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의 질문법 - 최고들은 무엇을 묻는가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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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질문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자 묻는 질문이다. 둘째는 자신은 알고 있지만 상대방에게 답을 생각해보도록 유도하기 위해 묻는 질문이다. 그리고 셋째는 자신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함께 답을 찾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다. - '서문' 중에서

 

 

모르면서 묻지 않는다면 이는 부끄러운 일이다

 

책의 저자 한근태는 서울대학교 섬유공학과를 나와 럭키화학 중앙연구소(현 LG화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에 유학, 애크론대학에서 고분자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헬싱키대학에서 경영학(석사)을 공부했다. 이후 대우자동차 최연소 이사로 한창 줏가를 올리다가 임원 자리를 과감히 박차고 나와 자신의 길을 개척한 인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인데, 현재 한스컨설팅 대표로 활동하며 컨설팅과 강의, 글쓰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경영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 <말은 임팩트다>, <나는 어떤 리더인가>, <리더의 언어>, <채용이 전부다>, <한근태의 독서 일기>, <고수의 일침>, <누가 미래를 주도하는가>, <몸이 먼저다>, <일생에 한 번은 고수를 만나라> 등이 있다.

 

책의 서문에서 그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말을 들고 나온다. 이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란 의미이다. 그렇다. 특히, 직장처럼 계급이 상하로 확실하게 잡혀 있는 그런 조직에서는 질문도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게 정설로 자리잡혀 있다. 그렇기에 상사는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좀처럼 부하직원에게 모르는 것조차도 묻지 않는다. 하지만 모르는 게 있으면 당연히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집요한 질문의 방법을 알려준다. 삶의 보람을 찾기 위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목표를 명확히 하고 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묻고 답을 구해야 하는지, 신뢰로 맺어진 깊은 인간관계에 필수적인 질문 대화 방법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비즈니스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들려준다.

 

 

 

 

 

중요한 기로에서 던지는 질문

 

우리들은 살면서 수많은 결정을 한다. 공부를 계속해서 박사까지 할까, 아니면 직장에 취직할까? 졸업하고 군대에 갈까, 아니면 대학 2학년 마치고 입대할까? 연애결혼을 할까, 아니면 중매결혼을 할까? 결혼 후엔 바로 아기를 가질까, 아니면 몇 년 후에 가질까? 이 회사에 계속 다닐까, 아니면 중도에 다른 회사로 갈아 탈까? 평생 회사원으로 살까, 아니면 사업을 시작할까? 등등. 이처럼 우리들 인생 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들은 결정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이럴 때 좋은 질문이 있다. 시간의 축을 바꾸는 질문이다. 우리는 늘 현재 시점에서 고민하고 결정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결정은 현재를 기준으로 내려지지만 그 결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어느 제품의 CF 멘트처럼 말이다. 그 결정이 잘못된 것이어서 후회할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바로 시간의 축을 왔다 갔다 하는 질문이다. 즉 미래 시점에서 지금의 결정을 보는 것이다.

 

한 예로 저출산에 대해 살펴보자. 굳이 한국의 저출산율이 세계적인 불명예 기록이라고 떠올리고 싶지 않다. 현재는 과거의 세상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선 공들여 자식을 키웠더니 대학교를 졸업해도 취직이 어려워 입사 시험 준비를 계속하거나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경제적인 애로를 겨우 해결하는 형국이니 부모 봉양에는 자연히 소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니 지금까지의 고생이 헛고생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한편, 자식의 입장에서도 아기를 낳아 키워 성인으로 사회에 내보내기까지 엄청난 시간적, 경제적 투자를 해야 하므로 아기를 낳는다는 게 쉽게 보일리가 없다. 이처럼 아기를 낳지 않는 문제점을 설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이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제시한다. 이런 질문을 미래의 나를 연상하며 현재 시점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는 유효한 질문인 셈이다.

 

"환갑이 됐을 때 아이를 낳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을 수 잇을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질문

 

좋은 질문 중 하나는 통념通念에 저항하는 질문이다. 남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수용하는 것에 물음표를 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공자는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 쉰을 '지천명知天命', 예순을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마흔이 되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쉰에는 하늘의 뜻을 알고, 예순에는 무슨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마흔이 된다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는가? 이런 질문을 통해 가장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시기가 마흔이니 이때 더욱 조심하란 말로 재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개념의 정의에 대한 질문

 

가장 좋은 질문은 개념의 정의를 다시 묻는 질문이다. 도대체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봄으로써 나만의 정의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경영자라면 경영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성공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하게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또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도 마찬가지로 돈이란 무엇인지, 자신이 생각하는 부자는 어떤 것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경청이 중요한 이유

 

첫째, 말을 하는 동안 우리는 배울 수 없으므로 뭔가 배우기 위해서는 말하는 대신 필요한 질문을 하면서 상대방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둘째, 경청을 해야 상대와 친해질 수 있다. 경청해야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고, 그래야 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 경청은 대인관계의 출발점이다. 대인관계가 나쁜 사람들의 특징은 잘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셋째, 자신의 귀를 열어야 상대방의 입을 열 수 있다. 특히 상관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최고경영자가 경청을 잘하면 조직은 잘 돌아간다. 현장에서의 정보, 문제점, 소리들이 생생하게 위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다고 판단해 사람들은 입 열기를 멈추게 된다.

 

넷째, 잘 들어야 사업을 잘할 수 있다. 일류 영업사원의 특징은 잘 듣는다는 것이다. 일류 사업가의 특징 또한 잘 듣는다는 것이다. 잘 들어야 상대의 호감을 살 수 있고, 상대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상대방을 움직이게 만드는 질문

 

리더는 질문을 위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 없는 말, 하지 않아도 좋은 말은 다 걸러진다. 하고 싶은 말을 질문으로 바꾸려면 직원들 입장에서 생각해야만 한다. 이 과정이 특히 중요하다. 내가 제대로 전달한 것일까? 직원들은 충분히 훈련되었는가? 목표 달성을 위한 지원은 충분했을까? 전략 자체에 잘못이 있는 건 아닐까? 너무 촉박하게 구는 걸 아닐까?

 

이와같은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자기반성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떠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다. 반면에 하고 싶은 말을 질문으로 바꾸어 직원들 입에서 나오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리더가 경영에 관한 모든 답을 알 수는 없다. 따라서 리더는 질문을 통해 직원들의 머리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의 전제조건

 

1. 겸손(스스로 부족함을 인정)

2. 존중(사람에 대한)

3. 자기 훈련

 

그렇다면 리더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이 목표에 관한 질문이다. 목표가 명확한지, 그 목표가 회사의 전체 목표와 한 방향 정렬이 되어 있는지, 목표에 대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의외로 목표가 뚜렷하지 않고 어슴푸레한 사람이 많다. 이런 경우는 추가 질문을 던져 일종의 영점 조정, 화면 조정 시간을 갖는 게 좋다. 확실한 부분은 무엇인지, 좀 더 확실하게 하고 싶은 부분은 어디인지, 목표를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더불어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 많은 직원들이 목표는 할당된 것, 내게 무리한 것, 달성해봐야 회사만 좋지 내게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 가장 좋다. 목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목표의 공유 과정이다.

 

 

변화를 위한 질문

 

한자어 '변變'은 말 이을 '련䜌'과 칠 '복攵'이 합쳐진 말이다. 이처럼 변화를 위해선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면서 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화는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의 저자는 변화의 정의를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큰 고통을 감내하고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원하는 것', '고통 감내', '새로운 습관'이라는 3가지 요소인데, 이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책에서 이 대목을 읽고 겨우내 급격히 불어난 뱃살과 체중을 줄이기 위해 나도 몸 관리에 들어갈 작정이다.

 

나는 정말 변화를 절실히 원하는가?

변화에 따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가?

새로운 생활 습관을 만들 수 있는가?

 

 

질문을 통해 성장한다

 

사람들은 좀처럼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에 답하지도 않으려 한다. 입 다무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회사나 조직 내에서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분위기를 만들려면 심리적 안전감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즉 맘껏,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회의를 할 때 편안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성장한다.

 

불치하문不恥下問(아랫사람에게 묻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라)

수치불문羞恥不問(모르면서 묻지 않는 걸 부끄러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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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시선 - 우리 산문 다시 읽고 새로 쓰다
송혁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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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각 꼭지는 짤막한 '새 글'과 그 글의 모태가 된 '옛글', 그리고 그에 대한 보충설명 및 원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새 글이 옛글에 기댄 모양은 일률적이지 않다. 옛글을 요약하거나 풀어 쓰며 오늘의 문제에 적용해본 글도 있고, 옛글의 특정 부분을 확장하거나 초점을 달리해서 쓴 글도 있다. 새 글과 옛글 사이의 겹침과 균열 혹은 긴장을 발견하고 나름의 해석에 이르는 길은 독자의 몫으로 열려 있다. - '머리말' 중에서

 

 

고전 읽기를 통해 새로운 시선을 갖자

 

저자 송혁기는 고려대학교에서 한문학을 전공, 동교 대학원에서 17세기 말 18세기 초의 산문 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문학비평 및 산문 작품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한문 고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오늘의 언어로 나누는 영역으로 글쓰기를 확장하고 있다.


그는 <송혁기의 책상물림〉이라는 칼럼을 3년째 <경향신문>에 연재하고 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고전 강의를 통해 인문학의 사회적 확산에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저서 또는 역서로 <조선 후기 한문 산문의 이론과 비평>, <나를 찾아가는 길: 혜환 이용휴 산문선>, <농암집: 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평하다> 등이 있다. 이밖에도 <한국 한문학의 이론: 산문>, <깊고 넓게 읽는 고전문학교육론>, <한국 고전문학 작품론> 등 고전문학을 소개하는 여러 기획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장(새로운 시야)에서는 기존의 익숙한 것도 다르게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통찰과 시각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느리게 사는 즐거움과 묘미, 아름다움을 보는 새로운 시각, 근심과 즐거움에 관한 선조들의 번뜩이는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2장(성찰과 배움)에서는 참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반성과 자녀 교육, 삶의 이치를 꿰뚫는 지혜를 맛볼 수 있다.

 

이어서 3장(삶, 사람, 사랑)에서는 삶의 희로애락을 대하는 옛사람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들을 한데 묶었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는 대신 오히려 즐기는 모습에 미소를 짓다가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버지와 남편의 애절한 절규 대목에는 코끝이 찡하다. 마지막으로 4장(세상을 향해)에서는 과거를 통해 오늘의 거울로 삼을 수 있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주제의 글을 담았다. 인재를 널리 구하지 않는 세태를 한탄한 허균의 '유재론遺才論', 조선의 사회적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한 '있을 수 없는 나라' 등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의 문제가 비단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느림의 즐거움

 

누구나 그렇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빠르게만 보려한다면 세심하게 관찰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래서 오히려 천천히 감상해야 이것이 갖고 있는 미묘함까지 다 볼 수 있는 법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호시우행虎視牛行이라는 말을 매우 좋아해서 이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비록 말馬은 빠르고 소牛는 느리게 걷지만 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말馬을 타고 넓은 초원을 내달리는 인디언 체로키족은 한참을 달리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고 한다. 이는 너무 빨리 달리면 자신의 혼魂이 미처 몸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과 육체가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고 한다. 우리 선인先人들의 일상을 담은 풍경화 속에도 소 등에 비스듬히 누워 풀피리를 부는 그런 목가적인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왜 그럴까? 이는 뭔가를 천천히 음미하기 위함이다. 밝은 달이 하늘에 있으면 높은 산 너른 물이 위아래로 하나의 빛깔로 보여, 올려보아도 굽어보아도 끝이 없을 것이다. 만사를 뜬구름같이 여기고 휘파람을 청풍淸風에 날리며 소걸음에 그냥 내맡겨두고 혼자 술병 기울이면 가슴이 툭 트여 그 즐거움에 절로 취할 것이다. 사사로운 일에 얽매인 사람이 어찌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근심과 즐거움

 

조선 영조 때 홍계희란 인물이 있었다. 62살을 맞은 어느 해 봄에 그는 이조판서로 발령받았지만 이를 사양, 여러 번에 걸친 왕의 부름에도 결코 응하지 않았기에 결국 영조는 인사발령을 취소했다고 한다. 지금은 고위 공직자의 인사청문회 때 온갖 결함이 있음에도 벼슬이 좋아서 이를 변명하거나 심지어 문제가 되는 일을 조작까지 서슴치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사람은 왜 이렇게 처신이 다를까?   

 

우리의 기쁨은 대개 무언가 바라던 것을 손에 얻었을 때 주어지지만, 문제는 그 기쁨이 지속되지 못하는 데 있다. 얻기 전에는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노심초사 근심하던 대상임에도, 막상 내 것이 되고 보면 그 기쁨도 잠시뿐, 마치 원래부터 나에게 있던 것처럼 당연시한다. 그러고는 점차 그것이 없는 삶이란 애초에 불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 근심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 즐거워하며 뜻을 펼칠 수 있는 경지에 오른다면 벼슬의 유무에 따라 기쁨과 근심이 바뀔 일도 없겠지만, 이런 경지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앞서 소개한 홍계희란 인물은 소인들과는 다른 제3의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 좋아하는 글을 읽으며 거문고, 바둑판, 술 병을 자신의 곁에 두고서 늙어가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가진 것의 기쁨을 모르는 소인들이 배워야 할 삶의 자세이다.

 

 

크고 작음에 대하여

 

18세기의 대표적 작가 심익운(1734~1782?)은 그의 집안이 당쟁에 연루되어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찌기 그는 올곧은 성격과 몰락한 집안 환경이 오버랩되면서 스스로를 두더지에 비유하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문장을 갈고닦아 그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 그의 대소설大小說에는 뱀이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뱀은 사악한 동물이다. 이브를 유혹해 선악과를 먹게 함으로써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만든 악惡의 상징이 바로 뱀이다. 사실 인간은 인류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DNA 때문에 뱀을 만나면 두려움에 저절로 몸을 움추리게 된다고 한다. 그 정도로 뱀은 악한 짐승인데, 큰 뱀은 악함도 크고 작은 뱀은 악함도 작을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큰 것은 크다는 이유로 죽임을 면하고 작은 것은 작다는 이유로 도리어 죽임을 당했다고 심익운은 장탄식을 한다.

 

이런 일이 어찌 뱀에게만 해당될까? 사람도 엄청나게 악한 자는 그 큼으로 인해 힘을 지니게 되니, 작게 악한 자만 죽임을 당한다. 지금 이 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미투' 운동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지도자급의 악한 인물에게 속절없이 치욕을 당했던 사람은 그동안 이를 고백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치부를 감추려고만 했다. 이 사실이 외부로 밝혀지는 순간 자신에게만 해가 되는 그런 사회 분위기 탓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선善에 관해서는 이와는 반대다. 정말로 엄청 크게 선한 자는 알려지지 않고 오히려 작게 선한 자만 알려진다. 그러니 크게 충성스러운 자는 상을 받지 못하고 작게 충성스러운 자만 상을 받으며, 크게 현명한 자는 등용되지 못하고 작게 현명한 자만 등용된다. 이것이 선과 악, 크고 작음의 행복과 불행이 아니겠는가?

 

 

 

 

다양한 삶을 음미한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는 24편의 고전(한문 산문)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옛날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어떠하냐고 말이다. 그 옛날의 산문을 읽고 또 읽다보면 우리들의 삶이 과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나만 그런걸까? 여러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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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한국사 - 아는 역사도 다시 보는 한국사 반전 야사
김재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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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상하좌우, 친문반문까지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맛깔난 '진퉁' 한국사 이야기. 승리자, 지배자, 남자 중심의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난 비범하고 유쾌한 역사 이야기 한 마당이 펼쳐진다. 실력으로 기득권 사회를 이끌었던 여성들, 패배자로 기록되었지만 정의로써 시대정신을 이끌었던 영웅들, 모두가 외면했으나 불굴의 의지로 시대를 헌신한 의인들, 그리고 한낱 '백성'이라고 표현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를 지탱할 수 있게 만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 '책 소개글' 중에서

 

 

관점을 바꾸면 '다른' 역사가 보이고,

관심을 가지면 '진짜' 역사가 보인다!

 

흔히 역사는 승자勝者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광해군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했던 인조가 폐위를 당한 광해군에 관해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허許했을까, 백제 사직의 마지막을 장식한 의자왕은 어린 시절 '해동의 증자曾子'로 불리었고, 신라에 속해 있던 30여 성을 탈취할 정도로 국력을 자랑하며 성군聖君으로 칭송받았지만 백마강에 뛰어든 낙화암의 삼천궁녀들의 이미지로 인해 음란과 향락의 아이콘으로 비춰진다. 이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 생생하게 이를 목격하지 않은 이상 역사에 기록된 내용들을 온전히 팩트로 믿어도 될까?

책의 저자 김재완은 '회사에 다니기 싫어서' 생전처음 써본 역사 이야기가 〈딴지일보〉에 인기리에 연재되면서 '덕후몰이' 중이다. 2016년 1월, 새해 첫 출근 날부터 회사에서 좌천통보를 받고 강제로 새 인생 출발선에 놓이자 그해 5월 제주 자전거 일주 여행기를 시작으로 겁도 없이 역사 글을 쓰기로 결심해, 우연히 가입한 재테크 카페에 역사 이야기를 올리며 독자의 반응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글을 본 독자가 올린 "온라인 판 설민석의 재림"이라는 칭찬에 도취되어 '오늘의 유머'에 글을 투척했으며, 올리는 족족 '베오베(베스트 오브 베스트 게시글)'로 선정되었다. 이듬해 2월 용기를 얻는 그는 책 출간을 결심했다. 아이폰 하나로 '집구석'에서 녹음한 '찌라시 한국사'도 비슷한 시점에 시작해, 팟빵 역사 분야 베스트에 오르는 등 청취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에 힘입어 16년 차 회사원의 퇴사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 중이다.

 

그는 역사 이면에 감춰진 수많은 흔적들, 이에 대한 진면목을 과거가 아닌 '내일의 관점'에서 흥미진진한 필체로 풀어낸다. <딴지일보>, <오마이뉴스> 등을 통한 인기에 힘입어 양반 사회를 조롱했던 마당놀이의 이야기꾼 초랭이가 되어 '한국사'라는 맛깔난 마당극을 펼친다. 자부심 가득한 역동의 고구려에서 슬픈 망국의 구한말까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고 너무 어렵게만 바라봤던 '역사'를 마치 한 편의 드라마로 엮어냈다.

 

 

 

 

광개토대왕의 정복전쟁

 

18살의 어린 나이에 고구려 19대 왕으로 취임한 광개토대왕은 한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정복 군주였다. 대부분 수성守城, 즉 지키는 기록이 주류인 우리의 역사에 이처럼 강력한 공격적인 경영을 감행한 군주가 있어서 통쾌하기도 하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대왕이란 칭호를 부여받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그는 대왕이라 불리게 되었을까?

 

이는 바로 그가 민생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즉 정복전쟁이 고구려 백성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서 취해진 조치였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염鹽, 백百, 쇠鐵'이라는 세 가지 공적을 내세운다. 첫째, 염鹽은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염수鹽水'라는 두 글자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는다. 대왕의 정복전쟁은 소금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소금값은 가히 금값에 견줄 정도였으며, 기근에 시달리는 고구려 백성들의 민생을 위해선 경제 활성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소금을 채취한다는 요하강 상류에 위치한 시라무렌강江은 내몽고 자치구를 따라 380킬로미터 정도 이어져 흐른다. 이곳은 거란족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광개토대왕은 철갑으로 중무장한 기병을 앞세워 소위 '소금전쟁'에서 승리하고 만다. 요하강을 기점으로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로 구분하는데, 우리 역사에 요동 정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 시대에는 이곳이 중국 등과 고구려가 요동 쟁탈을 위해 자주 부딪혔던 전략적 요충지였던 셈이다.

 

둘째, 백百, 즉 백제와의 전쟁을 의미한다. 고구려와 백제는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면 형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왕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세운 나라가 백제이기 때문에. 아무튼 지금의 임진강을 경계로 삼아 두 나라는 대치하고 있었는데, 자주 전투를 벌였다. 저자는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백잔百殘'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긴다. 고구려인들이 백제인을 낮춰 부르는 말이 백잔이다.  

 

광개토대왕의 즉위 2년째 되던 해(393년 음력 8월)에 백제 17대왕 아신왕(재위 392~405년)이 1만 명의 군사로 고구려를 공격하자 전황 보고를 받은 대왕은 수군을 이끌고 육해상으로 백제를 공격해 아신왕의 무릎을 꿇렸다. 고구려의 신하가 되겠다고 항복의 예를 갖추었지만 아신왕은 왜倭에 밀사를 파견해 '차도살인借刀殺人' 작전을 펼쳤다. 왜에 군사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약소국인 신라를 공격했다.

 

그러자 신라 내물왕은 광개토대왕에게 지원을 요청, 이에 대왕은 5만여 명의 군사를 파견해 백제, 왜 연합군을 소탕하고 말았다. 이 역사적 사실이 바로 광개토왕비에 44자의 한자어로 새겨져 있는데, 이중 세 글자가 지워져 있다. 학계에선 일제가 고의적으로 이를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백제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편리하게 일본사를 조작했을 정도였으니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겠다. 그래서 지금도 위안부는 자발적인 행동이었다고 주장하는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난 더 이상 읽지 않는다. 역사를 부인하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셋째, 철鐵은 무기를 만드는데 가장 필요한 금속이었다. 당시 요동지방은 철광석의 보고였다. 지금도 노천에 철광석 덩어리가 있다고 한다. 이곳을 장악하고 있던 후연後淵이 고구려를 공격하자 대왕은 이참에 무기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철광석을 손에 넣기 위해 아예 연나라를 공격해 요동을 탈환하기로 결정, 마침내 후연을 제압했다.

 

 

이괄의 난

 

1623년, 광해군을 왕위에서 끌어내라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 바로 인조다. 이를 인조반정이라고 한다. 통상 반정이 성공하려면 여기에 동참하는 인물들이 많아야 한다. 당연히 군부의 핵심 세력이 예외일리 없다. 1622년, 이괄은 함경도 병마절도사로 발령받아 송별 모임을 할 때 자신보다 여섯 살 연상인 신경유 장군으로부터 반정 참여를 권유받는다. 반정이 성공하면 출세길이 보장된다는 말에 결국 뒤늦게 반정에 합류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인조반정 당일인 1623년 4월 11일 밤 10시에 반정군은 홍제원에 모두 집결해 있었다. 그런데, 총지휘를 맡은 김유가 도착을 하지 않고 눈치를 살피고 있자 반정 내부에선 전격적으로 이괄을 공격 대장으로 추대했다. 이에 재정비를 마치고 이괄이 궁으로 공격을 감행하려는 순간, 김유가 갑자기 나타나 설사 증세 때문에 지각했다고 변명했다. 이괄은 김유의 목을 베려했지만 오랫동안 반정에 참여했던 이귀의 중재로 병력 통솔권을 다시 김유에게 넘겼다. 우여곡절 끝에 반정은 성공했다.

 

이후 반정공신들이 모두 모여 파티를 벌였는데, 김유와 이귀는 상석上席에 자리잡고 이괄은 그 아래 자리에 앉게 되었다. 공신도 등급이 있기 마련이므로 직감적으로 1등 공신이 어렵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연려실기술>의 인조반정 당일 기록에 따르면 "어제의 공적은 이괄의 힘이 많았으니 마땅히 그를 병조판서로 삼아야 한다"라고 적혀있음에도 말이다.

 

예감은 적중했다. 이괄은 평안병사 겸 부원수로 임명되어 지방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괄이 화가 날 것이 뻔하지라 인조는 이괄이 부임지로 떠나는 날 직접 배웅했다고 기록에 나온다. 그것도 명나라 사신을 대접하는 모화관에서 말이다. 후금後金이 지금 기세 충천인지라 국방의 막중한 책임을 맡을 사람이기에 그리 한 것이지 절대 좌천 발령이 아니라고 달랬을 것이다. 빠른 시일에 다시 불러 들이겠다는 첨언과 함께.

 

1624년 3월 6일(음력 1월 17일), 충격적인 소식이 조정으로부터 전해졌다. 한양에서 금부도사가 이괄의 외동아들을 압송하기 위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괄이 역모를 도모하고 있다는 고변이 있어서라는 거다. 이처럼 이괄 스스로 난을 일으키려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게 아니라 반정에 참여했던 정치적 정적들이 이괄에게 난을 일으키도록 부추긴 꼴이었다. 한양에서 명을 받고 내려온 자들은 모두 목이 달아나고 이괄 수하의 군사들은 한양으로 말을 몰았다. 이들의 목적은 오직 한양의 궁을 공격하는 것이기에 도중에서 관군과의 충돌을 최대한 피하고 길을 재촉했다.

 

마침내 이괄의 쿠데타 소식이 조정에 전해지고, 이에 대비한 대책회의가 열렸다. 정적들은 괜히 벌집을 쑤신 꼴이 되었지만 이괄의 병력만으로는 개성을 통과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괄의 군은 1월 24일(음력) 영변에서 출발하여 산악 오솔길 등을 따라 진군했기에 2월 9일에 한양에 입성했다. 물론 인조는 이미 피난을 가고 한양엔 없었다.    

 

한편, 인조는 피난을 떠나면서 명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거대한 군사 병력이 일으킨 쿠데타도 아니고, 이괄을 제거하려고 자신들이 판 무덤에 들어왔음에도 명명에 진압 지원군을 요청한 셈이다. 정말 별꼴이다. 심지어 임진왜란이 끝난 지 30년이 채 안 됐는데 왜관에 거주하고 있던 왜병에게도 구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능력이 안 되면 오르지 말아야 할 자리가 바로 왕위인데, 왜놈들에게 우리 땅이 유린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군사를 요청하는지 무뇌無腦의 군주가 아닌가 말이다!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조선 선조 4년(1571년),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시詩가 조선 문단을 발칵 뒤집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시의 주인공이 여덟 살밖에 안 되는 여자아이였기 때문이다. 허엽의 딸 허초희,즉 허난설헌이 쓴 시로 밝혀지면서 이 천재 시인에게 혀를 내둘렀다. 더구나 조선은 남자 위주의 사회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어린 여자아이의 작품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정유재란 때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오명제라는 학자가 신라부터 조선까지 100여 편의 아름다운 한국 시를 엮어 중국에서 출판을 했다. 당연히 여기에 오늘의 주인공인 허초희의 시도 포함되었다. 이 책이 중국 대륙에 허난설헌 한류 열풍의 기폭제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어. 허초희는 허난설헌의 본명이다. 허균은 대륙의 사신을 접대하던 중 누이 허난설헌의 폭발적 인기를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저기, 허균님아! 우리 사람 당신 누나 시 너무 사랑한다 해! 제발 당신 누나 글 좀 더 구해달라 해. 금은보화 필요 없다 해. 돈과 미인은 우리나라가 더 많다 해.” “아? 그러하오?” “지금 우리 사신단 완전 피곤하다 해. 중국 문단에서 억만금을 주고라도 당신 누나 책 구해오라 해서 완전 피곤하다 해. 지금 출간된 책들이나 미발표작도 다 구해달라 해" 


이렇게 허균은 <난설헌집蘭雪軒集>을 중국 사신들에게 전해주었고, 이는 곧 대륙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이다. 중국 대륙의 베스트셀러인데 일본도 그 영향을 비켜갈 리가 있겠는가? 일본 열도 역시 허초희 아니, 허난설헌의 시라는 쓰나미를 당연히 맞게 되었다.

 

 

기록의 이면을 읽어야 진정한 역사 공부가 된다

 

책은 광개토대왕의 정복전쟁에서 시작해서 정정화 애국지사의 이야기까지 총 35편이 이어진다. 역사 시험에서 고득점을 노리려면 당연히 임진왜란이 일어난 연도나 조선 왕의 계보를 달달 외워야 한다. 하지만 왜 임진왜란이 발생했는지, 당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등을 파악해야 진짜 역사 공부를 한 것이다. 이 책이 바로 이런 점을 우리들에게 여실히 보여준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게 펼쳐낸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룬 자들에게 지배받는 것이다"

-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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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디바이스 - 우리가 모르는 아이폰의 숨은 역사
브라이언 머천트 지음, 정미진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자, 오늘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혁신적 제품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터치로 조작하는 와이드스크린 아이팟입니다. 두 번째는 혁신적인 휴대폰이지요. 세 번째는 획기적인 인터넷 기기입니다. 아이팟, 아이폰, 인터넷 기기..... 뭔지 감이 오십니까? 이 세 가지 기기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 기능들을 모두 합친 원 디바이스로, 우리는 이것을 아이폰이라 부릅니다" - 스티브 잡스

 

 

아이폰이 탄생하기까지를 이야기한다

 

책의 저자 브라이언 머천트세계적인 문화 잡지 <바이스Vice>의 과학 및 기술 전문 채널 '마더보드'의 기자이자 공상과학소설 사이트 테라폼Terraform의 설립자. 가디언, 슬레이트, 패스트컴퍼니, 디스커버리, GOOD, 페이스트, 그리스트 등에 다양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아이폰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볼리비아의 고지대에서 중국 선전의 거대 도시까지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모두 다녔으며, '원 디바이스'를 사용해 이러한 활동들을 정리했다. 8,000여 장의 사진을 찍었고, 200시간의 인터뷰를 기록했으며, 수백 개의 메모를 남겼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각기 다른 아이폰 세 대를 경험했다. 화면이 깨져 수리를 세 차례나 해야 했던 아이폰 6, 중국 암시장에서 샀다가 칠레에서 도둑맞은 아이폰 4s, 그리고 출시일에 덥석 구입한 아이폰 7이 그것이다.

 

이 책은 아이폰을 만든 고독한 발명가가 아니라 수천 명의 혁신가들을 이야기한다. 창조의 비밀은 신화화된 한 개인의 능력을 넘어 오랫동안 축적된 역사와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적인 협업에 담겨 있음을 역설한다. 즉 세상에 스마트폰이 그 얼굴을 드러내기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무명의 과학자들과 애플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찬란한 이 제품이 만들어지 는데 일조한 여러 분야의 사람들까지 모두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케이블들을 쫓아가보려고 한다. 폰 내부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아이폰을 추적해볼 것이다. 좀 더 개선되고, 좀 더 몸으로 느껴지는 기술과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아주 흔해서 우리가 당연히 여기고 있는, 단 하나의 기기에 집약된 과학적 발전을 살펴볼 것이다. 아이폰은 이전 시대의 경이로운 발명품들, 그리고 그것들이 주는 통찰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중 일부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이것은 현대 기술의 발전을 이끄는 엔진이 얼마나 깊게 연관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될 수도 있다" - '아이폰 분해' 중에서

 

 

 

 

스마트폰으로 가는 길

 

다른 모든 획기적인 기술처럼 스마트폰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땀과 아이디어, 영감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기술적 진보가 증가하며 축적되고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결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 다. 그렇다. 우리의 삶에 도움되는 기술은 좀처럼 갑자기 어디선가 모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희박하다.  

 

"아이폰으로의 진화는 하나의 다중 우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술의 끈은 한 개의 목적지로만 이어져 있지 않았어요. 각각의 혁신은 일련의 새로운 혁신을 이끄는 법입니다" - 크리스 가르시아, 팰로앨토의 컴퓨터 역사 박물관장

 

결국 스마트폰과 관련된 아이디어들과 그 발전에 관한 스토리는 한 세기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 스마트폰 1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서로 결합되는 기본물질들과 원재료애 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이는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한다.

 

 

핵심 부품

 

불편한 얘기이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다. 치명적인 환경에서 원시적 도구로 일하는 광산 노동자들이 우리 폰의 원료를 생산한다. 아이폰의 많은 기본 재료들은 대부분의 아이폰 사용자들이 단 몇 분도 견뎌내지 못할 환경에서 채굴된다. 가난하지만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은 금속의 수요가 있는 한 계속해서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수요가 있으면 채굴 회사와 중개인은 금속을 얻을 방법을 계속 찾을 것이다. 볼리비아와 같은 나라들의 정부는 산업을 규제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도 광산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아이폰의 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폐가 병드는 매우 힘든 악조건의 노동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볼리비아의 포토시에 위치한 세로 리코 광산이 그런 예다. 

 

이 광산의 별칭은 '사람 잡는 산'인데, 1500년대 중반부터 채굴이 시작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리코 광산을 채굴하려고 케추아 토착 인디언들을 징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곳은 수백 년 동안 스페인 제국에 자금을 댔다. 16세기 전 세계 은의 60%가 여기서 생산되었다. 광산이 호황을 누린 17세기엔 포토시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오늘날 세로 리코는 너무도 심하게 파헤쳐져 전체 산이 무너져 내리면 포토시가 없어질 수 있다고 경고음을 낼 정도다. 하지만 아직도 약 1만 5천 명의 광부들(인타깝게도 이중 수천 명은 여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들이다)이 점점 얇아지는 벽에서 주석, 납, 아연, 그리고 약간의 은을 캐매 일하고 있다.  그 주석 중 일부가 바로 아이폰 안에 있을 것이다.

 

 

고릴라 글라스의 탄생

 

그리 크지 않은 스마트폰이 손아귀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는 경우, 심지어는 떨어지는 충격에 의해 화면이 크게 손상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폰의 화면은 왠만해서는 파손되지 않는다. 유리가 놀랍도록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디서 언 것일까? 1950년대 초반, 코닝의 연구원인 돈 스투키가 세라믹 유리, 일명 코닝웨어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 연구를 거듭하면서 깨지지는 않았지만 불투명했기에 이를 더 강하고 투명한 유리를 만들자는 '머슬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고릴라 글라스는 퓨전 드로라는 과정을 통해 생산된다. 코닝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유리는 매우 얇아서 미크론 단위로 측정된다고 한다. 거의 알미늄 호일 정도의 두께다. 코닝의 고릴라 글라스 공장은 담배 밭과 인구 8천명의 켄터키주 해로즈버그의 가축 목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수백 명의 근로자와 100명 가량의 엔지니어가 있다.

 

애플과의 계약으로 코닝의 회생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폰의 성공에 힘입어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든 삼성, 모토롤라, LG, 그리고 기타 휴대폰 제조사들도 코닝사의 제품에 의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폰이 잠자던 기술을 깨우긴 했지만, 이미 그곳에는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스크래치 방지 기술을 위해 문 닫힌 실험실에서 수십 년을 기다린 머슬 프로젝트가 있었다. 세상은 점점 더 많은 터치스크린 위에서 돌아간다.

 

 

터치 기술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멀티 터치를 발명햇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애플이 정전식 터치나 멀티 터치 둘다 발명하지 않았다. 터치스크린은 1970년 초에 만들어졌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덴마크 엔지니어 벤트 스텀프는 슈퍼 양성자 싱크로트론이라는 이름의 입자가속기 제어센터를 관리하기 위해 터치스크린을 만들었다.

 

2001년, 스타트업 핑거웍스는 마우스패드 크기만한 아이제스처 넘패드를 출시했다. 이 장치는 제스처 인식 기능이 내장되어 패드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센서가 그 움직임을 추적했다. 이후 발전을 거듭해 핑거웍스는 주요 상을 휩쓸기 시작했다. 2005년 초, 회사의 아이제스처 패드는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이때에도 여전히 애플 경영진은 핑거웍스의 기술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기술과 제품, 심지어는 예술 작품까지도 치열한 다방면의 노력이나 때로는 세대 간의 협력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 두뇌는 그런 주위 환경까지 철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터치 기술의 개척자나 무형의 결과가 아닌, 유레카의 순간과 정당한 백만장자만을 원한다. 스마트폰의 발명자는 스티브 잡스라고 인식하는 것처럼 말이다.

 

 

 

 

원 바이스, 협업의 부산물이다

 

책은 아이폰이 탄생하기까지 제품의 기술과 원재료 등에 대한 스토리를 살펴본다. 책의 핵심 주제는 아이폰, 즉 애플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심도 깊은 협력과 지속적인 공동 노력이 없다면 아무리 작은 진정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들의 밥상 위에 올라온 온갖 반찬과 밥, 그리고 국들 또한 수많은 농,어부, 목축산업자, 그리고 유통업체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아이폰의 탄생 비화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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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연표 - 예고된 인구 충격이 던지는 경고
가와이 마사시 지음, 최미숙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일본이 저출산, 고령사회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그 실태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직업상 국회의원이나 관료, 지방자치단체의 수장, 경제계의 중진 등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데 정책 결정에 큰 영향력을 갖는 그들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심지어 인구 감소 문제의 대책을 담당하는 각료조차 마찬가지다. 먼저 저출산 문제를 보자. 유감스럽게도 저출산 추세는 멈출 기미가 없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 양육 지원책이 성과를 거두고, '합계출산율'이 다소 오른다고 하더라도 일본에서 출생아 수가 더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또 한편, 고령화 문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제동을 건다'라는 표현은 뜻밖의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예컨대 노인들이 "나이 든 사람은 사라지라는 말이냐"라고 반발할 수도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인구 감소가 초래할 일본 사회의 충격파

 

책의 저자 가와이 마사시1963년 생으로 현재 산케이신문 논설위원과 다이쇼대학 객원교수로 인구정책, 사회보장정책 분야의 전문가다. 내각관방 유식자회의 위원, 후생노동성 검토회 위원, 농수성 제3자위원회 위원, 다쿠쇼쿠대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2014년 '화이자 의학 기사상' 대상을 수상했고, 주요 저서로 <일본의 저출산 백년의 미주>, <중국인국가 일본의 탄생>, <의료백론>, <지방소멸과 도쿄노화> 등이 있다.

 

그는 정부나 정부 관계기관이 공표한 각종 데이터를 오랫동안 수집하여 열심히 분석하고 연구해왔다. 본문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그 방대한 데이터가 보여주는 일본 사회의 미래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저출산은 경찰관, 자위대원, 소방관 등 젊은이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인력 확보에 큰 어려움을 준다. 국방, 치안, 소방 기능이 약화되면 사회는 급격히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인구 감소와 관련한 하루하루의 변화는 지극히 미미하다. 그래서 인구 문제에 대해 '오늘은 어제와 어떻게 다른가'를 이야기하기는 어렵기에 보통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 무관심이 진짜 문제다. 서서히 숨통이 조여 오듯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이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사태를 '고요한 재난' 이라고 명명했다.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인구 감소 캘린더)에서는 2017년을 기범으로 향후 100년 동안에 벌어질 일을 연대순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어서 제2부(미래 세대를 구할 열 가지 처방전)에서는 1부에서 살펴본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캘린더에 대응한 '10 가지 처방전'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에서 벌어질 지방 소멸, 사회 파탄, 국가 소멸이라는 미래상을 남의 일로만 여길 게 아니라 한국도 이를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할머니 대국과 고독사의 증가

 

저자는 2017년의 일본을 '할머니 대국'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령자의 고령화 문제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핵심적인 사실이 있다. 바로, 그 주역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남성보다 여성이 장수하기에 고령자의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여성 고령자의 비율이 커지기 때문이다.

 

총무성의 통계 지표에 따르면 고령자 중 남성은 1,499만 명, 여성은 1,962만 명으로 여성 쪽이 463만 명 더 많다. 여성 전체 인구 중 고령자의 비율이 30.1%로, 30%를 처음 돌파했다. 이미 일본인 여성 3명 중 1명이 고령자인 셈이다. 따라서 2017년을 약간 과장되게 정의하면 일본이 ‘할머니 대국’ 으로 바뀐 해라고 할 수 있다.

 

혼자 생활하는 여성 고령자의 증가는 갈수록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여성은 자녀가 독립한 뒤 남편과 함께 살다가 남편이 사망한 후 홀로 지내는 패턴이 늘어난다. 하지만 홀로 생활을 시작한 여성 고령자 또한 신체 능력이 쇠퇴해지면서 언젠가는 혼자서 생활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게 된다. 결국엔 자녀들의 집으로 들어가 의지하거나 고령자를 위한 시설에 들어가야 한다. 특히, 무의탁 노인의 경우 생계에 어려움을 겪다가 고독사할 가능성이 높다.

 

 

국립대학, 도산 위기에 처한다   

'대학 도태의 시대'가 현실로 다가온다.  일본의 대학 진학자는 고등학교 졸업생 또는 재수생이 대다수를 점한다. 따라서 18세 인구의 규모를 보면 진학자가 어느 정도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18세 인구의 규모를 파악하는 일은 간단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18년 전의 출생아 수를 보면 된다.

 

그렇다면 18세 인구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2009년 이후로 120만 명 안팎에서 크게 변동이 없었지만, 2018년 무렵부터 다시 감소하기 시작한다. 2024년에는 약 106만 명 선에서 잠시 유지되다가, 2027년부터 다시 크게 감소한다. 이처럼 18세 인구 감소는 대학 입장에서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가 된다. 

 

최근의 연간 출생아 수는 100만 명 정도다. 이들이 18세가 되는 2032년에는 100만 명 아래로 떨어져 약 98만 명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불과 15년여 만에 20만 명 가까이 감소한다. 만약 그 절반이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치면 대학 진학자는 10만 명이 감소한다. 입학 정원 1,000명 규모의 대학 100군데가 신입생을 받지 못한다는 계산이다. 

 

 

장래의 어머니가 감소한다

 

저출산 문제를 놓고 정치인이나 전문가들이 다양한 제언을 풀어 놓는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 저출산화에 제동을 거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설령 저출산화가 멈춘다 하더라도, 그것은 먼 미래의 일일 것이다. 베이비붐이 올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잠깐 베이비붐이 일어나는 정도로는 일본의 저출산화 흐름이 바뀌진 않는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합계출산율이 오른다 해도 출생아 수의 증가로 이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님을 봐야 뽕을 따지'라는 말처럼, 마찬가지로 결혼을 해야 신생아를 출산할텐데 편한 삶을 즐기려고 결혼을 하지 않으니 아기의 출생 감소로 연결된다. 저출산화의 영향으로 '미래의 어머니'가 될 여아女兒 수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과거 저출산화에 따른 출생아 수의 감소로 이미 여아의 수가 줄어들었고, 장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 수가 크게 감소한 상황이다. 이것이 앞서 이야기한, 저출산 · 고령화가 멈추지 않는 이유다. 출산 시기에 있는 여성 인구의 장래 추계를 보면 이 점을 뚜렷이 알 수 있다.

 

 

간병인 자체도 간병을 필요로 한다 

전후戰後 일본에서는 핵가족화가 진행되어 왔지만, 저출산과 고령화가 거듭되면서 과거에 없던 문제가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노노(老老) 케어' , 즉 노인이 노인을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노노케어는 이미 한국 사회에도 노령자 부양 지원 제도로 도입, 정착되고 있다.

 

2025년에는 세대주가 65세 이상인 고령자 세대가 약 2,015만 세대, 이 중 75세 이상이 1,187만 세대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서 70%가량은 혼자 생활하거나 부부 모두 고령자인 세대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 노노케어는 간병받는 쪽도 간병하는 쪽도 모두 고령자라는 의미인데, 그 대상이 배우자만이 아니라 부모나 자녀인 상황도 있다. 간병하는 사람 자신이 간병이나 지원이 필요한 사람인 경우도 적지 않다.

 

 

수혈용 혈액도 부족하다

 

지금까지는 10~30대의 헌혈로 혈액 공급이 이뤄지고 50세 이상이 이를 이용해왔다. 헌혈이 가능한 연령은 16세부터 69세까지인데, 저출산화에 따라 이 연령층의 인구가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5년에는 총인구의 67.4%였는데 2050년에는 57.6%가 된다. 특히 근래 젊은 층이 헌혈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후생노동성이나 일본적십자사 등은 20~30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헌혈 독려 활동도 좋지만, 이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저출산 · 고령화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크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혈액제제를 사용하는 환자는 계속 늘어나고 헌혈할 수 있는 젊은이의 수는 줄어든다. 혈액제제는 보관이 극히 여렵기에 헌혈하는 사람을 꾸준히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요컨대, '병원에 가면 살 수 있다'라는 지금까지의 상식이 더는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아무리 명의名醫가 기다리고 있어도, 아무리 최첨단 의료기기가 갖춰져 있어도 수혈용 혈액이 부족하다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다. '병원에 가면 살 수 있다'라는 상식의 붕괴는 수혈용 혈액의 부족 탓만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는 모든 각도에서 의료에 대한 국민의 상식을 깨부순다.

 

 

빈집이 증가한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추산(2016년)에 따르면, 2033년 전체 주택 수가 약 7,126만 호로 늘어나고 빈집 수는 거의 2,167만 호에 가까워 빈집 비율이 30.4%까지 상승한다고 한다. 즉 전국 주택의 약 3채 중 1채가 빈집이 된다는 소리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경제 법칙에서 말하듯이, 빈집 수가 증가하면 경관을 해칠 뿐 아니라 붕괴의 위험이 커지고 범죄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흉물스럽게 방치된 빈집들 탓에 마을 전체의 이미지가 나빠지면 빠져나가는 주민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비단 인구가 크게 줄어든 지방 특유의 문제가 아니다. 대도시에서도 확실히 빈집이 늘어났다. 전철역 인근은 덜하지만, 전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더 들어가야 하는 주택지에는 벌써 빈집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지어진 지 오래된 낡은 주택은 아무리 헐값에 내놓아도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도쿄 23개 구내의 조용한 주택가에서도 종종 빈집이 발견된다. 앞으로는 도심의 주상복합 빌딩에서도 입지에 따라서는 빈 곳이 눈에 띄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땅값이 하락하고, 대출을 해준 은행이 파산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경제활동인구 감소에 대한 대책

 

일본은 인구 감소를 초래하는 출생아 수의 감소, 고령자 수의 증가, 그리고 사회의 기둥인 근로 세대의 감소라는 각각 원인이 다른 세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게다가 이런 현상이 전국에서 일률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인구 감소와 저출산, 고령화에는 폭넓은 정책이 요구된다. 그 대응책은 수십 년 앞을 내다봐야 하고 효과가 나타나려면 몇 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한 정권이 그 모두를 완결할 수는 없다. 정권 몇 번이 아니라 몇 세대에 걸쳐 착실하게 지속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현재의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세대에 밀어닥친 최대의 과제는 사회의 기둥, 즉 노동력 부족의 해소다. 

 

 

10 가지 처방전

 

고령자 줄이기

24시간 사회 탈피

비거주지역 명확화

행정구역을 뛰어넘는 지역 합병

철저한 국제분업

장인의 기술 활용

국비 장학생 제도로 인재 육성

중장년의 지방 이주 추진

세컨드 시민 제도 창설

셋째 아이부터 1,000만 엔 지급

 

 

꿈이 있는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인구 감소, 이는 명백한 팩트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우리들에게 서서히 다가온 인구 감소 현상은 미래에 대한 위기감이 부족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비록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할지라도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지에 대해 너무나도 수수방관한 탓이다. 무릇 사람이라면 장래가 불안하다고 느껴지면 자손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 출산장려금이라는 단기 미봉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는 젊은 세대가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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