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사랑하는 심달연’으로 불리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심달연(사진)씨가 지난 5일 별세했다. 향년 83.

심씨는 지난 6월 말부터 간암으로 투병하다 이날 저녁 7시50분께 입원중이던 대구 중구 곽병원에서 조카와 조카손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회원 1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927년 경북 칠곡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3살 무렵 언니와 함께 산나물을 뜯으러 나갔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대만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당한 폭력과 고통이 마음의 병이 됐다. 해방 뒤 귀국했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말조차 잃어버렸다. 다행히 여동생이 할머니를 알아보고 집으로 데려와 돌봤다. 차츰 기억을 찾았지만, 당시의 폭력 후유증으로 자궁경부암 수술까지 받고 온갖 질병에 시달렸다.

하지만 심씨는 고통을 견디며 빼앗긴 인권을 되찾고자 용기를 내어 세상에 나섰고, 위안부 문제해결에 증인으로, 활동가로 앞장섰다. 제61차 유엔인권위원회 본회의와 국제 엔지오포럼에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주는 대신 면죄부를 받으려고 만든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의 비도덕성을 세상에 알렸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에게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국내외 20만명의 서명을 전달하는 데도 함께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생애는 꽃과 함께했다. 7년 전부터 꽃을 가꾸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원예치료’를 받으며, 꽃누르미(압화) 작품을 만들었다. 꽃 작품 전시회도 열어, 미국에서 열린 전시 때는 전세계 활동가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감동을 전했다. “꽃이 좋아. 꽃을 만지고 있으면 아무 걱정 안 하고 참 좋다”고 하시던 그는 자식 대신 꽃누르미 작품들을 세상에 남겼다. 병상에서도 그는 “남들같이 살아보지도 못하고, 너무나 억울하다. 내가 살아 일본 정부가 사죄하는 걸 꼭 봐야 하는데…”라고 하며 삶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고인은 생전 원하던 대로 지난 1월 먼저 떠난 김순악 할머니가 쉬고 있는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수림장으로 안장된다. ‘생존’ 자체로 ‘역사의 증언’이 되는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제 81명만 생존해 있다. 올해 들어서만 6명이 숨을 거뒀다. 발인은 7일 오전 10시 곽병원 장례식장. (053)257-1431. 

 
   

 실천적 사상가 리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고 신문과 방송에서 크게 보도되던 그 때, 신문 한 쪽에 '심달연 꽃할머니 별세'라는 기사가 있었다.  바로 그 꽃할머니일까?   

권윤덕 선생님의 그림책 <꽃할머니>가 출간되었을 때 도서관에서 강연이 있었다. 저녁 때라서 아이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지만 낮에 잠깐 가서 할머니의 꽃누르미작품도 구경하고 그림책 <꽃할머니>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더미북들과 전시된 원화들도 보았었다.  

<꽃할머니>의 초기 더미북은 할머니의 고통이 훨씬 더 생생한 날것으로 쓰여지고 그려져 있었다. 글도 할머니가 직접 이야기하는 것처럼 쓰여있었고 그림에도 붉은 피가 보였다. 권윤덕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충격을 줄까봐 붉은 피를 꽃으로 그 표현을 바꿨고, 일본군의 얼굴을 지움으로써 그 비극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한 국가의 잘못된 체제 때문이라는 것을 알리기로 하셨다고 한다.  

꽃할머니의 꽃누르미 작품을 말할 수 없이 곱고 예뻤다. 이렇게 고운 감성을 가진 분이 그런 고초를 겪으셨다는 사실에 가슴이 떨렸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도서관에 물어서 확인해본다고 하고서는 자꾸 깜빡하곤 했다.   

어제 저녁에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하고 있는 도서관 모임 일로 전화를 하셨는데, 갑자기 이 기사가 생각나서 "저기요, 꽃할머니, 돌아가셨어요?"하고 조심조심, 아니기를 바라며 여쭈어보았다.  그런데 맞다고 한다. 아, 돌아가셨구나...   

 

뭐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여한 없는 삶', '여한 없는 죽음' 이런 것들이 어디 있을까마는, 할머니의 삶과 죽음이 남겼을 한은 더욱 깊고 짙은 것 같아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저 그 곳에서는 평안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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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21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안한 곳에 가셨기를.

꿈꾸는섬 2010-12-2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할머니, 평안하시길 빕니다....

순오기 2010-12-24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달연 할머니가 돌아가셨군요. 꽃할머니를 남기시고...
이분들의 삶을 생각하면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되는 건지... 국가가 국민을 위해 뭘 해야 하는 집단인지... 착찹해집니다. 할머니의 명복을 빌어요.

희망으로 2011-01-0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cj도서전에서 보고 왔어요. 이후 둘러본 책들이 모두 우울하고 심드렁하더라구요. 부디 그곳에서는 평화로우셨으면 합니다.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