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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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마지막 선비를 자처하는 할아버지, 시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한 아버지, 동네 슈퍼를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 사학과 전임강사인 이혼녀 여동생, 갖은 고생 끝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고모. 그리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기고도 그에게 술을 얻어먹고 다니는, 입사시험 88연패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동석. 동석의 가족들에게는 각각 돈이 필요한 사연이 있다. 그때 일본 군인과 눈이 맞아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도망쳤던 할머니가 67년 만에 돌아와 60억 유산이 있다고 말하는데

 

 

 

 

거액의 유산을 갖고서  67년 만에 귀환한 할머니

 

 

<할매가 돌아왔다>(2012)는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자신의 일생을 인정받기 위한 할머니의 투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 김범은 1963년 서울 출생으로, 2001년 조동선 소설 창작반에서 소설 공부를 시작, 90번에 가까운 낙방 끝에 2009년 단편소설 <치즈버거>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재미로만 따지면 최고", "한국의 오쿠다 히데오"라는 평가를 받으며 출간 즉시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판권이 모두 계약되는 등 이례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2015년 20부작으로 방영되었던 SBS 주말드라마 '떴다! 패밀리'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그 밖의 작품으로 장편소설 <공부해서 너 가져>(2014)와 <천하일색 김태희>, <5번 교향곡>(2013년, 전자책) 등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제니 할머니가 자신의 일생을 인정받고자 벌이는 투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이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일본 군인과 눈이 맞아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도망쳤고 세상에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완전히 잊혀졌던 할머니가 67년 만에 귀환했지만 정작 할아버지는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더러운 잡년'이라고 쌍욕을 하고, 고모는 '이봐요'라고 부르며 존재를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이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무슨 낯으로 이제야 돌아왔냐며 야단이다.

 

 

 

 

"너희에게 줄 유산 60억이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 말 한 마디에 다들 자신도 모르게 바뀌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다. 워낙 거액이다 보니 이를 무시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이후 소설은 뻔하게 예상되는 대로 전개된다. 가족들의 60억 쟁탈전은 어떻게 될까. 60억은 진짜로 있는 걸까. 아무도 관심 없는 할머니가 돌아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등등. 재미로만 따지면 최고라는 평가와 함께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

 

2012년  한여름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최달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으로 불시에 들이닥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할머니의 이름은 정끝순 여사로 달수네 가족들이 광복 직전 염병에 걸려 죽었다고만 알고 있는 바로 그 할머니의 귀환인 것이다. 잠결에 벨 소리를 들은 달수의 아들이자 청년 백수인 동석은 현관문 확대경을 통해 누가 왔는지 살펴보았다.

 

몸이 조그마한 노파가 깃털 달린 밤색 벙거지 모자를 쓰고 동전 사이즈의 은빛 반짝이가 주렁주렁 달린 요상한 원피스 정장을 입었는데, 눈은 커다랗고 뺨이 빨간 모습을 하고 문 앞에 차렷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무런 답이 없다. 재차 물었더니 자신은 정끝순이라고 밝히면서 최달수 집이 맞냐고 물어왔다. 동석은 아버지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노인인지라 별 생각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잽싸게 집 안으로 들어와 응접실 소파에 덜컥 앉더니 동석이 최달수의 아들임을 확인하고선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네 할머니다"

 

눈을 깜빡이며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내 할머니라니. 그렇다면 아버지의 어머니란 얘기고 할아버지의 아내란 소리며 어머니의 시어머니란 말씀인데. 가만있자, 이건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다. 광복 직전 염병에 걸려 죽었다던 할머니가 부활하신 것이었다. 이에 동석은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부르며 그녀에게 돌진했다.

 

커다랗고 동그란 할머니 눈이 더 크게 벌어지는 걸 보며 조그만 몸뚱이를 힘껏 껴안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눈물 없이도 충분히 감격적인 할머니와 손자의 첫 만남이었다. 이 노파가 거짓말을 한다거나 어떤 오해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염병에 걸려 죽었다던 할머니가 마치 부활이나 한 듯 오랫만에 귀환한 감동적인 일로만 여겼던 것이다.

 

역시 돈의 힘은 대단했다. 거액의 유산이 있다는 말에 언제 우리들이 할머니를 원망했냐는 듯이 마치 주인한테 충성을 다짐하는 개처럼 꼬리를 내린다. 심지어 백수로 지내는 동석은 자신의 방까지 할머니에게 빼앗기고 거실에서 생활하게 된다. 한편, 동석은 할머니와 함께 종이공예를 하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듣게 된다. 

 

선비 출신이자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백파 최종태)는 자신의 울분을 할머니에게 분풀이함으로써 카타르시스했다. 말하자면 가정 폭력이다. 세상에 제일 못난 남자가 자기 아내를 때리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집안 내력인지 몰라도 사회운동기로 활동하며 정치인을 꿈꾸었던 아버지 또한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이다.

 

한편, 동석의 영원한 짝사랑 대상이던 현애도 동석의 절친 상우와 결혼한 뒤 폭행에 시달리다 이혼으로 결혼생활을 끝낸다. 짝 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된 동석은 상우의 여동생 상희와 결혼하고, 상희가 돈벌러 나가는 대신에 백수 동석이 가사일을 전담한다. 다행스럽게도 죽기 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의 속마음을 확인, 관계가 복원된다. 소설은 할아버지의 사망과 할머니(미국명 제니)의 미국 귀환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60억 유산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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