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중순을 넘기면서던가?  김용석씨의 <두 글자의 철학>을 읽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가지 삶의 조건이랄까 감정이랄까 하는 것들이 쉽고도 깊게(쉬우면서 깊이가 있다니!!!) 잘 쓰여진 책이었다.  제목 그대로 두 글자로 이루어진 스물 다섯개의 낱말들 - 생명, 자유, 유혹, 고통, 희망, 행운, 안전, 낭만, 향수, 시기, 질투, 모욕, 복수, 후회, 행복, 순수, 관계, 이해, 비판, 존경, 책임, 아부, 용기, 겸허, 체념- 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반짝이고, 그 반짝임으로 나와 세상을 비춰보게 하는, 그런 책이라고 할까..  살아가면서 혼란스러워질 때, 펼쳐서 찬찬히 읽으면 혼란스러움을 정리해 줄 것만 같은 느낌이다.  후회와 참회, 포기와 체념, 시기와 질투에 대해 그 섬세한 차이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도 좋고, 비판에 대한 옹호와 사회의 공적인 책임에 대한 엄격한 시각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단호함도 맘에 들었다.    이 책에 반해서 김용석씨의 다른 책, <일상의 발견>을 질러버렸다.  언제 읽을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기대가 된다.

공지영씨의 <즐거운 나의 집>.  작년부터였나?  누군가 "디게 좋다"고 하는 바람에 읽어야지,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뤄지던 책이다.  도서관에서 대출받으려고 찾으면 늘 대출중이던 책.  그래서 더더욱 "니가 그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단 말이지.."하며 기대하고 있던 책이기도 했다.  얼마 전 중고샵에서 책을 구입하고는 읽었는데, 너무 기대가 컸던 걸까.  어쩐지 인간극장 -공지영편-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읽는 내내 엉겨붙었다.  그래서 "공지영씨는 잔소리도 참 예쁘게 하네."같은 잡념이 감정이입을 방해했던 것 같다. 
이제는 그 형태를 다양화하고 있는 '가족'이라는 집단(?)의 문제를 새롭게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뭐랄까, 너무 직설화법을 썼다고 해야 하나...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작품 속 '엄마'의 입을 통해 그대로 흘러나오는 걸 듣는 것은 좀 고역이었다.    
<즐거운 나의 집>과 함께 <도가니>도 구입했는데, 남편이 먼저 읽더니 그리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가니>는 괜찮을까?  

<즐거운 나의 집> 후에, 진중권씨의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읽고 있는데 담낭결석 때문에 입원준비를 하던 남편이 병실에서 읽겠다며 빼앗아 갔었다.  뭐, 어쩌겠나,,  아픈 남편이 굳이 그걸 읽어야겠다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암튼 그래서 다 읽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렸고 집중의 강도도 약했었다.  그래도 참 명쾌하고 날카롭다는 생각,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분명한 언어로 떠오르는 확연함이 남았다.   
이 책 278쪽, '라캉이 말했던가? 자의식은 거울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하지만 현대의 대중은 렌즈를 통해 자의식을 구성한다.  자아는 이제 카메라 앞에서 형성된다'는 대목에서 잠시 주춤하긴 했었다.  카메라 앞에서 나는 여전히 당황하며 숨고, 사진 속의 내가 너무 낯설고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 내가 소위 말하는 386세대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에서 진중권씨도 386세대를 문자문화세대이자 산업전사로 신체가 개조된 세대라고 했으니, 카메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의 자아를 새롭게 형성하지 못하는 거야 당연한 것이겠구나, 싶었다.  슬퍼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내가 문자문화세대라는 게 오히려 다행스럽다.   
진중권씨가 보여주는 우리 호모코레아니쿠스의 습속은 천박하고 얄팍하고 가볍고 유치하다.  하지만 그 원인은 어디까지나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가 우리 안에 너무 강하게 압축된 지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며 '오늘의 고통을 제거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면 한국인의 몸을 이루는 세 가지 역사적 층위가 최적의 배합을 이루도록 재배치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존재의 미학, 즉 요소들을 선택하는 테크네와 그것들을 배치하는 메트릭이다.'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년쯤, 방해없이 끊어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절이 오면,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그러고보니 남들은 다 읽고 끝냈을 것만 같은 책들이다.  뒷북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된 리뷰를 쓰지 못하고 이런 간단한 기록으로 서둘러 마무리짓고 있긴 하지만, 남편은 수술받고 병원에 누워있고, 권윤덕 선생님께 보여드릴 그림을 그리고, 추천도서들을 정리하고 글을 써야하는 와중에 책 세 권을 읽었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감격하고 있는 중이다.  
다음 책은 뭘 읽을까,,,  으흠..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남편에게 빼앗겼을 때, 읽다만 서경식씨의 <소년의 눈물>을 마저 읽어야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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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0-09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부가 같은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눌 수 있다니 멋져요! 옆지기님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책 고르기 위한 고민은 예뻐요.^^

섬사이 2009-10-11 10:06   좋아요 0 | URL
입원한지 4일만에 퇴원했어요. 간단한 수술이라 퇴원하고 그 다음날로 출근하고 일상생활을 별 무리없이 하고 있어요.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

세실 2009-10-10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나의집은 그저 그랬는데, 도가니 괜찮았습니다.
호모 코레아니쿠스도 좋았어요.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느낌 딱 그거네요~~~
지금은 괜찮으신거죠?

섬사이 2009-10-11 10:0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도가니는 괜찮다니, 위로가 되네요.
진중권씨의 책이 몇권 더 집에 있는데,
차근차근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꿈꾸는섬 2009-10-1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모 코레아니쿠스> 궁금하네요. 저도 한번 봐야지 생각은 하는데 아직 주문도 안했네요.

섬사이 2009-10-11 10:10   좋아요 0 | URL
읽어보시면 후회는 안 하실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