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잠든 부를 깨워라 - 적자 인생을 흑자 인생으로 바꾸는 기적의 돈 심리학
새라 뉴컴 지음, 김정아 옮김 / 유노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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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를 바꾼 것은 심리학이었다. 내 돈 체험담을 살펴보니, 나는 불공정과 불평등을 돈 자체와 구별하지 못했다. 본질을 따지자면, 돈을 가득 쌓아 둔 사람이 그 돈 때문에 내리는 선택을 저 혼자서는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무생물 탓으로 돌려 비난했다. 적개심을 분출할 대상이 필요했지만, 엉뚱한 곳에 화풀이햇다. 돈의 개념에서 분리한 내 좌절을 착취와 타락을 낳고 영속시키는 인간의 나약함과 체제에 더 생산적으로 쏟아 냈다. 그러고 나서야 돈이 진짜로 무엇인지 보였다. 돈은 도구일 따름이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저자 새라 뉴컴은 행동경제학자이며 소비자심리학,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의사결정, 개인 자산 관리 분야의 전문가다. 글로벌 투자 자문사 모닝스타와 헬로월렛에서 연구와 자문을 맡고 있고, 행동과학 연구 성과를 앱이나 개인용 관리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여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일을 한다. '괴짜 경제학'에서 시작되어 '넛지'까지 이어진 대중과 정책 입안자들의 관심을 바탕으로 행동경제학이라는 통찰력 넘치는 분야를 사람들의 경제 활동에 적용하는 작업을 이끌고 있다.


그녀는 행동경제학으로 박사를, 재무경제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개인 재무 관리 전문가 인증을 받았다. 일반

 

 

 

 

 

 

 

 

 

 

 

 

 

이처럼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늘 돈과 계층을 연결시킨다. 겉으로 드러난 온갖 사소한 사회적 신호로 서로를 이야기한다. 어디에 사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부모와 아이가 어떤 학교에 다녔거나 다니는지, 어떤 차를 모는지, 어디에서 물건을 사는지, 어떤 어휘를 쓰는지, 어떤 단체나 명분을 지지하는지, 얼마나 베푸는지 등등, 이는 모두 사회경제의 사다리에서 자신의 현재 위치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돈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면,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돈 메시지를 접했는지 명확히 밝히고, 그 가운데 어떤 메시지를 마음에 새겼는지, 또 오늘날 그 메시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 지 이해해야 한다"

 

 

돈에 관한 심리학

 

사람을 소중히 여길 것인가?

돈을 소중히 여길 것인가?

 

과거 몇 십 년 동안에 걸쳐 연구한 바로는 흥미로운 역설이 밝혀졌다. 즉 돈이 없으면 우울증을 앓고,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어려운 과제에서 성과가 떨어지고, 기대수명까지 줄어든다. 반면에, 돈을 떠올리기만 해도 반사회적 행동을 보이고, 동정심이 줄어들 수 있다. 즉 돈이 없으면 성과가 낮아지고, 인간관계가 나빠지고, 어쩌면 더 일찍 죽을지 모른다.

 

모순적인 이 상황을 우리들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돈과 사람, 반드시 하나만 선택해야 할까? 자신의 가치관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들은 마음을 연구하면 된다. 돈과 건강한 관계를 키워가고, 간단하고도 새로운 사고방식을 익힐 때, 우리들은 가난하든 부유하든 겪게 될 심리적 위험을 피할 수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야 할 과학적 이유들

 

스트레스~ 돈이 넉넉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울증~ 돈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인간관계의 위기~ 돈에 짓눌리면 인간관계가 어렵다

고정 관념의 위협~ 가난한 사람에게 부정적인 편견을 갖는다

방어 기제~ 평가받기를 두려워 해 이런 상황을 아예 피한다

공공연히 창피 주기~ 저소득층에 그대로 머물라는 압박을 강하게 받는다

 

 

돈은 정말로 사람을 움직인다

 

부자들이 연민을 덜 느끼거나 불우한 이웃을 덜 도우려는 듯 보이는 데엔 까닭이 있다. 알려진 대로, 돈을 그저 떠올리기만 해도 사람들의 행동에는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가 모두 나타난다. 사람들은 돈을 떠올릴 때 한계를 시험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 남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에 혼자 더 오래 노력하고,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을 대개 더 잘 해내고, 혼자 일하기를 좋아한다.

 

마치 돈이 불쏘시개라도 된 것처럼 스스로 성취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한편, 이런 자립성엔 좋지 않은 면도 있다. 돈을 떠올릴 때 우리는 자립심이 강하게 들지만 타인이 자신에게 기대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도 생긴다. 성취지향적인 경향이 되면서 남을 덜 도우려 하고 남이 자신의 도움을 바라지 않기를 바란다.

 

 

 

자산이 소득을 낳는다

 

우리들이 받는 급료를 생각해 보자. 소득을 낳는 자산은 바로 우리들이 고용주에게 제공하는 노동이다. 우리들의 시간, 체력, 지능 등이 모두 합쳐져 고용주가 보기에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것, 즉 노동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풍부한 실전 경험 등이 가미된다면 그 가치는 덩달아 커지면서 당연히 잠재 소득도 증가할 것이다.

 

노동 = 소득을 낳는 자산 

 

우리들이 받는 월급이 과연 고용주에게서 나올까? 아니다. 고용주는 그저 우리들의 시간과 기술을 빌릴 따름이다. 월급은 우리들이 노동이라는 형태로 고용주에게 빌려주는 내부 재원을 값어치 있는 자산으로 바꾼 결실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기술이 곧 자산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받는 월급은 우리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지출과 욕구

 

현금 흐름 예산에서 소득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기란 간단해 보인다. 소득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지출만 어느 정도 줄이면 된다. 그렇다. 돈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버는 것보다 덜 쓰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순한 원칙을 지키기가 왜 어려울까? 이는 우리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욕구를 채우려는 시도이다

 

우리가 느끼는 욕구가 모두 가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할까? 왜냐하면 욕구는 무시한다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깊은 욕구를 용인하지 않을 때, 흔히 욕구는 더 커지고 욕망이 점점 목소리를 높인다는 사실을 아는가? 어떤 지출을 줄이려 했다가 결국 자신도 모르게 돈을 펑펑 쓰고 만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를 입증하는 행동인 셈이다.

 

매슬로의 욕구 계층

(매슬로는 막연하게 기본 욕구가 충족돼야만 상위 욕구에 관심을 보인다고 했다)

 

 

돈이 나오는 원천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돈이 나오는 원천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따라서 자기 자신의 재원은 당연히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돈의 수혜자도 자기 자신이다. 지출은 모두 스스로의 욕구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일수록 돈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일이 더 쉬워질 것이고, 물질적 환경이 바뀔 때 더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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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력 - 사람을 얻는 힘
다사카 히로시 지음, 장은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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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을 수양한다는 것'은 잘못이나 결점이 전혀 없는 상태를 목표로 하지 않음을. 완벽한 인간이란 흠결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 결점, 미숙함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멋진 인생을 살 수 잇고 주변 사람들과도 좋은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미숙한 자기 자신을 안고 살아가라

 

저자 다사카 히로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직장인들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도쿄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공학박사를 수료했던 그는 1987년 미국 싱크탱크 바텔기념연구소에서 활동하다 1990년 일본총합연구소의 설립에 참여,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 타마대 대학원 교수로 취임했으며, 2008년 세계경제포럼 멤버로도 활동했다.

 

다양한 사회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지혜를 나누고 있는데, 2013년부터 시작한 그의 정기 강연 '다사카주쿠田坂塾'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전 세대가 참석하고

 

 

 

 

 

 

 

 

 

 

<삼국지> 같은 고전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주위에 매력적인 인물이나 훌륭한 인물을 평할 때 종종 "인간력이 있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인간력'이라는 말이 우리가 익혀야 할, 이른바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종합적인 능력'이자 '인간으로서의 궁극적 역량'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을 수양한다"는 것은 이 '인간력'을 익히고, 높여가는 과정을 뜻한다.

 

 

내 안에는 다양한 인격이 있다

 

책에는 한 회사원의 삶이 소개된다. 가정에선 자식 사랑이 지극한 아버지로 그 때문에 오히려 아내로부터 잔소리를 많이 듣는 남편이다. 회사에 나가면 남보다 탁월한 능력으로 상사는 물론 부하들로부터 인정받는 영업부 매니저이지만 가끔씩 본가에 들러 부모님에겐 어리광을부리는 자식의 모습이 되어 맛있는 음식을 해달라고 조른다. 또 고교 동창회에 가면 당시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다양한 형태의 인격을 표출한다. 그렇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다양한 인격이 있다.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하는 바는 자신 안의 '여러 인격'을 찾아내 키우고, 그 인격을 여러 상황에서 적절하게 전환하는 능력을 연마해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인격을 얼마든지 개발하고 적재적소에 발휘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그 방법을 모르고, 주로 쓰고 있는 하나의 인격만이 '진짜 나'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살아왔던 것뿐이다.

 

 

 

남다른 재능을 꽃피웠던 사람들은 여러 인격을 다양하게 실험해보며 자신에게 맞는 인격을 가장 잘 발휘해왔다.

 

 

결점이 많은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초한지>의 두 영웅은 한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다. 개인적으로 나는 항우를 좋아했다. 상대적으로 유방보다는 항우가 더 진정한 영웅의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항우는 명문가 출신으로 무장으로서의 뛰어난 능력과 카리스마를 갖추었기 때문에 당시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나라를 세울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경쟁에서 유방이 이겼다.

 

유방은 인격체로선 결함이 많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몰려 들었다. 이는 유방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반면에 상대방의 탁월한 자질을 포용함으로써 한나라라는 팀 전체의 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이에 반해 항우는 너무나 뛰어난 능력을 지녔기에 오히려 그의 주변에 능력자들이 가까이 오기를 꺼려 했다.

 

조직이나 회사도 마찬가지다. 남보다 월등하게 잘 난 인물 곁에는 사람들이 잘 머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점이 많은 팀장이나 경영자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든다. 왜 그럴까? 아무래도 그런 상대방에게는 기가 죽지 않을 뿐더러 마음이 편안해서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바보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과 결점을 솔직하게 자각하며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말이나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곧바로 사과 메시지를 전달하니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부정적인 인식이 오래 남지 않으며, 오히려 솔직함으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원래 다른 사람과 엮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타인과 부딪치지 않는 인생, 가까웠던 누군가와 마음이 멀어지지 않는 원만한 인생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타인과 부딪치고 마음이 멀어졌다가 그것을 또 초월하여 깊이 이어지는 인생. 그것이야말로 좋은 인생이다.

 

 

결점이 아니라 개성이다

 

저자는 재미있는 비유를 든다. '발효''부패'를 예로 든다. 우유를 발효시키면 요구르트가 된다. 하지만 우유를 부패시키면 이는 '썩은 우유'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볼 때 발효나 부패 모두 미생물이 유기물질을 분해하는 성질이다. 단지 인간에게 유익하면 '발효', 유해하면 '부패'라고 부른다.

 

그렇다. 우리들의 눈에 비치는 상대방의 결점은 단지 나의 시각일 뿐, 상대의 입장에선 그저 그 사람의 개성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선입견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 인물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의 어떤 점이 싫어서', 또는 '그의 어떤 태도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등등의 이유를 든다. 얼마 전에 끝난 대통령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할 경우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을 반대한다고 의절하는 사람까지 있다. 이는 너무나도 편협한 사고의 산물이다. 이는 결코 결점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람의 개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개성이 자신과 주변 상황에 맞게 좋은 형태로 발휘되었을 때 그것을 장점이라 부르고, 자신과 주변 상황에 불합리한 형태로 발휘되었을 때 그것을 결점이라 부르는 것이다.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평소 나는 '인연'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인연 때문에 손해를 본 경우가 생겼음에도 말이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우리들은 수많은 인연들을 쌓게 된다. 물론 좋지 않은 인연, 즉 악연惡緣도 생긴다. 자신과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와 맺어진 결과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고의적으로 인연을 이용해 사기를 친 경우가 아니라면 비록 결과가 나쁠지라도 이를 일방적으로 악연으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잔인한 이별'을 하지 말자.

 

잔인한 이별을 하는 사람

 

타인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심한 사람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

마음속 작은 자아가 강한 사람

 

 

인간의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유연하다. 한때는 상대에 대한 불신, 불만, 분노, 혐오, 화, 증오 등의 감정에 의해 마음이 멀어질 때가 있다. '진정한 현명함'은 '절대 다른 사람과 마음이 멀어지지 않는다'와 같은 성인군자 같은 것이 아니다. '한때 다른 사람과 마음이 멀어져도 어딘가에 화해할 여지를 남기고 언젠가 화해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현명함이다.

 

 

수양이야말로 인간력으로 향하는 길이다

 

미숙한 자기 자신을 깨닫고도 성장하면서 쉼없이 걸어가는 길이 바로 인생이다. 평생 동안 스스로 인간을 수양하기 위해 걸어가는 길이 바로 인간력이다. 아무리 걸음이 느릴지라도 마지막까지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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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 최신 개정 8판
조지 리처 지음, 김종덕 외 옮김 / 풀빛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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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의 차원에서 합리화, 즉 맥도날드화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맥도날드화에 대한 대응방안을 제안한다. 이러한 사항들의 일부는 전 지구적 차원의 거창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의 소소한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들이다. - '옮긴이 서문' 중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려면

 

책의 저자 조지 리처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석좌교수로, 이 대학교에서 올해의 석학교수로 선정되었고 명강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미국사회학회에서 교육공로상을 수상하였고, 미 동부사회학회에서 2012-2013년 로빈 M. 윌리엄스 기념 올해의 교수로 선정되었으며, 호주의 라트로브 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초기에는 현대사회이론의 체계적 정리에 집중하다가, 이후에는 세계화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이 책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이다.

 

이 책은 합리화와 이로 인해 초래되는 불합리성에 대한 막스 베버의 이론을 인용, 미국 사회의 여러 측면을 분석하고 있다. 즉 패스트푸드는 물론이고 의료, 교육, 여가, 스포츠, 영화, 기업, 노동, 쇼핑, 마케팅, 출생, 죽음 등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합리화 현상과 이와 연관해 발생하는 불합리성을 다룬다.

 

초판본은 이미 1993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번 책은 최신 개정 8판이다. 출간 당시부터 크게 주목받았던 이 책은 미국에서만도 200여 개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될 정도였고, 한국에서도 사회학은 물론이고 기타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교재로 사용되었으며, 심지어 책의 지문이 대입 논술시험에도 몇 차례 출제된 바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효율성과 합리성이라는 명분하에 합리화가 진전되어 왔다. 앞으로도 이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맹위를 떨치던 신자유주의가 합리화를 더욱 부추겼음을 우린 알고 있다. IMF 사태를 겪은 우리 사회는 정규직 고용을 줄이고 비정규직 고용을 늘이는 등의 조치로 인간소외라는 새로운 현상을 맛보게 되었다.

 

 

 

 

맥도날드화의 의미

 

이 책의 주제는 맥도날드나 패스트푸드 산업이 아니다. 성공한 기업 맥도날드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매장을 거느리며 햄버거 등을 판매한다. 한국에서도 맥도날드 매장이 주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이미 맥도날드의 햄버거와 맥카페의 커피를 이용해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맥도날드화란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부문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맥도날드화는 종교와 국경을 넘어 오래된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까지 잠식했다. 아침 식사 시장과 24시간 영업까지 도입하면서, 맥도날드의 영업 방식은 시공간時空間을 지배하게 되었다.

 

미국 밖 다른 나라에 들어선 맥도날드 매장은 미국 문화의 상징이었다. 세계적인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서는 매년 '빅맥 지수'를 공표한다. 이는 전 세계 통화의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이와같이 맥도날드는 이미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이 함께 공유하는 가치가 된 셈이다. 이에 따라 맥도날드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감자 생산과 가공, 목축과 양계, 그리고 육류 가공업에까지 맥도날드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수많은 일자리에 커다란 변동을 초래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맥도날드화의 특징

 

효율성~ 배부른 상태로 만드는 가장 편한 방법

계산가능성~ 양적 측면을 강조

예측가능성~ 제품과 서비스는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다

통제(무인 테크놀로지)~ 고객과 노동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합리적인 시스템은 불합리성을 낳는다

 

패스트푸드점의 게산대에는 사람들이, 드라이브스루 통로에는 차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흔하다. 사실 효율적으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이 방법이 오히려 비효율적임을 노출하는 셈이다. 주문한 음식이 제대로 나오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할 때 2005년 패스트푸드 체인 중 맥도날드는 최하위를 기록했었다. 적어도 한 가지는 잘못 나온다는데, 이 오류를 잡는 데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마치 고객들이 일하러 가는 식당과 같다.

 

우리들이 흔히 이용하는 현금자동입출금기도 한번 생각해보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이리 되면 결국 고객인 우리들이 모보수로 일하는 은행출납원이나 마찬가지 신세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양과 속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이미 살펴본 것처럼 정확도와 품질에 있어서 당연히 뒤처지게 될 수밖에 없다.

 

소위 '합리성의 비합리성'이 낳는 폐해는 바로 '비인간화'이다. 맥도날드화된 영역에선 접촉이 최소화되고 사람 간의 교류가 사라진다. 의사는 규정대로 환자를 대하므로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 어렵다. 심지어 무인 테크놀로지나 단순 조립 라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작업 시스템에선 사람들이 강력하게 통제받는다. 또 동일한 브랜드가 확산됨에 따라 지역 고유의 특성과 다양성이 감소하게 된다.

 

건강과 생명까지도 위협받는다. 왜냐하면 패스트푸드에 함유된 지방, 콜레스테롤, 소금, 설탕 등은 건강을 해치고, 이는 나쁜 식습관을 갖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환경에 끼친 악영향은 더욱 심하다. 육류 생산의 증가에 따른 토지의 황폐화, 기후변화, 수질 및 대기오염, 물 부족 등 다양한 형태의 환경문제가 발생한다. 속도가 빠르고 이동이 잦고 대량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맥도날드화는 생태계에 암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탈脫맥도날드화를 해야 하는가?

 

저자는 책을 통해 다양한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우선 슬로푸드 운동은 1980년대 중반 로마에 맥도날드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면서 조직된 풀뿌리 운동에 기원을 둔다. 획일화된 음식에 반발하며 먹거리 생산, 요리 방식, 재료에까지 지역의 고유성을 담아내려는 운동이다. 관련해 도시 보존이 목적인 슬로시티 운동은 음식을 넘어서 예술, 건축, 생활양식, 문화를 맥도날드화에서 보호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러한 사상은 '느린 여행과 관광' 등 다른 영역에까지 퍼져나갔다. 맥도날드화된 모텔 체인에 질렸다면 가정집 분위기인 방과 주인이 직접 만든 조식을 제공하고 손님 각각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민박이나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개인 소유 숙소를 빌릴 수 있다.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으로서, 아파트나 공공 주택단지에 살지 말고 정형적이지 않은 환경을 선택하라고 제안한다. 가능한 한 반복적인 일과를 피하되 매일 같은 일이라도 다양한 다른 방식으로 하고, 할 수 있는 한 어떤 일이든 직접 하라고 권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맥도날드가 아니라 동네 음식점을 애용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기를 권한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사회학적 통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이에 저자는 미래에 바탕을 두고 맥도날드화를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맥도날드화된 시스템의 구속에서 벗어나되 그 체계 덕분에 가능했던 기술적 진보를 활용한다면, 우리는 더 창조적이고 다재다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맥도날드화가 둔화한다면 사람들은 잠재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다. 맥도날드화된 시스템 덕분에 많은 것들이 가능해졌으나, 한편 많은 것들을 잃기도 했다. 맥도날드화는 현대 우리 사회를 가르고 나누는 '양날의 검'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맥도날드화된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특히 그 시스템 안에 있는 소비자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임을 우리들은 주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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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인간 에밀 스푼북 창작 그림책 6
뱅상 퀴브리에 지음, 로낭 바델 그림, 이정주 옮김 / 스푼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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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에밀은 투명 인간이에요. 에밀은 그러기로 결심했어요. 12시가 되면 아무도 에밀을 보지 못할 거예요. 왜 12시냐고요? 엄마가 치커리 요리를 준비했기 때문이에요. 치커리요! 에밀은 치커리를 정말 싫어해요! 에밀은 치커리가 정말 싫어요. 에밀은 오래전부터 투명 인간이 되고 싶었어요. 투명 인간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에요. - '본문' 중에서

 

 

투명 인간이 되려고 발가벗은 아이

 

저자 뱅상 퀴브리에는 1969년 프랑스 브레스트에서 태어났다. 판매원, 기자, 전화 교환원 등 다양한 일을 하다가 재미난 이야기를 쓰는 동화 작가가 되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쏙 들여다 본 것처럼 솔직하게 잘 표현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1987년<3번째의 삶>으로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작품으로는 <가출>, <바다로 간 스쿨버스>, <나의 아홉 살의 밤>, <있잖아, 샤를!> 등이 있다.

 

그림을 그린 로낭 바델은 1972년 프랑스 브르타뉴에서 태어낫다. 스트라스부르 장식미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어린이를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있다. 파리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그림책 장식에 몰두하여 지금까지 32권의 책을 출간, 그린 책으로는 <아빠가 평생 할 말>, <엄마가 절대로 하지 않을 말>, <선생님이 절대로 하지 않을 말> 등이 있다.

 

 

 

 

어릴 적 나는 공부가 하기 싫어 어머니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숨는 것이었다. 다락방에 숨거나 아니면 옷장 속에 숨어 있곤 했다. 어떨 때는 숨는 정도가 지나쳐 아예 그곳에서 잠을 자는 통에 저녁 식사를 거르게 되자 어머니가 나를 찾아 동네 골목과 이웃 동네로 나를 찾아 다니곤 했을 정도였다. 사실 하도 개구장이였던 나였기에 우리 동네나 이웃 동네에선 모두 나를 피하는 편이었다.

 

이렇게 숨는 방법이 요즈음 아이들에겐 투명 인간 놀이인 듯하다. 동화 책이나 SF영화 탓이긴 하겠지만 망토를 둘러 입거나 요상한 주문을 외치면 투명 인간으로 변하니 말이다. 아무튼 창작 동화인 이 책의 주인공격인 꼬마 에밀은 투명 인간이 되려면 자신의 몸에 실오라기 하나라도 걸치지 않아야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다.

 

 

 

엄마는 왜 먹기 싫은 음식을 권할까?

 

나는 식사자리에서 아내가 어린 딸에게 야채 요리를 먹이려고 애를 쓰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그럴 때마다 먹기 싫다는 걸 왜 억지로 먹이려 하느냐고 핀잔을 주곤 했지만 아내의 자세는 확고했다. 아내는 균형 잡힌 식단에서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고 딸을 적당하게 구슬리면서 끝내 야채 등을 먹게 했다.

 

마찬가지로 나도 어릴 적엔 이런 경험이 있었다. 당시 나의 전략은 "좀 있다 먹을게"였다. 내 입에 맞는 반찬만 쏙쏙 먹고는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며 식사자리에서 도망치곤 했다. 동화 속의 에밀 엄마도 치즈와 햄이 듬뿍 든 치커리 요리라고 한껏 분위기를 띄운다. 하지만 에밀은 12시 정각이 되면 투명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 이유는 치커리가 먹기 싫어서다. 좋아하는 초콜릿 무스를 먹는데, 엄마가 어떻게 자신을 본걸까?

 

 

"에밀! 초콜릿 무스가 먹고 싶으면 치커리부터 먹어!"

 

분명 에밀은 투명 인간이 되었는데 엄마가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초콜릿이 코 밑에 붙어 마치 콧수염이 생긴 탓이라고 여겨져 재빨리 수도를 틀어 깨끗이 씼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그래, 잘했어. 에밀, 먹기 전에는 손을 씻어야지"라고 말하는 거다. 도대체 엄마는 초능력자인가?

 

또다시 에밀은 엄마가 어떻게 자신을 볼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하! 에밀은 엄마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에밀은 입은 옷을 홀랑 다 벗고 이젠 결코 자신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의기양양했다. 그런데 좋아하는 줄리가 집에 찾아왔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투명 인간인 에밀은 결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슬그머니 줄리 옆에 앉았다.

 

 

"아니, 에밀! 왜 옷을 홀딱 벗은 거야?"

 

 

아이들은 슈퍼맨이나 투명 인간을 꿈꾼다

 

아이들이 커면서 제일 싫은 것이 뭘까? 아마도 간섭 받기 아닐까 싶다. 난 어릴 적에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었다. 당시 어른이 되면 뭐든 혼자서 실컷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 숨겨진 책임감이나 경제적인 문제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주인공인 꼬마 에밀도 그렇다. 먹기 싫은 치커리를 강요하는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될지를 고민한 것이다. 에밀이 내린 결론은 바로 투명 인간이었다. 어느 누구도 자기를 볼 수 없을테니까 실컷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상상 속의 일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에밀의 모습은 바로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님처럼 발가벗은 꼬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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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 정답이 없는 시대 홍종우와 김옥균이 꿈꾼 다른 나라
정명섭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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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꿈을 꾸고 있었네."
"그건 꿈이 아니라 욕심이었어. 조선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욕심말이야"
문 밖의 남자가 냉정하게 대꾸하고는 팔을 들어 그를 겨누었다.
"난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야. 그게 욕심인가?"
"지금 자네 꼴을 보게. 지금은 상하이로 와서 그들의 힘을 빌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건 꿈이 아니라 악몽일세"
"난 꿈이 있었다니까!"
문 밖의 남자는 침대에 누운 몸을 일으키며 외치는 그를 향해 겨눈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 '문 안의 남자, 문 밖의 남자' 중에서

 

 

혁명을 꿈꾼 두 사나이

 

책의 저자 정명섭은 역사 교양서 저술가로 햇빛처럼 선명하게 기록된 역사 속에서 그 빛을 받아 밤을 비추는 달과 같은 이야기를 찾는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중요한 사실들을 발굴하거나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들여다봐 낯선 모습을 발견하는 데 관심이 많다. 역사 교양서로는 <일제의 흔적을 걷다>, <스승을 죽인 제자들>, <조선백성실록>, <조선의 엔터테이너>,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전쟁생중계>등을 썼다. 복잡한 현실의 사정이 작용된 역사에서 배

 

 

 

 

 

 

 

두 사람은 어떤 꿈을 꾸었나?

 

홍종우와 김옥균, 두 사람은 암살과 죽음이라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다. 단순히 암살자로 알려진 홍종우를 그렇게 단편적으로 규정 내리는 것은 몰지각의 극치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 유학파였으며 우리의 고전들을 번역해서 해외에 알린 문인文人이기 때문이다.

 

후세인들로부터 친일파라는 낙인을 뒤집어 쓴 채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김옥균, 그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탄탄대로의 출세길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내팽개치고 개화개화에 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을 감행했다. 아무나 이런 용단을 내릴 수 있는가? 그가 단순히 출세를 위해서 친일을 했다는 설명은 논리가 부족해 보인다.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

 

'제1호 프랑스 유학생'으로 불리는 홍종우는 실제로 유학생이 아니었다. 웅지를 품고 프랑스러 건너간 것은 맞지만 교육 기관에서 학문을 전공한 흔적이나 중도에 포기한 사실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1890년 12월 24일, 그는 일본의 정치가 이다카기 다이스케가 프랑스 총리에게 써 준 소개장과 여권을 지참하고 파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홍종우가 지닌 여권에는 그를 누구에게 소개해 준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홍종우가 지니고 있었다는 여권은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이나 혹은 일본에서 만들어낸 위조 증명서일 가능성이 크다. 그때까지는 프랑스에 조선 외교관이 부임하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여권을 지녀야만 프랑스에 입국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가짜 여권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프랑스 내의 유력인사를 만날 때 스스로의 신분을 증명할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맨 처음 방문한 곳은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였다. 그는 뮈텔 신부에게 보내는 보레 신부의 추천장을 소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뮈텔 신부는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미 출발한 직후엿다. 그래서 그는 신부들의 주선으로 성 니콜라스 학교 기숙사의 다락방에 거처를 정했다. 며칠 후 그는 대문호 빅토르위고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펠릭스 레가메를 만났다.

 

펠릿스 레가메의 증언에 의하면 홍종우는 조불수호통상조약 당시 조선에 왔던 외무장관 꼬고르당과의 만남에서 조선을 위해 유럽문명을 배우고 싶고, 이를 통해 일본처럼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했으며, 러시아와 미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소수의 동지들과 함께 조선의 완전한 독립과 조선을 외국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정책의 폐지 등을 추진할 꿈을 밝혔다고 전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면담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의 정치적 행보는 여기서 끝이 난 듯 보인다. 이후 그는 기메 미술관에서 일하게 된다.

 

 

당시 프랑스는 동양학이 대유행이어서 중국과 일본 서적들이 연이어 번역되고 있었다. 홍종우는 한문에 능통했고, 일본어도 어느 정도 가능했기에 기메 미술관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메 미술관이 조선에서 수집해온 서적들을 번역했다. 첫 번째 책이 바로 <춘향전>이다. 일하는 방식은 일본어로 구술하고 이를 다시 프랑스어로 옮겨 적는 순서로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좌절하고 조선으로 돌아가다

 

어렵사리 프랑스에 온 지 3년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홍종우는 귀국을 위해 배를 타려고 마르세유 항구로 갔다. 때는 1893년 7월 22일이었다. 펠릭스 레가메의 기록에는 두 사람 간의 대화가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프랑스에서 뭐가 좋았습니까?"

"말들이오. 마르세유에 도착해서 봤는데 크고 튼튼해 보였소"

"나빴던 것은 뭐였습니까?"
"이기주의였소"

 


펠릭스 레가메는 타국에서 신세를 지고 살았으면서도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던 이방인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홍종우 입장에서 보자면 프랑스에서의 시간은 실패나 다름없었다. 자신을 서커스 광대나 중국인으로 취급하는 백인들 사이에서 정치적 야심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조선의 문학을 유럽에 알리는 데 공헌을 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호구지책일 뿐이었다.

 

 

김옥균을 살해하다

 

많은 학자들이 홍종우가 김옥균의 암살을 결행한 이유에 대해서 분석했다. 정치적 신념 혹은 가문의 복수를 위해 암살을 결심했다고 추론하지만 가장 단순한 이유가 정답에 가까워 보인다. 즉 고종의 밀명을 받고 도쿄에 온 자객 이일직을 만난 그는 아마도 거사가 성공되면 크게 출세할 것이라는 다짐을 받았을 것이다.  

 

홍종우는 프랑스에서 몇 년 동안 지낸 경력만 가지고는 조선에 돌아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과 몸이 아픈 상태가 겹치면서 극도의 불안감과 초조함이 그의 행보를 결정짓는 데 일조를 했을 것이다.

 

 

 

김옥균은 그렇게 죽지 않았다.

 

3일 천하로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김옥균의 신볍은 매우 위험해졌다. 급히 일본으로 피신했지만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이에 그는 중국 상하이로 가기로 결심한다. 1894년 3월 9일 밤 9시 58분, 그는 와다 엔지로, 사진사 가이 군지 등과 함께 시나가와역을 출발했다. 이후 상하이까지의 여비를 확보하기 위해 오사카에 열흘 동안 체류했다.

 

3월 21일, 이일직이 김옥균에게 일본 돈 600엔과 상하이에 위치한 천풍전장錢莊에서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5천원짜리 어음을 제공하면서 교환은 이일직 본인과 홍종우만 가능하다고 설명한 후 2천원을 여비로 사용하고 나머지 3천원은 홍종우를 통해 돌려달라고 했다. 물론 김옥균은 이일직과 홍종우를 의심하고 있었지만 여비 때문에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3월 24일, 고베항에서 상하이로 향하는 배에 승선했다. 재기를 노리는 김옥균, 죽일 기회를 노리는 홍종우, 두 사람의 동상이몽이 시작되었다.

 

3월 28일, 김옥균은 홍종우에게 천풍전장에서 어음을 교환해 오라고 부탁하고 산책에 나섰다. 한편, 홍종우는 시간을 벌기 위해 마차를 빌려 상하이 시내를 둘러보았다. 오후 1시에 돌아와선 전장 주인이 없어서 오후 6시에 다시 가야한다고 둘러댔다. 그런데, 오후 4시쯤 홍종우에게 마침내 기다리던 때가 찾아왔다. 와다가 김옥균의 심부름으로 1층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홍종우는 총을 꺼내 들고 김옥균의 방으로 들어가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김옥균의 암살 당시 정황이다. 하지만 와다 엔지로의 증언은 약간 다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옥균이 2층 8호실 앞 복도에서 쓰러져서 죽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2층 8호실의 주인은 일본 해군 군령부 제2국장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일본 해군 군령부 국장이라는 요직을 맡은 인물이 하필 같은 여관의 같은 층을 썼고, 그의 방 앞에서 죽었으며, 암살 사건의 최초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일본 정부에 의해 철저히 가려졌으며, 일본 신문들 역시 김옥균이 방에서 낮잠을 자다가 암살당했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독립협회와 황국협회의 대립

 

오늘날 대부분은 독립협회황국협회의 대립을 진보와 보수의 충돌쯤으로 이해하지만 진실은 좀 더 복잡하고 내밀하다. 황국협회가 독립협회와 갈등을 벌인 것은 고종을 비롯한 대신들의 배후 조종 때문만은 아니었다. 독립협회는 독립이라는 이름과 조정에 외세를 배격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 것 때문에 반외세를 주장하는 단체로 오인된다. 하지만 '헌의 6조'에 나온 것처럼 이들은 외국과의 조약이나 협정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대신들과 중추원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외국 군대의 주둔이나 외국 상인들의 도성 안에서의 활동 역시 조선의 힘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물론 독립협회에서는 조정 대신들에게 함부로 외국과 협정을 맺어 나라에 손해를 끼쳤다고 맹비난했다. 도약소都約所와 건의소청에서 외국 상인들을 도성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할 때에도 시대를 거스르는 짓이라며 반대하는 다소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외국 상인들의 침투는 보부상들에게 위기감을 조성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이들은 외국 상인들의 활동을 묵인하는 독립협회와 마찰을 빚게 되었다. 민권民權 운동 측면에서도 10월 12일 민선의원을 선출하자는 <건백서建白書>를 제출한 황국협회 측의 견해가 중추원을 확대 개편하자는 독립협회 측 의견에 비해 훨씬 더 진보적이었다.

 

 

이승만의 야릇한 인생 역전

 

박영효의 역모와 연관되었다는 죄목으로 투옥되었고, 권총을 가지고 탈옥을 했다는 죄목을 가진 이승만이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박영효와 관련이 없으며 탈옥 시에도 다른 두 사람의 권유와 협박 때문이었다는 증언이 그의 생명을 구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질품서를 올린 평리원 재판장은 다름아닌 홍종우였다.

 

독립협회라면 이를 갈던 홍종우였지만, 그는 원칙대로 판결했다. 이승만 자신도 홍종우가 재판장으로 있는 한 살아남기 어렵다고 각오한 듯 훗날의 자서전에서 이때의 일을 "야릇한 인생의 역전"이라고 표현했다.

 

홍종우의 삶을 바라보면 묘한 궤적과 마주친다. 외부의 시선이 섞이면서 다소 혼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는 왕권 강화론자의 길을, 법관으로선 지독한 원칙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이처럼 홍종우는 이승만을 처형해서 고종의 신임을 받을 기회를 저버렸다. 홍종우가 갑자기 7월 27일 평리원 재판장에서 법부사리국장으로 좌천된 것은 이승만의 재판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04년 8월 7일 이승만은 사면령을 받고 출옥했다. 마침내 그는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정말 아이러니한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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