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음악회에 이어 이번주엔 도서관에서 인형극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지난 화요일에 티켓배부를 시작했는데, 비니가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준비시켜 부지런히 갔건만 10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티켓이 벌써 동이 나고 없었다. 내참, 수족구 걸린 애를 데리고 부지런히 서둘러 왔건만... 그날은 날도 무지 더웠는데 유모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면서 얼마나 허탈하던지.. 참 사소한 것 하나로도 사람이 이렇게 기운이 빠지나..
그렇게 포기했던 인형극 관람. 오늘 이른 저녁 시간에 답답해 하는 비니를 데리고 잠깐 단지 안을 산책하는데, 이웃에 사는 분을 만났다.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고, 일곱살, 네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분이라 지나면 눈인사하고 지내던 분이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그분도 바람을 쐬러 나오신 듯했다. 비니가 그 집 아이들을 보고 좋아라 하며 달려가 어울려 노는 바람에 나도 그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오늘 도서관에서 인형극이 있는데 안가냐고 물었다.
티켓을 못받았다고, 티켓배부하는 날 일찌감치 서둘러 갔는데도 벌써 동이 나고 없더란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같이 가자는 거다. 티켓이 있다고.. 히야~~ 땡잡았다. 비니 데리고 집에 들어와 서둘러 저녁밥을 먹이고 다시 그 분과 만나서 차까지 얻어타고 도서관으로 갔다.
인형극 제목은 <누가 내머리에 똥쌌어?>.

그림책을 각색해서 인형극으로 만든 거였다. 비니도 집에서 여러번 읽은 그림책이었는데, 인형극으로 보니 느낌이 달랐나보다. 너무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 인형극에 몰입했다. 좀 큰 애들은 인형극을 보며 웃고 떠들고 환호하는데 우리 비니는 그저 심각하고 진지하기만 해서 얘가 뭘 느끼고 있는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박수치랄 때 치긴 하더만...
집에 돌아와 지니와 뽀를 보자 그 때서야 반응이 나타났다.
"돼지 똥 쌌어. 매~(염소) 똥 쌌어. 두더지 돼지 퍽 했어. 히히힝(말) 우당탕 똥 쌌어. 토끼 똥 콩이지? (토끼 똥이 콩처럼 생겼다는 뜻). 위잉~~(파리) 봤어. 똥 냠냠했어 .."
그리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까지 동원해서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고, 저 혼자 웃기도 하고..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 책을 들고 오더니 읽어 달란다. 읽어 주었더니 다시 또 진지해진다. 중간중간 "토끼 봤어. 매~ 봤어...."하며 얘기하는 걸 보면 그림책을 읽으며 인형극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또 보퍼.(또 보고 싶어)"하며 살짝 울상을 짓는다. 인형극을 또 보고 싶단 뜻이다.
어느새 그런 공연들을 같이 보러다닐 수 있을 만큼 비니가 자랐나보다. 오늘따라 비니가 더 예쁘고 기특하다. 무탈하게 자라준 게 고마워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