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12 - 제4부 동트는 광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마지막 12권에 대해 이야기해줄게. 주말마다 한 권씩 읽었는데, 금방 12권이 끝나는구나. 그만큼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 같구나. 2024년이 시작한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6월이구나. 너희들에게 계속 천천히 자라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는데, 주문이 잘 안 먹히는구나. 어찌들 그리 쑥쑥 자라는지….

, 그러면 <아리랑> 12권을 시작해 보자.

윤철훈의 동지였던 최현옥이 체포되어 온갖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고문을 다하지만 끝내 정보를 불지 않고 견뎠단다. 하지만 자신이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간수들이 방심한 틈을 타 벽에 머리를 박고 그만 자살하고 말았단다. 최현옥을 고문했던 인물은 <아리랑> 전체 중에 최고의 빌런 중에 한 명인 양치성이었어. 양치성은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는 악랄한 친일경찰이 되었는데, 그를 보고 있으니 실체 인물 노덕술이 떠오르더구나. 일제 시대 악랄한 친일경찰로 그의 별명은 고문전문가였단다. 더 열 받는 것은 그런 악랄한 친일파가 해방 후에 다시 대한민국의 경찰과 헌병의 요직을 맡았다는 점이란다. 반일 행위로 체포되었지만, 이승만의 입김으로 무죄판결까지 받았다고 하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어디에 있단 말이냐.

공허 스님의 아들인 전동걸은 동경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는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고 했었지. 공산주의 동료인 일본인 지요꼬와 같은 교포 유학생인 이미화 사이에서 말이야. 시간이 갈수록 전동걸은 이미화에게 더 마음을 두었단다. 하지만 일본의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면서 일본 내 공산주의 활동이 점점 어려워졌어. 그래서 중국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독립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단다. 전동걸도 그렇게 중국으로 떠나야 했단다. 이 때 지요꼬와 위장 연인으로 해서 중국을 갔단다. 그 머나먼 길을 위장 연인으로 가다 보니, 그것도 둘 사이에 애틋한 감정이 있던 사이였는데, 위장 연인에서 위장이 떨어지게 되었단다. 동경에 남아 있는 이미화만 불쌍하게 되었구나. 중국에 도착한 전동걸은 조선의용대에 참여하여 중국 팔로군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단다.

 

1.

김제에서 대지주인 하시모토는 김제읍장까지 차지하게 되었어. 1940년대 들어서면서 일제가 벌인 전쟁들 때문에 공출이 점점 심해지고, 징용도 점점 늘어나다 보니 하시모토는 자신의 농장에서 일할 소작인들이 줄어들어 불만이 많았어. 그렇다고 겉으로 일본정부에 불만을 표출할 수 없으니 속으로만 삭혀야 했지. 나쁜 놈. 국내에서 젊은이들을 징용해가는 것은 노무보국회에서 주관했단다. 노무보국회 소속의 이시바시라는 악질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을 징용해가는 사냥한다고 하는 놈이었어. 아무나 잡아서 징용을 보냈는데, 차득보도 농사짓다가 붙들려 끌려가고 말았단다.

….

징용뿐만 아니라 군대에 끌고 가는 징병도 이어졌어. 징병도 부족하다 보니 학생들을 상대로 징병을 하는 학병제를 실시했단다. 친일파 최남선과 이광수는 학병 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했다는구나. 변절의 아이콘들.

========================

(88)

11월에 들어서 총독부에서는 대학, 전문학교, 고등학교에까지 징집영장을 일제히 발급했다. 그리고 중추원에서는 <학병 불지원자는 휴학시켜 징용키로 결정>했다. 그러니까 학도지원병이란 <지원>은 허울좋은 장식일 뿐이었다. 이에 발맞추어 이광수와 최남선은 학병지원 권유연설을 하기 위해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다. 결국 제1차로 학병적격자 1천 명 중에 959명이 지원을 완료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가운데 관부연락선 곤륜환이 미국잠수함에 격침되어 54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행했다. 그리고 12월로 접어들면서 징병 적령을 1년 낮추는 긴급사태가 야기되고 있었다.

========================

정도규와 유승현은 학생들이 학병으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학생들을 지리산으로 빼돌리려는 계획을 세웠단다. 지리산에는 이현상 중심으로 빨치산이 조직되어 있었거든. 송중원의 아들 송준혁도 학병 대상자였단다. 무작정 준혁을 지리산을 빼돌리게 되면, 남아 있는 식구들이 피해를 보게 되므로, 정도규와 유승현은 방법을 하나 찾았단다. 송준혁이 가짜 유서를 쓰고 지리산으로 도망가고, 송준혁의 엄마가 그 가짜 유서를 들고 경찰서에 가서 아들을 찾아달라고 울면서 연기를 하는 것이었지. 당시 학병을 가지 않고 자살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하니 참 가슴 아픈 일이구나.

학병으로 끌려가는 많은 조선 학생들이 불쌍했지만, 학병으로 끌려가서 고소한 이도 있었으니 박용화였단다. 박용화 생각나지? 어렸을 때부터 일본을 숭상하던 이로 초등학교 선생님 하다가 더 성공하고 싶어서 동경법대에 입학한 사람. 그냥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으면 학병에 끌려가지 않았을 텐데, 동경법대에 들어가는 바람에 학병에 끌려가고 말았단다. 본인 자신도 얼마나 억울해 하는지…. 일본의 재판관이 되려고 했던 일이니 자신이 감수해야겠지. 박용화는 결국 버마 전선에 배치되었단다. 훈련 받을 때는 일본이 계속 승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실전에 와보니 일본이 계속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어. 그제서야 일본에 속은 걸 알았는데 방법이 있나. 뿐만 아니라 그 전쟁터에서 조선의 소녀들이 위안부로 있다는 것을 알고 또 한번 분개를 했단다.

이 시절 또 하나 아픈 역사인 위안부 이야기도 가슴 아프지만 해야겠구나. 일본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 벌 수 있다면서 조선의 젊은 여인들을 속여서 동남아 전선까지 끌고 가서 위안부로 만들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어. 그렇게 속여서 데리고 오기도 했지만 강제로 끌고 가기도 했단다. 친일파로 전향한 문인들은 위안부가 되라는 시들을 쓰고 연설을 하고 있으니, 화가 치솟는구나. 지난 총선에서 김활란을 욕했다고 비판 받은 후보자가 있었는데, 이화여대에 김활란 동상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더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이화여대 학생들을 김활란의 행적을 알고 있다면, 그 동상을 쓰러트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

(226-228)

시인 주요한은 1941 <국민문학> 11월호에 <댕기>라는 시를 썼다.

 

나라의 부름받고 가실 때에는

빨간 댕기를 드리겠어요

몸에 지니고 싸우시면

총알이 날아와도 맞지 않아요.

 

북쪽에서 돌아오는 기러기는

갈대 밑에 재우겠어요

꿈에 돌아오시는 당신은

원앙침에 주무시게 하겠어요.

 

아무르의 얼음도 여름에는 녹겠지요

녹았어도 소식이 없는 여름일랑

까만 댕기에 하이야 간호복 입고

저도 나라 위해 있는 힘 다 바치겠어요.

 

서강 저녁놀의 타는 듯한 붉은 핏빛은

장렬하게 싸우다 산화하신 당신의 피

무언의 개선, 마을 역 앞에서

하이얀 댕기 드리우고 만세를 외치겠어요.

 

그리고 시인 노천명은 1942 3 4일자 <매일신도> <부인근로대>라는 시를 썼다.

 

부인근로대 작업장으로

군복을 지으려 나온 여인들

머리엔 흰 수건 아미 숙이고

바쁘게 나르는 흰 손길은 나비인가

 

총알에 맞아 뚫어진 자리

손으로 만지며 기우려 하니

탄환을 맞던 광경 머리에 떠올라

뜨거운 눈물이 피잉 도네

 

한 땀 두 땀 무운을 빌며

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 이여

훌륭히 싸워 주 공을 세워주

 

나라를 생각하는 누나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정성은

오늘도 산만한 군복 위에 꽃으로 피었네

========================

========================

(228)

또한 시인 모윤숙은 친일의 시들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한 직후에 <조선임전보국단>이란 친일어용단체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우리들 여성의 머릿속에 대화혼(大和魂)이 없고 보면 이 위대한 승리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며 여성들이 일제의 전시동원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나설 것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화여전 교장인 김활란은 1942 <신세대> 12월호의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라는 글에서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반도여성은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며 여성들이 일제의 전시동원에 앞장서라고 충동질하고 있었다.

========================

그렇게 동남아 전선까지 위안부로 끌려간 이들의 삶은 더욱 비참했단다. 위안부 생활 자체가 비참한 생활이었는데, 그 외에도 병에 걸려 죽고, 실성해서 버림 받고, 뱀에 물려 죽고, 군대와 함께 있다 보니 폭격에 의해 죽기도 했단다. 생존자가 거의 드물었단다. 이런 짓을 하고도 일본은 사과를 안 하려고 하니 기가 차는구나. 그런 일본에 과거를 잊자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도 있다는 것은 더 기가 차는구나.

 

2.

배필룡은 비행장 활주로로 징용을 와서 생활했단다.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도 흘러 약속했던 2년이 거의 다 되었단다. 어느덧 한 달 반이면 2년이야. 일제는 지금 하고 있는 활주로 작업을 일찍 끝내면 일찍 집에 보내준다고 해서, 사람들은 더 열을 올려서 작업을 했단다. 그런데 그곳에 호열자라는 전염병이 돌았어. 걸린 사람들을 격리하는 것이 맞지만, 일제는 그들을 산채로 묻기로 했단다. 그리고 그 일을 다른 조선인 노무자에게 시켰어. , 잔인한 놈들

드디어 활주로 작업이 끝난 어느날. 미군의 공습 때문에 반공호에 피신해 있었는데, 일본 군인들이 그 반공호에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했단다. 그리고 입구를 시멘트로 막아버렸대. 그곳에서 죽은 사람이 4000여명이라고 하니 패망을 앞둔 일제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단다.

사할린으로 징용 갔던 노무자들도 2년이 지났지만 배가 없다는 핑계로 집에 보내주지 않았고, 그곳에서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으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단다. 징용으로 끌려온 차득보는 북해도에서 도로 작업에 투입되었단다. 차득보 또한 계약 기간이 끝나도 집에 오지 못했어. 일본이 보내주지 않았거든. 간혹 도망가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잡혀와 공개처형을 당했단다. 그런데도 도망가려는 이들이 계속 생기는 이유는 이곳 생활이 그렇게 비인간적이고 고통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야. 차득보도 억수로 비가 오는 날, 도망을 갔단다. 북해도에 살고 있는 아이누 족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을 했단다. 차득보는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어.

….

일제의 패망이 가까워오고 있었단다. 총독부는 마지막 발악을 했어. 국내뿐만 아니라 만주에 있는 조선인들도 징병해갔어. 만주의 지삼출의 마을에도 징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단다. 그러던 어느날 만주 정착지에 일본군이 싹 사라져 버렸단다. 일본이 드디어 패망한 거야. 그곳에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내로 돌아가기로 했단다. 하지만 귀향길도 쉽지 않았어. 중국 사람들의 공격으로 패싸움이 일어났어.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공격한 것은 그들도 일본인과 한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결국은 국내로 돌아오던 발길을 다시 만주로 돌린 이들이 있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까지 비극적으로 끝이 났단다. 우리나라도 비록 해방이 되었지만, 이내 둘로 나뉘면서 해방 아닌 해방을 맞이했어. 그리고 둘로 나뉜 나라는 또 전쟁으로 이어지고,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지. 그 비극 이야기는 조정래 님의 <태백산맥>에서 이어진단다.

….

이렇게 조정래 님의 <아리랑> 두 번째 읽기가 끝이 났구나.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3차 읽기도 해보고 싶구나. 그 정도로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아빠 머릿속에 저장해두고 싶구나. 너희들도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학교 공부에 정신이 없으니 읽기 어려울 테고나중에 성인이 되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아리랑>뿐만 아니라 <태백산맥>, <한강>도 모두 추천한다. 시대 순으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이런 순서로 읽으면 좋을 것 같구나. 그 때는 함께 책 이야기도 하면 좋을 것 같구나. <아리랑>은 두 번 읽었고, <태백산맥은>은 세 번 읽었으니, 다음에는 <한강> 2차 읽기를 해야겠구나. 아빠 생각에 내년쯤 <한강> 2차 읽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럼, 이제 <아리랑> 12권 끝.

 

PS,

책의 첫 문장: 지하최조실은 어둠침침했다.

책의 끝 문장: 남자들이 거의 다 쓰러져 갈 즈음 여자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끝없는 광야 저쪽에 점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전동걸은 3개월 동안의 군사훈련을 마쳤다. 조선의용군의 기본 군사훈련은 혹독하리만큼 강도가 높고 맹렬했다. 사격이며 분대전투 같은 훈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격전 훈련은 가히 살인적이라고 할 만했다. 먹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지니지 않고 완전무장을 한 채 태항산록 그 끝없는 골짜기와 봉우리를 열흘 이상씩 타넘는 것이었다. 먹을 것은 어떻게 해서든 산중에서 구해야 했다. 뱀이고 개구리고 승냥이고 까마귀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야 했다. 산열매도 따먹었지만 절대로 따먹으면 안되는 것이 있었다. 감, 호두, 대추가 그것이었다. 그것들은 태항산록을 따라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꾸고 있는 과실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생업으로 삼아오는데다 수확량도 엄청나 그 세 가지는 태항산 명물로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그 열매들을 단 하나도 손댈 수 없는 것은 <인민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 P198

그들이 지리산 속에 있으면서도 나라 밖에서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까지 샅샅이 알고 있는 것은 <미국의 소리> 단파방송을 청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소식은 이렇게 선요원들을 통해서 각 조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키나와를 점령당한 위기 속에서 일제가 일억총옥쇄(一億總玉碎)라는 새로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일억총옥쇄의 일억이란 일본사람들 7천만, 조선사람들 3천만을 합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일억총옥쇄란 일본과 천황에게 충성을 다바쳐 일본사람 7천만과 조선사람 3천만은 다같이 깨끗하게 죽자! 하는 뜻이었다. 그건 패전의 위기에 직면한 일제가 발악적으로 내세운 집단자살의 구호였다. 그런데 지식인들은 총독부가 조작하고 있는 승전의 보도에 취해 일본이 조선을 2백 년 동안 지배할 거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일억총옥쇄를 여기저기서 열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P2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3)

위종의 미국 횡단 여행은 한 달이 걸렸다. 위종은 9월 신학기에 중급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를 왕복했던 기차 여행은 위종의 의식을 더욱 성숙시켰으며 사물을 보는 그의 시각을 놀라울 만큼 넓고 깊어졌다. 그는 이른 나이에 문명의 진보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몸으로 직접 체험했다. 그 여행은 인종차별과 같은 인간의 부정적인 일면을 일깨우기도 했지만 반면에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위종의 인성을 변화시키며 그의 의식을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127)

위종은 그날, 눈 덮인 겨울궁전 광장에서 흰 눈 위에 뿌려지던 노동자들의 붉은 피를 잊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눈밭에 뿌려진 선홍색 핏자국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지금까지 위종에게 그저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피의 일요일이 지나간 이 도시는 위종에게 다른 의미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위종은 요즈음 이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음산한 기운이 자신의 의식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을 받았다. 위종은 자신의 의식 속에 슬금슬금 똬리를 틀고 있는 이 기운이 자신을 오랫동안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것은 혁명의 기운이었다.

 

(144-145)

공고사(控告詞)

대한제국 황제 폐학의 칙명을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표로 파견된 전 부총리 이상설, 전 평리원 검사 이준,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 참서관 이위종은 존경하는 각국 대표 여러분께 다름과 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대표 여러분, 대한제국의 독립은 1884년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강대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 의해 보장되고 승인되어왔습니다. 그러나 1905 11 17일 당시의 의정부 참관이었던 이상설은 일본이 만국공법을 무시하고 무력을 이용한 것으로 말미암아 예부터 유지해온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의 호의적 외교관계가 파기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에 관하여 우리 대표단은 존경하는 여러분께 일본이 현재의 결과에 이르기까지 자행했던 모든 협박 그리고 폭력 및 범법 행위를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일본의 폭력 수단이 만국공법을 위반하였음을 탄핵합니다. 각각 대표 여러분께서는 이러한 일본의 행동이 국제조약을 명백하게 위반했는지 아닌지를 공평한 입장에서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일본인은 대한제국 황제 폐하의 동의 없이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둘째, 일본인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고자 대한제국 정부에 무력을 사용했습니다.

셋째, 일본인은 대한제국의 모든 법률과 관례를 위반했습니다.

 

(163-164)

그 순간 연설회장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적이 감돌았다. 위종은 조용한 장내를 천천히 둘러보며 잠시 숨을 고른 뒤에 입을 열었다.

세상에 부자와 빈자가 있듯이 강한 나라가 있으면 약한 나라도 있습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모두 먹어치우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을 정의의 신이 지배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믿는 정의의 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웃의 재물을 탐해서는 안 되고, 이웃을 사랑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예수의 가르침이 아닙니까?

하지만 문명국가의 시민이자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는 여러분은 지금 일본의 침탈과 압제로 고통받는 우리 대한제국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아직 잘 조직되어 있지는 않으나 독립과 자유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확고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인의 잔인하고도 비인도적인 침략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에 처하더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다시 하나로 뭉쳐서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저항할 것입니다.”

 

(175)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열강들은 식민지 탈취라는 목적을 책상 아래 숨기고 입으로만 평화를 부르짖었다. 이런 자리에서 일본의 불법적인 외교권 탈취라는 한국 대표단의 주장은 애초부터 잠꼬대 같은 소리에 불과했다. 더불어 암암리에 식민지 나눠먹기를 묵계했던 열강들이 한국 대표단의 참가 봉쇄를 담합했기 때문에 특사들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헤이그를 떠나야 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문이 인류의 평화와 이익보다는 오직 국익만을 좇는 제국주의 국가들에만 열려 있었다는 것이 대한제국 특사들에게는 불운이었다.

 

(222-223)

근대적인 유럽식 장교 교육을 받은 위종은, 나이는 약관이었지만 이미 전술과 전략 등 전반적인 군사 분야에서 모든 의병장을 지휘하고도 남을 만한 능력이 있었다.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와 같은 외국어 구사 능력도 탁월했고 만국공법과 전제주의와 공화주의 정치 체제에 관해서도 해박했다. 위종의 국제 정세에 관한 깊은 통찰력과 법 지식은 안중근이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안중근은 만국공법과 세계사를 포함하여 열강들의 제국주의 행태에 관한 위종의 논리 정연한 해설을 들으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그것은 지금까지 안중근이 경험하지 못했던 신학문이 깨우쳐준 충격이었다.

 

(231)

연해주 연합의병은 1908년 여름의 국내진공작전을 끝으로 최재형계와 이범윤계가 완전히 갈라서고 말았다. 동의회 결성 당시부터 내재되어 있던 양측의 갈등이 깊어져 더 이상 함께 의병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연해주 토박이 세력이었던 최재영계와 간도에서 망명해왔던 이범윤계의 세력이 쌍방의 지휘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연합작전을 벌인다는 것은 처음부터 한계가 있는 전략이었다. 여기에 이범윤의 군자금 횡령 같은 문제가 불거져 양측이 더욱 반목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의 잘잘못을 들추어냈고 두 계파 사이의 갈등은 깊어만 갔다.

 

(254)

러시아 정부의 대일본 유화 정책의 실체를 파악한 위종은 이런 환경에서 대규모 의병전쟁으로 항일운동을 강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투쟁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구나 만주 지역에 파병된 일본군은 아예 만주를 점령하기 위해 더욱 많은 병력을 증파했다. 따라서 만주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러시아와의 충돌은 시간 문제였다. 어느 한쪽이 물러서지 않는 한 또 한 번의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위종은 조국 독립을 위해서는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프랑스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했지만 영국과 미국은 이미 일본과 야합하여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으며, 신해혁명으로 갓 태어난 신생 중국은 내전으로 남의 형편을 눈여겨볼 처지가 아니었다. 따라서 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만이 그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269)

제정러시아 역시 일본과 동일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위종의 판단이었다. 다만 일본을 서두르는 편이고 러시아는 좀 느릴 뿐 목적지는 역시 식민 제국주의였다. 주변의 약소국을 식민지로 탈취하는 것도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동일했다. 이와는 반대로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반제국주의 혁명이었다.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은 각 민족의 운명은 민족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민족자결원칙을 최초로 주장했다. 레닌의 민족자결원칙은 비록 러시아 내 소수민족의 자치와 독립에 국한된 주장이었지만 위종은 그의 주장이 조선의 민족 해방에도 강력한 우군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303-304)

우수리 원주민과 자작나무는 한국인과 소나무의 관계와 같다. 이들은 사람의 영혼은 나무에서 태어나며, 이승에서 삶을 마치면 남자의 영혼은 버드나무로, 여자의 영혼은 자작나무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이들은 숲속의 모든 나무에 정령이 깃들어 산다고 여긴다.

봄이 되면 나무는 잠을 깨고 새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다. 숲에서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는, 영혼이 영원히 순환하는 곳이라고 이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살아 있으며 서로 에너지를 교환한다고 믿었다. 그 에너지는 자연에서 잠시 빌려 쓰다가 언젠가는 자연에 돌려줘야 하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삶과 죽음이란 이런 주기의 반복이며 에너지의 순환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은 나무도 꼭 필요한 만큼만 베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 두 편을 읽었단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출간된 책으로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 두 편이 실려 있단다.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 그가 쓴 책들을 하나 둘 모았는데 그 중에 하나란다. 이야기꾼 슈테판 츠바이크이 진면목을 보여주는, 짧지만 강렬한 두 작품이었단다.

 

1.

첫 번째 이야기는 <체스 이야기>란다. 체스는 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에서 다루는 단골 소재란다. 아빠도 체스를 다룬 여러 작품들을 보았는데, 비교적 최근에 본 것은 드라마 <퀸즈 갬빗>이 생각하는구나. 이번에 읽은 <체스이야기>를 읽을 때 그 드라마가 간혹 생각이 나더구나.

체스를 다룬 여러 작품들이 그러듯이 이 작품에는 천재 체스 기사가 나온단다. 남슬라브의 작은 도시에 뱃사공이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미르코 첸토비치라는 소년이 있었어. 어떤 신부님이 첸토비치를 양자로 거둬들여 보살펴 주었지. 그 소년이 말을 어눌하게 하고 좀 모자라 보였단다. 그런데 신부님이 다른 사람과 체스를 두는 것을 곁눈질로 보고 배웠는데 그 실력이 정말 뛰어났어. 당시 첸토비치는 열다섯이었어. 신부님은 첸토비치의 체스에 대한 천부적 소질을 바로 알아보고 그에세 체스를 가르쳐주었는데 곧바로 남슬라브 지역의 모든 체스 고수들을 꺾으면서 유명해졌단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체스를 잘 두는 사람이 되었단다.

뉴욕에서 경기를 마치고 아르헨티나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기 위에 배를 탔단다. 시대적 배경은 1940년대 초반이라서 비행기가 아니고 배를 타고 가는 그런 시절이란다. 이 배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도 같이 타게 되었단다. ‘는 호기심에 많은 사람으로 그가 탄 배에 체스 세계 챔피언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와 체스를 두고 싶어했단다. 하지만 그와 체스를 두려면 큰 돈이 필요했어. 탑승객 중에 매코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었어. ‘는 매코너에게 첸토비치 이야기를 하자, 돈 많은 매코너는 바로 첸토비치를 찾아가 체스 경기를 성사시켰단다. 아무래도 첸토비치는 세계챔피언이니, 매코너는 혼자가 아닌 팀을 이루어 하기로 했어. 물론 도 참가를 했지. 그렇게 첸토비치 vs 매코너 팀의 체스 경기가 열렸는데, 1차전은 첸토비치의 승리로 끝이 났단다. 그리고 이어진 2차전에서 역시 매코너 팀이 불리하게 흘러갔는데, 구경을 하던 B박사라는 사람이 훈수를 두면서 무승부로 끝이 났단다.

갑자기 나타난 B박사라는 사람에 관심이 쏠렸어. B박사는 지난 30년간 체스를 둔 적도 없다고 했어.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세계챔피언을 상대로 무승부를 할 수 있었을까. ‘ B박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 B박사는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이었어. B박사는 유대인으로 게슈타포에 의해 감옥에 1년간 갇혀 있었다고 했어. 그 고립된 생활은 B박사에는 큰 고통이었어. 미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한계가 있었어. 감금생활은 그를 미치게 하기 일보직전이었지. 어느날 간수의 대기실에 있게 되었는데, 간수의 외투 주머니에 있는 책을 한 권 훔쳤어. 그 책은 체스 게임을 기록한 책이었단다. 체스에 관심이 없던 B박사는 그 책이 체스에 관한 책이란 걸 알고 크게 낙심했어. B박사는 그 책이라도 봐야겠다며, 그 책에 나와 있는 체스 게임들을 모두 통달했단다. 그리고 그 이후는 혼자 상상으로 체스를 둔 거야. 그렇게 감금해있으면 머릿속에 온통 체스 생각만 해서 체스중독증에 걸린 것 같았어. 신경과민으로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서 병원까지 갔단다. 그런 연유로 B박사가 지난 30년간 체스를 두지 않았는데도, 체스챔피언과 대등한 경기를 했던 것이란다.

이제 다시 첸토비치와 B박사와 일대일 체스 경기가 펼쳤는데 그 경기에서 B박사가 이겼단다. B박사는 흥분하기 시작했어. 첸토비치와 B박사가 다시 체스 경기를 했는데, B박사의 증상을 유심히 보던 B박사를 설득하여 게임을 포기하게 했단다. 왜냐하면 체스중독 증세를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야. B박사를 말리지 않으면 신경 과민 증상으로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날 것 같았어. 그렇게 B박사의 포기로 첸토비치의 승리로 끝이 났단다. <체스이야기>는 이렇게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B박사의 이야기가 체스 기술을 터득하는 방법이 오늘날 인공지능이 기술을 터득하는 방식과 비슷한 방식인 것 같구나. 그리고 B박사의 그 뒷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이야기가 그렇게 끝이 나서 다소 아쉬웠단다.

이 작품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죽기 전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니, B박사의 뒷이야기도 없겠구나. 아빠의 헛된 바람이겠지만, 이제 와서 뒤늦게 그의 유고 중에 B박사의 뒷이야기가 발견되었으면 좋겠구나.^^

 

2.

두 번째 작품 <낯선 여인의 편지>는 어떤 여인이 유명 소설가 R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단다. 시작부분은 그 소설가의 열렬 팬의 팬심 담긴 편지인가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그 소설가를 욕하게 되더구나. 유명 소설가 R은 마흔한 살이란다. 마흔한 살 생일날 긴 편지 한 통을 받았단다. 무려 스물네 장이나 되었어. “결코 저를 모르는 당신에게로 시작했지.

편지 쓴 여인은 최근에 자신의 아이를 잃고 큰 슬픔에 빠졌다고 했어.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했어. 여인이 13살 때 빈에서 처음으로 소설가 R을 알게 되었대. 여인이 살고 있는 건물로 소설가 R이 이사를 왔던 거야. 13살이던 여인은 한 눈에 소설가 R에 사랑에 빠졌지만 속으로만 좋아할 수밖에 없었어. R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렜고, 그의 발자국 소리도 사랑했고,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의 재혼으로 그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여인은 심한 좌절감과 상실감에 빠졌어. 소설가 R과 멀리 떨어져 인스부르크로 가야 했거든. 18살이 되었을 때 여인은 독립하겠다면서 빈으로 돌아왔어. 빈에 있는 친척집에 머무르면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독립은 핑계였고, 소설가 R을 보기 위해서 빈에 온 것이었어. 매일 그의 집 앞에서 창문으로 바라보았어. 우연히 그와 마주치기도 했는데, 소설가 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어. 몇 번을 마주치고서야 소설가 R은 여인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단다. 여인은 흔쾌히 저녁을 함께 하고, 그 이후 매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단다. 여인의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진 거야. ‘매일만났다고 했지만, 3 일이 전부였어.

3일 뒤, 소설가 R은 여행을 간다면서 당분가 연락하지 못한다고 했어. 여행을 다녀온 후에 연락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끝이었단다. 그런데 그 3일간의 사랑으로 인해 여인은 임신을 하게 되었단다. 소설가 R을 다시 찾아가보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버림받고 아이를 지우라고 할까 봐 여인은 혼자 아이를 낳았단다. 돈도 없어서 보호 시설에서 아이를 낳았어. 편지 첫 부분에서 여인의 죽은 아이가 이 아이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단다. 편지를 읽는 소설가 R도 그렇게 느꼈겠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까? 여인은 아이를 낳고 가난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잘 지냈단다. 여인의 외모가 뛰어나서 여러 번 청혼을 받았지만 다 거절했단다. 혹시나 소설가 R에게 연락이 올까 봐 말이야.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단다.

어느날 오랜 만에 친구와 클럽에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소설가 R을 다시 만났단다. 그런데 소설가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여인을 꼬셨단다. 그렇게 여인과 소설가 R은 다시 하룻밤을 보냈는데, 여전히 소설가 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단다. 소설가 R이 얼마나 많은 여인과 이런 짓을 했는지 알겠구나. 그러니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지. 이번에도 소설가 R은 곧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했어. 거기에 여인에게 돈까지 주어 모욕을 안겨 주었단다. 이런 못된 놈. 여인은 가난하지만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11살이던 아이가 그만 죽고 말았단다.

이제 여인의 삶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어. 소설가 R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고,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이도 죽고 말았지. 여인은 이제 자신도 죽을 거라고 했어. 매년 소설가 R에게 생일마다 보낸 하얀 장미를 보낸 것도 자신이라고 밝히고, 이젠 못 보내니 스스로 장미를 사라고 했단다. 그렇게 편지는 마무리되었단다.

이 소설은 독자가 소설가 R에 감정이입하여 자신이 편지를 받은 것처럼 읽으면 더 실감날 것 같더구나. 그렇게 감정이입되어 읽다가 죄책감과 후회와 미안함이 가득 들었다면, (어찌 보면 그게 당연한 감정이겠지만) 소설가 R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놈들은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려고 할 거야.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합리화를 하겠지. 아마 이 편지도 다 읽기도 전에 불 속에 던졌을 수도 있어. 소설가 R은 그런 사람이야.

, 오늘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이 남긴 <체스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라는 책 이야기를 해보았단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은 늘 옳다는 것을 다시 확인 확인하면서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자정 무렵,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출항 예정인 대형 여객선 위는 출발 직전 흔히 볼 수 있는 일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그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여인을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을 생각하듯 육체 없이도 정열적으로 생각했다.


체스는 하늘과 땅 사이 무함마드의 관처럼 이 범주들 사이를 부유하는 학문이요 예술이며, 대립하는 모든 것들을 유일하게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던가? 즉 태곳적인 것이면서도 영원히 새로운 것이요, 그 구도가 메커니즘적이면서도 판타지를 통해서만 작동하며, 기하학적으로 일정 공간에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그 조합에서는 무제한적이고 항상 자기 발전적이며 번식력이 없다. 무(無)로 이끄는 생각, 무에 이르는 수학, 작품 없는 예술, 실체 없는 건축, 그럼에도 명백하게 그 존재 자체가 어떤 책이나 작품보다 영속적이며,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에 속하는 유일한 게임이면서도, 지루함을 죽이고 감각들을 예리하게 하며 영혼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신이 이 땅에 가져온 게임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이 게임에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어떤 아이들이라도 기본 규칙을 배울 수 있고, 체스에 서투른 사람이라도 누구나 자신을 게임에서 시험해볼 수 있다. - P20

사랑하는 그대여, 당신에게 그 순간의 절망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요? 당신이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 운명을 고통스럽게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그런 운명을 전 한평생 견뎌왔고, 그 운명과 더불어 죽게 될 테지요. 어떻게 제가 이 절망을 묘사할 수 있을까요! 보세요. 인스부르크에서 보낸 그 이 년 동안 매 순간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빈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상상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그 시절, 전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가장 행복한 순간뿐 아니라 가능한 최악의 순간까지도 꿈꾸었습니다. - P116

얼굴에 비치는 나이는 명암에 따라 묘하게 변하고, 입는 옷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체념한 이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러나 아직 소녀였던 저는 당신의 망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끊임없이, 그리고 쉼 없이 생각하고 있으니 당신도 저를 종종 생각하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헛된 마음을 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당신에게 미미한 존재이며, 저에 대한 어떤 기억도 당신에게 남아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면, 제가 어떻게 숨인들 쉴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이 마음속에 저를 알아볼만한 그 어떤 것도 없으며, 당신 삶의 거미줄 같은 기억 한 오라기도 저와 연결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신의 눈길 앞에서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것이 현실로 떨어지는 최초의 추락이었고, 제 운명을 예감하는 최초의 순간이었습니다. - P1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17)

삼체문체 : 질량이 같거나 비슷한 물체 세 개가 상호 인력의 작용 아래 어떤 운동을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전 물리학의 중요 문제이고, 천제 운동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어 16세기 이후 계속 관심을 받았다. 오일러, 라그랑주 및 근대 이후 학자들이 삼체문제에 관한 특수해를 찾아냈다.


(297)

태양은 전파 증폭기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태양은 지구가 방출하는 무선 전파를 포함한 우주에서 온 전자기복사를 늘 받는데 어째서 그중 일부만 증폭할까? 이유는 명확했다. 에너지 거울이 반사 주파수를 선택할 수 있기도 하지만 태양 대류층의 차단 작용이 더 큰 이유였다. 표면에서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대류층은 복사층 위에 위치한 태양의 가장 바깥에 있는 액체층이다. 우주에서 온 전파는 우선 대류층을 통과해야 복사층의 에너지 거울에 도달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증폭되어 발사될 수 있다. 이때 전파의 일률은 역치(閾値)를 초과해야 하지만 지구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무선 발사는 이 역치보다 낮다. 그러나 목성의 전자기복사는 이를 뛰어넘는다.


(352)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삶의 지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45억 달러와 다국적 석유회사를 소유했지만 그게 또 무슨 소용입니까? 인간이 멸종 위기에 빠진 생물을 구하기 위해 쏟아붓는 돈은 분명 4500억 달러가 넘을 것이고요. 하지만 무슨 소용입니까? 문명은 여전히 자기 궤도대로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에 있는 다른 생명을 멸망시키고 있는데요. 45억 달러면 항공모함 한 척을 건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공모함 1000척을 만든다 해도 인간의 광기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리랑 1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요즘 선거를 앞두고, 관련 영상을 본다고 너희들에게 써야 할 독서편지는 자꾸 늦어지는구나. 오늘은 영상 보기를 꾹 참고, 조정래 님의 <아리랑> 11권을 이야기해줄게.

정재규, 정상규, 정도규 삼형제 중에 둘째 정상규가 드디어 꿈을 이루었단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작인들을 쥐어짜면서 결국 그의 꿈인 만석꾼이 되었어. 얼마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냐면, 아들의 교육까지 시키지 않으면서 돈을 아껴 만석꾼이 된 거야. 첫째 아들은 그런 아버지에게 불만을 갖고, 일도 안하고 술만 먹고 그랬대.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차피 그 땅은 모두 자기 것이 된다는 생각으로만석꾼이 된 정상규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오천석꾼으로 목표를 상향 조정했단다. 식구들까지 쥐어짜며 만든 만오천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삼형제 중에 유일하게 사람다운 정도규는 국내에서 공산주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동료들과 협의하여 위장 전향하여 활동하기로 했단다. 위장 전향을 한 것은 몇몇만 알고 있다 보니, 다른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각오를 해야 했어.

10권에서 연해주에 살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고 했단다. 허허벌판 중앙아시아 땅에서 정착하기도 쉽지 않았어. 열악한 화물 기차 안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중앙아시아에 도착해서는 풍토병으로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윤선숙의 막내 아들 경환이도 그만 풍토병으로 죽었어. 오늘 길에 남편이 죽고, 막내 아들까지 세상을 떠나자 삶의 의욕을 잃었지만, 남아 있는 두 아이를 위해서 다시 이를 악물어야 했단다. 사람들은 폐허에 집을 집고, 다시 농사터를 일구었단다. 소련은 그런 조선인들을 탄압했어. 거주지 이동을 금지시키고, 당국에 무엇인가 문의하러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했어. 어느 정도 집들도 짓고 자리를 잡아가면서,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윤선숙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소련에서는 조선어 금지시켰단다.

======================

(29)

조선족에게 쏘련은 도대체 무엇인가. 쏘련은 왜 조선족을 이렇게 핍박하는가. 전인류적 해방을 외치고 있는 공산주의 모국 쏘련이 왜 이 모양인가. 약소민족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쏘련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그건 다 거짓이고 위장인가? 아니, 강제이주를 시키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하자. 우리에게 알릴 수 없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정당하게 사람 대접을 해야 할 게 아닌가. 왜 할 일은 제대로 안하고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가. 제놈들에게 사람을 개 잡듯 죽일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 아니, 짐승도 이렇게는 취급할 수가 없다. 흉악무도한 놈들! 인민해방, 인민혁명, 인민의 천국, 전인류적 해방, 약소민족의 독립 지원, 새빨간 거짓말! 도둑놈들! 사기꾼 집단!

======================

한편 윤선숙의 사촌오빠 윤철훈과 그의 아내 차은심은 만주에서 일본 장교를 상대로 사진관을 차리고 그들의 정보를 하나씩 빼서 독립군 동지들에게 전달했단다.

 

1.

만주 지역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항일연군 소속이었는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서 추위와 굶주림과 싸워야 했어. 거기에 일본의 심리전까지 더해지면서 투항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단다. 그래서 독립운동은 점점 어려워졌어. 방대근도 소수정예로 움직이면서 게릴라 작전으로 일본군을 공격했어. 보급창고를 공격하여 식량과 군수품을 훔쳐오기도 했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독립운동을 하기로 한 송가원은 의사 출신답게 비밀 아지트를 돌아다니면서 부상자들을 치료해 주었단다. 옥비는 송가원의 옆을 지키면서 치료하는 것을 도와주었어. 힘든 와중에 둘의 사랑을 무럭무럭 자라서 딸을 낳았단다.

일본 관동군들이 항일연군을 공격하는데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게 되어 독립군들은 더 힘들어졌단다.  관동군은 독립군에 현상금까지 걸고 교묘한 심리전을 펼쳤어. 방대근은 부대를 이끌며 게릴라 작전을 펼치는데, 여기저기 동료들의 시신들이 발견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시신 무리에서 조카 오삼봉의 시신을 발견했단다.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스스로 만주로 온 조카의 죽음을 보았으니 얼마나 슬프고 가슴 아팠겠니그렇게 이름 없이 사라진 독립군이 정말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구나.

방대근 부대는 계속 행군을 해서 송가원이 소속된 부대과 재회를 했단다. 송수익이 죽고 나서 필녀와 수국도 독립운동을 하기로 했잖아. 필녀와 수국도 자진해서 전투 병력에 투입했어. 필녀와 수국도 일본군과 대치하여 끝까지 총을 놓지 않았지만 결국 전사하고 말았단다. 아리랑 초반부터 나온 이들의 죽음은 더욱 안타까운 것 같아. 독자와 소설 속 등장인물로 맺은 인연이지만, 정이 많이 들었는데 말이야.

한편, 만주국으로 이민을 온 조선사람들은 또 한번 일제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 후회를 했단다. 남만석이라는 사람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는데,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처남인 김진배의 식구들까지 다 데리고 와서, 처남에게 늘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단다. 농사철이 아닌 겨울철에는 숯 공장에 끌려가 중일전쟁물자로 쓸 숯을 겨우내 만들어야 했어. 그것만이 아니었어. 일본 낭인들이 만주에 나타나서 마을 처녀들을 납치해가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만 김만배의 큰 딸도 그렇게 잡혀가고 말았단다. 이에 남만석의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땅을 치고 후회를 했단다.

….

 

2.

다시 국내 사정을 이야기해줄게. 일제 지배 체제가 길어져서 그런지 너도나도 친일로 전향했단다. 송중원이 다니던 잡지사도 결국 친일 성향으로 바뀌자, 송중원은 잡지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왔단다. 고향에 내려온 송종원 가족은 장인어른 신세호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지내며 지냈단다. 여전히 일본 형사들의 감시와 간섭은 계속 되었어. 송중원은 농사 지내는 것 이외에 동네 아이들에게 이야기도 해주었어. 대놓고 야학을 차리지는 못하니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척 하면서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었단다. 그것이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이었어.

보름이는 아들 삼봉이가 피 흘리며 끌려가는 꿈을 자주 꾸었단다. 아무래도 삼봉이가 저승으로 가기 전에 엄마의 꿈에 나타났나 보구나. 보름이는 둘째 딸 금예와 홍씨 집에서 함께 지냈단다. 홍씨 누군지 알지? 공허 스님이 사랑했던 여인. 공허 스님과 홍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동걸이가 장성한 청년이 되어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단다.

토지조사사업 때 땅을 빼앗긴 이후 평생 그 땅을 되찾으려고 일본의 항거했던 박건식이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단다. 그의 첫 번째 아들 동화는 10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독립운동에서도 참여했었는데 결국 친일로 전향을 했잖니.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제 노골적으로 전향했단다. 하지만 이전에 독립운동 이력과 공산주의 이력, 그리고 퇴학당한 이력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어. 박건식의 둘째 아들 용화는 형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일본을 숭배했단다. 학교에서도 공부도 잘해서 사범학교에 진학을 했어. 박용화는 사범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인 학생 에이꼬를 개인과외를 하면서 돈도 벌었어. 그런데 그 에이꼬의 유혹에 넘어가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용화는 당연히 에이꼬와 결혼할 생각이었으나, 에이꼬는 결혼은 생각지도 않고 한 동안 사귀다가 일본으로 돌아가버렸어. 에이꼬와 연애를 하다가 공부를 게을리하다 보니 임용 시험에서 성적이 안 좋아 시골 학교에 발령을 받았어. 용화는 자신이 이렇게 시골에서 썩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방법을 생각했어. 그 중에 하나가 관동군 장교가 되는 거였어. 이 부분을 읽다 보니 다카기 마사오, 박정희가 생각나는구나. 그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그만두고 일본 관동군 장교가 되어 독립군을 잡는 일을 했었잖니. 조정래 선생님도 그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구나. 용화가 성공하는 두 번째 길은 법관이 되는 것이란다. 용화는 고민 끝에 법관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단다.

….

 

3.

일본이 무리수를 두었단다. 1941 12 8,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도 너무 크게 건드린 것 같구나. 당시 공허스님의 아들 전동걸은 동경에서 유학 중이었어. 전동걸은 비밀리에 사회주의 활동을 했어. 그 사회주의 활동을 하면서 만난 일본인 여자 지요꼬가 동걸에게 호감을 가졌어. 동걸도 지요꼬가 싫은 건 아니지만, 조선인 유학생 이미화에게 마음이 가 있었거든.. 동경 유학생 중에는 송중원의 아들 송준혁도 있는데, 가정교사를 하면서 어렵게 공부하고 있었단다. 또 동경 유학생 중에 박용화도 있었단다.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동경 법대에 합격하여 유학을 온 거야.

….

만오천석꾼으로 목표를 상향한 정상규에게 큰일이 벌어졌어. 둘째 아들 의현이 아버지의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간 거야.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상급 학교를 보내주지 않자 아버지 돈을 훔쳐 도망을 간 거지.

그런데 셋째 아들 동현은 한 수 더 떴단다. 형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학교에 못 다니게 하자, 동현은 아버지의 논 문서를 훔쳐가서 헐값에 팔아 넘기고 도망가버린 거야. 이 일로 정상규는 충격을 받고 쓰러져서 한쪽 몸은 쓰지 못하고 마비가 되었단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더니 끝이 아주 깨끗하구나.

….

보름이의 둘째 금예는 홍씨네 머슴 배필룡과 결혼을 했단다. 배필룡은 성실하고, 돈도 많이 모았고 홍씨가 잘 챙겨주었단다. 금예가 처음에는 배필룡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지만, 배필룡의 진심을 알게 되고 성실함에 서로 사랑하게 되었어. 결혼한 지 한 달 밖에 안된 깨 쏟아지던 어느 날 배필룡은 2년간 강제 징용을 떠나야 했단다. 일본은 여기저기서 전쟁을 벌이고 있어서 인력과 군수품이 부족한 상태였어. 강제 징용과 징병을 시작했는데 배필룡이 그렇게 끌려가게 된 것이란다.

일본의 진주만 폭격 소식을 중경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들었단다. 임시정부는 일본군이 분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반격할 기회라고 생각하여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단다. 조선의용군을 이끌던 김원봉도 한국광복군 소식을 듣고 찾아와 합류했단다. 한국 광복군 창설 소식은 하와이까지 이어져 하와이에서도 지원하겠다는 이들이 있었어. 하지만 이 일로 부부싸움을 하지고 했다는구나. 남편은 아들을 한국광복군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내는 나라가 무엇 해준 것이 있냐면서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어. 많지는 않지만 여섯 명이 하와이에서 한국광복군으로 지원해서 왔단다. 그들이 숫자는 적을지 모르지만, 영어를 잘해서 통역관으로 큰 공을 세우기도 했대. 인도에 주둔한 영국군 동남아전구사령관과 상호군사협정 체결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구나.

중경 임시정부에 또 하나의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어. 우리나라가 해방을 하더라도 자체적인 독립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의한 신탁통치를 받는다는 소식이었어. 이 소식을 들은 임시정부 요원들은 신탁통치에 대한 결사반대 결의를 했단다.

======================

(307-308)

만장하신 여러분, 오늘 우리는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현하 세계정세는 독일과 일본을 적으로 하고 중국 영국 미국 불란서를 중심으로 연합국 사이에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여러분들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 또한 진작에 대일선전포고를 함과 동시에 우리 청장년들이 이 전쟁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도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심히 유감스러운 설()이 들려 우리 조선인들을 분노케 하고 실망케 하고 있습니다. 그건 다름아닌 대한민국의 신탁통치설입니다. 그건 연합국 중의 두 나라 대표인 영국의 처칠 수상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종전 후 처리문제 중의 중대사인 아세아와 아프리카 식민지국가들의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신탁통치란 무엇입니까! 일본이 패망하면 우리는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연합국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건 우리 민족이 스스로 국가를 세울 능력도 없고, 국가를 운영할 지질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강대국의 일방적인 횡포이며, 처칠과 루스벨트의 무지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재론할 여지도 없이 신탁통치란 우리나라를 또다시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음모이며,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인 동시에 조선인들의 자존심을 능멸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석달 전인 지난 2월에 임정의 조소앙 외교부장께서 비판의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족하지 않아 우리는 좌시할 수 없어서 오늘 이렇게 비판대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하여 신탁통치의 부당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신탁통치를 절대 거부하는 조선인들의 불굴의 결의를 만천하에 밝히고, 그리하여 처칠과 루스벨트가 자신들의 무지를 자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탄없는 비판을 바라 마지않습니다. 이상으로 인사의 말씀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

여기까지가 <아리랑> 11권의 이야기란다. 국내, 만주, 중앙아시아, 일본, 하와이 등으로 이야기가 왔다갔다해서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는 것이 쉽지는 않구나. 이제 <아리랑> 한 권이 남았구나. 아프고 슬픈 역사를 되풀이 되지 말아야겠지만, 부끄러운 역사도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단다. 현시점으로부터 지난 2년간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는 퇴보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단다.  3년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요즘이다.

, 그럼 오늘은 이만.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천산산맥은 언제나 신비스럽고 우람하고 장엄했다. 천산산맥은 몸피가 거대하면서 길이도 끝없이 길었다. 그리고 능선은 톱니 모양으로 이어져 나가며 험준한 산줄기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천산산맥은 하늘을 가르며 하늘에 닿아 있었다. 마치 하늘에 도전하고 하늘에 제압하려는 것처럼. 천산산맥은 사람이 오르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아득히 멀리 있으면서도 언제나 사람들을 위압하고 있었다. 천산산맥을 보고 압도강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경건한 마음을 갖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장엄한 모습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솟는 경탄의 소리와 함께 압도당했고, 계절의 변화를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순백의 자태를 드리운 만년설을 보면서 신비스러운 경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P23

사람들은 숯 굽는 일의 생소함이나 고달픔 이전에 숯 굽는 일 자체에 혐오감을 나타냈다. 일본세상이 되면서 숯은 장작이나 솔가리나무를 압도할 정도로 번창했다. 다다미방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일본사람들은 방마다 숯불화로를 끼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산속 숯가마에서 숯쟁이로 먹고 사는 조선사람들도 많아졌고, 숯장사로 떼돈을 버는 일본사람들도 많아지면서 목탄조합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짚불이나 솔가리불을 화로에 담아 쓰는 농부들로서는 숯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더구나 코밑은 물론이고 손이며 옷에도 숯검정을 하고 다니는 숯쟁이나 숯장수들을 농부들은 싸잡아 <숯쟁이>라고 부르며 천시했다. 그건 단순히 자기들에 비해 그들의 몰골이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그러는 것만이 아니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대대로 물려온 자부심을 은근히 품고 있는 농부들은 기껏 일본사람들한테 빌붙어 먹고 사는 숯쟁이나 숯장수들을 경멸하고 있었던 것이다. - P81

김원봉은 1938년 9월에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조선의용대는 곧 중일 양국이 치열한 공방전이 벌이고 있는 무한 전선에 참전했다. 그러나 무한은 함락되었고, 조선의용대들은 중국군 부대에 배속되어 일본군에 대한 선전활동, 일본구 포로들의 신문, 일본군 점령지에서 첩보수집, 암살, 파괴활동 같은 것을 수행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중국군의 보조군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군의 지휘를 받는 그런 역할에 불만을 품은 대원들은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조선독립군으로 무장하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김원봉 앞에 닥친 현실은 냉엄했다.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자기네 군대의 운영에도 정신이 없는 중국정부에서는 조선독립군의 지원을 냉정하게 외면했다. 김원봉은 중국정부를 상대하는 현실과 대원들이 주장하는 이상 사이에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공산주의 간부들이 이탈하면서 김원봉의 세력은 그 어느 때 없이 약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 P18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