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우리 뽀는 마음 편하게 학원을 땡땡이 쳤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들의 얼굴이 환했다.  예상대로 컴퓨터를 켜고 오랜만에 실컷 게임을 즐겼다.  컴퓨터 게임을 하는 건 탐탁치 않았지만 자유를 허락하기로 한 날이었으므로 그냥 묵인하기로 했다.  저녁 먹을 때까지 게임을 계속 하더니 저녁 먹고 나서는 잠깐 잠을 잤다.  학원을 안가도 된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졌나보다. 

수요일, 아침에 깨웠더니 일어나길 힘들어 한다.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하면 늘 그렇다.  아침밥을 반공기정도 겨우 비우고 유난히 힘들어 하며 학교에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마음이 좋지 않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모습이 어제와 반대다 짜증섞인 목소리로 "아, 오늘도 학원에 가기 싫다"한다.

염려스러웠다.  하루 학원에 안갔다고 저렇게 생활의 리듬이 무너지나 싶었다.  그래도 수학이랑 국어 시험을 잘 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땐 잠깐 반짝한다.  "정말? 우리 아들 열심히 하더니, 축하해!"했더니 녀석, 쑥스러움과 잘난척하고 싶은 마음이 표정에 떠오른다.  그러다가 학원에 갈 시간이 다가오니까 또 우울해한다. 학원에 안가도 된다고, 아예 그만둬도 된다고 했더니 또 그건 안된단다.  만족스런 시험결과가 학원에 다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 학원 덕이겠지. 하지만 그 대신에 우리 뽀가 잃은 것을 생각하면 마음 편히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하루에 두 번이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우울하다.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자꾸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도 보충한다고 늦게 오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정확히 6시 32분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뽀의 얼굴이 환했다.  우울한 기분이 말끔히 씻겨 나갔다. 

" 너, 학원 체질이냐? 학원 갔다 오니까 얼굴이 밝아졌네."했더니

"엄마는~~집에 왔으니까 좋은거지."한다.

그래, 그렇지. 싫은 일을 해치웠을 때의 가뿐함이겠지. 한달에 한번은 학원에 안가기로 했다.  뽀가 원하는 날에.. 녀석, 우리 엄마는 참 착하다며 아첨을 떤다.

큰딸 지니가 수학학원에서 문화상품권을 상으로 받아왔다.  뽀가 한장만 달라고 누나를 쫓아다니며 난리다. 지니는 넌 줘봤자 인터넷 게임에서 캐쉬충전이나 한다고 안된다고 난리고,, 뽀가 심술이 났다.  옆에서 비니는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지켜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애들 셋과 복닥복닥 사는 내 모습이 친정엄마는 안쓰럽다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다복해서 좋겠다고도 한다. 

간혹 아이들이 힘들게 할 때마다 큰딸 지니때문에 힘들면 "사춘기 딸 키우는 재미"라고 웃어넘기고, 뽀가 힘들게 하면 "아들 키우는 재미"라고 웃어넘기고 비니가 힘들게 하면 "늦둥이 키우는 재미"라며 웃어넘긴다. 달리 무슨 방법이 있으랴.. 그런데 그러다 보면 정말 재밌어진다.  아이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내게 즐거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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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식물일기 리네아의 이야기 3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지음, 레나 안데르손 그림, 김석희 옮김 / 미래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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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네아의 이야기 제 3권이다.  1권에서는 블룸 할아버지와 모네의 정원으로 여행을 떠나  우리에게 아름다운 정원에 대한 동경을 갖게 하더니 , 2권에서는 일년 12달의 자연 이야기를 어찌나 아기자기 다정하게 들려주던지 문득 자연과 친해지고 싶다라든가 리네아를 흉내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였다. 

3권 <신기한 식물일기>까지 읽고 나니 식물을 안키울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식물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꽃이고 나무고 잘 키울 줄을 몰라서.."라는 핑계로 게으름을 떨 수는 없지 않은가. 거기다가 애들은 우리도 리네아처럼 아보카도랑 봉선화 키워보자며 성화를 부린다.  어쩐지 리네아의 작전에 말려든 것 같다. 

리네아 이야기는 세권 모두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행복할 수 있는 책이다. 함께 할 이야기 거리가 많은 책이다.  그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그런 책이다.  아이들은 이 책에 나오는 식물들의 신비스러운 성장과 그것을 부지런히 돌보고 가꾸는 리네아의 따뜻한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될 것이다.

집을 비울 때 물주는 방법과 해충퇴치법같은 것들까지 리네아에게 자세히 배웠으니 이제 꽃이나 나무를 죽여놓고는 "몰라서"라는 핑계를 대기 어려워졌다.  얼마전에 읽은 <원예도감>에서도 원예지식을 얻을 수 있었는다 그러나  <신기한 식물일기>에서는 마치 우리 가까이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랑스런 소녀 리네아를 알게 됨으로써 나의 게으름을 리네아가 지켜보고 핀잔할 것만 같은 착각까지 들게 만든다.

점점 날씨가 추워진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리네아를 통해 겨울 속에서 봄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쇠락해져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 겨울에 많은 사람들이 리네아를 통해 봄을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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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이레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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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나 이십대 시절에 <데미안>이나 <나르시스와 골드문트><싯다르타>를 읽으며 헤르만 헤세를 알았다.  헤세 특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끌려, 혹은 헤르만 헤세라는 명성있는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읽으면서 꽤 마음을 설레었던 것 같다.

이제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헤세와 무릎을 마주했다.  노인이 된 헤세의 우울하고 약한  모습이 보인다. 섬세한 감수성으로 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내면의 울림이 강한 글을 썼던 헤세이니만큼 두 번에 걸치 세계대전은 그에게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문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그가 정원 일을 하면서 느꼈다는 즐거움이 나에겐 참 쓸쓸하게 들린다. 꽃과 나무를 돌보면서 채소를 키우고 수확하면서 또는 폭풍에 뿌리를 드러내고 그 삶을 마감한 커다란 나무들을 바라보며 그는 나름대로 세상의 광풍에 찢어진 자신의 영혼을 치유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노인 헤세의 모습에서 나는 연민을 느낀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를 비겁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건 그는 전쟁의 광풍에 직접적인 희생을 당하진 않았으니까.  그저 정원을 가꾸고 작품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전쟁의 소용돌이 바깥에서 조용한 나날을 보낸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왜 총을 잡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 없다.  왜 독일인으로서 나치의 횡포에 더 강력하게 대항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고 싶지도 않다.  나이를 먹으면서 모든 사람이 다 강한 영혼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를 비난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는 자괴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도 헤세는 '자기 집을 개방'하여 '수백명의 이주자들을 받아'들이고 '집단적이고 파국적이 권력에 대항해서 헤세는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고, 능력의 한계에 이를 때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썼다'고 하지 않는가. 

자, 책 외적인 건 덮어두자.  그는 글을 통해서 사람과 자연, 그리고 사물들에게까지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그 깊은 애정 때문에 광폭해진 세상을 못견뎌 한다.) 그는 정원 일을 통해서 자기의 내면에 가 닿기를 바랬고, 꽃과 나무들을 돌봄으로써 삶과 죽음을 맑게 들여다 보고자 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서 지친 자기의 몸과 영혼이 회복되기를 바랬다.  세상이 자기가 보내는 메세지에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바랬을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서두르며 난폭해지냐고 책망하면서 사람들이 스스로의 내면에 간직한 심연을 찾아주길 바랬던 건 아닐까 싶다.  작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눈맞추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랬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테니까. 그것이 헤세 나름의 문학적 저항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한 헤세가 낙엽을 태우거나  채소를 수확하고, 고양이와 마주보며 웃는 사진들은 그의 글들이 더 가슴에 와닿게 한다.  어쩐지 사진 속 그의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 헤세가 그린 그림이 글과 함께 아름다움을 더한다.  책의 뒷편에 '꿈의 집'과 '아이리스'라는 제목의 단편이 두편을 만나는 기쁨을 얻을 수도 있다.

현대의 복잡한 문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우리들에게 헤세의 글은 그 반향이 크다 할 수 있겠다.   예전에 '자발적 가난'이라는 말을 듣고 공감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정말 우리에겐 소박함이나 자발적 가난의 실천이 필요한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는 지금의 모습이 너무 어지럽고 요란스럽게 느껴진다.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려면 치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다.  아연실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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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이레 / 2001년 10월
절판


아주 이따금,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어느 한 순간, 땅 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우리 인간만이 이 같은 사물의 순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사물의 불멸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번뿐인 인생인 양 자기만의 것, 별나고 특별한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기이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17쪽

우리는 자신이 무척 창조적인 존재이며 또 우리의 영혼이 늘상 세계의 지속적인 창조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쉽게 발견한다. 우리와 자연 속에서 활동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분리될 수 없는 신성함이다. 그러므로 외부 세계가 몰락하더라도,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다시 그 세계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산과 강, 나무와 잎사귀, 뿌리와 꽃, 이 모든 자연의 형상은 우리 안에 그 원형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영원성을 지닌 영혼, 우리가 비록 그 본질은 알지 못하나 사랑의 힘, 창조의 힘으로 느끼는 그 영혼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26~27쪽

우리들의 마음은 환경을 얼마나 많이 가공하고 변화시키는가. 심지어 얼마나 많이 수정해 버리고 마는가. 또한 우리의 삶의 추억은 얼마나 강하게 내면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는가. -31쪽

우리들이 서글퍼져 더이상 삶을 버텨내기 힘들어질 때, 나무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조용히 하라! 조용히 하라! 나를 바라보라! 삶은 쉬운 것이 아니다. 삶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모두 어린아이 같은 것이다. 신이 네 안에서 말씀하시도록 하라. 그리고 너는 침묵하라.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네가 가는 길이 너를 어머니로부터,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딛는 걸음마다, 매일매일이 너를 새롭게 어머니에게 이끌어간다. 고향이란 여기 혹은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향은 너의 내면에 있든가 아니면 어디에도 없다."
(중략)
나무들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53~54쪽

산업이란 이런 형태(태곳적부터의 형태)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어설프게 새롭지만 무의미하고 유희적인 것들로 대치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산업이란, 현대인들이 일하고 즐길 때 사용하는 물건들에 전혀 애착심을 갖지 않고 자주 바꾸어 버려야만 그 바탕 위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산업은 이 모든 물건들을 유행의 노예로 만들어 놓는 데 성공한 셈이다. 한 때만을 보고 계산된 이런 유행에서 태고 이래로 고수되어 온 연장들의 아름답고 생명력 있고 정연한 진짜 형태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80~81쪽

전쟁이 일어났다. 오래지 않아 나의 불만과 우울증의 원인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어져 버렸다. 나는 분명하게 그 원인들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아무것도 치유될 수 없지만, 이 지옥 같은 시대를 헤치며 살아 나가는 것이 이기적인 우울함이나 환멸에 대한 훌륭한 치료가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85쪽

하지만 친구여, 우리 동료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우리 같은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 위험에 처해 있지. 미국 취향으로 변한 현대인들의 음악성이란 전축을 소유하는 것이고, 반짝거리게 니스 칠이 잘된 자동차가 그들에게는 아름다움의 세계에 속하는 물건이 되고 말았거든. (중략)
겉보기에는 저렇듯 둔감하고 저주스러울 만큼 건강한, 돈과 기계에 매달리는 인간이 바보처럼 행복에 젖어 한 세대 가량을 흘려보내고 나면, 그 다음에 아마 그들은 의사나 선생, 예술가, 마술사들을 찾아가 많은 돈을 주고 자신들을 다시 아름다움의 비밀로, 영혼의 비밀로 이끌어달라고 요청하게 될 것이네.-104쪽

나는 이 생활에 열정적으로 몰두할 마음은 없고, 그저 여유를 갖고 해나갈 생각이다.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한가롭게 즐길 것이며, 수풀을 개간하고 곡식을 재배하기보다는 가을의 타는 장작불의 푸른 연기 곁에서 꿈꿀 것이다.
(중략)
인생에는 어려운 일, 슬픈 일들이 있다. 그래도 때때로 꿈이 이루어지고 행복이 찾아온다.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 행복은 잠시 동안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한곳에 머물며 고향을 갖는다는 기분, 꽃들과 나무, 흙, 샘물과 친해진다는 기분, 한 조각의 땅에 책임을 진다는 기분, 50여그루의 나무와 몇 포기의 화초, 무화과나무나 복숭아나무에 책임을 진다는 기분이 그런 것이다. -122쪽

농촌 생황은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거칠지는 않지만 온화한 것도 아니다. 정신적이거나 영웅적인 생활도 아니다. 하지만 마치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고향처럼 모든 정신적인 인간과 영웅적인 인간의 마음을 그 깊은 곳까지 끌어당긴다. 왜냐하면 이런 것이야말로 가장 오래 존속돼 온 가장 소박하고 경건한 인간 생활이기 때문이다.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근면과 노고로 가득 차 있으나 성급함이 없고 걱정 따위도 없다. 그런 일상의 밑바탕에는 경건함이 있다. 대지, 물, 공기, 사계절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 있고 식물과 동물들이 지닌 생명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다. -126~127쪽

그러니 현명하다는 것은
현자들에게는 연금술이자 유희인 것이다.
세계가 거칠고 격렬한 충동에 지배되는 동안에도.
그러니 우리는 겸허해지자. 가능하면
세계가 질주하며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도
저 영혼의 고요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옛사람들이 칭찬하고 노력했던 것이니, 우리도 그 선한 것을 따르자.
제발 서둘러 세계를 바꾸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갈 것이다.-159쪽

잘 가거라. 내 소중한 복숭아 나무여! 하지만 너는 그래도 품위있고 자연스럽게 온당한 죽음을 맞이했으니 행복하다고 해도 좋으리라. 너는 더는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버텼으며, 거대한 적이 너의 가지들을 비틀 때까지 반항했다. 결국 너는 굴복하고 쓰러져 뿌리가 뽑히고 말았다. 그래도 너는 공중 폭격을 받아 산산이 부서진 건 아니지 않으냐. 악마처럼 독한 산酸으로 태워진 것도 아니지 않으냐. 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처럼 고향 땅에서 뿌리 뽑히고 낯선 땅에 임시로 심어졌다가 다시 짐을 싸고 떠나는 실향민의 운명을 겪지는 않았다. 너는 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몰락, 파괴, 전쟁, 수치를 겪으면서 비참하게 죽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너는 너와 같은 나무들에게 주어지는 숙명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너는 우리들보다 더 멋있고 아름답게 나이가 들어 기품있게 죽어갔다. 우리 인간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독으로 오염된 비참한 세상에 저항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위에서 썩어 가는 것들에 대항해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매번 투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170쪽

비가 오지 않을 때면, 나는 매일 잡초를 뽑는 일로 소일합니다. (중략) 그런 일을 할 때는 물질적인 충동이나 사색으로부터 완전히 순수하게 벗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수백 시간, 아니 셀 수도 없이 많은 시간동안 정원의 채소밭에서 일해도, 기껏해야 서너 바구니 정도밖에는 수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대신 이런 노동은 무언가 종교적인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땅에 무릎을 꿇고 잡초를 뽑아내는 일은 마치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것과 같지요. 그것은 의식 그 자체를 위한 것이며, 영원히 새롭게 행해지는 것입니다. -194쪽

게다가 나는 정원 일에 매달리는 노예가 되는 것이 싫지 않습니다. (중략)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지껄이는 모든 일들 가운데서 이런 일이야말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선하고 쾌적한 일이겠지요. -197쪽

땅과 식물을 상대로 일하는 것은 명상과 마찬가지로 영혼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쉬게 해주는 것입니다. -212쪽

작은 장미 화단조차 해안이나 넓은 세계처럼 감각과 관념에 의해 다 퍼올릴 수 없음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소유란 무엇이든지 제한적인 것이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건 바로 체념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체념하는 일은, 미소와 명상을 통해 성스럽게 변모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220쪽

인생의 한창때를 지나 보내고 긴 그림자가 비치는 골짜기 깊은 곳으로 내려온 후로, 그는 죽음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가 원래 나온 장소와 이제부터 가야 할 곳이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삶이 유혹하는 소리, 어린 시절부터 날마다 그를 부르며 그의 발걸음을 끊임없이 앞으로, 또 앞으로 몰아세웠던 그 유혹의 소리는 점차 저세상에서 부르는 죽음의 소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소리를 따라가는 것이 생의 유혹에 대답하는 것과 별다를 바 없이 아름답고 기이하게 느껴졌다.
삶이라고 하는 것, 죽음이라고 하는 것, 그런 것은 단지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혹의 소리는 실제로 존재하면서 노래부르고 그를 끌어당기며, 하루하루를 올바른 리듬에 맞춰 살아가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그의 길은 고향으로 향해 있었다. -222쪽

식물을 가꾸고 좋은 정원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단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마찬가지로 어렵지. 불완전한 것까지도 사랑하려고 결심하지 않으면 안돼. 그렇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고 말지. 너야 물론 나보다 잘해 낼 거야. 너도 아니? 의지의 자유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아주 샅샅이 연구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정원 일에 몰두해 봐야 한다. 대단찮아 보이는 관목도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자라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냐. 네가 어떤 관목을 골라 심었더라도 그건 완전히 너의 자유의지에 의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단다. 그 배후에는 어떤 무의식적인 바람, 추억, 필연성이 숨어있기 때문이지. -227쪽

사물들이 조용하면서도 강인하게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 멋지고 명상적이며 포근한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이 없다면 그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 (중략)
그는 모든 사물에 깃들인 생명을 느낄 수 있었다. 그처럼 고요하면서도 확고하게 생명을 지닌 사물들 속에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이따금 부당하고 비정하게, 일종의 죄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속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속죄하더라도 단지 한순간, 사물들에 대한 좀더 깊은 애정에 의해서만, 잠깐 사이 고독과 무상감 속에서 재빠르게 스쳐 가는 전율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244쪽

"Œ었을 때는 말이다, 한스야. 자신이 많이 고독하다고 느끼는 법이다. 그리고 고독한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친구들을 찾아 나서고, 사랑에 빠지고, 가족과 조국을 찾는다. 그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 덕에 세계가 번영하는 거니까. 그렇지만 나이가 들 만큼 들면 그런 것들이 더는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다. 그때 가서는 우정과 사랑, 조국은 우리를 다른 것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전체로부터 떼어 놓는 껍질 같은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단다. 나이가 들면 우리는 전체와 하나가 되고 싶어하지. 이 전체가 다름 아닌 신神이란다. -246쪽

"우리는 자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를 연구했다. 하지만 그 결과 세계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신을 믿는 대신에, 뢴트겐 광선에 관한 비밀 따위를 몇 개 알고 있을 뿐이지. 그런 지식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에 갑자기 구멍을 뚫어 버렸다. 그리하여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보다 훨씬 더 기이하고 놀라운 것임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옛날보다 가난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아니, 그 반대로 우리는 어쩐지 갑자기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에게는 진짜 중요한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노인은 작은 화분을 들어올려 화초가 제대로 심어져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중요한 것이란 도대체 뭐지요?"
한스는 주저하듯이 물었다.
"소박함이란다."
노인은 짧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249쪽

매번 우리는 그저 자신이 한번 좋아했던 것에 매달리게 되지. 그러면서 그렇게 매달리는 것을 충실하다고 여기지만, 그건 게으름에 불과하다. (중략) 예술은 우리와 세계의 심장 사이에 존재하는 섬세하고 민감한 막膜이란다. 단단한 갑옷보다야 이 얇은 막이 낫겠지. 그러나 세계의 심장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것마저도 뚫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259쪽

이 지상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은 하나의 상징이며, 모든 상징은 열려진 문이다. 그 열린 문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 세계에서는 너와 나, 낮과 밤 그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된다. 어떤 사람이든 살아가는 동안 여기저기서 그 길로 통하는 문을 만난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상징이며 그 이면에는 영원한 삶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만이 상징의 문을 통과해 예감해 왔던 내면의 세계에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266쪽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것을 느낀다. 누구나 안젤름처럼 강렬하고 섬세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해도. 많은 아이들은 글자를 배울 무렵이 되면 모든 것을 잊어버려, 상징의 열린 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비밀을 오래도록 간직할 뿐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숨겨진 비밀의 여운을 훗날 백발이 되고 몸이 쇠약해질 때까지 지니고 간다. 그들의 영혼은 끊임없이 오직 단 하나 중요한 것에만 몰두한다. 바로 자기 자신에게 열중하고, 자기 자신과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수수께끼처럼 비밀스러운 관계에 열중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성숙해지면서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현명한 사람들은 되돌아와 이 일에 몰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한 내면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평생 동안 잡다한 걱정과 갈망, 목표 같은 미망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어떤 것도 그들을 자신의 내면으로 진정한 고향으로 이끌지 못한다. -268쪽

사랑하는 안젤름, 나는 우리가 이 지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잃어버린 아득한 소리에 대해 명상하고 모색하고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기 위해서지요. 그 뒤쪽에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있을 겁니다.-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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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정원 리네아의 이야기 2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지음, 레나 안데르손 그림, 김석희 옮김 / 미래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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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모네의 정원에서>에서 은퇴한 정원사 블룸 할아버지와 파리로 여행을 떠나 모네의 작품도 보고 모네가 살던 지베르니의 클로드 모네 기념관에 가서 모네의 정원을 둘러보는 이야기였다.  1권을 읽으면서 리네아의 평소 생활이 궁금했다면 2권 꼬마정원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2권 <꼬마정원>은 리네아의 열두달 식물일지 같은 형식이지만 그 안에는 단지 꽃과 풀, 나무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블룸할아버지와 블룸할아버지의 친구 브러시 할아버지와 함께 정을 나누고 자연을 사랑하고 주변의 작은 것들을 아끼고 소중히 할 줄 아는 리네아의 고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겨울새에게 모이를 주는 법에서부터 브러시 할아버지 정원에 사는 쥐에 관한 이야기, 뱀연을 만드는 법도 나와 있고 정원이나 숲에서 나는 풀들로 만드는 요리법도 있다.  무엇보다 7월에 바닷가로 놀러갔다가 유리병 속에서 편지를 발견하고  네명의 편지 친구가 생기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바닷가에서 주은 보물아닌 보물(어른인 우리가 보기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들로 크리스마스에 선물 재료로 쓰는 리네아를 보면서 점점 리네아라는 아이에게 빠져들어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매달마다 리네아가 사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새들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새들이 찾아오곤 하는데 까치와 참새, 비둘기 말고는 다른 새들의 이름을 알수가 없었다.  아이들이랑 뻭빽거리며 운다고 우리 마음대로 빽새라고 이름 붙였던 새는 직빠꾸리라는 새로 밝혀졌는데 다른 새들은 아직도 모른다.  <꼬마정원>책을 읽어보면서 아이들이랑 한번 제대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리네아의 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서양인의 얼굴이 아니라 동양인의 얼굴, 그것도 한국인의 얼굴이라니 더욱 정겹다.  리네아의 실제 모습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책에서 물망초 표본 밑에 1988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걸로 보아.... 거의 20년이 흐른 지금... 어쩌면 결혼해서 리네아를 닮은 어여쁜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천득님의 <인연>이라는 수필이 떠오르면서 리네아는 이 그림책 속에서 만나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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