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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는 기분이 좋아요 알맹이 그림책 23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일론 비클란드 그림, 김서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린드그렌의 책들을 읽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답다'는 걸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린드그렌의 책들을 읽으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꼬물꼬물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내가 탐험해야 하는 미지의 세계에 속해있는 것 같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든 것이 좀 더 단순하고 선명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내가 잃어버린 아이의 세계가 그 빛을 반짝이며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예를 들면 이런 거. 언니 오빠와 함께 부활절 마녀 옷을 입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기로 약속했지만 언니 오빠가 생일 초대를 받아 내내 기다리던 로타와의 약속을 어겼을 때 로타가 느낀 감정의 흐름 같은 걸 린드그렌은 이렇게 묘사했다.  

로타는 정원 울타리 문 앞에 서서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화를 냈어요. 하지만 조금 지나니까 우습게도 화는 전혀 안 나고 그냥 외롭고 슬프기만 했어요. 그러다가 또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슬프지도 않고 외롭기만 한 거예요. 그래서 로타는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언니랑 오빠가 올 때까지 뭘 할까? 뭔가를 생각해 내는 건 로타가 아주 잘 하는 일이에요.   

글쎄, 묘사라고 하기 보다 설명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를 아주 간결한 문장이지만 또 아주 정확하고 섬세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책을 읽다말고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게 된다.  언젠가 나도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따지고 보면 책 속에는 언제나 기분 좋은 아이인 로타의 즐거운 이야기만 들어있는 건 아니다. 그리스에서 이주해 와서 사탕가게를 하던 바실리스 아저씨가 장사가 잘 안되어 다시 그리스로 돌아가야만 하는 슬픈 사연도 있다. 실의에 빠진 바실리스 아저씨 앞에서 로타는 큰 소리로 운다. 타인이자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바실리스 아저씨의 슬픔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아이의 울음에서 바실리스 아저씨는 조금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비록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실패를 했지만 낯선 이국 땅에서 작은 사탕가게를 열어 꾸려온 시간들이 아주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바실리스 아저씨는 로타에게 크리스마스 장식 초콜릿을 커다란 종이 가방 두 개에 나누어 담아 준다. 그건 어린 로타에겐 정말 '기적'이었을 것이다. 부활절 달걀을 준비해야 하는 엄마 아빠도 바실리스 아저씨네 가게가 문을 닫는 바람에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니까 더욱.   

"너, 부활절 토끼가 바로 아빠라는 거 몰랐니? 산타클로스도 아빠야. 네가 궁금해할까 봐 알려 주는 거야." 
나, 참! 로타는 그런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어요. 부활절 토끼는 진짜 부활절 토끼여야 하고, 산타클로스는 진짜 산타클로스여야 하잖아요. 바로 그것 때문에 부활절과 크리스마스가 신나고, 신비하고, 멋진 건데 말이에요. 아빠가 날마다 멋진 아빠이기는 하지만, 부활절 토끼랑 산타클로스랑 아빠가 뒤죽박죽 섞이는 건 정말 싫은 일이에요. 

  
아이에게 산타클로스가 부모였다는 건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하지만 로타는 부활절을 망치고 싶지 않아 '깊이' 생각한 후에 스스로 기꺼이 부활절 토끼가 된다. 그리고 아이로서는 흔하지 않게 산타클로스가 되는 기쁨을, 부활절 토끼가 되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이게 무슨 일이냐? 이것들이 다 어디서 왔어?"
아빠가 물었어요. 미아 마리아가 깔깔거렸어요.  
"이래 놓고 아빠는 부활절 토끼가 오해에는 안 온다고 하셨어요?" 
"아빠가 아냐. 조그만 크리스마스 토끼가 그랬어."
로타가 말했어요. 그러고서 어찌나 웃어 댔는지,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어요.  
......(중략)
날마다 이렇게 다른 식구들을 놀라게 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로타는 생각했어요.  

부활절 토끼가 초콜릿 달걀을 숨겨놓고 가는 서양의 부활절 풍습은 우리에겐 참 낯설어서 이 그림책의 내용 자체가 공감을 얻어내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점만 극복한다면 린드그렌이 엮어낸 아이들 세계 속으로 푹 젖어들 수 있는 그림책이다.  온세상 아이들을 전부 다 사랑스럽게 바라보게 만드는 린드그렌의 마법이 담겨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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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8-21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린드그렌은 어쩜 이리도 아이들 마음을 잘 알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책으로 내놓았을까요.^^
참 기분 좋아지는 그림책이더군요.

섬사이 2011-08-23 22:01   좋아요 0 | URL
린드그렌의 책을 볼 때마다 참 신기하고 놀라워요.
(카알손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지만요)
이 책을 신간평가단 책으로 받고서 <저거 봐, 마디타, 눈이 와!>까지 사버렸어요. ^^

프레이야 2011-08-24 10:51   좋아요 0 | URL
히힛~ 전 그 두 권 함께 바람의아이들에서 받았지요.^^
린드그렌의 책은 마술같아요. 마음을 환하게 해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