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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의 고래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ㅣ 푸른도서관 17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꿈과 성적이 동일시되는 사회, 일류대 입학이 곧 꿈의 실현이라고 각인받는 아이들, 누구에게서 비롯된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를 꿈을 향해 밤늦게 까지 지치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하는 아이들이 바로 우리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마음 한켠이 저려오게 만든 책이었다.
이금이님의 이야기 속엔 늘 아픔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아픔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 속 아이들은 아픔을 통해 성장하고 타인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이야기 속 아픔은 가난과 소외, 장애와 편견, 또는소통의 단절이기도 하다. 이 책 안에서도 아픔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연호는 가난과 사생아라는 굴레에 허덕이며 어쩔 수 없는 자기연민과 패배주의에 싸여 허덕이곤 한다. 주변의 이웃과 친구들로부터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려는 연호의 몸부림은 처절하기만 하다. 그런 연호에게 "꿈"이란 사치이고 자기 안에 숨겨진 노래에 대한 열망조차도 가난하고 추레한 자기의 삶을 가리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연호에겐 고래를 키울만한 주머니조차 주어지지 않아 보인다. 준희와 민기의 도움으로 자기의 꿈을 찾게 된 연호는 꿈을 위해 땀을 흘리면서 그제서야 희망을 본다. 열등감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준희는 얼굴의 점과 공개입양아라는 아킬레스 건을 가지고 있다. 그 아킬레스 건은 힙합과 렙을 통해, 항상 귀에 꽂고 다니는 MP3 이어폰에 의해 가려지고 보호된다. 생모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원망과 증오를 함께 품고 살아가는 준희는 연호의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불행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해나간다. 자신의 아킬레스 건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과 남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민기.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고 평범한 성적을 받는 평범한 아이지만 잘생긴 외모로 연예기획사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몇 번 받고는 자기의 꿈을 연예인으로 정한 아이다. 친구 현중이와 함께 오디션을 수도 없이 보지만 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연호와 준희를 보면서 민기는 꿈을 너무 가볍게 다루고 너무 성급하게 이루려했던 자신을 반성한다. 행정고시 패스라는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던 우수한 성적의 누나 민주가 2년제 대학의 애견미용관리학과를 지원하겠다는 꿈을 밝히고도 부모의 회유에 흐지부지 그 꿈이 사라져가는 걸 보면서, 같은 학원에 다니는 여학생을 통해 남들에게 비친 보잘 것 없는 자기 모습을 확인하면서, 민기는 자아에 눈을 뜨고 좀더 신중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민기의 친구 현중이는 "접을 수 있으면 그게 꿈이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의 꿈이 우리의 기대에 못미친다는 이유로 그 꿈을 접으라 할 때가 많다. 아니 아예 눈길 한 번 안주고 무시해버리곤 한다. 아이의 꿈은 주머니 속에서 더이상 커나가지 못하고 죽어가는 건 아닌지, 그 죽은 꿈의 잔해가 어느 날 아이에게 발견되어 아이를 경악하게 하는 날이 오진 않을런지, 우리 앞에 죽은 꿈의 잔해를 꺼내 놓고 민기의 누나 민주처럼 목놓아 울고 절망을 쏟아놓는다면 그 때 우린 어떻게 해야하는지.. 심지어 내 주머니 속의 사멸 직전의 고래를 꺼내서 아이의 주머니 속에 넣어주고는 "이게 너의 꿈이야."라고 거짓말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는다.
가끔은 우리 아이의 주머니 속을 들여다 봐야겠다. 무슨 빛깔의 어떤 고래가 있는지, 잘 크고 있는지.. 행여 내가 원하는 빛깔의 고래가 아닐지라도 그 고래가 내 아이를 행복하게 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면 아이와 함께 고래 이야기를 나누며 고래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 내 기대와 욕심을 스스로 꺾는 것이 결코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꿈은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우리 아이들을 통해 다양한 빛깔로 드러날 것이다. 그 아름다운 빛깔을 보며 그 때 내가 욕심을 버리길, 내 스스로 기대를 꺾기를 참 잘했노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