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변함없이 6시가 되자 안방알람이 띠링띠링 울리면서 불이 환하게 켜졌다. 용수철 튕기듯이 일어나 행여 비니가 깨거나 남편의 잠에 방해가 될까봐 얼른 알람을 껐다. 부엌으로 가서 가스레인지 후드에 달린 등을 켜고 어젯밤 씻어놓은 쌀을 압력솥에 앉혔다.
거실로 와서 쇼파에 파묻히듯 기대 앉았다. 졸립다. 어서 잠을 깨야지..하는데 방에서 비니가 엄마 찾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 엄마 일어난 건 귀신같이 알고 깬다. 빨리 들어가 다시 재워야 아침밥상 차리고 애들 학교보내는 일이 수월해진다는 생각에 후다닥 일어나 다시 안방으로 갔다. 가스불 위에 올려놓은 압력밥솥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다시 잠들진 않을 거라고, 올려놓은 밥솥 불을 끄기도 뭣하니까.. 그냥 비니 옆에 누웠다. 토닥토닥해주니까 그 작은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더듬거리며 쓰다듬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지니 엄마, 밥이 다 탔잖아~"하는 남편 목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맙소사~~ 집안을 가득 채운 밥 탄 냄새.. 부엌시계를 보니 6시 17분.. 겨우 17분 지났을 뿐인데...
큰아이 기말고사가 시작되는 날이라서 아침밥을 잘 먹여 학교보내려고 했는데.. 속상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됐어.. 다시 들어가 자"한다. "안돼, 그러다 또 못일어나면 어떡해."
다시 쇼파에 가 앉았다. 밥을 다 태워먹었으니 뭘 해줄까 고민했다.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그래, 치즈도 있고 햄도 있고, 오이피클 담궈둔 것도 아직 남았고... 마침 어제밤에 남편이 파리크롸상에서 사온 맛있는 빵도 있으니까 샌드위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밥이 타는 바람에 일어나서 다행이지, 그냥 또 잠이 들었다가 큰아이 지각이라도 시켰으면 어쩔 뻔 했을까.. 오늘이 시험 첫날인데..
샌드위치에 우유를 데워서 아이에게 주면서 미안함이 앞선다. 이게 뭐람?
아이들이 학교에 간 다음에 밥솥뚜껑을 열어보았다. 밀폐용기에 그나마 먹을 만한 부분을 살살 걷어내어 담아두고 새까맣게 탄 바닥부분의 밥을 드러냈다. (그건 이미 밥이 아니었지만) 끔찍하게도 시커멓게 탔다.
이 타버린 밥솥을 어떻게 복원하나.. 물에 담가 두었다가 조금아까 숟가락으로 벅벅 긁어냈다. 그래도 시커멓다. 철수세미나 초록색 까칠한 수세미로 있는 힘껏 밀어대봐야겠다.
엄마의 실수는 왜이리 치명적(?)일까.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되질 않는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두고두고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지는.. 밥 태우지 말아야지. 먹을 수 있는 걸 버렸다는 찜찜함도 털어내기 어렵다.
그나저나 아직도 집안에 밥 탄 냄새가 남아있는 듯 하다. 정말.. 안 좋은 일은 그 자국을 끈질기게도 오래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