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로비오틱 밥상>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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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로비오틱 밥상 - 자연을 통째로 먹는
이와사키 유카 지음 / 비타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마크로비오틱, 좀 생소하다. 드라마 '스타일'에서 류시원이 셰프 역을 맡아 만들었던 요리들이 '마크로비오틱이라는데 '스타일'이라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았던데다가 요리에는 워낙 별 관심이 없으니 아마 드라마를 열심히 봤다고 하더라도 '마크로비오틱'이라는 어렵고 생소한 말을 내 기억에 담아둘 리가 없다. 이 책을 받고 나서도 한동안 '아크로바틱이랑 비슷한 말이었는데 뭐였지?'하고 헤맸으니까.
프롤로그에서 저자도 드라마 '스타일' 덕분에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데, 일본의 국가공인 관리영양사였다던 그녀도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치유법을 찾다가 발견한 요리법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크로비오틱'에 대한 기초조차 모른다는 걸 배려해서 책 초반부에 마크로비오틱의 원리와 조리도구들, 재료손질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신토불이, 일물전체, 자연생활, 음양조화의 4대원리만 보더라도 이 요리가 단순히 '맛'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데 되는데, 히포크라테스의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 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뭔가 우리 몸의 건강을 잘 챙겨줄 것만 같지만 쉽게 실천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느낌이다. 표지에 쉬운 영어로 나열된 또 하나의 마크로비오틱 원칙. "NO MEAT, NO SUGAR, NO MILK, NO EGG." 이게 쉬울 거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끙.
요리책의 앞부분은 주로 휘리릭 훑어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좀 꼼꼼하게 읽었다. 4대원칙 중 네 번째 것, 음양조화. 음식을 만들거나 먹으면서 음양의 조화까지 따져본 경험은 없다. 그래서 신기한 생각도 들어 읽어봤는데 이건 음성, 저건 양성, 이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 채소를 놓고도 양배추의 경우 겉장은 음성, 중심에 가까울 수록 양성이고 파는 뿌리 쪽은 양성 줄기 쪽은 음성이며, 양파는 봄에 재배되는 양파가 다른 계절에 수확한 양파보다 음성이다. 어쩐지 점점 실천 쪽에 자신이 없어지려는데 그 때 발견한 문장.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제철에 재배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중략)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도 겨울 농작물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 재배되는 식품은 몸을 식혀준다. 이처럼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에서 건강하게 키운 식품을 먹는 것이 오염된 환경 속에서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고 환경도 보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p.14)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우리 땅에서 난 제철채소와 과일을 먹으면 그만이다. 단,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쓰거나 적게 쓴 친환경 유기농산물이어야 한다. 왜? 껍질과 뿌리까지 다 섭취해야 하니까. 게다가 '음양오행의 변화를 담은 자연요리'에서 '마크로비오틱 제철식품 달력'을 표로 제시해주는데 계절, 에너지, 곡물, 채소, 콩, 해조류, 과일로 구분되어 있어서 정리가 일목요연하다. 복사해서 냉장고에 하나 턱 붙여두면 좋을 것 같다.
아까 말했듯이 'NO~'로 쓰지 않는 재료들이 있는데 문제는 그것들이 우리의 식생활에서 거의 필수적인 재료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것이다. 얼마전 mbc스페셜의 "목숨 걸고 편식하다" 편을 시청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고기와 우유, 달걀, 단 것을 끊고 현미채식을 하라는 게 요지였다. 우연하게도 'NO'를 외치는 품목이 일치한다. 그 네 가지를 안 먹고 산다는 게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데 이 책에는 대체식품을 제시한다. 채식주의자의 경우 고기의 대용으로 견과류를 추천한다. 정 고기가 먹고 싶으면 글루텐을 이용한 밀고기를 만들어 먹거나 아니면 콩고기를 먹으라고 권장하는데 마크로비오틱에서는 고기의 대체식품으로 수수를 뽑았다. 그렇다고 수수를 가지고 고기 비슷한 식감으로 만드려는 시도는 없다. 그냥 '색이나 식감이 고기와 비슷해서 다진 고기 대신 사용해도 좋다"는 것 뿐. 그 외에도 달걀과 우유 대체품으로는 두부를, 설탕의 대체품으로는 조청과 메이플 시럽을 뽑았다. 그런데 '메이플 시럽'은 신토불이와 어긋나는 것 아닌가? 아이들에게 팬케이크를 해줄 때 메이플 시럽을 조금 뿌려주곤 하는데, 내가 구입했던 것은 모두 수입품이었는데....
재료손질법은 되도록 '통째로' 먹어야 한다는 마크로비오틱의 일물전체 원리에 따라 식품이 가진 에너지가 골고루 들어가도록 손질하는 게 요령이다. 그래서 우엉을 연필처럼 깎는다거나 브로컬리의 굵다란 줄기부분을 버리지 않고 얇게 저며서 볶음이나 무침에 이용한다거나 하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파뿌리는 원래 씨앗이었던 부분으로 생명력이 강하니까 버리지 말고 꼭 먹으란다. 재료의 손질법 뿐 아니라 각 재료의 영양과 인체에 미치는 작용을 서너줄 정도로 써넣은 꼼꼼함이 돋보인다.
이 책의 특징은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라는 거다. 오리엔테이션 수준의 마크로비오틱의 원리와 재료손질법, 조리도구들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요리에 들어가서도 그 특징에는 변함이 없다. 예를 들어 '베지버그'쪽을 살펴보면 (언제나 고기가 문제다), 왼쪽 페이지에 완성된 요리 사진이 있고, 그 상단에 요리제목과 재료가 적혀있다. 오른 쪽 페이지엔 왼쪽 구석에 '마크로비오틱 어드바이스'라고 요리에 사용된 재료의 영양소, 대신 쓸 수 있는 재료 등등이 설명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레서피와 쿠킹팁이 짧게 실렸다. 오히려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저자의 글인데 그 요리에 관련된 기억들, 그동안 요리를 업으로 삼으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 글만 따로 모아도 한 편의 얇은 수필집을 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아마도 이 책을 보는 사람들에게 '마크로비오틱'을 좀 더 잘 알려주고 싶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자면 음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춰야 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
"실제로 마크로비오틱의 세세한 이론을 너무 고집하면 음식을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까다롭게 가려먹게 된다. 유기농 식품이 아니어서 먹을 수 없다거나 설탕이 들어가니까 싫다는 등.... 게다가 대중적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낮추어 보는 등 배타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관계는 물론 음식 선택의 폭도 좁아져 '생명을 담은 크다'의 개념인 '마크로비오틱'이 아니라 '생명을 담은 좁은'이라는 '마이크로비오틱'이 된다. 마크로비오틱의 진정한 의미는 '강요하지 말자!'이다. 어느 곳에 가든 어떤 음식이 나오든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에 따라 먹거리를 선택하고 즐기는 것이다."
먹는 것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나다. 자칫 '마크로비오틱'이라든가 '채식'같은 원칙에 목줄을 매인 양 질질 끌려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먹을 수 있지만 난 안 먹을래!'와 '먹고 싶지만 먹으면 안돼...'와는 천지차이가 아닐까. 식생활 개선의 성공은 주도권을 쥐느냐 원칙에 매이느냐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뒷부분에 '마크로비오틱 가정식단 원리'와 '마크로비오틱 4일 가정식단'이 들어있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푸짐하게 차려먹는 게 미덕이었던 시대는 지난 걸까? 저 간소한 상차림 안에서 따스한 햇볕, 시원한 바람, 맑은 물, 향긋한 흙내음이 골고루 들어 있을 것만 같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 떠오른다. 조금씩 가까워져야 할 것 같다. 저런 상차림이 자연스러운 게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