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일.  몇 달 전부터 유빈이가 사달라고 조른 장난감이 있다.  '미미 인어공주 보석함'이라는 장난감인데 EBS어린이 방송에서 광고를 보고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런 류의 장난감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다가 사달라고 조른다고 그 때마다 다 사줄 수도 없고 해서 크리스마스 때 사준다고 미뤄두었는데, 요 녀석이 아빠에게 뽀뽀하고 애교 떨고 하더니 어느 날 울 냄푠이 작은 딸 아양에 넘어가서는 인터넷으로 홀딱 주문해주고 말았다.   

주문한 '인어공주 보석함'이 도착한 날.  서둘러 상자를 뜯었는데 보석함에 끼워야 할 건전지가 없었다.  나중에 마트 나갈 때 사오마 했는데도 굳이 지금 당장 끼워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AA건전지는 많은데 보석함에 낄 건전지는 AAA. 때는 저녁이고 나가기 귀찮았지만, 그래, 새 장난감이 왔는데 소리나는 게 얼마나 궁금할까, 싶어서 사다가 끼워줬다.   

그런데 보석함을 열고 그 안의 작은 단추를 누를 때마다 '또로로롱~~' 소리 나는 걸 몇 번이나 계속 하던 유빈이가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거다.  

"엄마, 이거 고장났나봐." 
"어? 소리 잘 나는데 왜? 어디가 고장났는데? " 
"이 단추를 누르면 소리가 나면서 변신이 돼야 하는데, 변신이 안돼." 
?????? 

오오오오, 이런, 이런..  유빈이는 TV광고에 속은 거였다.  광고에서는 단추를 누르면 "띠리리리링~"소리가 나면서 모델로 나온 아이가 샤샤샥 예쁘게 변신했던 모양이다.  허걱, 그래서, 그렇게 자기도 변신이 될 줄 알고 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오랫동안 조른 거였구나...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유진이랑 명보가 깔깔대며 웃었다.  역시 애들은 순진해~~ 하면서.  나도 물론 웃지 않을 수 없었고...   

"유빈아, 광고에서는 그냥 보석함 안에 예쁜 귀걸이랑 반지 같은 게 들어있어서 그걸 하면 예뻐 보인다는 걸 알려주려고 그렇게 꾸민 거야.  광고를 보이는대로 믿으면 안돼..에고, 불쌍한 우리 작은 딸.."  난 위로한답시고 유빈이가 알아듣지도 못할 것 같은 말을 주절거리며 꼭 안아줬다.

그 다음부터 우리 유빈이, 그 장난감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장난감을 사면 늘 이게 문제다.  아이들은 환상을 품고 장난감을 원하는데 정작 장난감은 아이들의 환상을 길게 지속시켜주질 않는다.  하긴, 아이들의 환상을 이뤄준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불가능하니까 판타지겠지. 그러니까 판타지가 상상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거겠지.   그래서 어른이 되면 점점 판타지와 멀어지는 거겠지.

작은딸이 보여준 조그만 판타지가 두고두고 자꾸만 나를 웃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빈이에게 상상의 세계를 보여줬다가 순식간에 파괴해버린 그 장난감이 야속하기도 하다.  정말 변신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딸의 깨져버린 상상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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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2-13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에피소드네요. 속상해진 유빈이가 안타깝지만 그 순진함을 잊어버린 우리들은 덕분에 하하 웃었어요. ^^

섬사이 2009-12-14 18:28   좋아요 0 | URL
이런 일들을 겪고 실망해가면서 세상을 배워가는 거겠지요?
그냥 더 크지 말고 지금 이대로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

조선인 2009-12-14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궁, 귀여워라.

섬사이 2009-12-14 18:30   좋아요 0 | URL
해람이랑 유빈이랑 만나면 꿍짝이 잘 맞을 거예요.
'공주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다락방 2009-12-1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칫..저는 정말 야속한데요! 변신 시켜준다고 광고했으면 변신을 시켜줘야 되는거 아녜욧!!! 왜 애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냐구요, 거짓말을!!!! 저도 유빈이의 깨져버린 상상이 안쓰러워요. 에잇, 그 장난감 욕해주고 싶어요. 이 빵꾸똥꾸야! 라고 말이죠. 칫칫.

섬사이 2009-12-15 15:57   좋아요 0 | URL
아, 그래야겠어요.
그 장난감을 잡고 "빵꾸똥꾸야"라고 욕이라도 실컷 해줄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