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섯 살이 된 어린 딸이 차창 밖을 내다보다가
"엄마, 달이 따라와." 한다.   
창밖을 내다보니 동그랗고 깔끔한 달이 우리 차를 따라 부지런히 달리고 있다.  차가운 밤 하늘 속 달님이 너무 맑고 동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암스트롱의 발자국도, 떡 만들어 먹고 쉬고 있을 토끼도 다 보일 것만 같았다.
"정말.. 달이 또 따라오네.  모두 유빈이를 좋아하나 보다.  달도 따라오고 구름도 따라오고 별도 따라오고, 저번엔 애드벌룬도 따라왔지?"
"응.. 달이 심심한가봐.  엄마, 난 달이 참 좋아."
딸은 따라오는 달을 마음에 들어한다.  달은 참 다정해서 어딜 가든, 무얼 타고 가든, 꼭, 우리 집앞까지 따라와주니까.   

"달이랑 뭐하고 놀아줄까?  가위바위보 해볼까?"
"응.."
"자, 가위,바위,보!!!"
유빈이는 바위를 냈다.
"달님이 이겼네... 달님은 동그란 보자기를 냈는데.."
"다시, 다시, 다시."
유빈이는 다시 하자고 조른다. 
"가위, 바위, 보!"
유빈이는 이번에 가위를 냈다.  달님은 동그란 보자기라니까, 나름 머리를 굴린 것.  하지만 엄마는 유빈이 놀리기를 좋아하는 심술이 엄마라서,
"에이~~ 또 유빈이가 졌네.  이번에 달님은 동그란 바위를 냈는데.." 하고 말았다.

유빈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또 다시 한 번 더 해보자고 조른다.  
"가위, 바위, 보!!"
유빈이는 보자기를 냈다.  하하하, 달님이 가위를 내지 않는 이상 유빈이는 이기거나 비기거나다.  동그란 달님이 무슨 수로 가위를 낸담.
"유빈이가 이겼네.. 달님은 동그란 바위를 냈거든.  달님이 졌으니까 술래다.  숨바꼭질 할까? 유빈이가 얼른 숨어야 해."
그런데 달님은 술래인 주제에 계속 쫓아오면서 빤히 내려다 보고 있다.  비겁하다.  반칙이다.
유빈이는 달님이 숨고 자기가 찾겠단다.  이기고도 술래가 되겠다는 예쁜 딸이다. ^^ 

마침, 도로가 꺾였다.  순식간에 달님이 싹, 숨어버렸다. 
"달님이 숨었네,  어디 갔지?"
달님은 반대편 창가에서 웃고 있다.   

유빈이는 숨어버린 달님을, 오빠가 도와줘서 겨우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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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좋은 엄마와 딸은 아니었다.  엄마에게서 따뜻한 격려나 토닥거림 같은 걸, 받아본 기억이 없다.  사춘기로 들어설 즈음부터는 엄마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잘못 말을 붙였다가는, 아니 제대로 말을 붙인 경우라도, 피곤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소띠다.  그래서였는지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하셨다.   시집올 당시 어려웠던 집안을 일으켜 세우셨고, 가족들은 엄마의 덕을 보며 살았다.  그러나 엄마는 당신이 그런만큼 주변 사람들의 여유로움이나 나태함을 못견뎌 하셨고, 또 그런만큼 주변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컸다.  엄마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뜰히도 부려먹는다'고 생각하셨고, 엄마의 그런 생각은 얼마쯤은 사실이고 또 얼마쯤은 엄마의 타고난 성격 탓이고, 또 얼마쯤은 엄마의 피해망상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엄마는  하나있는 딸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고 넋두리하기를 좋아했고, 철없던 딸은 그게 지겨웠다.  지겨워하는 딸이 괘씸하셨을 테고, 소띠인 엄마는 그런 딸을 소처럼 들이받았다.   

딸이 시집을 갔다.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엄마는 "너 같은 게, 시부모님에 시조부모님까지 계시는 층층시하에 들어가서 맏며느리 노릇을 어떻게 하려느냐"며 화를 내셨다.  엄마는 걷잡을 수 없는 불이었다.   

그렇게 딸이 시집을 간지 만 17년이 되어간다.  별로 친하지 않던 모녀 사이가 그럭저럭 잘 굴러간다.  엄마는 일흔셋의 노모가 되었다.  틀니를 빼면 합죽 할머니가 되고, 하얀 은발이 자연스러워졌고, 앉고 일어서실 때마다 '끙~'하는 작은 신음을 내뱉으신다.  여행이 힘들다 하시고, 음식 간이 세졌고, 심장약과 당뇨약,고혈압약을 달고 사신다.  다 큰, 아니 늙어가는 아들 딸의 세상살이를 걱정하시고, 치매가 올까 두려워 뜨개질을 하신다. 무엇보다 딸을 들이받는 힘이 너무 약해지셨다.  딸은 엄마를 측은히 생각하고 엄마의 푸념과 한탄을 지겹지만 들어주고, 엄마는 딸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해가며 따지고 들어도 옛날처럼 힘있게 누르지 못한다.  

일흔셋, 노모의 생신이다.  딸은 '따뜻하지 않았던' 엄마를 떠올렸다.  어릴 적 돌아누워 자고 있는 엄마가 사실은 마녀가 아닐까, 생각했던 날을.  생일날 저녁에 피아노 학원에 가지 않았다고 종아리를 맞던 날을.  내 꿈을 꺾었던 엄마를 원망하며 밤새 울던 날을.  하지만 '아주 따뜻하지 않았던' 건 아니라는 걸 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사줬던 푸른 빛의 목걸이, 재봉틀을 돌려 만들어주시던 인형옷, 엄마가 뜰에 심어놓았던 갖가지 꽃들, 그 꽃들 속에서 작게 흘러나오던 엄마의 노래...  

딸은 너무 늦었지만 이제서야 인정한다.  평생 받아온 사랑들 중에, 그래도, 가장 큰 사랑은 엄마에게서 받은 거였다고.  늘 부족하다고 투덜댔지만, 그래도, 그 사랑이 가장 컸다고.  내 아이들에게도, 평생의 가장 큰 사랑을 주고 싶다고.   

전화기에 대고 "Happy Birthday, 엄마~"라고 말했다. 왜 이런 말조차도 쑥스러운걸까.  엄마는 "그래, 고맙다."하며 웃으신다.  앞으로 얼만큼 더 "Happy Birthday, 엄마"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내 생일만큼이나 엄마의 생일이 반갑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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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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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를 기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서 잠시 들떴던 시기를 빼고, 나의 20대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불안과, 그 불안을 무마해보고자 하는 조바심과, 그 조바심으로 인한 실수와, 그 실수가 남긴 오점들로 얼룩졌다.  세상이 너무 무섭고 거대해보였고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주눅 들었다.  내가 코끼리 발 아래 놓여진 개미 같았다.

이 책에서 내 20대의 향기를 맡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외롭고 막막하고 불안했던 그 시절의 향기가 퐁퐁 솟아올랐다.  이 책에 들어있는 열 개의 단편이 20대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그것도 ‘잘 나가는’ 20대가 아니라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20대의 이야기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20대의 외롭고 막막한 불안은 어쩌면, 앞으로 펼쳐질 ‘나 홀로 인생’에 대한 예지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부터 너는 세상과 혼자 맞짱을 떠야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스푸트니크호를 타고 혼자 막막한 우주를 떠다녀야했던 라이카처럼, 그렇게 혼자서 가야 한다고 겁을 내고 있었던 거다.  “안녕, 행복했던 유년기여. 안녕, 눈부셨던 사춘기여. 만나서 반가워, 내 앞에 펼쳐진 황량하고 쓸쓸한 나날들아.” 하고 용기 있게 인사라도 건넸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이 책이 품고 있는 연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행성의 존재에게 알려주기엔, 인류의 몽따주는 얼마나 슬픈 것인가.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파아, 하아.  그래, 전철만 다녀라, 은하철도 같은 건 아예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  지금 이대로의, 인류라면 말이다.‘ (p.81) 


'그렇군요.  문득 이 세계가 외계처럼 느껴졌다.  기하 형의 뒷모습이, 그래서 더욱 외로워 보였다.  인간은 서로에게, 누구나 외계인이다.’ (p.194)


'결국 <나>란 것은 <아무나>의 한 사람이거나, <누구나>의 한 사람과 같은 것이다.  즉 그것이, 우리의 경향이다.  아무런, 나, 누구도, 나.‘ (p.231)

'누구에게나 인생은 하나의 고시(考試)와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통풍구의 점검이 끝났다는 외침이 들리자, 사람들은 우르르 자신들의 밀실로 돌아갔다.  나는 그곳에 남아 다시 한 대의 담배를 더 피워물었다.  세상은 얼어붙었고, 진입로 입구의 벚꽃나무들은 긴긴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나무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인간은-누구나 밀실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누군가 그런 낙서를 끄적여놓았다면, 정말이지
이하동문이 아닐 수 없다.‘ (p.299) 


과장과 비약, 공상과 망상이 심한 소설이구나, 하다가도 이런 문장을 만나고 나면 난 “허~~”하고 숨을 늘이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정신은 잠시 먼 곳을 더듬다 돌아오고 만다.  대왕오징어와 개복치, 펠리컨과 기린, 하나의 세계를 카스테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냉장고와 날아다니는 오리배, UFO가 등장하는 이 단편소설들을 알레고리컬하다고, 그의 문체가 독특하다고, 그래,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나는 ‘인간과 삶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 향기가 생각보다 오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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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9일  

그 날 남편은 새벽 2시 20분 쯤에 들어왔다. 저녁에 전화로 "나, 지금 들어가는데 아직 저녁 안 먹었어."하길래 찌개 끓이고 갈치 구워 놓았더니 "갑자기 일이 생겨서 집으로 가다가 다시 나가고 있어.  좀 늦을 거야."했다.  구워놓은 갈치는 그대로 뒷베란다로 쫓겨났고 찌개는 조용히 식어갔다.  

새벽 2시 20분에 들어온 남편이 "나 배고파.  밥 있어?"한다.  음..  귀찮다거나 황당하다는 생각보다 먼저 '이 시간까지 밥도 굶고 뭐 했나..'하는 뜨악함이 먼저 스쳤다.  쫓겨났던 갈치를 불러다 다시 데우고 찌개는 가스레인지 위에서 쿨럭쿨럭 거리며 몸을 덥혔다.   

"이 시간까지 밥도 못먹고 뭐했어?"
"박OO선생님이 보자고 하셔서 청담동에서 술 좀 했지."
"빈 속에?"
"그렇지, 뭐..."
"밥이랑 바꿀 만큼, 배고픔을 참아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어?"
"그냥..   아, 어쩌면 나, 다음달 쯤 중국 가게 될지도 몰라."
"왜?"
"확실한 건 아닌데 일이 좀.." 

아이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식탁에 앉아 중국에 가게 될지도 몰라로 시작해서,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 다니던 회사 돈을 횡령해서 해외로 도피했대를 지나 사업이라는 게 그렇더라구 쯤에서 잠시 멈칫했다가 업무용 차를 하나 마련하고 직원을 한 명 더 뽑아야 될 것 같아 라는 희망으로 마무리된 밤이었다.  

난, 남편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 사람, 싸우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덩치 커다란 남편이 측은해 보였다.  살다보면 미울 때도 있고(어쩌면 미울 때가 더 많고), 이러쿵 저러쿵 구시렁구시렁 불만이 쏟아져 나올 때도 있고, 왜 이렇게 사나.. 할 때도 많지만.... 그 날 밤만큼은 남편은 성 밖에서 불 뿜는 100톤짜리 용과 싸우고 돌아온 기사였고, 나는 성 안에서 세상 모르고 조잘대고 투덜대며 살아가는 철없는 마누라였다.  마흔이 넘도록 세상과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다는 게, 너 참 못났구나 하고 머리를 쥐어박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참 운이 좋았구나 해야 하는 건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연봉 1억 받는 마누라가 있고 BMW를 몰고 다닌다는 후배를 보면서 남편이 "난 참 지지리 복도 없지!"한다고 해도(물론 그렇게 표현한 적은 없지만 속으로 부럽기는 했을 거다) 한 10%쯤 이성적으로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결코!!! 감정적 폭발에 대해선 책임을 질 수 없으며 경제적 이윤 창출 능력만을 가지고 마누라를 비교한 괘씸죄에 대해서는 90% 용서가 어려울 게 틀림없다) 

자려고 누웠는데 전인권이 부른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노래가 맴돌았다.  '난 아직 세상을 모른다고.....그것만이 내 세상~~'하던 노래 가사가 그날 밤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네 세상은 너무 작구나,,, 그렇지, 섬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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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7일  

정오가 좀 지났을 무렵이었나?  유빈이가 심심함을 이기지 못하고 TV를 켰다.  2주전에 구청 지하에서 빌려온 장난감을 반납하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오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준비를 한다고 부산을 떠는 중에 유빈이는 심심했나보다.  왔다갔다 하면서 흘낏 흘낏 보니 틀어놓은 게 MBC 스페셜, 다큐 프로그램이다.  인도의 어느 종교에 대한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는데 수도승이라는 사람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트럭이 오가는 도로를 걷고 있었다.  아니, 뭐 저런 남사스러운 종교가 다 있어?  호기심에 아예 방바닥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버렸다.  

나의 음흉한 호기심을 비웃듯이 남녀노소 인도인들이 벌거벗은 수도승들을 맞이하는 모습은 무척 자연스럽고 존경심이 가득 차 있었다.  종교의 이름은 '자이나교'인데 살생에 대한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고행을 중요시하는 종교인 것 같았다.  수도승이 아니더라도 자이나교를 믿는 사람들은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해 수돗물과 우유도 고운 천에 걸러 마시고(혹시 섞여있을 벌레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실크 옷이나 가죽구두, 가죽가방은 쓰지 않고, 농부가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  덕분에 자이나교도들은 인도의 출판, 언론, 방송계에 주로 진출하여 큰 부자가 된 경우가 많다고.  

수도승들은 40도가 넘는 인도의 찜통더위 속에서 맨발로 하루에 20Km씩 걷는단다.  걷다가 해가 지면 길바닥에 천 하나를 깔고 잠을 잔다.  얇은 천조각 하나도 덮지 않은 수도승들의 맨몸으로 모기들이 달려들어도 수도승들은 참고 견딘다.  모기 한 마리도 죽여선 안되기에.  여자 수도승도 있는데 이들은 8m짜리 하얀 천으로 몸을 두르고 맨발로 걷는다.  갈라진 발바닥 틈으로 흙이 파고들어 가시에 찔린 것처럼 아픈데도 묵묵히 참고 걷다가 잠시 쉬는 시간이 돌아오자 그 때서야 신도 중 하나에게 발바닥을 좀 봐달라고 부탁한다.  신도가 발바닥의 갈라진 틈을 보고 바늘로 흙을 빼주고서 바늘을 가지고 다니라고 주니까, "바늘도 가져선 안되는데.."하며 망설이다 소지품 주머니에 꽂아 놓는다.   물도 소중히, 함부로 써서는 안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샤워나 목욕은 꿈도 꾸지 못한다.  몸을 씻는데 두 컵 정도의 물을 사용한다고 한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수도승들은 식사를 하다가 이물질이 나오면 그 즉시 식사를 중단한다.  한 끼의 식사마저 포기하고 뙤약볕 아래 길을 나서야 한다. 병이 들어 몸이 아프면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지 않고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서서히 곡기를 끊으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3, 4개월에 한 번씩 수도승들이 이발을 하는 장면이었다.  한 여자 수도승의 이발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머리를 밀거나 자르는 게 아니라 뽑는 거였다.  3Cm 정도 자랐을까 싶은 여자 수도승의 머리를 대여섯 명의 다른 여자 수도승들이 노래를 부르며 뽑아주고 있었다.  한 올씩 뽑는 것도 아니고 뭉텅뭉텅..  저걸 어떻게 참고 있지?  

21세기 도시문명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내 눈에는 자이나교의 모습 중에 엽기적으로 비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는 자이나교 수도승의 말과 그들의 삶의 방식 중에는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에서 자이나교에 대해 뒤지다가 이런 글을 읽었다. 
"자이나교는 세상 만물에 대한 관용을 가르치며,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무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타종교와 경쟁 의식을 갖지 않고 자기 신앙을 전파하는 데에도 열렬하지 않다."
"인간의 제일의 의무는 자신과 다른 생물들의 명아를 발현시키고 완전하게 하는 것이므로 아힝사, 즉 어떠한 생물도 해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된다. 자이나교도는 늙고 병든 동물을 위해 피난처와 쉴 집을 마련하여 이곳에서 자연사할 때까지 돌보아준다." 

난 '공식적'으로는 카톨릭 신자다.  '공식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 외에는 내가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딱히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짝퉁 날나리 사기성 신자라는 말이다.  그러니 나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나마 '종교'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내팽개친지 오래다.  한편으로는 이제 사람들이 '종교'보다는 '철학'에 우선 매달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주제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종교'가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다.   

나중에 유진이와 명보에게 자이나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자기들은 한끼만 굶어도 눈이 뒤집힐 거라며 너스레를 떤다.  '우리 채식을 해볼까?'했더니 자기들은 고기를 포기할 수 없단다.  자이나교의 눈으로 본다면 이런 개망나니가 없을 것이다.  

명보까지 데리고 늦게 마트를 다녀왔다.  다녀오는 버스에서 유빈이가 묻는다.
"엄마, 하늘에 저게 뭐야?"
하얀 낮달이 떠있었다. 
"달이 나왔네.  낮에 나온 하얀 달이야."
"왜 낮에 달이 나왔어?  햇님이랑 놀고 싶어서 나왔나?"
아이다운 생각이다.  이 아이다운 천진한 생각에 주책맞은 이 엄마가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달님이 햇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서 못참고 나왔나 보다.  저렇게 하얗게 창백해지도록 너무너무 보고 싶었나봐."
그러자 우리 아들 옆에서 듣고 있다가 또 한 마디 거든다.
"그런데 햇님은 못됐다.  지는 한 번도 달님보러 밤에 안 나오잖아."
유빈이는 고개를 갸우뚱~~ 근데 엄마는,
"해는 야망을 채우려고 변심한 남잔가봐...... 하하하하하 유빈이의 천진스런 말 한마디 가지고 엄마는 왜 삼류 드라마를 쓰고 있냐.  하하하하하 역시 엄마는 속물이야.  흐흐흐흐흐.." 

자이나교 수도승만큼은 꿈도 꾸지 않고, 그냥 쪼끔만 덜 속물이게 살고 싶다.  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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