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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자루 굴러간다 ㅣ 우리 그림책 4
김윤정 글.그림 / 국민서관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아이랑 같이 책을 읽어가다보면 어떤 이유로든 깊은 인상을 남기는 책들이 있다. 그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거나 웃겨서인 경우도 있지만 때론 너무 엽기적인데 그게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져서 그런 경우도 종종 있다.
이 책은 아마 <똥벼락> 이후 가장 엽기적인 똥이야기가 아닌가 싶은데, 도서관에서 빌려온 날 이 책을 읽고는 나도 막내도, 그리고 큰애들까지도 낄낄낄 웃어댔다.
표지를 보면 한 장군이 양손을 입가에 갖다대고는 뭐라 외치고 있는데, 분명 "똥자루 굴러간다~~"하고 제목을 외치고 있는 게 틀림없을 테고, 장군 양쪽에 있는 포졸들은 뭐가 그리 웃기는지 장군을 바라보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이 장군, 뭔가 이상하다. 손이 너무 곱상하고 가슴께까지 곱게 드리운 댕기머리는 또 뭔가.
책을 펼치면 속표지에 강아지 한 마리가 등장한다. 눈을 감고 코를 킁킁대며 어딘가로 향하는데오른쪽 끝에 노랗게 번져나오는 냄새가 수상하다. 다시 한 장을 더 들추면 냄새는 더 진해지고 못가에 서 있는 동물들의 표정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다람쥐 한 마리는 코까지 틀어막고 있는데 아까 보았던 그 개 한 마리만 여전히 좋다며 냄새를 좇고 있다.
드디어 본이야기로 들어간 첫장부터 거대 똥이 떡 하니 등장한다. 똥을 자세히 보면 콩나물이며 거뭇거뭇한 수박씨가... '아이고, 정말 적나라하게 더럽다' 하면서도 묵직하고 거대한 똥의 존재감을 무시하지 못하고 아이랑 같이 똥에 박힌 콩나물이 하나, 둘, 셋, 넷, 다섯개라며 세고 있다. 그림책이 엽기인 건지, 아니면 내가 더 엽기인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다. 아무튼 '똥 한 번 누면 뒷간이 막히고 똥 두 번 누면 앞길이 막힌다'는 똥자루 굵은 똥자루 장군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군사들이 우연히 시댓가를 찾았다가 이 어마어마한 똥자루를 발견하고는 나름 논리적인 사고 전개과정을 통해서 '똥자루가 굵으니, 덩치가 클 것이요. 똥자루 색을 보니, 속도 튼튼하겠구나. 나라의 든든한 장군감이 분명하니, 여봐라, 똥임자를 찾아라!'며 똥자루 임자를 찾기 시작한다. 지금같으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체포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당시의 우리 조상들은 배포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구석구석 똥임자를 찾아다니다가 드디어 찾아내긴 했는데, 이런 그 어마어마한 똥의 주인이 가슴 봉긋한 처녀였던 것이다. 대장이 아연실색하고 있는데, 이 처녀 어마어마한 똥 주인답게 야무지게 말한다. "여자인 게 뭐 어떻습니까? 나라만 잘 지키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이리도 멋질까. 이만하면 똥자루 굵은 것쯤, 여자인 것쯤, 뒷간이 막히고 앞길이 막히는 것쯤 용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대장도 이 당당하고도 야무진 처녀에게 반했는지 부장군에 명하는데 정작 부하들은 데굴데굴 구르다 못해 눈물까지 질질 짜가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괘씸한지고!! 이 버르장머리 없는 부하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하는데!!! (근데, 좀 웃기긴 웃기겠다.)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적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돌 때, 부장군 처녀는 마을 여기저기에 박을 심고 동글동글하게 박이 열리자 그 박을 이용해서 마을에 쳐들어오는 적군을 도망가게 만든다. 적군들이 겨우겨우 아무도 없는 산 중턱까지 도망가서 숨을 돌리려 할 때, 저 산 끝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처녀가 산을 흔드는 소리, '끄-응-' 저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 똥장군 처녀의 익살스런 표정을 보고 어떻게 따라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똥자루 굴러간다!"
시퍼렇게 질린 왜군 병사들이 혼비백산 달아나는 그림은 생각보다 카타르시스 효과가 크다. 이 그림책을 읽을 즈음이 일본에 거대 쓰나미가 덮쳤을 바로 그 때였는데도 불구하고 '좀 미안하다'하면서도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꼬맹이는 옆에서 "엄마 이 사람은 똥에 깔렸어." "엄마엄마, 이 사람은 똥에 박혔어" "엄마, 이 사람은 머리에 똥 맞았어" 하는데 그림에 아주 푹 빠진 것 같았다.
처녀는 적을 무찌른 공으로 장군이 되었고, 그 후로 적들이 쳐들어오는 일은 없었다나. 장군이 되어 밝게 웃고 있는 처녀의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기왕이면 데굴데굴 구르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처녀를 조롱하던 그 괘씸한 부하들이 장군이 된 처녀를 인정하고 존경하게 된 모습들을 함께 그려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너무 교훈적이라든가 아니면 너무 뻔한 결말이라든가 하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뻔하고 교훈적인 결말 대신에 예상하지 못했던 산뜻하고 매력적인 뒷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겨 놓았던 것이다. 뒷쪽 속표지에 이 똥자루 장군과 대장 사이의 스캔들을(저 새침떨며 도도하게 튕기며 돌아서는 처녀의 모습이 어쩌면 이렇게도 내마음에 쏙 드는 건지!!) 그리고 뒷표지에선 적군의 장군이 왕에게 보고하고 있는 창호지 그림자를 그려 놓았다. "하늘에서 거대한 똥자루가!" 하고 왕에게 보고 하는 적군의 장군이 어쩐지 측은하다. 분명 왕에게 "어디서 그런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므니까!"하며 야단을 맞을 것 같은데...
'이완 장군과 똥자루 큰 처녀'라는 강원도 설화와 '무쇠바가지'라는 설화를 한데 섞어서 새로 쓰고 그린 그림책이라고 한다. 가져다 쓴 옛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거기다가 맛깔나는 글과 유머스럽고 정감가는 그림을 더해서 아이들이 즐겁게 읽을 그림책으로 탄생시켰다는 사실이 난 무척 반갑고 신난다. 뒤숭숭한 요즈음 나와 아이들에게 웃음을 안겨다 준, 엽기적인 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 같은 그런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