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 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질문의 책 27
자크 파월 지음, 박영록 옮김 / 오월의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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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기업가와 은행가는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도록 지원했고, 그가 추진한 퇴행적인 사회 정책과 재무장 프로그램, 그리고 전쟁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미국의 대기업가와 은행가 역시 히틀러가 성공 가도를 달리는 동안 그를 지원했고, 그들 회사의 수익성도 나치 정권의 대표적인 정책 덕분에 극대화되었다. 미국 기업들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 자국과 그 동맹국뿐만 아니라 독일까지 포함한 모든 참전국에 전쟁물자 등을 공급해서 전례가 없을 만큼 큰돈을 벌 수 있었다. - '서문' 중에서

 

 

자본과 전쟁은 상호 협력관계

 

책의 저자 자크 파월은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로, 1946년 벨기에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토론토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요크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토론토대학, 요크대학, 워털루대학에서 유럽사를 가르쳤다. 제2차 세계대전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는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그동안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로 출판되었으며,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그는 책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대항한 미국의 위대한 성전, 즉 '좋은 전쟁'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돈과 사업 관계, 그리고 이윤에 따른 충돌로서 기술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엄청난 계급전쟁The Great Class War 1914-1918>, <시간의 먼지 아래Beneath the Dust of Time> 등이 있다.

 

책은 크게 2부('독일 재계와 히틀러', '미국 재계와 나치 독일')로 구성되었는데, 미국 및 독일 대자본과 히틀러 사이의 협력 관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수많은 책과 자료를 참조해 나치즘과 파시즘이 어떻게 등장했으며, 자본주의와 어떻게 결탁했는지, 독일과 미국 및 기타 국가의 자본가들이 나치즘과 파시즘의 성장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낱낱이 밝혀낸다. 나치즘과 자본주의의 역사는 일종의 러브스토리로 볼 수 있으며, 그리고 히틀러를 뒤에서 떠받친 자본가들과 대기업들은 최종적으로 이익을 본 주체라고 말하고 있다.

 

 

 

독일 재계와 히틀러

 

1929년 말, 전 세계적으로 재앙과도 같은 경제 위기가 발발하자 독일도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의 바이마르 연립정부는 긴축 정책을 펼쳤는데,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독일의 기업계와 금융계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히틀러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심각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을 타개할만한 의지와 능력을 지닌 인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독일의 경제활동인구 중 절반을 차지했던 공장 노동자들은 세계 위기를 자본주의체제가 사망 직전에 겪는 고통이라고 여겼을 정도로 러시아식 혁명을 꿈꾸며 공산당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갔다.

 

히틀러의 계획이 끔찍한 전쟁을 초래할 게 분명한데도 독일의 기업가와 은행가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독일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충분히 강해서 어떠한 전쟁에서도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전의 전쟁(1918년)에서 패전국이 된 것은 배신, 즉 독일 내부의 적색 혁명론자와 유대인이 '등 뒤에서 칼을 꽂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다음 전쟁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이러한 '배신자'들을 제거하는 것뿐이었다. 독일 지배층 역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이는 총알받이가 될 사람이 자신들이 아니라 서민들이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독일 유권자 다수의 표를 받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심하게 조작되었던 1933년 3월 5일 선거에서조차 그는 과반이 넘는 표와 의석을 얻는 데 실패했다. 광범위한 폭력과 협박, 그리고 독일 재계의 엄청난 재정 지원으로 실행한 프로파간다와 대규모 선거운동에도 불구하고,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은 43.9퍼센트라는 실망스러운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그가 무한한 권력을 누리게 된 것도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게 아니었다.

 

히틀러는 자신이 집권하면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몰아낼 것이며, 노동조합을 무력화할 것이고, 소유주들은 다시 '자기 집의 주인'이 될 것이며, 임금을 올리지 않은 채 노동시간을 늘릴 것이고, 사회적 비용 또한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더불어 재무장 프로그램을 통해 강한 독일을 만들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러한 주장은 기업가와 은행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점점 히틀러를 지원하는 자본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히틀러 정권은 독일에서 자본주의체제를 결코 위협했던 적이 없다. 이 정권이 여러 의미에서 사실상 독일 자본주의의 산물 그 자체라는 사실 또한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많은 역사학자의 주장과는 다르게, 나치스는 민간기업을 국영기업으로 전환하여 독일의 자본주의체제를 위협하려는 계획을 세운 바가 없다. 나치즘하의 독일 경제에 대한 책을 집필한 샤를 베틀레임은 약간의 과장을 섞어 이렇게 설명한다.

 

"나치 정권하에서, 독일 경제는 점점 더 몇몇 독점기업에 장악되어갔다. …… 나치 정부가 기반으로 삼았던 재산이, 나치 정부가 유지·보호·옹호·육성했던 재산이 바로 독점자본가들의 재산이었던 것이다"

전쟁 기간 동안에 유럽 내 유대인 수백만 명이 아우슈비츠나 트레블링카 등의 절멸수용소에서 살해되었다. 어린이나 노인처럼 노동할 만한 힘이 없는 사람들은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가스로 살해되어 화장되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고된 노동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독일 기업들은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수용소 근처에 공장을 지었다. 이게파르벤은 아우슈비츠에 이른바 부나베르크라는 거대한 공장을 지어 합성고무를 생산했다. 특히, 도이체 방크가 자금을 댄 사업이었다. 지멘스와 크루프 역시 유대인들에게 노예노동을 강요했다.

독일에서 나치즘과 자본주의의 역사는 친밀한 관계의 연대기이자 일종의 러브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끝을 향해 가는 동안, 그 관계는 힘겨운 시기를 겪으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전쟁이 끝난 바로 그 순간까지, 독일 재계는 나치 정권에 충실했고, 히틀러가 절망적일 만큼 참혹한 전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물자를 생산했다. 역으로 나치 정권도 몰락하는 그날까지 거대 기업과 은행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보여주었다.

 

미국 재계와 나치 독일

유럽의 파시즘은 유럽의 전통적 지배층이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그리고 경제 위기인 대공황의 여파로 발생한 문제들을 과격하게 해결하려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가장 핵심 권력층인 재계財界는 '파시스트 옵션'이 매우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파시즘식 해결책은 값싼 노동력과 함께 새로운 시장과원료 공급처를 확보할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이유들도 여럿 있었다.

 

반면 미국에선 이미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려, 파시즘이 발흥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쉽게 추정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1920년 대와 1930년 대의 믹국 기득권층도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 촉발한 대공황을 심히 우려하고 있었다. 파시즘의 싹이 미국 당에도 퍼지고 있었다. 미국 권력층 일부는 실제로 미국의 파시스트 조직을 지원하고 해외의 파시스트와 교분을 가졌다. 그런데, 이들은 파시스트 정권 없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을 찾았던 것이다. 바로 '전쟁'이었다.

 

반유대주의는 히틀러가 출생하기 전에도 최소 1천년 동안 존재해왔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경엔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드레퓌스 사건) 등 여러 나라에 상당히 퍼져 있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고 1918년이 되자 반유대주의는 좌파 혁명에 대한 공포가 덧붙여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공포가 유럽과 미국의 중산계급과 지배계급에 퍼져나갔던 것이다. 유럽의 반대유대주의자는 반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고, 반마르크스주의자는 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  

 

1930년대에 미국 재계의 반유대주의는 반사회주의 및 반마르크스주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며 이른바 '빨갱이 사냥'이라고 불리던, '붉은'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로 표출되었다. 재계의 대다수 거물들은 루스벨트의 뉴딜이 '사회주의적' 정책으로, 경제생활에 대한 정부의 불법적인 개입이며, 유대인이 영감을 주고 지휘한 미국 볼셰비키화의 서곡이라며 반감을 표출했다. 산업계와 금융계 지배층에 속한 반유대주의자들은 루스벨트를 유대인이거나 유대인의 꼭두각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1939년과 1940년의 독일군 승리는 '전격전' 덕분에 가능했다. 전격전이란 기동성을 최대한 높인 새로운 전투 형태로, 육상과 공중에서 완벽하게 보조를 맞추어 매우 빠른 속도로 공격하는 게 주요한 특징이었다. 이런 전격전의 수행에 엔진, 탱크, 트럭, 비행기, 연료, 엔진 오일, 고무 등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이들 중 상당 부분은 미국 기업에서 공급했던 것이다. 미국의 이런 도움이 없었다면 '전격전'은 히틀러의 꿈으로만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나치 독일에 지사를 둔 미국 기업의 소유자와 경영진은 히틀러의 승전에 기여한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일정 부분 자랑스러워했는데, 히틀러의 승리가 곧 그들 자신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치가 승전을 자축할 때, 제너럴모터스, 포드, 아이비엠 등의 기업이 그들과 함께했다. 1940년 6월 26일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변호사 게르하르트 베스트리크가 이끌던 독일 기업 대표단이 독일군 승전을 축하하는 행사를 개최, 당시 미국의 수많은 기업가가 참석했던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전에 없던 호황을 맞았다. 미국 기업의 독일 내 자회사들은 히틀러의 승전으로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수익 극대화라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다. 미국도 전쟁 준비에 속도를 내면서 기업들이 정부로부터 트럭, 탱크, 항공기를 비롯한 여러 물자들에 대해 엄청난 양의 주문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경제적 수요 측면에서 뉴딜보다 '펌프에 더 많은 마중물'을 부은 셈으로, 이는 강력한 케인스식 경제 부양으로 작용했다. 이로써 미국의 대공황은 마침내 끝나고 말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무기대여법'을 도입, 미국 군수사업은 영국에 전쟁 물자를 공급함으로써 노다지를 캘 수 있었다. 영국은 막대한 빚을 2006년 12월 29일에서야 완전히 갚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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