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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잡식동물의 딜레마>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도 꽤 흥미있게. 그래서 같은 작가가 쓴 <욕망하는 식물>은 내 구미를 당겼다.
선생님은 '인간의 역사가 자연과 끊임없이 맞부딪쳐가는 역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유 공간안에 '자연'이 많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그런 의미에서 다소 좀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처음 '마음을 여는 책읽기'를 꾸리려고 준비할 때 엄마들이 독서모임을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으니까 너무 어렵지 않은 책들을 선정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인문학이나 자연과학, 역사책들을 읽는 것은 자기 자신을 역사와 세계의 한 부분으로 느끼게 하고 세상을 크고 넓고 깊게 조망할 수 있게 해서 결국엔 나 자신을 외롭지 않게 한다고 하셨다. 공감할 수 있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계획했던 독서리스트가 수정되었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온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실 <잡식동물의 딜레마>보다 어려운 것 같기도 했다. 사과, 튤립, 대마초, 감자를 통해서 각각 달콤함, 아름다움, 도취, 지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이 책은 종의 다양성과 단일성, 아폴론적 질서와 디오니소스적 세계, 산업과 농경 등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변형되고 황폐화되는 식물의 고충과 그 결과 다시 인간에게 돌아올 재앙을 담고 있다는 느낌이 더 컸다. 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공진화 / 책에 '공진화'라는 말이 나온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인만큼 서로 같이 살아가는 '공진화'에 대한 인식이 중요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따뜻하고 밝은 쪽으로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인간의 단일품종화? / 종의 다양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점을 두고 보면 인간의 결혼제도나 인종에 대한 편견들, 다른 문화에 대한 경계 등등은 인간의 '단일품종화'에 기여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음, 일리있는 의견이다.
담배와 커피 / 잠시 쉬는 시간에 선생님이 교실을 나갔다가 들어오셨는데 한 엄마가 스쳐가는 선생님에게서 담배 냄새를 맡았다. 그러더니 선생님께 질문, "선생님, 담배는 무슨 욕망일까요?" 선생님은 갑작스런 질문에 허허 웃으시더니 인디언사회에서 담배는 침묵과 평화의 시간이었고, 인간의 수컷에게 술과 마약은 암컷들에게 '강함'을 보이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또 설명을 하셨는데,,, 음, 기억이 잘 안 난다.
엄마들 사이에서 '그럼 커피는 뭘까?'하는 질문이 나왔다. 엄마들은 대부분 커피를 좋아한다. 아이들을 돌보다 피곤해지면 맘놓고 쓰러져 잘 수도 없으니 잠깐의 '반짝'효과를 보기위해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그건 '휴식'의 욕망이기도 했다. 어쩌면 담배와 커피는 현대인들의 '휴식'에 대한 욕망이 가장 많이 반영된 건지도 모른다. 잠깐의 온전한 나만의 시간, 방해받지 않는 휴식. 그만큼 우리는 지쳐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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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의 현문우답
선생님은 책에 나온 네 가지 식물을 포함해서 식물들 중에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식물들을 각자 말해보라고 하셨다.
사실 난 민들레를 보고 감격하곤 했다. 봄기운이 느껴지면 언제 첫 민들레를 만날까,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보도블럭 사이나 아파트 화단 귀퉁이나 전봇대 밑에서 키작은 민들레를 처음 본 날을 달력에 적어놓곤 했다. 그건 아마 내가 추운 겨울을 너무너무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민들레를 보면서 '아, 이제 정말 겨울이 끝났구나.'하고 안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의 돌봄 없이도 그 모진 계절을 이겨낸 작은 민들레에게 아낌없이 격려와 환호를 보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매화도 그랬다. 추위가 아직 다 물러가지도 않았는데, 아니 한 겨울부터 매화는 겨울눈을 꾸준히 조금씩 부풀려간다. 으스스한 추위를 느끼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밤에 매화나무는 가로등 조명을 받으며 부풀린 겨울눈을 내게 보여주곤 했다. '조금만 참아,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았어.'하고. 그러다가 아직 겨울이 끝난 것 같지도 않은 어느날 하얀 꽃송이를 성급하게 터뜨리곤 했다. 참으로 고맙게도.
열매가 열리는 식물들을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의 마음을 감춘다는 튤립이 좋아졌다는 사람도 있었다.
식물에 대한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다른 작품들(영화든 책이든 뭐든)이 있었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난 그다지 딱 떠오르는 게 없었는데 한 엄마가 영화 '아이언맨'이야기를 했다. 아쉽게도 난 '아이언맨'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 엄마가 '공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언맨'에 연관해 이야기했을 때 잘 이해되지가 않았다. 선생님은 발터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기술과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를 언급하셨다.
그러면서 인간에게 왜 폭력의 유전자가 남아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그러게, 아예 폭력의 유전자같은 거 없어지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자기 가족과 소속된 사회집단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폭력의 유전자가 여전히 남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건 내 의견이 아니라 선생님이 우리에게 던진 힌트 비슷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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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이고 그 다음에 읽을 책으로 뽑아주신 책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다. 처음에 선생님이 "다음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볼까 하는데 어때요? 괜찮겠어요?"하고 물으셨을 때 그냥 아무 생각없이, 정말 아무 생각없이 "네"하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가신 후에 도서관 컴퓨터로 책을 찾아보니 두 권짜리 책인데다가 분량이 많았다. 다들 큰일났다는 표정으로 울상을 지었다.
한편으로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읽어!'하는 용감무쌍한 마음도 들었다. 선생님은 이 책이 괴테의 인문학적 내공과 자연과학적 내공이 느껴지는 책이라고 하셨다.
암튼, 다음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다. 제목이 '죽기로 결심하다'인 걸 보니 아주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코엘료의 책은 <순례자>와 <연금술사> 이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