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20대를 기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서 잠시 들떴던 시기를 빼고, 나의 20대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불안과, 그 불안을 무마해보고자 하는 조바심과, 그 조바심으로 인한 실수와, 그 실수가 남긴 오점들로 얼룩졌다.  세상이 너무 무섭고 거대해보였고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주눅 들었다.  내가 코끼리 발 아래 놓여진 개미 같았다.

이 책에서 내 20대의 향기를 맡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외롭고 막막하고 불안했던 그 시절의 향기가 퐁퐁 솟아올랐다.  이 책에 들어있는 열 개의 단편이 20대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그것도 ‘잘 나가는’ 20대가 아니라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20대의 이야기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20대의 외롭고 막막한 불안은 어쩌면, 앞으로 펼쳐질 ‘나 홀로 인생’에 대한 예지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부터 너는 세상과 혼자 맞짱을 떠야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스푸트니크호를 타고 혼자 막막한 우주를 떠다녀야했던 라이카처럼, 그렇게 혼자서 가야 한다고 겁을 내고 있었던 거다.  “안녕, 행복했던 유년기여. 안녕, 눈부셨던 사춘기여. 만나서 반가워, 내 앞에 펼쳐진 황량하고 쓸쓸한 나날들아.” 하고 용기 있게 인사라도 건넸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이 책이 품고 있는 연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행성의 존재에게 알려주기엔, 인류의 몽따주는 얼마나 슬픈 것인가.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파아, 하아.  그래, 전철만 다녀라, 은하철도 같은 건 아예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  지금 이대로의, 인류라면 말이다.‘ (p.81) 


'그렇군요.  문득 이 세계가 외계처럼 느껴졌다.  기하 형의 뒷모습이, 그래서 더욱 외로워 보였다.  인간은 서로에게, 누구나 외계인이다.’ (p.194)


'결국 <나>란 것은 <아무나>의 한 사람이거나, <누구나>의 한 사람과 같은 것이다.  즉 그것이, 우리의 경향이다.  아무런, 나, 누구도, 나.‘ (p.231)

'누구에게나 인생은 하나의 고시(考試)와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통풍구의 점검이 끝났다는 외침이 들리자, 사람들은 우르르 자신들의 밀실로 돌아갔다.  나는 그곳에 남아 다시 한 대의 담배를 더 피워물었다.  세상은 얼어붙었고, 진입로 입구의 벚꽃나무들은 긴긴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나무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인간은-누구나 밀실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누군가 그런 낙서를 끄적여놓았다면, 정말이지
이하동문이 아닐 수 없다.‘ (p.299) 


과장과 비약, 공상과 망상이 심한 소설이구나, 하다가도 이런 문장을 만나고 나면 난 “허~~”하고 숨을 늘이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정신은 잠시 먼 곳을 더듬다 돌아오고 만다.  대왕오징어와 개복치, 펠리컨과 기린, 하나의 세계를 카스테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냉장고와 날아다니는 오리배, UFO가 등장하는 이 단편소설들을 알레고리컬하다고, 그의 문체가 독특하다고, 그래,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나는 ‘인간과 삶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 향기가 생각보다 오래 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