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길냥이에게 밥을 챙겨주기 시작한지 넉달이 되어간다.  

처음보다는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다가오지는 않는다.

어제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오는 길에 화단 계단 밑에 만들어 준 냥이집을 보았더니

녀석이 그 안에 들어앉아 졸고 있었다.

언제나 밥만 먹고는 쌩~하니 달아나던 녀석이었는데, 장족의 발전이다.

혹시나 그 달디단 낮잠을 방해할까 발소리를 죽여 살금 들어왔다.

한파가 몰려오고 추위가 기승을 떨던 겨우내 녀석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한동안은 놓아준 사료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혹시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병이 든 건 아닌지,

어디서 얼어죽은 건 아닌지 걱정되고 안부가 궁금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제가 우수, 어쨌거나 이 모진 겨울을 이겨낸 녀석이 기특하고 대견할 따름이다.  

 

다섯 시쯤, 사료와 물을 챙겨들고 나갈 때까지도 냥이는 낮잠을 즐기고 있었나 보다.

화단에 들어서는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집에서 화들짝 놀라 튕기듯 나왔다.

그러고는 동그란 눈으로 날 빤히 쳐다본다.

"배 안고파? 밥 주러 왔어."

내가 다가가자 에어컨 실외기 뒷편으로 슬금슬금 물러난다.

냉기가 올라오지 말라고 바닥에 깔아준 스티로폼과 박스에 시트지를 붙여 만들어준 냥이 집 벽과의 틈사이에

떨어진 사료들이 보였다.

내가 스티로폼을 거둬내고 떨어진 사료들을 치워주고 먼지 털어주었다. 

그 모습을 냥이는 에어컨 실외기 뒷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사료와 물을 넣어주고 일어서서 화단을 다 벗어나기도 전에 냥이는

몸을 낮춘 경계 자세로 살금살금 나와서는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곧장 베란다로 가서 버티컬 틈새로 냥이가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료로 배를 채운 뒤에도 냥이는 집을 떠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오늘 아침 막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나섰는데 화단에 냥이가 있었다.

"냥이다, 냥아~~" 하고 부르고 보니, 우리 냥이(길냥이를 우리 냥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지만)가 아니다.

우리 냥이는 까만 턱시도를 차려 입은 고양이인데 그 고양이는 노랑, 까망, 하양이 뒤섞인 얼룩 고양이었다.

우리를 보고 화다닥 놀라 달아났다.

아마 어제 냥이 집을 청소해 준다고 떨어진 사료들을 모아서 화단 흙 위에 그냥  버려두었는데

그 냄새를 맡고 찾아온 게 아닌가 싶다.

 

아파트 주민들이 길냥이에게 밥을 줘서 도둑고양이들을 끌어들인다고 항의를 할까봐

새가슴인 나는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료를 좀 더 넉넉히 줘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우리 냥이는 새로 등장한 얼룩냥이를 받아들일까?

고양이들에겐 자기들만의 영역이 있다는데 혹시 싸움을 벌이면 어쩌나.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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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2-02-20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마음씨의 섬사이님. 전 가끔 보이는 고양이가 무서워 피해 다녀요. ㅠㅠ

섬사이 2012-02-23 11:15   좋아요 0 | URL
고양이를 유난히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저는 어릴 때 집에서 강아지며 고양이를 많이 키웠더래서 그런지
무서워하진 않는 편이에요.

프레이야 2012-02-2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정말 오랜만에 반가워요. 그동안 일들이 많았군요. 이제 자주 뵈어요.
길냥이에게 밥주기를 넉달이나 하고 계시군요.^^
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에요.
'고양이춤'이라는 다큐를 보고 길냥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볼 수 있었는데 말에요.

앗, 근데 올려주신 사진이 하나도 안 보여요.

섬사이 2012-02-23 11:14   좋아요 0 | URL
앗, 그러게요, 왜 사진이 사라진 걸까요...
길냥이 밥주기는 생각보다 하고 계신 분들이 많던걸요.
아는 엄마도 길냥이 두 마리에게 밥을 주는데
그러다가 유기동물보호협회에도 가입했대요.
제가 길냥이에게 밥을 준다는 걸 알고는
냥이 영양제까지 챙겨서 갖다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