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내 생애 첫 독서모임이 시작되었다.  도서관 관장님이 멍석깔고 판을 벌여서 내가 속해있는 책고르미 모임에게 독서모임의 주도적 역할을 부탁해서 시작된 거다.  돌이켜보면 애서가 축에는 끼지 못하더라도 책 읽기를 나름 즐기는 편이었는데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독서모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책읽는 건 좋지만 읽은 책을 두고 토론을 벌이는 건 피곤하고, 남들 앞에서 책 읽고 난 후의 내 속내를 다 드러내 보인다는 것도 탐탁치 않았고.. 뭐, 이런 저런 이유에서였다.  

내가 속해 있는 도서관 모임이 '마음을 여는 책읽기'라는 엄마들의 독서모임을 주관하게 되어 얼떨결에 하게된 모임이지만, 부담이 덜 했던 건, 우리가 주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신동호 시인이 함께 모임을 진행하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뭔가 한 수 배우게 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고. ^^ 

독서모임의 첫번째 책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였다.  10명의 엄마들이 서로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이야기 했는데, 다행이었던 건, 그 책을 읽고 울었다는 사람은 단 두세명에 불과했다는 것.  나만 메마른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난 28쪽의 우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다들 공감해주었다.   

신동호 시인은 우물에 대한 이야기에 몇 가지 질문을 덧붙이셨다.  
1. 우리의 여성으로서의 감정의 우물을 시멘트로 덮어버린 사람은 누구인가.. 
2. 실재의 우물은 누가 덮는가. 
3. 우물을 덮고 있는 시멘트를 걷어낼 생각은 없는가.
  

대부분의 엄마들이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우물을 덮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실재의 우물은 남성성으로 상징되는 산업개발주의에 의해 덮였다는 설명이 있었고, 시멘트를 걷어내고 내 감정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하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걷어내기가 두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시인선생님의 마지막 질문은 "모성은 절대불변의 영원성의 가치를 지녔는가"였다.  여러 엄마들이 희생이 곧 모성은 아니며 모성도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는데, 시인선생님은 "모성은 근대산업사회의 산물이다"라는 미셀 푸코의 말을 인용하면서 근대이전의 사회에서 아이는 곧 노동력일 뿐이었으며 근대산업사회의 규격화의 시기가 '갇힌 여성'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리고 '시대의 우물을 걷는 여성'이 되라고.  자기의 추억을 만들어가며 사회 안에서의 나, 통시적인 시각에서의 내 인생을 조망하는 여성이 되라고 당부하셨다.  모임을 끝내고 나니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이 단순히 가족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끌어주는 분이 계시니 책을 읽고 나서의 생각도 한차원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구나, 싶어 기분이 좋다.  

다음 목요일에 있을 두 번째 모임의 텍스트는  오기가니 나오코 감독의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이다. <엄마를 부탁해>모임 그 다음 날 오전에 도서관에 모여서 미리 영화를 봤다.  작년인가에 봤던 영화인데 두 번째 보니 더 좋다.  난 왜 <엄마를 부탁해>보다 <카모메 식당>을 보면서 더 콧등이 시큰해지는 걸까. 작년에 볼 때에도 사치에가 미도리에게 밥을 차려주는 장면에서 울컥했더랬다.   

'마음을 여는 책 읽기'모임의 커리큘럼이 조정될 예정이다.  시인선생님이 자연과학과 인문학 책을 좀 넣어보자고 하셨고, 우리도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모메 식당 다음에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를, 그러고나서 <욕망하는 식물>을 가지고 모임을 갖기로 했다.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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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10-11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책을 읽고 감동하고 마는 것 보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 의견을 주고 받으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어 이런 모임 참 좋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내 생각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고요. 시인께서 함께 하셨다니 더 멋져요.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서 '모성'에 대해 저런 생각까지 저는 못해보았네요. 모성하면 바로 희생과 함께 떠오르는 것이 보통인데 그것의 이면을 생각해보게 되어요.
잘 읽었습니다. <카모메 식당> 역시 저 혼자 보고 만 영화인데 어떤 의견들이 오갈지 기대되네요 ^^

섬사이 2010-10-11 21:45   좋아요 0 | URL
네, 첫 독서모임이었는데 참 괜찮았어요.
앞으로도 많이 배우게 될 것 같아요.

무스탕 2010-10-1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부분이 모질런 사람이지만 특히나 이런 부분에서 취약점을 보이는 저는 독서모임 같은건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 있지요.
그저 혼자 읽고 혼자 평하고 혼자 결론 내리고..;;; 한없이 주관적인 탕이죠? ^^;;
강의 듣는건 좋아하는데 '네 의견을 말해' 라고 하면 정말 자신이 없어져요.
그래서 이렇게 섬님이나 다른분들이 올려주는 글들에 참 감사해요, 전.
<카모메 식당>은 제목만 아는데 더 찾아봐야 겠어요 :)

섬사이 2010-10-11 21:4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책을 읽고 모여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죠. 게다가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지정된 책을 말이에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괜찮더라구요. <카모메 식당>, 제 개인적으로는 참 괜찮은 영화였어요.

토토랑 2010-10-1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서 이런 얘기를 나눌 수도 있는거군요~

역시 멋진기회 부럽습니다.
전..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와 그 자전거 도둑 아저씨와의 인연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았는데 말이죠 ^^;; 곰소였던거 염전으로 이사간 아저씨를 찾아나선 엄마의 모습이. 그 엄마를 마주하고 숨이 딱 막혀하더라는 아저씨의 그 짧은 장면이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요. 정신을 놓고도 엄마의 이름을 부르던 그 모습도요..

여튼 멋진 기회 부럽습니다~

섬사이 2010-10-11 21:49   좋아요 0 | URL
자전거 도둑 아저씨와의 만남이 엄마의 두껍게 덮힌 우물 바닥에 흐르고 있는 찰랑이는 우물물 아니었을까요. 저도 책 속의 엄마에게 그 아저씨와의 만남이 있어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

순오기 2010-10-12 0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첫 독서모임 하셨군요. 이끌어주는 분이 있다니 좋겠어요.^^
내일은 중학교 독서모임인데...

섬사이 2010-10-12 11:34   좋아요 0 | URL
네, 엄마들끼리만 했으면 독서모임이 아닌 수다모임이 될 확률이 높았을 거예요. 순오기님같은 분이 계시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