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서울사진축제 <서울 視 . 공간의 탄생> 전은 옆지기가 관련한 전시인데도 불구하고, 전시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가보기는 했지만 지인들과 함께 가서 정작 전시 작품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전시장지킴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딸래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시간을 써버리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작품도록을 펼쳐보는데 사진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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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아래 적혀있는 작품에 대한 정보를 그대로 옮기면 '전몽각, 고속도로 건설현장(영천공구), 1968~1969'라고 되어 있다. 고속도로 건설현장에 구경나온 네 분의 어르신들. 두루마기에 갓까지 갖춰 쓰시고, 논밭을 깔아뭉개서 큰길을 내는 현장에 나와 나란히 앉아 바라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을까. 어쩐지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는 순간의 장면 같기도 하고, 개발이니 발전이니 하는 걸 핑계삼아 무참히 휘두르는 씁쓸한 폭력의 현장 같기도 하고... 저 어르신들 네 분의 뒷모습이 어쩐지 짠하고 측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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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1905년 광화문 거리다. 넓고 한적한 길, 오른쪽 아래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 한 아이에게 자꾸 눈이 간다. 1905년이면 필름이 보급되기도 전, 유리건판으로 찍은 사진일 것 같은데, 아이는 사진 앞부분에 선명하게 찍혀있어서 저 걸음으로 사진 밖으로까지 걸어나올 것만 같다. 이 사진 아래에는1930년에 저 광화문 자리에 들어선 조선총독부 건물을 찍은 사진이 있다. 우리들의 슬픈 시대의 모습이 사진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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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제83회 생신 축하 기념 매스 게임 사진(1958년)이다. 어린 학생들을 동원해서 생일잔치를 벌이다니,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어이없는 발상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수도 서울을 버리고 급하게 달아난 이승만은 세월호 선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은데, 그런 대통령의 생신을 축하한다고 동원되어 열심히 매스게임 연습을 했을 저 학생들은 또 왜 이렇게 불쌍해 보이는 건지.
지금 내가 사는 동네의 옛날 모습 사진도 있는데,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대학로에 대학천이라는 실개천 같은 게 있었다는 것도 그 물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을 찍은 사진들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날 전시를 마감하고 아들만 뺀 네 식구는 근처 더덕요리 전문 음식점에서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큰딸이 더덕이 들어간 삼겹보쌈을 먹고 싶다고 하고 막내는 간장게장이 먹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내가 먹고 싶었던 더덕구이를 못 먹은 게 조금 아쉽지만 배불리 잘 먹었다. 더덕구이를 먹지 못한 아쉬움을 커피로 달래려고 옆지기에게 커피까지 사달라고 졸랐다. 큰딸은 스벅을 가자고 했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고 어디에나 있는 스벅커피 말고 광화문에서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커피를 사달라고 했더니 테라로사로 데려가 줬다. 몇 년 전 강릉에 있는 허난설헌 생가를 찾아갔을 때 테라로사 본점에 간 적이 있었다. 빵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고, 커피맛도 좋았다. 그 때 이미 서울에 분점을 낼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음, 광화문에 생겼었구나. 몰랐다. 지난 여름 다시 강릉 테라로사 본점에 갔을 때에는 이미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져서 주차하기도 어려워 포기하고 돌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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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지기와 나는 카푸치노를, 막내는 코코아를, 큰딸은 과일쥬스를 주문했다. 카푸치노는 넘 맛있었다. 진하고 향기롭고 부드럽고... 자고로 카푸치노는 이래야 하는 거야,를 보여준다고 할까. 강릉 테라로사 본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지만 광화문점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아주 기다란 나무 탁자가 탐났고,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아서 또 놀랐다. 옆지기 말로는 평일에도 항상 사람이 무지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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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갔을 때,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롬님 서재에 요즘 크리스마스 장식품에 대한 사진과 글이 올라오고 있는데, 아직까지 여기는 크리스마스의 흥겨운 분위기는 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커피빈에 들러서 모카라떼를 마셨다. 모카라떼를 주문한 건 세실님 서재 글에서 논어는 카페모카 같다고 한 글을 읽어버렸기 때문이다. 커피빈 모카라떼는 내 입맛에는 그냥 코코아 같은 맛. 커피 맛이 너무 약하고 너무 달다.... 논어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건지, 커피빈 모카라떼에 문제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카페모카에서 논어를 연상할 수 없었다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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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이라고는 달랑 이거 하나..
아롬님 서재에 있는 멋진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스벅과 달라도 너무 다르구나..
---- 쓰고 보니 뭐 이렇게 잡다한 페이퍼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