아들임을 확인하고선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네 할머니다"

 

눈을 깜빡이며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내 할머니라니. 그렇다면 아버지의 어머니란 얘기고 할아버지의 아내란 소리며 어머니의 시어머니란 말씀인데. 가만있자, 이건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다. 광복 직전 염병에 걸려 죽었다던 할머니가 부활하신 것이었다. 이에 동석은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부르며 그녀에게 돌진했다.

 

커다랗고 동그란 할머니 눈이 더 크게 벌어지는 걸 보며 조그만 몸뚱이를 힘껏 껴안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눈물 없이도 충분히 감격적인 할머니와 손자의 첫 만남이었다. 이 노파가 거짓말을 한다거나 어떤 오해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염병에 걸려 죽었다던 할머니가 마치 부활이나 한 듯 오랫만에 귀환한 감동적인 일로만 여겼던 것이다.

 

역시 돈의 힘은 대단했다. 거액의 유산이 있다는 말에 언제 우리들이 할머니를 원망했냐는 듯이 마치 주인한테 충성을 다짐하는 개처럼 꼬리를 내린다. 심지어 백수로 지내는 동석은 자신의 방까지 할머니에게 빼앗기고 거실에서 생활하게 된다. 한편, 동석은 할머니와 함께 종이공예를 하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듣게 된다. 

 

선비 출신이자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백파 최종태)는 자신의 울분을 할머니에게 분풀이함으로써 카타르시스했다. 말하자면 가정 폭력이다. 세상에 제일 못난 남자가 자기 아내를 때리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집안 내력인지 몰라도 사회운동기로 활동하며 정치인을 꿈꾸었던 아버지 또한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이다.

 

한편, 동석의 영원한 짝사랑 대상이던 현애도 동석의 절친 상우와 결혼한 뒤 폭행에 시달리다 이혼으로 결혼생활을 끝낸다. 짝 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된 동석은 상우의 여동생 상희와 결혼하고, 상희가 돈벌러 나가는 대신에 백수 동석이 가사일을 전담한다. 다행스럽게도 죽기 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의 속마음을 확인, 관계가 복원된다. 소설은 할아버지의 사망과 할머니(미국명 제니)의 미국 귀환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60억 유산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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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양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 엮음 / 노마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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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지식은 모자라면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너무 넘쳐도 탈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내기도 힘들고, 넘치는 정보와 지식이 모두 유용한 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전혀 쓸모없는 허접스런 것들도 있고, 정확성과 사실성이 모호한 것, 서로 견해와 해석이 엇갈리는 것, 불확실한 것, 이른바 '가짜뉴스'까지 판쳐서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 '책머리에' 중에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자

 

책의 저자 김대웅(엮음)은 전북 전주 출생으로 전주고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나와 문예진흥원 심의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등을 지냈다. 지금은 충무아트홀 갤러리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영어잡학사전>, <커피를 마시는 도시>, <그리스 신화 속 7여신이 알려주는 나의 미래>, <제대로 알면 더 재미있는 인문교양 174> 등이 있으며, 편역서로 <배꼽티를 입은 문화>, <반 룬의 세계사 여행>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마르크스 전기>(1, 2), <마르크스 엥겔스 주택문제와 토지국유화>, <마르크스 엥겔스 문학예술론>,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루카치 사상과 생애>, <영화 음악의 이해>, <무대 뒤의 오페라>, <패션의 유혹>(공역), <여신들로 본 그리스 로마 신화>,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영어 이야기> 등이 있다.

 

책은 총 9장에 걸쳐서 가볍지만 제법 쓸 만한 74가지의 지식을 담고 있다. 즉 외면하고 싶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갖가지 담론들, 알아두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지식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교과서적 지식이나 일반상식 수준을 넘어서 꼭 알아둬야 할 만한 전문지식들을 구체적으로 자세하고 알기 쉽게 풀이하고 있다.

 

 

 

 

인류 진화의 원동력

 

인류는 획기적인 진화과정을 통해 동물계의 가장 상층부에 군림할 수 있었다. 즉 직립보행, 도구의 사용, 뇌용량의 커다란 증가, 수렵과 채집, 사라진 체모體毛, 언어 사용, 불의 사용, 끊임없는 이동 등이 인류 진화의 핵심 요소들이다. 이러한 핵심적인 진화를 초래한 원동력은 놀랍게도 인류만의 독특한 짝짓기 때문이었다.

 

보충해서 설명하자면, 인류는 두 발로 직립보행이 가능해짐에 따라 남녀가 서로 마주 볼 수 있었다. 이에 그동안 눈에 잘 띄지 않던 남자의 성기가 뚜렷하게 보였으며, 여자는 후배위後背位 자세로 교미할 때 남자의 시선을 끌었던 엉덩이가 안 보이게 되자, 엉덩이 모양과 비슷하게 큰 유방을 갖도록 진화했으며, 입술은 마치 음부를 옆으로 눕힌 모습과 비슷해졌다.

 

나아가서 여자는 등을 바닥에 눕힌 자세로 남자가 자신의 몸 위로 올라 짝짓기를 하는 정상위正常位 자세가 비로소 가능해졌다. 이는 매우 큰 의미를 지녔다. 남녀가 성행위를 할 때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밀착하면서 친밀감과 유대감이 크게 높아졌고, 서로의 섬세한 애무행위가 성적 충동을 더욱 자극할 수 있었다. 뇌용량의 획기적인 증가로 인해 여타 동물들과는 달리 자의식自意識을 갖게 돼 짝짓기에서만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쾌감'을 인지하게 됐다.

 

이는 정말 대단한 체험이었던 것이다. 모든 동물의 짝짓기는 후손을 만들어 종족을 계승하고 보존하려는 성본능 행위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인류는 쾌감의 체험으로 생식과는 분리된 짝짓기, 오직 쾌감을 얻기 위한 상시적인 짝짓기가 가능해졌다. 또한 그에 따라 짝짓기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성적 욕구가 더욱 높아졌다.

 

 

 

남자와 여자의 쇼핑 패턴은 왜 다를까?

 

아내와 함께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들리면 나는 항상 아내의 쇼핑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나에게 필요한 스니커즈나 면도날 등을 구매하는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릴 필요가 없지만, 아내의 경우는 나와 영 딴 판이다. 이젠 찬바람이 불어온다면서 스카프를 마련하려고 매장마다 들러서 일일이 확인해보고 구매한다. 이제 쇼핑이 끝났나보다 생각하는 순간, 세일 안내가 고지된 의류 매장으로 발걸음을 돌려 이것저것 살펴본다. 그런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매장에 들러 식품코너에서 반짝 세일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도대체 왜 이런 차이를 보일까? 책은 목표지향방향지향이라는 습성을 통해 이를 비교한다.  


약 200만 년 전,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러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마침내 인류로서의 제 모습을 갖췄다. 이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먹거리를 해결했다. 남자들은 사냥으로 고기를 확보했고, 여자들은 열매와 뿌리, 견과류 따위의 식물성 먹거리를 확보했다. 그래서 사냥에 나선 남자들은 멧돼지나 토끼 따위의 사냥감을 발견하면 그 목표물을 줄기차게 뒤쫓아 기어코 포획해야만 했다. 오직 목표물에만 집중한다.

 

반면에 여자들은 식물성 먹거리를 구하려고 어느 곳에 열매나 견과류가 많은지 사방을 두루두루 잘 살펴봐야 했으며, 이곳저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리고 한번 열매나 견과류가 풍부한 장소를 찾아내면 그 장소를 기억해둬야 지속적으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남자는 목표지향적이고 여자는 방향지향적인 습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인류 조상의 이런 습성은 유전자로 후손에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외계에는 과연 E. T.가 존재할까?

 

외계인의 존재 여부에 대한 '설'은 지금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과연 존재할까?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외계에는 지적 생명체가 있다"고 단언했다. 호킹 박사 외에도 거의 모든 우주과학자들 또한 외계에 지적 생명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지적 생명체란 지구인들처럼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계획할 수 있는 생명체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우주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항성과 행성들이 존재한다. 행성들 중에서 기후를 비롯한 갖가지 환경이 지구와 비슷하다고 판단되는 행성만 하더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따라서, 지구인처럼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아직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추측이긴 하지만 누구도 이를 단정적으로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외계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지라도 지구인들과 우연히 조우하거나 의도적인 접촉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먼저 행성 간의 거리가 너무 멀다. 우주 공간은 그 크기가 무한대다. 태양계를 벗어나면 아무리 가까운 행성도 빛의 속도로 수백수천, 아니 수만 광년 또는 그 이상 가야 한다. 현 수준의 지구 과학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다.

 

한편, 지적 생명체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고도의 문명을 지닌 생명체가 왜 아직까지 그들의 존재를 우리 지구인들에게 알리지 않는가라는 의문점을 제기한다. 지구 문명이 그들에 비해 워낙 열악해서 아예 무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갑자기 발생한 재앙으로 인해 모두 멸망해 버린 것일까? 지구라는 행성도 수차례의 대멸종이 있었던 것처럼, 고도의 문명을 지닌 외계 생명체도 문명의 폐단으로 인해 멸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래 사진을 보라. 이렇게 큰 기하학 도형을 고대 지구인이 그릴 수 있었을까? 여전히 흥미로운 이슈로 남는다.

 

 

 

인간의 기억은 믿을 만한가?   

 

'기억記憶'이란 과거에 체험하고 경험하고 목격한 것, 습득한 지식 등을 머릿속에 새겨두어 보존하거나 되살려 생각해내는 것이다. 뇌가 획득한 온갖 정보를 저장하고 인출하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신비롭게도 인간의 뇌에 저장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사고思考, 판단, 결정, 선택이 가능하고 학습과 예상과 상상(추론) 등이 가능하다.

 

한편, 뇌는 기억하는 기능과 함께 '망각忘却'의 기능도 동시에 함께있다. 망각은 기억의 반대되는 행위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어떤 일이나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망각은 문제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자기 나름으로 대수롭지 않았던 잡다한 기억들을 잊어버리게 하고, 낡은 지식이나 정보를 잊고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학습할 수 있게 하며, 고통스런 경험도 차츰 잊어버려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기억과 망각이 조화를 이루어야 우리의 정신 건강에 좋은 법이다.

 

기억과 망각에 대한 개인차, 질병, 심리, 편견 등 다양한 요인들이 우리의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 거기다가 자기중심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는 습성도 기억의 정확성을 그르친다. 또한 기억은 저마다의 지적 수준, 신분과 지위, 학력, 직업, 환경, 성별 등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그에 따라 체험과 경험도 다르고 기억하는 정보와 지식도 큰 차이가 있다. 아울러 기억하려는 정보의 수준과 가치, 뇌에 저장된 정보량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한 기억을 되살릴 때 그 판단과 관점과 수준에도 큰 차이를 가져온다.

 

따라서 우리의 기억에는 객관적 정확성보다 개인에 따라 오류와 착오가 많은 것이 당연하다. 결국 인간의 기억은 결코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처럼 부정확한 우리의 기억이 어떤 사실이나 진실을 얼마든지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주관적 진실은 자기중심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항 것들만 지적하거나 강조함으로써 팩트를 오도하는 것이다. 인위적인 진실은 의도적인 왜곡인 셈이다. 요즘 친여권 인사들이 남발하는 '가짜뉴스'가 바로 인위적 진실인 것이다.

 

 

 

알면 도움되는 교양 지식들

 

이밖에도 책은 '인류의 진화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끝나는 것일까', ' 여자는 왜 남자보다 털이 적을까', '결혼제도는 마침내 사라질 것인가', '한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다', '유대인은 왜 그렇게 미움을 살까', '인간성은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성공의 가장 큰 요소는 노력일까, 운일까',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인가', '정의는 결국 이기는가', '비만과 요요현상', '팬티의 역사' 등 우리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내용들이 많다. 스스로 지식 부족에 대해 아쉬움을 가진 분이라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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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타임워프 -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를 기억하는 방법
김신현경.김주희.박차민정 지음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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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 흥행에 핵심에는 승리가 있다. 그리고 이 '승리'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은 세 종류의 여성들이 만들었다. 여성 팬, 살아 있는 여자, 그리고 죽은 여자. (린사모로 대표되는) 아시아 금융 자본과 (전원산업으로 대표되는) 강남 부동산 자본이 한류 스타 승리의 명성과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연예계 인맥이라는 가치에 투자했고, 그 결과 클럽 운영을 명목으로 각종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버닝썬 카르텔'이 탄생하고 또 공고해질 수 있었다. - '본문'(32쪽) 중에서

 

 

페미니즘, 한국 사회가 지금 성찰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인가

 

저자 김신현경은 한국의 미디어산업 변동과 연예인의 존재 양상 변화를 규명한 논문으로 2014년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산업과 새로운 노동주체성에 대한 관심을 발전국가 및 국가 건설기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몸의 동원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이토록 두려운 사랑>, 공저로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일상의 여성학>, <섹슈얼리티 강의 두 번째>, 공역으로 <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 등이 있다. 

 

 

공저자 김주희는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섹슈얼리티 산업 연구자. 10대 여성들의 몸과 성역할을 자원 삼아 수익을 내고 있는 '티켓 다방'에 대한 연구로 여성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막달레나의집 현장상담센터에서 기지촌 현장 활동을 했다. 성매매 산업의 금융화에 관한 논문으로 2015년 여성학 박사 학위 취득 후 현재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성매매 산업 내 '부채 관계'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논문으로 한국여성학회 제3회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을들의 당나귀 귀> 등을 함께 썼다.

 

 

공저자 박차민정은 근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성적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들이 만들어져온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변태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담론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와 명지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조선의 퀴어>가 있으며, <1920~30년대 변태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담론연구>, <1920~30년대 '성과학' 담론과 '이성애 규범성'의 탄생>, <AIDS 패닉 혹은 괴담의 정치>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세 명의 저자들은 근현대사, 대중문화 산업, 성매매, 섹슈얼리티 등의 주제를 연구하며 한국 사회를 치밀하게 분석해왔다. 이런 오랜 연구를 통한 분석에 더해, 지금의 페미니즘 사건들과 과거의 사건들을 병치시킴으로써 그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깊이 있게 해석한다. 즉 버닝썬 게이트를 88올림픽 시기의 환대 문화와 연결 짓고, 고 장자연 사건을 10,26의 여성 연예인들과 나란히 봄으로써 지금의 이슈들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드러내는 균열임을 밝힌다.

 

 

 

88 서울올림픽과 유흥업소 지원 정책

 

88 서울올림픽은 한국 사회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모멘트를 제공하는 매우 의미가 큰 국제 스포츠 이벤트였다. 왜냐하면,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것은 국제사회가 은연 중에 충분히 글로벌 손님을 맞이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국민의 의식이 선진화되었고 또 사회의 제반 인프라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고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당시의 전두환 정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범민족올림픽추진중앙협의회를 통해 <국민참여운동백서>의 내용 속에 내 집 앞을 자발적으로 깨끗하게 청소해 전 세계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고 촉구했다. 이는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 가족의 일상에 잘 담겨져 있다. 정부는 한국의 빈곤한 모습을 숨기고 국제적 잔치를 과시하는 그런 행정들을 속속 펼쳤다. 이에 양동 재개발로 대표되는 서울 도심부의 재개발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당시의 양동은 서울의 유명 집창촌이었다. 윤락여성들은 갱생 시설로 보내졌다. 상품화된 성의 범람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빈곤의 모습을 감추려는 시도였다. 1986년 1월, 전두환 정권은 일본인들로부터 기생관광이라는 오명을 듣던 11개 대형 요정업체에 총 20억 원의 특별융자금을 지원해주었고, 국제관광공사의 관광객용 지도에 요정의 위치를 각국 언어로 상세하게 밝혀놓았다. 나아가 서울시는 룸살롱과 카바레 등 103곳을 '모범업소'로 지정해 여러 특혜를 주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홍등가'처럼 커다란 유리창을 갖춘 성매매 업소 '유리방'이 본격 등장하기도 했다.

 

 

버닝썬 게이트와 여성 동원의 정치

 

2019년 우리 사회에는 '버닝썬'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고발되었다. 서울 강남에 소재하는 한 클럽에서는 약물강간, 성매매, 불법 촬영 등 선을 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가히 서프라이즈 수준의 밤문화였던 것이다. 이 클럽은 이미 젊은 세대에 널리 알려지고 인기를 끈 아이돌 출신이 경영하는 유흘업소였다.

 

"여자가 있으면 손님은 온다"

 

주인공은 바로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였는데, 클럽의 명성은 세 종류의 여성들이 만들었다. 여성 팬, 살아 있는 여자, 그리고 죽은 여자. (린사모로 대표되는) 아시아 금융 자본과 (전원산업으로 대표되는) 강남 부동산 자본이 '한류 스타 승리의 명성과 연예계 인맥'이라는 가치에 투자했고, 클럽 운영을 명목으로 각종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버닝썬 카르텔'이 탄생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 사건의 배후 세력들을 충분히 파헤치지 못한 진행 중인 사건이다.

 

클럽 관계자, 성폭력 가해자, 불법 촬영자, 불법 촬영물 공유자에 의해 통제되고 조절된 여성들의 육체가 만들어낸 한국 클럽의 스펙터클은 글로벌 투자자, 아시아 재벌, 한국 남성들이 강남의 버닝썬에서 기꺼이 비용을 지출하는 선결 조건이 되었으며, 아이돌 사업가는 이렇게 보증된 여성들의 육체를 통해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투자 가능성을 확장해나갔다. 더구나 유출된 한국 여성들의 동영상은 글로벌 포르노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다고 한다.


장자연 사건의 의미

 

1979년 10월 26일,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에서는 끔직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시해했다. 사건 현장은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경호실장, 그리고 젊은 여성 2인이 동석한 연회자리였다. 이날 동석한 여성은 모델겸 배우였던 여대생과 당시 인기를 끌던 여가수로 강제로 동원되었던 것이다.

 

"김 대표가 항상 술자리에 불러냈다. 회사에서 자연이는 그런 용도로 이용당했다"

- 장자연 주위 인물과의 인터뷰 내용(2009년 한 언론사) 

 

2009년 3월 7일, 당시 인기리에 방여되던 TV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단역으로 이제 얼굴을 알리던 신인 여배우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가 남긴 소위 '장자연 리스트'는 성접대 상대방으로 의심되는 정황이었다. 여배우가 소속된 기획사의 사장이 사업상의 술자리에 그녀를 동석시키고 심지어 성접대를 강요했다는 보도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잊혀지던 이 사건이 다시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재조사 대상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이후 밝혀진 바로는 '권력형 성접대' 사건으로 결론내고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구속으로 종결되었다

 

사건의 의미는 여기에서 일제 식민지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입으로 꺼내지 않더라도 짐작할 만한 일일 것이다. 이렇게 여성 연예인의 섹슈얼리티를 매개로 한 한국의 정치, 경제, 언론의 남성 동맹과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장자연이 그토록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결국은 죽어서야 벗어날 수 있었던 '고통'을 저질스러운 개인에게 잘못 걸린 한 연예인의 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고통은 오히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상관관계를 고민하게 만든다.

 

 

양공주에서 원정녀로

 

한국 사회에서의 양공주는 넓게는 미국인 남성과 성적 관계를 맺는 한국 여성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용어로, 실제는 보통 미군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을 지칭한다. 때로 '유엔 마담', '유엔 사모님', '양갈보'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 영토 내 미군 기지촌에 거주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하는 여성들이다.

 

미군과 결혼한 기지촌 여성들은 미군기지 안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기도 했고 미군의 아내 신분으로 미국에 이민을 가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많은 여성들이 한국 기지촌에서 성매매업에 종사했던 여성들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중 일부는 미국 도착 즉시 미국의 안마시술소나 술집으로 인신매매되기도 했다. 또 많은 여성들이 남편과 이혼하게 되면서 현지 블로커의 도움으로 미국 내의 군 기지 주변 성매매 업소로 유입되었다고 한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한인 여성들이 더 이상 미군과의 결혼을 통해 미국 성매매 산업에 충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포착했다. 즉 2008년 11월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의 시행으로 90일 이내의 관광, 상용 목적으로는 미국으로의 입국이 간편해짐에 따라 성매매를 목적으로 단기간의 원정을 떠나는 소위 '원정녀' 현상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동시대 한국의 성매매 경제 규모는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어로 '코리안 바(Korean bar)'가 이미 고유명사가 된 사실이 보여주듯 한국식 룸살롱과 같은 영업 스타일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성매매 업소는 대형화되었고 각 업소 영업 방식이 세분화되고 등급화되면서 성매매 산업의 경제 규모가 팽창했다. 룸살롱은 더 이상 화이트칼라 남성들만 찾는 장소가 아니라 모든 계층 남성들의 놀이터가 되어야 했고, 룸살롱은 가격 수준, 접대 여성들의 외모 등급과 제공하는 성적 서비스의 범주에 따라 세세하게 등급화되었다.

 

오늘날의 등급화된 성매매 산업에는 여성들의 이동을 끊임없이 권장하는 브로커와 성형, 헤어, 의상 등의 상인이 함께 포진해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더 많이 투자한 여성'이 높은 등급에 속하므로 주변의 상인들에겐 이익이다. 그 결과 여성들은 쉴 새 없이 업소를 이동하며, 잠시 해외 업소로 이동하기도 한다. 바로 '원정녀'의 탄생이다.

 

 

페미니스트 정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 사회에서 이 문제는 여전히 민족주의적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가해자는 '우리' 민족 외부에 있다고 가정되어 규탄되면서 식민지 피해자로서 '우리'는 더욱 결속된다. 물론 가해국 일본을 규탄하고 그들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활동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우리'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위안부' 문제의 핵심에 가 닿을 수 없을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험은 전시 일본군에 의해 제도화된 성폭력 사건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4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었다. 피해를 경험하고도 말할 수 없던 그 시간 동안의 삶의 경험도 피해를 구성하는 일부다. 그렇다면 현재의 민족주의적 방식의 '위안부' 기억 활동을 통해 '우리'가 결속되는 데 정작 누락되어 있는 것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험일 것이다.

 

 

사랑과 연애의 사이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그래서 사랑과 연애라는 이슈에 대해서 늘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가 순수한 감정으로 여기는 사랑과 연애 이면에 권력과 폭력이라는 어두운 면이 자리잡고 있다. 책은 이와같은 사랑과 연애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여성학 입문서인 셈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그때의 사건 사고를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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