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기는 읽지마세요, 선생님 우리문고 13
마가렛 피터슨 해딕스 지음, 정미영 옮김 / 우리교육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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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방임을 일삼는 부모 때문에 보호의 울타리를 잃은 사춘기 소녀 티시가 견뎌내야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이야기였다.

던프리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일기쓰기를 숙제로 내주시는 걸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내용이라 선생님이 읽지 않기를 원하면 일기 첫머리에 "읽지 마세요"라고 써달라는 선생님의 독특한 일기검사 방식 때문에 티시는 조심스레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티시의 일기는 거의 모두 "읽지 마세요, 던프리 선생님"이다.  그 말 앞에 종종 "제발"이나 "절대로" 같은 말이 덧붙여져  티시의 감추고 싶은 비밀의 질과 양이 그 안에 모두 함축되어 있는 듯 하다.  가혹하고 냉정한 현실 속으로 내던져진 자기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철저하게 감추기'라는 수단을 선택하는 사춘기 소녀 티시의 불안한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티시의 일기 속엔 십대 사춘기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선택한 '일기'라는 형식이 티시의 꾸밈없고 솔직한 속내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읽지 말아달라는 일기를 읽는, 그래서 어쩐지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지르는 듯한 기분으로, 또는 그 쾌감으로 책을 읽는 기분도 맛볼 수 있었다. 

이미 세상의 쓴 맛을 보아버린 티시가 보기엔, 하나같이 철부지지만 그 가볍고 무모한 친구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기의 처지와는 너무나 형편이 다른 친구들과 이성친구에 대한 이야기, 이해와 사랑이 부족한 삭막한 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일해야 하는 자기의 처지에 대한 연민과 불안함, 어린 동생을 보호하고자 하는 티시의 안쓰러운 책임감, 어른들의 무책임과 몰이해, 그리고 불합리한 사회의 냉혹함이 티시의 일기를 통해서 진솔하게 전해져 온다.

"읽지 마세요, 던프리 선생님'이라는 글머리가 "부디 읽어 주세요, 던프리 선생님."으로 바뀔 때까지 티시는 점점 더 깊숙하고 황량한 사막으로 걸어들어가는 아이 같았다. 빠져나오려 안간함을 쓸수록 더 깊숙히 빠지고 마는 사막의 모래늪이 떠오를 정도였다. 믿고 의지할 수 없는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 정신적 방황이 극에 달하는 청소년기에 얼마나 큰 시련이 될 수 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안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로부터 배운 뜨개질을 하고 일기를 쓰며 세상에 대한 분노와 불안을 잠재우는 티시의 모습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격정의 시기인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욕구불만과 분노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 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개 목줄을 이리저리 마구 잡아끌며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티시의 이웃집 아이 이야기.  종잡을 수 없게 이리저리 휘두르며 강아지를 끌고 다니는 바람에 난폭하고 공격적이 되어버린 강아지는 마침내 주인에게 안락사당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티시는 그 강아지가 자기와 동생 매트와 다를 바 없다며 동일시한다. 순간, 흠칫했다. 밤늦게 학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 학원 버스 안에서 바깥 거리 풍경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무심하고 지친 듯한 눈빛들이 떠올랐다.

책을 덮으며 세상에 던프리 선생님같은 분들이 많이 계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또한 모든 가정이 아이들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빌어도 본다. 이 사회가 아이들을 모두 끌어안아 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품을 가진 사회가 되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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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06-19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굉장한 리뷰네요 읽어보고파요

섬사이 2007-06-19 12:40   좋아요 0 | URL
중학생 딸아이도,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라 마음잡고 읽으면 금세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홍수맘 2007-06-1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강한 유혹을 전 이겨낼 수 없답니다. ㅠ.ㅠ

섬사이 2007-06-19 12:41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강하게 요염을 떨었나요? ㅋㅋㅋ^^

향기로운 2007-06-1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섬사이님의 강한 유혹을 결국은...뿌리치지 못하겠어요.. 다음주 알라딘을 습격할지도 몰라요~^^

섬사이 2007-06-19 13:20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는 유난히 유혹에 약한, 순진한 분들만 오시나봐요.^^ 알라딘이야 누군가 습격해 주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향기로운 님의 향기로운 습격, 나도 환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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