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랑 명보는 해가 바뀌자마자 한해동안 모아놓은 저금통을 뜯었다.  

작년, 아니 이제 재작년보다는 별로 많이 모으질 못했다.  

덕분에 나는 저금한 금액의 10%를 주겠다는 약속의 부담이 좀 가벼워졌다.  

새해 첫날에 꼭 하는 일. 

우리집 키재기 벽에 키눈금을 기록했다.  

명보는 지난 한 해동안 10.5센티미터가 자랐고,  유진이는 1센티미터 약간 못미치게 자랐다.  

덕분에 둘의 키차이가 5센티미터로 줄었다.  

지난해 첫날엔 15센티미터 차이가 났었는데 누나키를 참 많이 따라잡았다.  

새해엔 명보가 유진이의 키를 넘을 것 같다.  

잠든 유빈이의 키는 아침에 재어봐야겠다.  

12월에 내 몸살을 시작으로 유빈이 감기, 명보 급체, 유진이 고열로 이어지더니 이제 남편이 감기에 걸려 끙끙 앓고 있다.   

그래서 가족끼리 오붓한 다과파티도 못하고 보신각 타종소리도 듣지 못한 채 조용히 새해를 맞았다.   

지난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체호프 단편선>이고, 올해 처음으로 잡은 책은 <동물농장>이다.  

2008년 마지막날 배송 예정이었던 책들은 오지 않았고, 결국 해를 넘기고서야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알라딘에서 어째 이런 일이?) 

하긴 아직도 책장엔 안 읽고 꽂아둔 책이 너무 많다.  

다시 읽고 싶은 책들도 있으니 새해엔 새 책을 사들이기보다 책장에 있는 책을 마음 가는대로 차분하게 읽어가고 싶다.  

밤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마다 살펴보는 매화나무의 겨울눈은 겨울이 깊어갈수록 오히려 조금씩 조금씩 더 커져가는 것 같다.   

겨울의 차가운 틈을 조금씩 벌리면서 봄이 크고 있는 것 같아서 볼 때마다 흐뭇해진다.  

해가 바뀌었다.    

그래, 해가 바뀌었다.  

여느 해보다 더 많이, 더 따뜻하게 복을 빌어주고 싶은 새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란요란 푸른아파트 문지아이들 96
김려령 지음, 신민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어컨도 안 나오던 하얀 포니2, 대학 입학 선물로 지금의 남편이 사준 스누피가 그려진 양철필통, 탈수단계에 들어서면 헬리콥터의 이착륙 소리를 내던 세탁기, 열일곱 어느 날 생일선물이라며 그 아이가 주었던 보라색 손목시계, 늘어져서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어버려 너무나 서운했던 좋아하던 노래가 담긴 카셋트 테이프, 집에 도둑이 들어 가져가 버린 소니 워크맨....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세상에 넘쳐나는 게 물건들이고 시시각각 새로운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그냥 정이 붙는 것들이 있다.  하얀 포니2를 폐차장에 두고 돌아섰을 때에도 허전함에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고, 수명을 다한 세탁기를 앞에 두고 우리 아이들 기저귀 빨아 키워준 게 넌데, 그동안 참 고마웠는데, 못쓰게 되었다고 이렇게 내치게 되어 참 미안하다고 공연히 눈물을 찔끔거렸었다.   그런 것들 속엔 내 삶의 어느 한 부분이, 그것들과 함께한 그 동안만큼의 기쁨과 한숨이 엉겨 붙어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버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다 커버린 어느 날, 어쩐지 그리운 마음에 어릴 적 다니던 초등학교를 찾아갔던 날 새로 지은 낯선 건물이 나를 맞이했을 때, 예닐곱 살 때부터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 살던 집이 허물어져 밝은 대낮에 속살을 다 들어내고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봤던 때에는 내가 곱게 간직했던 그리움이 오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모욕감을 느끼고 황망히 돌아섰었다.

이런 기억들을 하나하나 들춰내는 이 책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니 적극적인 개입도 마다하지 않는 낡은 아파트 네 동과 상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기동이와 기동이네 할머니, 만화가 천기호 선생, 교장선생님인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단아는 마치 세상 횡포에 상처받고 쫓겨 와 푸른 아파트 안에 겨우겨우 자기 둥지를 잡고 살아가는 작은 새들처럼 보인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고양이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게.  푸른 아파트가 자기 안에서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세상에 나는 것들은 다 지 헐 몫을 가지고 나는 것이여.  허투루 나는 게 한나 없다니께.  고 단단하던 것들이 이렇게 제 몸 다 낡도록 사람들 지켜 주느라 얼마나 고생혔냐.  인자 지 헐 일 다 하고, 저 세상 간다 생각허니. 짠허다.” (p.168) 

살아가는 일의 난감함과 누추함을 “제 몸 다 낡도록” 고생한 어떤 것들에게 위로받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처럼 코끝이 쨍하도록 추운 날 집에 돌아오면 언 발과 손을 녹여주던 따뜻한 아랫목에, 또는 비염으로 며칠을 콧물로 고생하던 날 내 곁을 지켜주던 두루마리 화장지에, 추운 거리를 걷다가 친구와 함께 나누어 먹던 따끈한 호빵에, 서러운 이별을 하고 외로워 미칠 것 같던 날 묵묵히 대롱대롱 매달린 채 내 곁을 지켜주었던 그날의 작고 천진한 핸드백에, 오늘 바른 립스틱에, 내 모든 넋두리와 하소연과 투덜거림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받아주는 이 컴퓨터에.

오늘은 나도 기동이 할머니처럼  “니도 고생 많었다.” 고 말 건네고 따뜻하게 쓰다듬고 토닥여주고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년 10월 

이 날, 뾰족구두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양손에 든 건 핸드백이란다.   

스스로 자기는 예쁜 걸 좋아하는 공주병에 걸렸다고 인정하는 유빈이니 

뭐, 유빈이다운 그림이라고 할 수밖에...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8년 10월 

보고 너무 놀라고 신기했었다.  

저 손 부분..  

나름 무지 심혈을 기울였었나 보다.  

내가 감탄하니까, 유빈이도 자랑스러운 듯 만족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런데 그 후로 다시는 저 손이 안 나온다.  

한 번 그리고는 꽤나 힘들었었던 건지,  

아니면 엄마의 지나친 감탄이 부담스러운 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8년 9월 

한동안 공주 그리기에 심취해 있었다.   

속눈썹을 그리고, 귀걸이에 목걸이, 왕관,  

꽃무늬에 치마 아랫단엔 삐뚤빼뚤 그린 레이스인지 프릴인지까지...   

요즘은 공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그림을 그리고 있어 더 재미있다.  

그래도 공주 그림 하나쯤 갤러리에 전시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