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아이디어는 발견 이다
박영택 지음 /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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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 '무언가 독창적인 것'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무언가 새롭고 독창적인 것'이 창의성의 본질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것을 스스로 생각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다. - '프롤로그' 중에서

 

 

여섯가지 창의성 발상 코드

 

이 책의 저자 박영택은 성균관대학교 시스템경영공학과 및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국 맨체스터 경영대학원 명예 객원교수와 중국 칭화대학교 경제관리대학 객원교수, 한국품질경영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교내 봉사로는 산학협력단 단장, 창업보육센터 센터장, 품질혁신센터 센터장, 시스템경영공학부 학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학의 우수강의를 외부에 개방하는 K-MOOC 사업에 참여하여 <창의적 발상: 손에 잡히는 창의성> 과목을 운영한 바 있다.

 

그는 디자인, 비즈니스, 문화예술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영역의 수많은 창의적 사례들을 모으고, 거기에 나타나는 공통적 사고패턴을 추출,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창의적 발상의 보편적 사고 패턴을 일반인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단순화해서 정리했다. 즉 제거(Subtraction), 복제(Multiplication), 속성변경(Attribute change), 역전(Reversal), 용도통합(Task unification), 연결(Connection) 등의 6가지로 정리하고, 기억하기 쉽도록 'SMARTConnection'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책은 여섯 가지 발상 방법에 따른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한다. 줄 없는 줄넘기, 우산대만 남긴 우산, 때 빼지 않는 세제처럼 구체적인 창의력 발상 코드별 구체적인 제품 사례는 물론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시스템, 주차 공간 여유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주차장과 같은 시스템, 서비스의 사례 등도 함께 소개한다.

 

 

 

 

제거

 

애플의 디자인 철학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정교함이 궁극에 이르면 단순함이 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세계적인 IT 기업 애플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단순함'이다. 창의성을 대변하는 추상파 화가 피카소의 작품을 살펴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즉 피카소의 추상화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단순해졌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고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애플대학의 랜디 넬슨 학장도 피카소의 석판화 연작 황소를 이용해 애플이 추구하는 가치를 설명한다. 스티브 잡스의 창의성은 바로 화가 피카소로부터 배운 창의적 모방인 셈이다.

 

책은 핵심이 제거된 상품들을 소개한다. 줄 없는 줄넘기점프스냅사가 특허로 등록한 상품이다. 어떻게 보면 멍청한 상품처럼 보일지 몰라도 손목을 돌리면 마치 줄이 돌아가는 것처럼 쌩쌩 소리가 난다. 날개 없는 선풍기는 기존의 선풍기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영국 다이슨사의 혁신 상품이다. 또 제임스 다이슨 디자인상을 수상한 '에어블로우 2050'은 방수천이 없는 지팡이 우산이다. 우산대 안에 장착된 작은 모터를 돌려서 우산대 위로 공기를 뿜어냄으로써 빗방울이 옆으로 떨어지도록 한다. 이 제품이 상용화 되려면 작은 모터의 완성이 핵심일 것이다. 아마도 디자이너는 2050년 쯤에는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복제

 

면도기의 진화를 살펴보자. 목재의 겉면을 다듬을 때 사용하는 대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안전면도기가 일상으로 맨 처음 들어왔다. 과거엔 날이 무뎌지면 이를 숫돌레 갈아서 날을 세웠다. 지금은 어떠한가? 질레트 면도기는 날만 교체한다. 질레트는 면도날이라는 교체용 소모품을 만들어냄으로써 돈방석에 앉은 셈이다. 이게 바로 창조성이다. 질레트 면도기는 계속 진화하여 2중 면도날, 삼중 면도날 등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갔다. 패스트푸드의 프랜차이즈 비즈니스 또한 복제의 개념이 적용된 사업이다.

 

 

속성변경

 

새벽에 목이 말라 잠에서 깨어 냉장고 문을 열면 실내등이 켜지는 경험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정지해 있던 에스컬레이터에 이용자가 올라타는 순간 발계단이 움직이고, 또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려고 렌지에 올려놓은 주전자에서 물이 끓으면 소리가 난다. 이처럼 우리들의 일상엔 외부 조건에 따라 내부 속성이 변하는 경우를 경험한다.

 

매우 흥미로운 제품도 있다. 이는 영국 십대 청소년들이 과학 경시대회에서 수상한 것으로 성볍 균을 만나면 색깔이 변하는 콘돔이다. 제품명은 '에스티아이'로, '성접촉 감염을 감시하는 눈'이라는 뜻을 지녔다. 즉 콘돔 고무에 함유된 분자의 색갈이 변하는 것이다. 클라디미아의 경우엔 녹색, 헤르페스엔 노란색, 매독엔 파란색 등으로 변한다. 말하자면 '에스티아이'는 스마트 콘돔인 셈이다.

 

 

역전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내품는 중동에서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을 개최한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다. 카타르는 축구장 내에 대형 에어컨을 여러 대 설치해 최상의 경기력을 보장하겠다는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개최지로 최종 낙점받았던 것이다. 사실 이런 개념은 이미 세계 최대의 카지노 기업 샌즈 그룹의 창업자 셸던 아델슨이 "사막 한가운데 물의 도시 베니스를 만든다"는 역발상을 통해 입증되었다. 그렇다. 라스베이거스다. 

 

한국의 쌍용건설이 시공을 맡았던 싱가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하늘 위에 배를 띄운다"는 역발상으로 건축되었다. 57층 건물 스카이파크에 수영장을 만들어 이용객의 짜릿한 경험을 유혹한다. 케첩의 마지막 한 방울도 버리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하인즈 사는 2002년 케첩 용기를 거꾸로 새워두는 형태로 개발했다. 이로 인해 출시 첫 해에 전체 케첩 시장이 2%의 성장율에 그쳤지만, 하인즈의 케첩은 6%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용도통합

 

최악의 재난사고로 인식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은 영국의 타이태닉호 침몰이 아닐까 싶다. 1912년 4월 12일, 2200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우고 미국 뉴욕을 향해 첫 항해를 떠났다. 4월 14일 밤, 대서양에서 거대한 빙산을 만나 침몰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2224명의 승객과 승무원 중 생존자는 711명, 사망은 1513명으로 집계되었다.

 

2015년 발표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12월호의 논문에선 빙산을 '재앙의 원인'이 아닌 '인명 구조의 해결책'으로 인식했다면 그 결과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내용을 다루었다. 즉 수면 위에 떠 있던 빙산의 길이는 120미터가 넘었으므로 빙산 위의 평평한 곳에 구명보트로 승객들을 안전하게 이동시킬 수 있었으며, 심지어 타이태닉호가 얼마간은 항해할 수 있었으므로 빙산 가까이 선체를 댔다면 승객들이 그 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위험물이 아닌 유용한 구조물로 보는 시각, 이것이 바로 창의력 발상코드 '용도통합'이다.

 

 

연결

 

창의 발상 코드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가 바로 '연결'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성화 점화식은 역대 올림픽 중 최고의 장면으로 손꼽힌다. 계단이나 리프트를 이용해 성화대 상단으로 올라가 불을 붙이는 대신 여기선 불화살을 쏘아서 점화했기 때문이다. 양궁하면 한국인데, 4년 전에 개최했던 88 서울올림픽에선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겉보기엔 별 상관 없어 보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요소를 결부시키는 게 '연결'이다.

 

 

한국의 홍대 앞에는 약국처럼 영업하는 술집이 있다.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서면 '조제실'이라고 적힌 곳에 흰색 가운을 걸친 남자들이 뭔가를 제조하고 잇다. 여기저기 약 봉투와 약병 등이 발견된다. 흡사 약국 내부의 모습이다. 분위기는 그렇지만 실상은 일정 금액을 내면 무제한으로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술집이다. 안주로 제공하는 젤리도 약 봉투에 담아준다. 주인장의 말이 걸작이다. '한 잔 술이 명약'이라는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가게는 성업 중이다. 지상파 방송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어서 주말엔 한두 시간 대기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

 

 

 

 

뜻밖의 발견을 많이 마주쳐라

 

창의성 이야기에서 늘 빠지지 않는 게 있다. 바로 3M의 포스트잇이다. 강력 접착제의 실패작인 접착력이 떨어지는 제품을 접착식 메모지로 만들어 이 회사의 효자상품이자 대박상품으로 거듭났다고 말한다. 그렇다. 창의성 분야에선 이를 '세렌디피티(뜻밖의 발견)'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우연한 행운을 그대로 두면 만날 확률이 더욱 줄어들기 마련이다. 로또 복권을 구매하지 않는 사람에겐 당첨이라는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살펴본 창의 발상 코드로 행운을 만날 확률을 높이라는 게 책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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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창업 방랑기 - 3년 78개국이 알려준 돈의 달고 쓰고 짠맛
정윤호 지음 / 꼼지락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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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실패의 연속이다. 내 여행 또한 실패와 거절의 연속이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대박 성과를 낸 경험은 드물다. 수많은 실수와 실패로 가득 차 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만난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내 여행은 채워졌다. 분명 올해에도 수많은 실패들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이뤄가는 과정은 나를 실연에 빠지게 하고 낙담하게 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 '프롤로그' 중에서

 

 

세계 78개국 창업 방랑기

 

이 책의 저자 정윤호는 대학에서 기계공학과 재료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창업학을 공부했다. 해외 마케팅 회사에 입사해 창업 여행의 기초가 되는 지식을 체득했다. 퇴사 후 소상공인을 위한 착한 광고 플랫폼, 청소년에게 창업교육을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을 모델로 창업한 바 있다. 책의 내용은 3년 2개월 동안 78개국 여행을 하며 해외창업을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한 모험담을 담고 있다. 여행 후 현재는 직장인과 청소년들에게 여행과 창업 강의를 하며 남미 창업을 계획하고 있다. 삶의 매 순간 사상가처럼 생각하고 혁명가처럼 행동하며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돈의 단맛, 돈의 쓴맛, 돈의 짠맛 순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3년 2개월 동안 멕시코, 페루, 인도, 이집트, 브라질, 아르헨티나, 영국, 모로코, 베트남 등 여러 나라를 돌며 해외창업을 위한 정보를 얻고자 방랑길에 오른 모험담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여행 중에서 발견한 물건이나 음식 등이 한국에서 대박 조짐이 보인다고 생각이 들면 여지없이 이를 실제로 창업에 연결했던 것이다.

 

저자의 창업 성공과 실패담을 살펴보면, 중국 도매시장에서 한눈에 혹해 국내로 주문해버린 잠자리 장난감 3천 개는 여전히 처치가 곤란한 재고로 남아 있고(실패), 콜롬비아 슬럼가인 메데인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열어 민박집 사장님이 돼보기도 하고(성공), 브라질에서 유명 브랜드의 신발을 블로그로 주문받아 해외 직구를 했고(성공), 베트남에서 현지인 동업자를 구해 컵 빙수 가게를 차릴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실패). 이럴지라도 신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라서 더욱 정은 간다. 왜냐하면 평범한 우리들이 대부분이기에.

 

 

 

 

잠자리 장난감

 

시장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중국 칭다오 시장에는 장난감처럼 보이는 철사 뭉치 제품이 있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거짓말을 보태면 100가지 모양으로 변했다. 꽃도 되었다가 항아리도 되고 접으면 납작해지고 이러한 수많은 변형을 판매자가 예술에 가깝게 시연한다. 놀라운 건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시연하는 손보다 더 빠르게 설명을 한다. 거리의 예술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반면, 그 옆의 철사 공예 상인은 '너 때문에 하루가 망쳤다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중국엔 수백 개의 도매시장이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이우, 광저우, 선전이다.  이곳은 특정 구역이 아니라 시 전체가 거대한 도매시장이다. 한번 가본다면 입이 쩍 벌어질 것이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구매자가 몰려든다. 저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우 도매시장을 찾아갔다. 한국에서 제품 판매를 지원해줄 파트너의 요청이 있어서다. 3일 안에 한국에서 팔 수 있을 만한 제품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적은 예산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제품을 한참 찾던 중, 갑자기 그의 시선에 들어온 상품이 있었다. 사람들이 한 손에 잠자리 같은 장난감을 들고 나오더니 날리기 시작햇다. 파닥파닥하는 소리가 재미있고 날아가는 모양이 나비 같기도 잠자리 같기도 했다. 구매자의 시선을 끌고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마침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동일 제품이 인터넷 상에서 2천원에서 1만원 사이에서 거래가 형성되고 있었다. 1기당 10위안(약 1500원)에 가격흥정을 해서 총 3천기 물량을 주문했다. 그러나, 전량을 팔기로 한 업체가 제품을 받아보더니 1천기만 받겠다고 해서 2천기는 재고로 방안에 수북히 쌓이고 말았다.

 

 

 

콜롬비아 메데인 갱스터 민박 

 

분명 해외 창업은 국내 창업보다 더 힘들고 어렵다. 그럼에도 왜 나는 해외 창업을 하고 싶은 것일까?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머물 때 그곳 야경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래서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당장 이 생각을 구체화시키려고 방안을 강구했다. 게스트 하우스를 열기로 결심했다. 이틀 정도 동네를 뒤져 임대를 구하는 집을 발견했다.

 

친구의 통역 덕분에 산토도밍고 케이블카 정류장 정면에 있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초역세권이었다. 고객용 침대 두 개를 만들고 분위기용 물고기등을 달았다. 숙소가 완성되었다. 블로그에 '메데인 갱스터 민박'으로 등록했다. 고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월세 13만 원에다 집기 투자비 등을 합쳐 초기 투자금 40만원으로 대박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베트남 빙수 사업

 

완벽히 준비된 창업은 없다. 물론 창업 전에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한 사전활동은 필요하다. 하지만 성공한 분들을 봐도 모든 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시작한 경우도 많다. 완벽한 대비보단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변화할 자세가 필요하다. 두 명의 파트너와 함께 베트남에서 컵 빙수를 팔기오 결정했다. 한 명은 한국인, 도 다른 한 명은 베트남 현지인이었다. 서로의 지분은 공평하게 3분의 1씩 갖기로 했다.

 

하지만 각자의 맡은 일은 달랐다. 저자와 한국인 파트너는 창업 비용을 책임지고, 베트남 파트너는 판매 및 운영을 맡기로 했다. 창업비용 6백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부담감이 있긴 했지만, 실패할지라도 투자비 이상의 경험이 쌓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이 쉽게 술술 풀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른 문화권 사람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문화의 차이가 서로의 신뢰에 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사업에서 빠지기로 결심했다. 신뢰가 무너지면서 감정이 이성을 허물어뜨린 탓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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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미혼출산
가키야 미우 지음, 권경하 옮김 / 늘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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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가 임신이라니... 겨울이 오면 마흔이다. 어느새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깊은 한숨에 유리창이 동그랗게 흐려졌다. 미야무라 유코는 특급열차의 창에 이마를 기댄 채 물이 가득 찬 논의 녹색을 보고 있다. 미즈노는 겨우 스물여덟이다. 그리고 어리고 예쁜 애인이 있다. 술에 취하기는 했지만 분명 서로의 합의 하에서였다. 이대로 아무 말 없이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애인도 없다. 나이를 생각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 '프롤로그' 중에서

 

 

40세 직장 여성 유코는 미혼 출산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작가 가키야 미우1959년 효고현 태생으로, 메이지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하고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근무하다 2005년 <회오리>라는 작품으로 제27회 추리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는 <며느리 그만두는 날>,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드립니다>, <노후자금이 없습니다>, <남편의 그녀>, <리셋>,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IF 안녕이라 말하지 못하는 이유>, <피난소>, <70세 사망법안 가결>, <남편 무덤에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정년퇴직 아저씨 개조계획>, <시어머니의 유품 정리는 사절합니다> 등이 있다.

 

그녀는 미스터리 추리소설부터 판타지, 사회풍자까지 장르와 소재를 넘나들며 폭넓은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청년 실업, 저출산율, 고령화, 여성 독립, 주택 마련 대출 등과 같은 시대적 사회문제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침으로써 현실감 있는 이야기에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를테면 그녀는 사회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번 작품 <40세, 미혼출산>이 가장 뛰어난 수작이라고 손꼽힌다. 이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마흔 나이를 눈 앞에 둔 직장여성이 임신을 했다. 이야기의 배경지가 일본이니 사실상 한국 나이론 아마도 사십대 초인 마흔 한두살이 아닐까 싶다. 여성들의 임신은 축하받을 일이자 존경받은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여성은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왜냐하면, 소위 아빠 없는 아이를 낳아야 할 미혼모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소설의 주인공인 미야무로 유코다. 시골태생인 그녀는 일본 도쿄에 소재한 대학을 졸업한 후 여행사에 취업해 현재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가임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이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임신 가능 시기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리적으로 수태가 가능한 지에 대한 것이다. 주인공 유코는 후자의 문제로 고민에 빠져있는 셈이다. 즉 여성들은 폐경이라는 생리적 변화를 맞이 하게 된다. 이리되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중지됨으로써 임신은 불가능하게 된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통상 48세 전후로 알려져 있다.

 

가임성이란 신체적으로 여성디 자신의 아이를 수태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가르킨다. 즉 비록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생리적 변화로 인해 도저히 임신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통상 한 국가가 출산율을 예상할 때는 가임여성들을 기준으로 판단해서 예측하게 된다. 최근의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경우 가임여성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서 조만간 인구절벽 위험에 노출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무대가 우리의 이웃인 일본임에도 저출산 위기에 빠진 한국의 현상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일본은 익히 알려진대로 저출산 고령국가의 본보기다. 가임 여성수가 계속 줄어든다면 '저출산과 노령화 현상'은 필연적으로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예외일 수가 없다. 한국의 경제 성장이 일본을 닮아가는 것처럼 저출산율 또한 그러하며, 오히려 일본을 능가하는 위기의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 우리집 이야기를 잠시 던져본다. 얼마 전에 최근에 결혼한 딸이 집에 놀러와서는 당분간 임신을 하지 않기로 남편과 협의를 마친 상태이므로 임신을 종용하지 말아 달라는 일종의 통보성 발언이었다. 임신을 늦추는 이유는 일시 중단했던 대학원 과정을 종료하기 위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보충 설명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아이를 가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에 딸의 발언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물론 여성이 임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으니 불필요한 오해는 마시길 바란다.

 

미혼인 여성이 임신할 수 있는 케이스는 뻔하다. 주인공 유코도 역시 그랬다. 그 스토리는 이렇다. 아시아지역 여행상품 개발차 그녀는 앙코르와트의 나라 캄보디아로 부하 직원과 해외출장을 갔는데, 평소 그녀가 귀엽게 보았던 부하여서 여독을 풀고자 와인 몇 잔을 함께 기울이게 되었다. 술이 문제였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같다. 아마도 이때가 바로 가임기였던 모양이다. 업무를 마치고 귀국한 후 며칠 지나서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소설의 스토리는 흥미롭게 진행된다. 먼저 임신에 대한 당사자의 인식인데, 유코는 자신의 나이를 감안할 때 자신의 임신을 처음이자 마지막의 기회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깊은 고민에 빠진 그녀는 친언니와 회사 동료에게 이를 상의해 보지만 그 반응은 의외로 매우 차가왔다. 친언니는 불륜으로 단정짓고 잘못된 임신이라고 지적하고, 불임으로 고생하는 회사 동료는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나아가 회사 상가가 그녀에게 보내는 야룻한 시선, 가족과 친국즐의 오해 등이 이어진다. 

 

OECD  국가들 중 최저 출산율을 자랑(?)하는 한국, 이런 와중에도 빈곤국 시절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자식을 해외로 입양 보냈던 그런 일을 지금도 여전히 자행하고 있으며 다문화 가정을 꼬깝게 바라보는 그런 문화를 가진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인구절벽이 코 앞에 펼쳐지는데도 미래에 대한 걱정은 부족하고 현재의 즐거움에만 탐닉하고 있다.

 

보라. TV를 켜면 이곳도저곳도 '먹자' 프로그램이요, 맛집 소개 프로그램 일색이다. 먹지 못해 죽은 귀신을 위로라도 하는 것인지 몰라도 국민들을 모두 돼지로 만들려는 프로젝트가 의도적으로 편성되는 게 아닌지 의심을 거둘 수가 없을 정도이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미래 한국의 건설에 조금이라도 도움되지 않을까 싶다. 언론들도 반성을 해야 한다. 이런 중차대한 사회적 이슈를 국민들이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나 역시 이런 문제점에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딸의 임신 연기에 대해서 '너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정도의 선심성 발언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은폐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작가 가키야 미우

 

 

기꺼이 미혼모가 될 수 있는가? 

 

작가 가키야 미우는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기꺼이 미혼모가 될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한 방울 한 방울의 빗물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이 미래를 위한 대비는 현재의 작은 노력들이 한데 모아져야 비로소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국가도, 사회도, 그리고 당사자인 독립된 가정들도 더불어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한국의 인구 절벽 현상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든다. 비록 소설이지만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기에 저출산에 대해 관심을 가진 모든 분들에게 소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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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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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로벌 공급망이 끊어졌다. 사람들은 사재기를 하기 시작했고, 하루 만에 슈퍼마켓 매대가 텅텅 비었다. 약탈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오자 모든 주요 도시에 병력이 배치되었다. 임박한 재앙의 조짐을 눈치 챈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곧 닥칠 어려운 시기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시고 지역에 자급자족 공동체를 세워 곧 쇄도하게 될 난민의 첫 물결을 피하려 했다. 이런 공동체 중에 '유토피아 실험'이라 불리는 공동체가 있었다. 오늘날 이곳에 사는 우리는 그저 '유토피아'라 부른다. - '비명' 중에서

 

 

단순한 실험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 딜런 에번스는 1966년 영국 브리스톨 태생으로, 사우샘프턴 대학에서 스페인어와 언어학을 공부한 뒤 2000년 런던 경제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낸 뒤 바스 대학에서 로봇 공학을, 웨스트 잉글랜드 대학에서 인공지능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한때 자크 라캉 스타일의 정신 분석가로 현장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라캉주의의 논리적, 과학적 유효성에 의문을 품은 뒤 라캉주의가 환자들을 돕기보다는 더 해친다는 결론에 이르러 결국 라캉주의와 결별했다.

 

2006년 문명 붕괴 이후의 지속 가능한 삶을 실험하겠다며 '유토피아 실험'을 계획한 뒤 웨스트 잉글랜드 대학 부교수직을 사임했다.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에서 실제로 감행한 이 실험은 그에게 심각한 정신질환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2008년 대학으로 돌아와 아일랜드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코크에서 다시 행동과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철학, 과학, 심리학, 문학을 넘나드는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한 그를 가디언지는 "실험복을 입은 알랭 드 보통"이라고 소개했다. 저서로 <유토피아 실험>, <감정>, <위험 지능>, <위약>, <라캉 정신분석 입문 사전>, <진화심리학 입문>(공저) 등이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가정하고 자원자들을 모집해 현대 기술 없이도 수천 년을 살았던 마야인들처럼 18개월 동안 실제로 자급자족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보려 했지만, 결국에는 자기 파멸이라는 파국으로 끝나버리고 만 '유토피아 실험'의 시작부터 종말, 그리고 그 이후를 다룬 흥미진진한 논픽션이다. 내용은 실화를 근거로,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이다.

 

 

이상향의 축소판을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품은 저자는 살던 집도 팔고, 대학교의 교수직도 사임한 후 스코틀랜드 북부 하일랜드의 허허벌판으로 향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풀리는 듯했다. 살면서 지어본 농사라고는 기껏 호기심에 길러본 대마초가 유일하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자급자족 공동체를 꾸리기에 적합하고 꼭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이 '유토피아 실험'에 지원했다.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조금씩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이 거주하는 천막집 유르트를 함께 지어 올리고, 나무 데크를 만들고,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아 장작을 패고, 밭을 갈고, 물을 긷고, 요리를 했다. 비록 사슴 사냥에 실패한 뒤 기르던 돼지를 잡아 바비큐 파티를 할지언정 문명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서도 그럭저럭 먹고살 만하다고 느꼈다.

 

"자원자들이 결국 내 신경을 갉아먹는 존재가 되리라고는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실험 초반의 평온함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 같은 것이었다. 피크 오일(석유 종말)이 임박했으며 문명이 '진짜로' 붕괴될 것이라고 확신한 한 자원자는 예상한 문명 붕괴의 7단계를 이야기할 때마다 즐거워했다. 공동체의 규칙을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위대한 영靈'의 명령에만 따른다는 괴상한 믿음을 지닌 또 다른 자원자는 무신론자인 저자와 모든 사안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실험은 처음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갔다.

 

 

 

 

대중의 광기狂氣와 '유토피아 실험'

 

스코틀랜드의 저널리스트 찰스 매케이는 자신의 저서 <대중의 미망과 광기>(1841년)에서 "인간은 무리로 있으면 광기에 빠졌다가 오직 한 명씩 천천히 제정신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16세기 중반 터키에서 네델란드로 건너 온 튤립은 구근식물이다. 꽃이 너무도 아름다워 상류층에서 이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너도나도 이를 과시용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양파처럼 생긴 구근 1개의 가격이 당시 주택 한 채를 구입할 수 있는 가격으로까지 폭등했다. 이를 '튤립 버블'이라 부른다.

 

우리 인간들을 하나씩 놓고 보면 매우 지적인 생명체이다. 그러나 여럿이 모여 사회가 만들어지면 일종의 집단적 어리석음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처럼 보인다. 찰스 매케이의 저서에 나타나는 투기 거품,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등 일반 대중들이 미망迷妄에 빠진 역사적 사건들이 이를 입증한다. 지금 시대는 그때보다 오히려 대중의 광기가 더욱 심한 것 같다. 현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저자의 눈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역시 미쳐가는 것처럼 보였다. 분별 있는 개인들이 기후 변화의 위험을 경고하며 저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로서의 세계가 위험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분명 정상적인 공동체, 집단 사고나 미망에 물들지 않은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 유토피아 실험은 이런 사회의 축도縮圖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지구 종말론자들은 현대 문명이 붕괴되기를 고대한다. 비록 수십억의 목숨이 희생될지라도 거품 경제의 풍선은 언젠가 결국 터지게 되어 있는 것처럼 이 세계를 바로잡을 날이 예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최후까지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더 인간적인 사회, 산업화로 인한 무수한 폐해에 물들지 않은 사회를 재건설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즉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대환난 이후 천년왕국의 평화와 번영이 이어지듯 붕괴 이후의 세상은 산업혁명 이전의 행복한 삶의 방식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측한다.

 

 

 

지구 종말 이후의 삶

 

이제 저자의 마음 속엔 유토피아 실험이 단순한 모의실험, 그러니까 붕괴 이후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는 방식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 실험은 진짜로 닥칠 일을 대비하는 실험이었다. 지구가 붕괴되리라는 생각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종말은 그저 가능성이 있는 일이 아니라 가까운 시일 안에 확실히 일어날 일처럼 여겨졌다. 어느 날 저녁 저자는 여동생 샬럿에게 전화를 걸어 그 계획을 설명했는데, 수화기 반대편에선 침묵이 흘렀다.

"실험을 하나 시작할 거야"
"그래그래. 무슨 실험인데?"
"지구 종말 이후의 삶을 실험하는 거야"

 

 

왜 유토피아 실험은 빨리 실패할까?

 

아마 그 이유는 시계를 0년으로 다시 맞추겠다는, 제로에서부터 다시 쌓겠다는 생각 자체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이상주의자들이 바꾸고 싶어 하는 기성 제도는 대개 결함투성이지만, 한편으로 여러 세대와 무수한 세월의 연구 개발을 거쳐 축적된 지혜를 구체화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제도의 특징보다 그 오류를 먼저 찾는다. 제도가 가진 결함의 일부는 모든 종류의 사회 조직에 내재한 결함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공통된 관심사를 갖고 있기에 집단을 형성하나,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은 항상 일부이며 갈등은 교집합을 이루지 못한 부분에서 생겨나기 마련이다.

 

유토피아 실험이 빨리 실패하는 원인은 이런 실험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의 유형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상주의자가 현실적이기까지 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상주의자는 터무니없이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어서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면 금세 환멸을 느낀다. 또 완벽한 사회가 어때야 하는지에 관해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하면 싸움은 훨씬 더 격렬해진다. 이들이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또한 사회 부적응자를 끌어들이는데, 이 부적응자들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비난하는 사회의 탓이 아니라 불평불만 많은 스스로의 성격 탓일 가능성이 있다.

 

 

결국 실험을 중단하다

저자가 더 이상 실험을 신뢰하지 않게 되면서 공교롭게도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헌신적이 된 듯했다. 그 어느 때보다 전 지구적 붕괴의 징후가 임박했다는 확신에 빠져 있었다. 모두 힘을 합쳐 이렇게 열심히 땅을 경작하고 유르트를 지었는데 왜 이 모든 것이 18개월 후에 중단되어야 한단 말인가? 무기한 머물면 어때서? 그들이 생각하기에 어쨌든 문명은 얼마 안 있어 정말로 붕괴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붕괴가 일어났을 때 살아남길 원한다면 이곳만큼 훌륭한 장소는 없었다.

 

자원자들 모두를 저자의 망상 속에 끌어들이는 데 막 성공해놓고 스스로 더 이상 그것을 믿지 않음을 깨달은 셈이었다. 그리고 망상은 수수께끼처럼 사라졌다. 어떤 모호한 힘이 저자를 떠밀어 문명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믿게 했고, 이제 그 힘은 처음 찾아왔을 때처럼 수수께끼같이 떠났다. 그 결과로 저자는 휘청거리며 무너졌다.

 

 

결국 세상은 종말로 향한다

과학 기술은 진보해왔고 과학의 힘은 점점 증가해왔다. 이로 인해 우리들은 조상들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로 인간 삶의 조건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이 세상의 종말로 다가가는 한 걸음이다. 길게 보면 인간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 인간이 수명 연장법을 발견한다 해도 우주는 결국 끝없이 팽창하다가 차갑게 얼어붙을 것이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

 

오늘날 수많은 대안 공동체나 생태주의 마을에 자발적 의지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와 철학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실현하고자 한다. 모든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협력보다 경쟁을 통해 성장하라고 권하며, 개인을 단지 소비자에 머물게 하는 현대 사회에 과감히 반기를 든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아가 저자는 '현실성 없는 이상주의와 상상력 없는 현실주의' 사이에서 매 순간 방황하는 이들에게 용기 있는 실천의 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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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디까지 행복해봤니? - 네 마음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으로 너를 데려다줄게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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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네 심부름센터가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너를 사랑하는 지혜로운 분이시다. 부모들도 사랑한다고 해서 어린 자식이 조르는 것을 모두 들어주진 않지 않니? 하지만 일단 아들딸이 뭘 원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해. 네가 원하는 바로 그때, 원하는 바로 그걸 주진 않을지 모르지만 들어뒀다가 너의 때가 무르익었다 싶을 때, 너에게 적당하겠다 싶은 걸로 골라 주는 것이 더 크고 현명한, 진정 너를 사랑하는 보호자가 하는 일이란다. - '시작하며' 중에서

 

 

 

이 책의 저자 곽세라20년째 여행하며 글을 쓰고 있는 몸, 마음 전문가이다. 그녀는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과 인도 델리대학교 힌두철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유명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중 '머리'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가슴'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에 따라 인도로 떠나 요가와 철학, 명상을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피트니스와 웰빙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리조트 클럽메드에서 피트니스, 요가 아시아 퍼시픽 트레이너로 활동했으며, 교통방송 '상쾌한 아침'에서 '세라의 레몬요가'를 진행했다. <월간 조선>, <바앤다이닝>, <석세스파트너> 등의 잡지를 통해 웰빙, 건강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는 틈틈이 일본 미술국전인 니카(NIKA) 전 입상으로 화가로 데뷔했고, 인도 전역을 돌며 힐링을 주제로 한 아트쇼 '아트 투 하트(ART TO HEART)'를 펼치기도 했다.

삶을 부드럽게 꿰뚫는 시선과 독특한 사유의 힘을 지닌 메시지로 지친 현대인들의 가슴에 고요한 치유를 선사하며 이 시대를 대표하는 힐링라이터로 사랑받고 있으며, 저서로는 <인생에 대한 예의>, <앉는 법, 서는 법, 걷는 법>, <멋대로 살아라>, <길을 잃지 않는 바람처럼>, <모닝콜>,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너를 어쩌면 좋을까> 등이 있다.

 

책은세 파트로 구성되었는데, 우리들은 책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접하게 된다. 즉 천 리 앞을 내다보는 장님 해리는 "너는 그 슬픔을 가지고 무얼 할 거냐? 불행한 채 여행하지 마" 라고 충고한다. 또 꿈을 지키는 사람 파루는 "버킷리스트보다 급한 건 독버섯리스트야. 제발 원치 않는 것을 선택하지 말고, 가슴 뛰지 않는 일엔 발을 들여놓지 말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얽히지 마라" 고 말하며, 별을 이야기하는 소년 야란, 알을 깨고 꿈의 바다로 나가 결국 '내 마음의 집'을 찾고 '내 부족을 만나는 법'을 알려준다.

 

 

 

 

나에게 일어날 일에 관심을 가져라

 

천리 앞을 내다보는 눈을 '천리안'이라고 한다. 이는 범인凡人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특출한 재능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해리라는 인물은 부족 중에서 가장 밝은 안목을 지닌 샤먼이었다. 이런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신들이 시기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해리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찾아온 이들의 손을 만져보고 그들의 삶을 읽어냈다.

 

해리는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저 무슨 일이 발생할지를 알려달라고 조르기만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제일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일어날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날 일엔 관심이 없다. 이처럼 사람들은 인생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한 사람이 되어서 가면 세상 어디든 행복할 거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신발과 같아. 먼저 신발을 신어야 어디든 갈 수 있지 않니? 밑창이 튼튼한 신발을 신은 사람은 가시덤불이 나와도, 얼어붙은 강을 만나도 웃으며 성큼성큼 건널 수 있다. 불행한 채 어딘가로 간다는 것은 맨발로 길을 떠나는 것과 같아. 그곳에 가면 신겠다고 신발을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맨발로 얼마나 버티겠니? 조그만 자갈돌 하나만 밟아도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된단다" (44쪽)

 

 

행복을 찾는 여행

 

바다거북은 바다에서 긴 여정을 하다가 때가 되면, 즉 후손을 만들려고 알을 낳고자 해변가로 올라와서 일을 치른다. 모래구덩이에 수많은 알을 낳고서는 마치 자신의 일을 다한 양 또다시 바다로 여정을 떠난다. 이후 이 알들은 따뜻한 모래 덕분에 부화를 거쳐 그들의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바다를 향해 뒤뚱거리며 나아간다. 이 때 천적들에게 노출되어 먹잇감이 되고 마는 불행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책은 이런 바다거북을 위한 지침을 소개한다.

 

여행을 하는 바다거북을 위한 지침

 

흐름에 몸을 맡기고 헤엄칠 것.

방향을 잃지 말 것.

위기가 닥치면 껍질 안에 웅크리고 낮게 가라앉을 것.

오래 생각할 것.

우아하게 나이들 것.

멀리 여행하되 잊지 말고 네 바다로 돌아올 것.

 

 

우리들 대부분은 행복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 지나치게 이를 추구하고 그리고 이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런데, 이젠 나는 "행복을 추구하는 순간, 당신은 불행해질 것이오"라는 저자의 표현법에 공감하고 동의한다. 그 머나 먼 여정의 끝은 결국 자기 자신의 내면에 살아 숨쉬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호주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가? 이 땅엔 붉은 영혼의 빛을 띄는 울룰루라는 거대한 바위산이 있다. 여행사에선 이를 에어즈락(호주 초대 수상의 이름)으로 소개하며 일출, 일몰여행을 추천한다. 호주 원주민인 아낭구 부족은 오랫동안 이곳을 중심으로 조상의 영혼들이 모이는 성스러운 장소로 인식해왔다. 따라서 이곳의 명칭은 원주민이 부르는 울룰루로 복원시켜야 한다.

 

책엔 엉클 파루가 등장한다. 꿈을 지키는 사람인 그는 자신을 아난구아무투 부족 야뭄무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그도 자신들의 부족이 4만 년 전부터 이곳 붉은 땅에 살고 있었으며 들꽃도, 나무도, 덤불도, 모래도 모두 그들의 가족이었으므로 결코 외롭지 않다면서 "어디에 있건 너는 혼자가 아니다. 삶은 완벽하단다. 그저, 감사하며, 있어라"고 어른들이 그를 가르쳤다고 말한다.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찾는다고? 추구하고 찾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신 것이 아니오. 어렵게 얻는다 해도 언젠가는 당신을 떠날 것들이오. 오른쪽 눈을 찾아 여행을 떠난 적이 있소? 어머니의 사랑을 얻기 위해 연구하고 실험한 적이 있소? 진정한 ‘당신 것’은 처음부터 거기 있는 거요. 잃지 않도록 마음을 쓸 뿐, 그걸 얻으려 애쓸 필요가 없어야 당신 거요.(85쪽)

 

 

꿈을 꾸는 법부터 배워라

 

울룰루에는 대략 다섯 명 정도의 스타텔러가 있다고 한다. 스타텔러란 '별을 이야기하는 사람' 또는 '하늘 길을 그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직업이다. 이는 점성술사와는 달랐다. 별에 얽힌 모든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이를 전달하는 메신저인 셈이다. 책엔 22살에 스타텔러가 된 야란이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별을 읽다보면 사람이 읽힌단다. 우리는 별의 가루로 만들어진 존재니까.

길 잃은 사람은 길 잃은 별처럼 빛이 바랜다.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지"

 

야란은 금세기를 지나고 있는 인간들 대부분이 앓는 병에 대해 얘기한다. 즉 자기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를 모르는 병이다. 먼저 꿈꾸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거꾸로 꿈을 이루려고 애쓰는 법부터 배운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계획할 줄만 알고 원하는 법을 모른다. 또 해치울 줄은 알아도 이룰 줄은 모른다. 인생의 열쇠를 찾는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사실 열쇠는 이미 우리들이 갖고 있다. 자기 자신이 바로 열쇠인 것이다.  


무엇부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면 지금은 멈추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마라. 벌여놓은 일에서 손을 떼고 신발 끈을 풀고 앉아라.

 

 

 

경험을 믿어라 

 

우리들 대부분은 행복을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 살고있는 파랑새로 여긴다. 그래서 이 파랑새를 찾고자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그렇다고 이런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왜냐하면, 우리들 인생이 다 그렇듯 한참을 돌고돌아 결국엔 제자리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결코 먼 곳이 있진 않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행복 또한 경험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행복해봐야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난 곽세라 작가를 2012년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로 첫 인연을 맺었다. 신비로운 보랏빛 머리카락을 지닌 17살 소녀 류를 통해 생의 심오한 물음과 비밀을 깨닫게 해준다.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해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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