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3 문예춘추사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3
요시카와 에이지 지음, 강성욱 옮김, 나관중 원작 / 문예춘추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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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3권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일본에서는 출간한 원서는 8권짜리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0권으로 출간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읽기 편하게 했다고 하는데, 8권짜리를 10권으로 출간하여 왜 읽기 편한지 모르겠구나.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아무튼 오늘도 밀린 독서편지를 만회하기 위해서 거두절미하고 바로 삼국지 3권의 이야기를 해볼게.

….

황제인 헌제를 모시고 있던 양표가 이각과 곽사 사이를 이간질했다가 오히려 헌제나 더 힘들게 되어 그들을 다시 화해시키려고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각과 곽사 사이는 다시 화해하지 못할 정도로 안 좋아졌어. 계속 싸움박질. 양표는 양봉, 서황과 함께 황제를 낙양 근처 홍농으로 몰래 옮겨서 모시기로 했어. 하지만 그들을 보좌할 군인들이 별로 없었어. 이락의 산적 무리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는데, 다행히 서황이 이락을 죽이고 위기를 모면했어. 결국 그들은 황제를 데리고 이번에는 낙양으로 이동했단다. 이각과 곽사의 계속된 싸움은 대기근이 일어나서야 화해를 하였단다. 화해를 하고 나니 사라진 황제가 생각이 났을 테고, 이각과 곽사는 황제를 데리고 오기 위해 낙양으로 출동했어. 양표와 헌제의 일행들은 양표의 의견에 따라 산동 지역에 있는 조조에게 도움을 청했고,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이각과 곽사의 군대에 맞섰어. 그리고 이각과 곽사를 무찌르고, 이제 헌제는 조조의 보호 아래에 있었어. 말이 보호 아래였지, 권력이 조조에게 넘어갔다고 볼 수 있었지..

조조가 헌제에게 수도를 허남의 허창으로 옮기자고 했어. 헌제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는데,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 헌제는 반대하지 못했지만, 헌제를 모시고 있던 양봉과 서황은 이 천도를 두고 황제를 훔쳐간다고 하면서 조조를 공격했단다. 조조군에서는 허저가 나서서 싸웠는데, 그들은 백중지세였어. 조조는 허저와 대등한 실력을 보이는 서황이 탐나서 싸움을 중단시켰단다. 그리고 서황을 설득해서 결국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단다.

황제를 데리고 있게 된 조조는 이제 그걸 잘 이용했단다. 황제의 칙령이라면서 각 지방의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렸어. 황제의 칙령이라면서 유비와 여포에게 원술을 공격하라고 했어. 그것이 조조의 짓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들 반대했지만, 답답하신 원칙주의자 유비는 황제의 명은 지켜야 한다면서 원술을 공격하기로 했어. 유비는 악법도 법이라고 외칠 사람 같더구나.

유비는 서주성을 장비에게 맡기고, 원술을 공격했어. 싸움은 잘 하지만 술 때문에 늘 사고치는 장비에게 본성인 서주성을 맡기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구나. 일단 장비에게 술을 먹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서주에 남겼단다. 그러나 말뿐인 장비의 금주 약속금방 그 약속을 깨고 술에 취해 곤드레만드레. 소패성에 머물고 있던 여포가 배신을 하고 장비가 지키고 있던 서주성을 공격했어. 결국 여포는 서주성을 차지하게 되었어. 이 또한 유비의 판단 미스에 대한 결과였지. 장비는 유비를 찾아가 잘못을 빌었고,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서주성으로 돌아왔어. 여포는 서주성을 다시 유비에게 주겠다고 했는데, 유비는 괜찮다면서 작은 소패성으로 이동을 했단다. 이런 융통성 없는 유비 같으니


1.

원술 밑에서 힘을 키우고 있던 손책. 손책은 아버지 손견이 돌아가시고 나서 계속 원술 밑에 있었으나 자신의 땅인 강동으로 돌아가려고 했어. 열일곱 살의 손책이 할 수 있는 것을 별로 없었지. 하지만 손책에게는 아버지가 남긴 황제의 옥새가 있었어. 손책은 그 옥새를 원술에게 맡기면서 군사를 빌려달라고 했어. 원술은 그 옥새에 눈이 어두워 그렇겠다고 했지. 손책은 그렇게 강동으로 돌아갔단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 손견이 다져놓은 것이 있어서, 강동 지역의 여러 인물들이 그에게 모여들었어. 주유, 장소, 장굉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고, 그러면서 강동에서 서서히 세력을 키워나갔어.

강동을 괴롭혀오던 유요를 공격하였고, 유요의 부하였던 태사자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어. 강동에서 세력을 키워가던 손책은 소패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성장하게 된단다. 유요를 무찌른 이후, 왕랑의 회계성도 차지했고, 왕랑의 부하였던 중상도 자신의 진영으로 포섭했어. 손책이 사람 부리는 능력이 있는 것 같구나. 손책의 부하 중에 주태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큰 병에 걸렸는데, 중상의 친구인 화타가 주태를 고쳐주었단다. 화타는 아주 유명한 명의인데, 삼국지에도 가끔 등장하여 더 유명한 사람이란다.

북쪽 지역의 원술은 여포에서 금은보화를 보내서 유비와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데 성공했어. 그리고 원술은 자신의 아들을 여포의 딸과 정략결혼을 시켜서 여포를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어. 거의 성사가 될 뻔했는데, 여포의 부하 진규가 여포를 설득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단다. 당시 상황은 제후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조금의 틈만 보이면 공격해서 서로 땅을 차지하려는 그런 상황이었단다. 조조도 유비를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는데, 그때 조조의 신하들 중에 유비를 죽이자는 의견들이 있었으나, 조조는 민심을 얻은 유비를 죽이는 것이 부담스러웠어. 유비는 소패성에서 패하고 예주목으로 근거지를 옮겼단다.

조조는 장수라는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을 공격을 공격했는데, 15만 대군의 조조군을 이길 수 없었어. 조조는 장수의 숙부인 장제의 미망인을 데리고 차지했단다. 이에 화가 난 장수는 조조에 반격을 하기로 했어. 수적으로 불리하지만, 장수에게는 가후라는 지략가가 있었어. 이 싸움에서 조조는 많은 장수들을 잃고 대패하여 다시 허창으로 도망가듯 돌아왔단다.

손책이 강동으로 가면서 옥새를 원술에게 주었다고 했잖아. 원술은 자신이 옥새를 가지고 있으니, 스스로 황제라고 칭했어. 그리고 20만 대군을 이끌고 여포의 서주성을 공격하기로 했단다. 자신이 제안한 정략결혼을 여포가 깨버려서 여포에게 화가 나 있었거든여포 밑에는 진규, 진등 부자가 있었는데 이들을 뛰어난 전략가였단다. 진규, 진등 부자가 원술 진영에 내분을 몰래 일으켜서 전력을 약화시키고, 여포는 유비에게 도움을 청해서 관우가 와서 도와주어 원술의 20만 대군 공격을 막아냈단다.

조조는 계속해서 황제의 가짜 칙령을 이용했어. 황제의 칙령이라면서 손책, 여포, 유비에게 조조군과 함께 원술을 다 같이 공격하라고 했어. 하지만 그렇게 원술을 공격하려고 하니 뒤쪽에서 유표와 장수가 움직인다는 정보가 입수되어 조조는 다시 허창으로 돌아와야만 했단다. 오늘 길에 조조는 자신을 공격하려고 했던 유표와 장수를 공격하였어. 또 그렇게 공격하고 있다 보니, 이번에는 원소라는 자가 허창을 공격한다는 소식에 전해져서 유표와 장수와 싸움을 멈추고 허창으로 돌아왔단다. 한쪽의 틈이 보여 공격하려고 하면, 자신의 뒤쪽에 틈이 생겨 공격받을 위기에 빠지는 그런 형상이었어. 그래서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보고 서로 이간질 시키려고 하고 그랬어.

조조가 허창으로 돌아오자 원소를 허창에서 물러나고 공손찬을 공격했어. 그러면서 조조에게 도움을 요청했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조의 허창을 차지하려고 했던 자가 이번에는 조조에게 도와달라고? 조조는 괘씸하다고 생각했지만, 또 이해득실을 따져봐야 했어. 순욱, 곽사 등 원소 돕는 것을 찬성하는 이들도 있고 말이야. 일단 기다리기로 했단다. 그러면서 조조는 유비를 슬쩍 떠 보았어. 함께 여포를 치자고 말이야. 유비가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조조는 하후돈, 하우연, 이전 등을 소패성으로 보내 유비와 함께 여포를 공격하게 했어. 이 싸움에서 하후돈은 한쪽 눈을 화살에 맞아 잃게 된단다. 유비도 이 전투에서 여포에게 쫓겨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단다. 도망길에 유비는 조조를 만나게 되었고, 조조와 함께 다시 여포의 서주성을 공격했어. 여포 밑에 지략과 진규, 진등 부자가 있었다고 했잖아. 사실 그들도 여포를 싫어했어. 어쩔 수 없이 여포 밑에 있었던 것이지그들인 조조와 유비가 공격할 때 여포를 배신하기로 했어. 진규와 진등 부자의 기묘한 지략으로 여포를 궁지에 몰아 넣고 유비와 조조의 연합군이 서주성을 공격하게 되어 여포는 싸움에서 지고 하비로 도망을 갈 수밖에 없었단다.

그 싸움에서 이긴 유비와 조조 연합군유비는 다시 서주성에 복귀하게 되었어. 유비가 진작에 서주성을 여포에게 안 빼앗길 수 있었고, 빼앗긴 다음에도 여포가 서주성을 돌려준다고 했을 때 받았다고 하면 이런 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 텐데괜한 힘만 뺐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

여기까지가 3권의 이야기인데,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동맹 맺고, 또 서로 배신하고아주 정신이 없구나.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아서 자세히 썼더니 정신 없는 글이 되어버렸구나.


PS:

책의 첫 문장: “, 화목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책의 끝 문장: “여포는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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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10-22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국지 초반의 파란만장한 서사
가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이각과 곽사 무리를 물리치고
결국 조조가 헌제를 옹위해서
천하패권을 위한 대의명분을
장악하는 과정이 리얼하네요.

장수의 모사 가후와 조조의
가신 곽가는 당대 최고의 책사
였다고 들었습니다.

bookholic 2021-10-22 21:19   좋아요 0 | URL
등장인물이 많고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정신 없어요~~^^
 















(63-64)

니콜로 파가니니는 열세 살 어린 나이에 바이올린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배우고, 그 후 자작 연습곡을 통해 새로운 연주 기법과 특수한 주법을 고안해 낸 작곡가다. 당연한 결과로 그가 만든 곡은 일반적인 운궁법으로 도저히 소화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한 파가니니는 쇼맨십 기질도 다분해서, 연주회에서 일부러 현을 하나씩 끊어 나가다 마지막에 G현 하나만 가지고 곡을 완벽히 연주했다는 일화도 있다. 요컨대 타고난 곡예사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기교를 따라하지 못하도록 모든 악보를 혼자 관리했다. 반주를 담당할 오케스트라에는 연주 직전에야 악보를 나눠 주었고,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회수했다. 파가니니는 오케스트라와의 연습 때도 솔로 연주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원들은 무대 위에서야 그의 솔로 파트를 들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해 후세에 와서 음악가들이 온갖 고생을 거듭해 오선지에 악보를 옮겼지만, 과연 파가니니의 오리지널에 얼마나 근접할까. 아마 이를 아는 사람은 파가니니 본인밖에 없을 것이다.


(108-109)

피가 끓고 가슴이 뛴다는 표현이 있는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고 있으면 정말 혈액 온도가 올라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양팔의 근육이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소리를 내면 낼수록 이 악기가 생물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목소리를 충실히 실체화해 주는 연주자를 내내 찾아다녔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거짓이라 생각되면 개방현으로 모든 현을 켜 보면 된다. 단 하나의 음인데도 다양한 뉘앙스와 색채로 변화해 갔다. 이것이 생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142)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다단조>. 협주곡 작가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을 단숨에 휘날리게 한 손꼽는 명곡이며 러시아 낭만파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다. 멜로디가 섬세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편, 피아노 솔로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오케스트라 파트에서도 고도의 연주 기교를 요구하는 난곡이기도 하다. 전편에 넘쳐흐르는 긴장감은 곡조 그 자체에서 오는 것과 함께 피아노 솔로를 포함한 연주자 전원의 긴장이 겹겹이 포개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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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2 문예춘추사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2
요시카와 에이지 지음, 강성욱 옮김, 나관중 원작 / 문예춘추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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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2권을 이야기해보자꾸나. 갈 길이 머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1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조조가 동탁을 죽이려다가 실패해서 도망갔다고 했었지. 그런데 쫓아오던 관군에게 그만 잡히고 말았단다. 그런데 관군 중에 진궁이라는 자가 조조를 흠모하고 있었어. 몰래 조조를 탈출시키고 조조와 함께 조조의 고향인 하남의 진류로 갔단다. 그런데 조조와 함께 생활하다 보니, 진궁은 자신이 생각하던 조조가 아니었음을 깨달았어. 간사하고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심지어 그를 구출해 낸 것까지 후회할 정도였어. 하지만, 지금 선택지가 없으니 조조 곁에서 그를 돕기로 했단다.

조조는 고향에서 황제의 밀서를 가지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각 지방의 제후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모이라고 했어. 그렇게 조조의 고향으로 모인 여러 제후들무려 18명이나 모였어. 원수, 원술, 하후돈, 하후연, 손견, 공손찬 등등공손찬 밑에 있던 유비, 관우, 장비도 공손찬과 함께 왔단다. 그렇게 모인 18명이 한마음 한 뜻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로 딴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어. 그래도 일단 동탁을 공격하기로 모였으니 다들 동탁을 공격하려 나섰단다. 동탁도 대대적인 반격을 했어. 그야말로 동탁 대 반동탁의 대격돌이었어.

동탁 진영의 화웅은 손견, 원소 부대를 잇달아 무찔렀어. 이를 만회하기 위해 나선 이가 관우였단다. 여기서 그 유명한 장면이 나온단다. 따라 놓은 술 한 잔이 식기도 전에 적진에서 화웅의 머리를 베어와 버렸어. 그때까지만 해도 관우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일을 보고 제후들 모두 깜짝 놀랐지.. 동탁 진영의 에이스 여포가 적토마를 타고 방천극을 휘두르자, 반동탁군들은 또다시 밀리는 형상이었어. 이번에는 장비가 여포에 맞서 싸웠는데, 장비도 밀리는 형상이었어. 이때 유비와 관우가 나서 도와주었고, 결국 여포가 도망을 도망을 갔단다.

일진일퇴를 벌이는 동탁과 반동탁 세력승상의 위치에 있던 동탁은 전세를 바꿔보기 위해 수도를 옮기려고 했어. 낙양에서 장안으로자신이 황제도 아닌데 마음대로 수도를 옮기다니.. 그의 본성을 알 수 있구나. 밑에 있던 부하들도 죄다 반대를 했지만, 이런 인간이 부하들의 말을 들을 리가 있나수도를 장안으로 옮겼단다. 옮기면서 낙양을 모두 불태워버렸어. 연합군들은 폐허가 되어버린 낙양에 도착을 했단다. 당시 총대장은 원소가 맡고 있었는데, 원소는 잠시 쉬면서 정비를 하자고 했고, 조조는 동탁을 추격해야 한다고 했어. 서로 의견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조조는 군사들을 데리고 동탁을 추격했어. 하지만 동탁 진영 이유의 계략에 빠져 조조는 전투에서 지고 말았고 화살까지 맞았어. 조조의 동생 조홍은 죽기 직전 하후돈과 하후연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했단다. 조조는 낙양으로 돌아와 자신의 패배를 원소가 도와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며 대판 싸우고 집으로 돌아갔단다.

폐허가 된 낙양에서 손견은 우연히 옥새를 손에 넣게 되는데, 이것을 하늘이 자신을 점지한 것이라고 해석을 했어. 그러면서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안되겠다면서, 옥새를 몰래 숨겨서 자신의 지역인 강동으로 돌아갔단다. 조조와 손권이 돌아가고 나니 반동탁을 위해 모인 연합군의 결속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다른 제후들도 모두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단다.


1.

한나라의 황제는 이름뿐이고, 여러 제후들이 힘 자랑을 하는 시대였으니, 이곳 저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서로 땅을 빼앗으려고 했어. 이젠 동탁에 신경쓰기 않고, 자신들의 땅 넓히는데 신경을 썼어. 원소는 공손찬을 속이고 기주 땅을 차지했고, 공손찬의 동생 공손월을 죽이고, 공손찬도 원소군에게 죽음을 당할 뻔했으나, 지나가던 낯선 이가 살려주었는데, 그 낯선 이가 바로 조자룡 조운이란다. 삼국지의 캐릭터 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은 캐릭터가 바로 조운이란다. 조운은 신임이 두텁고 충성심이 뛰어나고 거기에 싸움도 잘 하거든예전에 아빠도 삼국지라는 게임을 할 때, 조운을 얻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몰라. 그리고 조운을 얻으면 아주 든든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공손찬을 구해준 인연으로 조운은 공손찬과 함께 있던 유비를 만나게 되고, 서로 존경과 호감을 갖게 되었단다. 유비는 공손찬의 추천으로 평원에 상()이라는 관직을 받고 떠났단다.

원소와 원술은 서로 형제인데 사이가 안 좋아졌단다. 원소는 형주 양양성의 주인 유표와 사이가 좋은데, 원술은 유표와 앙숙의 관계였단다. 원술은 그 대신 손견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는데, 손견을 설득하여 유표를 공격하라고 했고, 손견은 자신감 있게 유표를 공격했으나, 그 전투에서 그만 죽고 말았어. 강동 땅은 손견의 첫아들 손책이 이어받게 되었어.

왕윤이라는 한나라 신하가 있었단다. 반동탁 연합군도 흐지부지되어 동탁은 더욱 기세등등했어. 동탁의 악행을 보다 못한 왕윤은 미인계로 그를 없애려고 했어. 어릴 때 버려진 아이 초선을 딸처럼 키웠는데, 그 딸이 어여쁘게 자랐단다. 왕윤은 마음이 아팠지만, 나라를 위해서 그 딸 초선을 이용하여 동탁과 여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했어. 초선에게 그 뜻을 이야기하니 초선도 왕윤의 뜻을 받들기로 했단다.

작전은 이랬단다. 여포를 초대해서 여포에게 초선을 준다고 약속을 했다가 동탁에게 초선을 준 것이었어. 여포에게는 동탁이 초선을 데리고 갔으나 곧 여포에게 줄 거라고 이야기해두었어. 당시 동탁은 여포의 양아버지였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동탁은 초선에게 푹 빠져 있었고, 이에 화가 난 여포는 결국 동탁을 죽였단다. 반동탁 연합군이 모여서도 이루지 못한 일을 왕윤과 초선의 계략으로 쉽게 처단할 수 있었단 거야. 하지만 이 작전은 해피 엔딩이 아니었단다. 동탁의 부하였던 이각과 곽사가 왕윤을 죽이고, 동탁이 가지고 있던 권력을 다시 잡았어. 초선은 동탁이 죽은 뒤에 미인계가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자결을 했단다. 여포만이 자결한 초선을 보고 크게 상심에 빠졌단다. 그리고 이각과 곽사가 다시 권력을 잡았으니 여포 자신은 동탁을 죽인 중범죄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되었어.


2.

서주라는 지역의 태수는 도겸이라는 착한 사람이었단다. 도겸은 자신의 지역에 왔던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을 잘 대해주고, 돌아가는 길도 호위 500명을 붙여서 보냈단다. 그러나 호위를 맡았던 장개는 황건적 출신이었는데,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며 조숭과 일행을 죽였단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도겸이 시킨 것으로 생각하고, 총 공격을 감행했단다. 도겸은 유비에게 도움을 청해서 유비, 관우, 장비, 조운이 도와주려 왔어.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는 동안 비어 있는 조조의 본거지 연주의 복양성을 도망 신세였던 여포가 공격하여 점령해 버렸어. 여포가 힘만 셌지, 이런 지략이 없을 텐데, 누가 도와 준건가? 그래, 맞아. 그런 작전을 펼친 사람은 진궁이었어. 진궁이 여포의 책사로 들어가 있었어. ? 진궁은 조조를 구했던 그 사람? 앞서 진궁이 조조를 구출해주었다가 후회하고 어쩔 수 없이 조조 밑에 있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조조가 도겸의 서주를 공격한다고 했을 때, 진궁은 도겸이라는 사람의 성품을 알고 그가 조조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서주 공격을 강력하게 반대를 했었어. 그러나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더 이상 조조와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길을 떠났고, 그래서 찾아간 이가 여포였던 거야. 그런데 하필 여포라니.. 진궁이라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여포를 선택한 것을 보니, 참 사람 볼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 아무튼 진궁의 계략으로 여포는 큰 승리를 거두고 조조는 화상을 입는 등 중상을 입고 간신히 도망쳤단다. 자신이 죽은 척 하면서 여포를 함정에 빠뜨렸으나, 간신히 탈출한 여포는 그 이후 복양성 안에서 나오지 않고 수비만 했단다.

서주성의 주인 도겸의 나이는 일흔그는 노화로 죽었는데, 그는 죽기 전에 서주를 유비에게 주려고 했어. 그동안 유비를 지켜봤는데, 관대하고 착한 사람이었거든. 하지만 유비는 몇 번이고 거절을 했어. 결국 도겸은 죽고 도겸의 부하들과 백성들이 유비를 찾아와 서주를 맡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단다. 어쩔 수 없이 유비는 서주의 태수가 되었단다.

한편 조조는 복양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을 했단다. 복양성에서 수비만 하던 여포는 어느날 성 밖으로 나가서 싸웠어진궁이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말렸는데 말이지. 여포는 조조군에게 밀리기 시작하면서 다시 성으로 들어오려고 했지만, 여포를 배신한 전씨가 성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여포는 갈 곳을 잃고 도망 다녔단다. 여러 제후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착하디 착한 유비는 여포를 도와주었단다. 관우와 장비가 다 반대를 했는데 말이야. 아빠는 유비를 좀 안 좋아한단다. 그가 관대하고 착한 것 빼고는 가진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리고 관대하고 착한 것도 좀 때와 장소와 사람을 가려가면서 착해야 하는데, 모든 이에게 착하게 구니 말이야. 유비는 여포를 도와준 것에 멈추지 않고 서주성마저 여포에게 주려고 했어. 다행히 주변의 적극적인 만류로 여포는 소패성에 물러났단다. 여포의 괴팍한 성격을 못 알아본다고 쳐도 소문이 자자하게 난 것은 알 텐데, 그런 여포에서 성과 성 안에 백성을 맡긴다는 것이 말이 되니? 관우와 장비가 그렇게 반대를 하는데도 여포에게 서주성을 주려고 했다니정말 답답한 노릇이로구나.

헌제를 모시고 있는 신하 중에 양표라는 사람이 있단다. 헌제가 이름뿐인 헌제이지만, 그래도 이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어. 이각과 곽사 사이를 이간질하는데 성공하여 이각과 곽사는 성 안에서 서로 치고 박고 했단다. 이렇게 치고 받으면서 이각이 몰래 황제인 헌제를 성 밖으로 빼돌렸어. 이로 인해 헌제는 오히려 성 밖에서 굶주린 생활을 하게 되자, 양표는 다시 이각과 곽사를 중재하려고 했단다.

이름뿐인 황제 헌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수많은 싸움꾼들이 치고 박는 이 싸움들은 언제 끝날 것인가. 분명한 것이 이 싸움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그들은 무엇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일까. 자신들의 목숨뿐만 아니라 죄 없는 백성들의 목숨까지 내고 싸우는 것일까. 삼국지에서 죽은 사람들이 총 몇 명인지 한번 세우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구나. 전투 장면을 보면 적으면 수천 명 또는 수만 명, 보통 수십만 명씩 참여하는 전쟁에서, 절반 이상씩 죽었다는 전투가 대부분인데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모두 더하면 몇 명이나 될까. 세상의 소설들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단다. 삼국지 2권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조조를 잡으라는 체포령이 전국 각지로 전해졌다.

책의 끝 문장: 어쨌든 그 역시도 속이 복잡한 인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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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4 - 임진왜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4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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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가끔씩 읽는 <역사저널 그날> 시리즈. 4권을 읽었단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조선시대를 다룬 제 4권의 이야기를 읽었어.

조선시대에 왜와 교류를 하였는데, 조선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조선 사람들이 왜를 방문하곤 했단다. 임진왜란 전에도 조선통신사가 다녀왔는데, 갔다 온 사람들의 의견이 전혀 달랐어. 김성일이라는 사람은 일본은 전혀 전쟁 준비를 하지 않아서 전쟁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했고, 황윤길과 허성이라는 사람은 일본이 전쟁 준비를 하니 대비해야 한다고 했어. 하지만 당시 왕이었던 선조는 김성일의 의견에 따랐단다. 특별히 전쟁 준비는 하지 않았어. 물론 황윤길의 말에 따라 전쟁 준비를 했다고 해서, 그 흐름이 많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당시 조선은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하고 있었단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인 듯 하구나. 당시 조선의 신하들은 왜에 대해 무시하는 성향이 있어서 그들이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고 생각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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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낙관에는 일본 군사력에 대한 낮은 평가도에 꽤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얼마 전에 선조가 신하들을 불러서 의논을 했대요. ‘일본이 진짜 침략할 것 같나?’ 그랬더니 한 신하가 웃으면서, ‘일본은 배 한 척에 100명밖에 못 싣고, 배는 많아봐야 100척 밖에 동원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대요. 그런데 실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에 동원하도록 지시한 배는 2000척 가까이 됐던 거죠. 조선은 이렇게 일본의 군사력을 한참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즈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국서를 보내왔어요. 그런데 조선 입장에서는 그 국서의 내용이 굉장히 오만방자하게 느껴졌던 거죠. 여기 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가 태몽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태양의 아들이라고 칭한 부분도 있고, 또 자기가 전쟁을 하면 지는 일이 없다면서 자신감을 넘어 오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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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 이래 200여 년 동안 큰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던 이 땅에 전운이 감돌고 있던 걸 이 곳에 살고 있는 이들만 모르고 있었어.


1.

당시 일본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 그 힘을 과시하는 한편 넘쳐나는 무신들의 에너지를 발산할 목표로, 그리고 자기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조선을 쳐들어왔단다. 원래는 명나라를 공격한다는 목적으로 길을 내달라고 했는데 조선이 떠 받치는 명을 친다는데 길을 내주겠니그렇다고 조선이 잘 막은 것은 아니야. 1592 4 13일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일본군들이 한양에 도착한 것이 5 2일이라고 하니.. 20일만에 부산에서 한양까지 치고 올라갔다는 것은 거의 무사 통과였다고 볼 수 있단다. 그나마 저항했던 것이 동래성과 탄금대에서의 전투였어. 동래성의 당시 부사는 송상현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나라에서는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지만, 나름 1년 전부터 전정에 대한 대비를 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역부족이었대. 하지만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숨어 있는 위인 송상현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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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송상현이 동래부사로 부임한 게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입니다. 동래부사는 지금으로 치면 부산시장 정도 되는 자리죠. 송상현은 부임과 동시에 성 주변에 나무를 심습니다. 나무가 성책(城柵) 역할을 하도록 한 거죠. 송상현은 또 군사 훈련을 철저하게 시켰다고 합니다. 이때가 꽤 평화로운 시대였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조치죠. 그러므로 송상현은 일본군의 침략을 예견했거나 적어도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유능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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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 28일 탄금대에서 전투가 있었어. 당시 조선 최고의 장군이자 기마전의 대가였던 신립 장군조정에서는 신립 장군에 큰 기대를 하였고, 당연히 신립 장군이 막아주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하지만 탄금대는 기마전에 유리한 지형이 아니었고, 그날따라 비가 와서 땅이 질척하고, 말을 이용한 기동성이 장점인 기마전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면서 대패했다고 하는구나. 8000여명의 군사들이 죽고, 신립도 자결을 하였대. 탄금대가 뚫렸으니 한양까지는 아무런 방비도 없었어. 그렇다고 왕이라고 유능했냐그것도 아니야.. 왜군이 한양 입성하기 이틀 전에 선조는 몰래 측근들과 함께 도망을 갔단다.

백성들의 민심은 왕에 대한 분노 그 자체였어. 선조 일행은 개성, 평양을 거쳐 단숨에 의주까지 도망을 갔단다. 해결책도 없이 의주까지 가서는 명으로 망명할 생각까지 하고 명나라에 편지까지 썼는데 명나라에서는 부담을 느끼고 거절했다고 하는구나. , 참으로 창피한 일이구나. 평양과 의주 사이에 영변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세자인 광해군에게 분조를 하면서 나라를 맡겼다고 하는구나. 당시 광해군의 나이가 18살이었어. 그러니까 18살 아들에게 올라오는 왜군을 막으라고 하고, 자신은 도망을 간 거야. 참 무능도 하구나


2.

그대로 나라가 왜에 넘어가는 상황이었지. 남쪽에서 이순신이 하나둘 왜군을 격파한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야. 전라 좌수사에 있던 이순신은 전쟁이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전쟁 준비를 했다고 하는구나. 혹독하게 했다고 하니 이순신은 이 전쟁을 예견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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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어떤 면에서 이순신 장군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쟁을 준비해요.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있으면 곤장을 때리기도 했고요. 당시 이순신 장군의 부하들은 불만을 가졌을지도 몰라요.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한테 맨날 전쟁 준비시키고 함부로 곤장 때리고 그러냐?’ 이런 불만이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런 걸 보면 이순신 장군은 확실히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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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해전 승리를 시작으로 연전 연승을 거둔 이순신은 한산 대첩으로 전쟁의 분위기를 확 바꾸어 놓았단다. 수군의 승전보에 힘을 받았는지 육지에서는 힘을 쓰고 있었어. 김시민 장군이 큰 활약을 보인 진주 대첩에서 왜군에게 대승을 거두었단다. 관군의 힘뿐만 아니라 곽재우 등 의병들이 큰 도움이 되었단다. 진주 대첩은 관군과 의병의 합작승리라고 할 수 있었어. 진주 대첩 패배에 열 받은 왜군이 보복을 한다고 나중에 진주의 많은 백성들이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말이야.

명나라에서 지원이 왔어. 아무래도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의 땅에서 전쟁을 할 것 같으니 지원을 보내 조선에서 싸운 것이지. 명나라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과 조선군이 합작으로 평양성을 7개월만에 탈환했단다. 그리고 나서 1593년부터 강화회담이 시작되었는데, 이 회담은 4년 가까이 이어지다가 결국 결렬이 되었고, 다시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정유재란이었단다. 회담이 열리던 4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이순신이 파직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어 감옥에 있었어. 전쟁 영웅을 이렇게 취급해도 되는 거니.. 무능한 왕이 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난단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왜군이 함정을 파고 유혹했어그 함정에 말려들면 조선군의 대패가 눈에 보였단다. 선조 왕은 공격하라고 명령했고, 이순신은 왜군의 함정인 것을 알고 공격하지 않고 있었어. 그 이유로 이순신을 파직시키고 죄인을 서울로 압송한 것이래심지어 사형까지 당할 뻔했는데, 정탁 등 몇몇이 말려서 사형은 면하고 백의종군을 하였다고 하는구나.

이순신의 후임으로 원균이 왔는데 그는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고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고 남쪽 바다를 책임졌어. 그 전에 원균의 패배로 조선의 전투배는 12척뿐이었단다. 어떤 사람이 나중에 한 척을 더 가지고 와서 13척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말이야. 여기서 그 유명한 말을 이순신 장군께서 하신 것이란다. 신은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다고 말이야이순신 바다의 흐름을 이용하여 12척의 배로 대승을 거둔단다.  그것이 바로 명량대첩이야일본도 다시 한번 좌절을 느꼈을 거야. 그리고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유언으로 조선에서 군대를 철수하라고 했대. 그래서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나게 되었단다.

그때 후퇴하는 일본군을 총공격하게 되는 이순신 장군그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지만 이순신 장군은 목숨을 잃었단다. 이순신 장군은 이 전쟁을 통해 전쟁 영웅으로 많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단다. 선조의 반응은 시쿤둥. 이 전쟁을 이길 수 있던 이유는 명나라가 도와주어서 그렇다는 평을 내놓았단다.


3.

임진왜란을 끝내 승리로 이끄는데 공을 세운 또 한 사람이 있다면 류성룡이라는 사람이란다. 류성룡은 인재를 알아보는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었어.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종6품인 정읍 현감으로 있던 이순신을 정3품 전라좌수사로 추천한 이가 바로 류성룡이었단다. 이것은 신의 한 수였던 거지.. 임진왜란에 행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운 권율 장군이란 사람도 있는데, 이 사람도 류성룡이 추천한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류성룡과 이순신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래.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순신의 형님과 류성룡이 친구 사이였다고 하는구나. 어렸을 때부터 옆에서 지켜봤을 때 이순신의 남다른 능력을 알아보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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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류성룡과 이순신은 언제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관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흔히 두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류성룡이 세 살 많아요. 사실 류성룡은 이순신 장군의 형님과 친구였어요. 이순신 장군은 사형제 중 셋째인데, 제일 윗형님 이름이 복희씨의 신하, 희신입니다. 그다음에 중국 제일의 성인으로 치는 분이 요 임금, 순 임금이죠. 그래서 바로 윗형님 이름이 요신이에요. 이 형님하고 류성룡이 친구 관계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순 임금의 신하라는 뜻으로 순신이죠. 그러나 이순신 장군 동생 이름은 뭘까요?

이순신 장군의 동생도 있어요?

, 요순 다음으로 하나라의 우임금이 유명하죠. 치수(治水)를 잘했던 분이요. 이 우임금의 신하라는 뜻에서 동생 이름은 우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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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하면 유명한 책이 한 권 있단다. <징비록>이란 책이야. 임진왜란이 끝나고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책이고, 앞으로는 전쟁을 잘 대비하자는 내용도 있다고 했어. 아빠도 오래 전에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단다. 읽고 쓴 독후감이 있으니 한번 찾아봐서 읽어봐야겠구나. 이 책은 나중에 일본으로 유출되기도 했는데, 그곳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4.

선조의 아들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책들에서도 이야기를 하고, 한명기 님의 <광해군>을 읽고 쓴 독후감을 참고해고 좋을 것 같구나. 오늘은 아주 간단히 이야기할게. 선조와 의인왕후 사이에 아이가 없었어. 후궁인 공빈 김씨가 낳은 아이가 아들들이 있는데, 임해군과 광해군이었단다. 광해군이 두 살 때 엄마인 공빈 김씨는 죽었어. 선조의 첫아들 임해군이 세자에 책봉되는 것이 원칙이나, 임해군의  성격이 무척 안 좋았대. 그래서 광해군이 세자에 책봉이 되었고, 의인왕후의 양자가 되었대. 의인왕후는 양아들 광해군에게 잘 해주었다고 하는구나. 선조는 역대 왕 중에 선위하겠다고, 그러니까 왕을 아들에게 넘기겠다고 가장 많이 이야기한 왕이었다고 하는구나. 20번을 넘게 이야기했대. 그럴 때마다 신하들과 광해군은 무릎 꿇고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야 했고참 골치 아픈 왕이로구나.

또 의외의 변수가 생겼어. 의인왕후가 죽고 51살인 선조가 새로운 왕비를 맞이했어. 그 왕비가 아들 영창대군을 낳았다고 하는구나. 진정한 적자가 태어난 것이지영창대군이 잘 자라면 세자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선조는 갑작스럽게 죽고 말았단다. 그래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단다. 어찌 보면 우여곡절 끝에 오른 왕위였어.
여기까지가 <역사저널 그날 4>의 이야기란다이제 학교에서 너희들도 역사를 조금씩 배우는 것 같더구나. 아빠가 어렸을 때는 역사를 싫어했는데, 그런 아빠를 닮았는지 너희들도 모두 역사가 재미없다고 하는구나. 너희들에게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재미를 느끼게 하려면 아빠가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고 그래야 하는데…. 연구가 필요할 것 같구나. 아니면 역사를 재미있게 가르쳐주는 이를 찾던지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임진왜란의 역사적 무게는 조선 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사실에서 가장 또렷하다.

책의 끝 문장: ‘나도 좋은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700여 척의 배가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면서 시작되어 1598년 11월 종결되기까지 동아시아를 뒤흔들었다. 그 영향도 지대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란이 끝난 뒤 명과 일본 모두 왕조나 정권이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그전부터 침체했던 명은 참전 뒤 더욱 허약해졌고 결국 멸망했다. 일본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수립했다. 도쿠가와 막부는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무너질 때까지 250여 년간 존속하면서 일본의 중세를 이끌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전쟁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조선은 쓰러지지 않았다. 전쟁 이후 조선은 체제를 수습했고, 그동안 지내온 것보다 더 오랜 기간을 존속했다. - P13

두 사람은 사실 처음부터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허균의 책을 보면 두 사람이 같은 동네 출신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원균은 부친이 수군절도사까지 지낸 무반 가문 자손이고, 이순신은 할아버지 때까지 굉장히 잘 나가던 문반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두 사람의 무과 합격 시기도 10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이순신이 한참 늦게 합격했죠. 그런데 임진왜란 직전에 이순신이 종6품인 정읍 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까지 일곱 품계가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하고, 계속 승승장구하잖아요. 본래 이순신보다 훨씬 높은 직급에 있었던 원균으로서는 그런 이순신이 탐탁지 않았겠죠. - P92

의병은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죠. 우선 경상도 3대 의병장으로 곽재우, 정인홍, 김면이 있습니다. 호남 의병장으로는 고경명, 김천일 등이 있고, 지금의 충청도 지역인 호서 의병장에는 조헌, 영규가 있죠. 금강산에서 활약한 사명대사 유정과 함경도의 정문부 장군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이렇듯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가했어요. 그러므로 의병의 봉기는 수군의 승리와 더불어 전쟁의 흐름을 바꾼 핵심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P106

그 재조지은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화가 나요. 대체 누가 나라를 구했습니까? 나라를 구한 건 조선의 백성들이에요. 그러면 백성을 섬겨야지 이게 무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런 걸 보면 선조는 그토록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도 배운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전쟁 후에도 제대로 된 국가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어요. - P154

손바닥도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잖아요. 이순신이 그토록 큰 전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덕분이었습니다. 하나는 경상도 지역의 의병이죠. 곽재우를 비롯해서 김면, 정인홍 등이 낙동강 지역을 굳게 지킴으로써 왜적들이 진주를 거쳐 전라도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했고, 덕분에 후방 기지를 든든하게 확보할 수 있었죠. 두 번째는 류성룡이 조정에서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해 줬기 때문입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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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17 1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라를 구한 건 조선의 백성들]

마지막 문장 -‘나도 좋은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북홀릭님 주말 아들과 딸과 함께 ~
행복 따숩게 ^ㅅ^

bookholic 2021-10-18 00:25   좋아요 0 | URL
광해군이 아버지만 잘 만났어도 성군이 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아, 주말이 다 가버렸습니다.
오랜만에 꽉 찬 주5일이 무섭게 기다리고 있네요..
그래도 즐거운 한 주 되시길....^^
 















(12)

그는 쉬지 않고 일단 덕에 온갖 관직을 죄다 맡았고 온갖 지위에 올랐다. 포품에서 소송을 벌였고, 전장에서 군단을 지휘했으며 집정관이 되어 공화국을 다스렸고 총독이 되어 속주를 다스렸다. 엄청난 재산을 손에 넣었다가 큰 빚을 지기도 했다. 팔라티움 언덕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을 가졌지만, 적들이 그 집을 불태우고 부수는 걸 지켜봐야 했다. 중요한 논문을 썼고 길이 남을 연설을 하기도 했다. 자식들을 얻었지만 잃기도 했다. 용감하기도 했지만 비겁하기도 했으며, 고집을 부리다가도 금세 아첨꾼이 되곤 했다. 칭송도 많이 받고 미움도 많이 받았다. 이 변화무쌍한 인물은 모순투성이지만 광채를 가득 뿜어내고 있다. 한마디로 키케로는 당대에서 가장 매력이 넘치는 흥미진진한 인물이다. 마리우스로 시작해서 카이사르로 끝나는 파란만장한 40년 세월에 일어난 모든 사건이 키케로와 끈끈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86)

이제껏 발보아는 왕권에 반기를 든 뻔뻔한 무법자에 불과했고 카스티야 법정에서 교수형이나 참수형을 선고받을 처지였다. 그런 사람이 막강한 추장의 처소를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세계사에 남을 결정을 내리게 된다. 코마그레 추장은 널찍한 석조건물에서 그를 맞이한다. 집에 가득한 사치품을 보며 발보아는 깜짝 놀란다. 코마그레는 손님에게 자발적으로 4천 온스나 되는 금을 선물하기까지 한다. 이번에는 추장이 놀랄 차례다. 최고의 예우를 갖춰 영접한 신의 아들들이, 신을 닮은 위풍당당한 이방인들이 금을 보자마자 망나니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은 사슬 풀린 개처럼 검을 뽑아 들고 주먹을 휘두르며 서로 달려든다. 다들 악을 쓰고 날뛰면서 금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 든다. 추장은 기가 막혀서 이 미친 짓거리를 경멸스럽게 지켜본다. 지구 끄트머리에 사는 자연인들은 문명인에게 자신들이 이뤄낸 온갖 정신적이고 기술적인 업적보다도 한 줌의 누런 금속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 이런 일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94-95)

스페인 정복자들의 성격과 품성에는 여러 요소가 희한하게 뒤섞여 있어서 설명이 어렵다. 그들은 여느 기독교도보다도 더 경건하고 신앙이 돈독하다. 열렬히 하느님께 기도하면서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르곤 한다. 용감히 자신을 희생하고 고통을 견디면서 영웅답게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뤄낼 수 있지만, 지극히 야비한 방식으로 서로를 속이며 싸우곤 한다. 그런가 하면 한심한 짓을 벌이는 와중에도 새삼 명예를 지극히 존중하는 면모를 보이며 자신들의 과제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놀라울 만치 정확히 파악하는 족속이 바로 그들이다. 발보아는 하루 전에는 묶여서 저항도 못하는 죄 없는 포로들을 사냥개들에게 던져주고 아직 따뜻한 사람 피를 뚝뚝 흘리는 짐승의 주둥이를 쓰다듬으며 흐뭇해했다.


(160-161)

그러나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운명은 야릇한 변덕을 부리며 별로 대단치 않은 사람에게 내맡기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세계사에서 몹시 불가사의한 순간이 되곤 한다. 어쩌다가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운명의 실마리를 손에 쥐게 되면 그 사람은 행복해하기보다는 겁에 질리기 마련이다. 영웅들이 세계를 놓고 벌이는 도박판에 끼어들게 되면 엄청난 책임을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벌벌 떨다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운명을 놓쳐버린다. 이런 경우 힘차게 기회를 움켜쥐고 위로 올라서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위대한 존재가 하찮은 존재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일은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기회를 한 번 놓친 사람에게 두 번째 기회는 영영 오지 않는다.


(181)

위대한 순간이 속세의 삶을 사는 인간을 찾아 내려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엉겁결에 불려 나온 사람이 그 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모진 복수를 당하게 된다. 평온한 시절에는 조심성, 복종, 노력, 신중함과 같은 시민적 미덕들이 불길 속에 맥없이 녹아내리고 만다. 웅대한 순간은 늘 천재만을 택해서 불멸의 형상을 부여하는 반면, 우유부단한 자를 경멸하며 밀쳐낸다. 지상의 또 다른 신이기도 한 운명의 순간은 불 같은 팔로 대담한 자만을 들어 올려 영웅들의 천국으로 들여보낸다.


(265-266)

선생님, 오직 사랑만이 인간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잘못입니다. 부자라서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굶주리며 평생을 지주의 지배 아래에서 시달리는 사람들은 기독교가 말하는 형제의 사랑이 하늘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느라 지쳐 있습니다. 그들은 기다리기보다는 주먹을 휘두르게 될 겁니다. 돌아가실 날이 머지않으신 선생님께 감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세상은 피로 뒤덮일 겁니다. 지주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자녀들까지 목숨을 잃고 능지처참을 당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들의 사악한 자취를 몽땅 없애려면 그래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릇된 선택을 하셨음을 살아생전에 직접 보시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선생님이 평화로이 눈을 감으실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267)

이토록 한결같다니, 러시아 청년들은 정말 대단해! 이들은 모든 정렬과 힘을 증오와 살인에 쏟고 있어. 그것이 마치 성스러운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그렇지만 그들은 내게 좋은 일을 해 주었어. 두 청년은 나를 흔들어 깨웠어. 정말이지 그들 말이 옳아. 지금이야말로 나약함을 떨쳐내고 내 말을 실천에 옮겨야 할 때야. 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 아직도 주저하고 있다니! 정말이지 올바른 것은 젊은이에게서만 배울 수 있다니까. 젊은이가 스승이야!


(297)

위대한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곧잘 그가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을 방해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떠나 멀리 도망쳐야만 하지요. 이렇게 된 것이 사필귀정입니다. 여기서 돌아가신다면 그 분의 삶은 완성되고 신성해질 겁니다.


(314)

인류 역사상 있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지구의 남극은 수천 년 동안, 아니 어쩌면 세상이 개벽한 이래로 인간의 눈길이 닿은 적이 없는 곳이었는데 찰나에 불과한 15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두 번이나 사람이 찾아온 셈이다. 그런데 그들은 두 번째이다. 한 달이 백만 번이 되는 기 세월 가운데 딱 한 달 차이로 2등이지만 인류 역사에서는 1등이 모든 것을 얻고 2등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법이다. 지난 몇 주, 몇 달, 몇 년 동안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숱한 고통을 견디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건만 이 모두가 말짱 헛수고라니! “그토록 애를 쓰고 고생을 하며 아픔을 견뎌낸 대가가 고작 이것인가?” 스콧은 일기장에 이렇게 쓴ㄷ다. “이제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대원들은 눈물을 흘린다. 너무나 지쳤지만,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다. 참담한 심정으로, 희망을 잃은 사형수처럼 그들은 극점을 향해 마지막 발걸음을 옮긴다. 환호하며 그리로 달려가려고 했는데 말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다들 말 없이 지친 몸을 끌고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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