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거울 속의 남자.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건장한
몸집의 남자. 한때는 짙은 색이었던 그의 머리카락이 이제는 희끗희끗하게 변해버렸다. 거친 피부와 주름진 얼굴, 벗겨진 이마, 작은 눈, 손질이 필요한 눈썹.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은 거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신체 부위 중에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발뿐이라 말하곤 했다. 그는 시선을 고정했다. 거울
속의 남자도 시선을 고정한 채 팔을 내리고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두 다 알고 싶어 하는 남자였다. 날씨, 바람, 시간.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43-44)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그 끝은 결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다. 끝은 모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언젠가는 마지막으로 딸을 목말 태우고 숲을 산책하는 날이 올 것이다. 산
위에 올라가 발밑의 풍경이 마치 나만의 것 같다고 느낀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가게에 가서 빵과 우유와
버터를 산 날, 마지막 여름. 마지막 수영. 그는 8월의 어느 날, 튜브에
등을 대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올려다보았고, 햇살에 데워진 바위 위에 앉아 눈을 감고 피오르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81)
그는 어떻게 하면 그녀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일지에 그렇게 적었다. 우리는
쉽게 건널 수 있는 깊은 소금물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을 뿐이다. 어느 날 그는 배를 정박시키고 그녀의
집이 있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두세 발자국을 떼었을까.
갑자기 용기가 사라졌다. 그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이제 그의 삶은 저 집 안에, 저 대문 너머에, 마르타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삶 속에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119-120)
때때로 우리는 자연의 가장 장엄한 측면을 접하기도 한다. 어떤
집이나 배도 견뎌내지 못하는 바람, 심지어는 그 어떤 풍경도 경험한 적이 없을 낯선 바람, 피오르에 세차게 몰아쳐 배를 질식시키는 바람. 그런 바람이 불면
집은 갈라지고 부서지며 벽은 힘없이 땅에 쓰러지고 지붕은 마치 빈 정수리를 숨기기 위해 빗어 넘긴 옆머리처럼 허공으로 풀썩 솟아오른다. 내 안의 날씨도 이렇게 변한다. 그는 일지에 어딘가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는 피오르 같은 사람이다. 피오로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다가, 다시 부풀어오르고 가라앉는다. 그렇다, 페리 운전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이지만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피오르 안팎을 막론하고 항상 그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다. 마치
물이 부서졌다가 합쳐지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싸안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항상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그의 손목시계 바늘처럼. 그는 이미 앞을 향해 출발했고 곧 엔진을 끌 것이며 배는 완전히 멈출 것이다.
(153)
그는 여전히 이 몸 안에 있다. 시간은 그의 몸속에
존재하고, 그의 머릿속에 존재한다. 모든 것은 몸과 영혼, 앞과 뒤, 두 개의 반쪽 퍼즐 사이의 그 어딘가에 존재하며 서로
끼워 맞추어지려고 노력한다. 시간은 우리가 태어나는 날부터 시작해 우리가 점점 더 강해지고, 더 커지고, 더 현명해지고, 더
빨라지고, 더 명료해질 때까지 함께 하다가 천천히 내리막길로 향한다.
우리는 더 약해지고, 더 느려지고, 더 취약해지며, 어떤 일을 해보려는 우리의 열정은 사그라든다. 그는 이제 이것을
알고 있다., 천천히 시작해 천천히 끝을 맺을 것이다.
(181)
이렇게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그가
물었다.
뭐가요? 그녀가 되물었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면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말이에요.
물론,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누군가가 속내를 털어놓고 조금이나마 화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살아가기가 더 쉬울 것 같긴 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194)
루나는 누구든 잠을 자는 동안에 얼굴이 변한다고 했다. 닐스, 당신도 알고 있었나요? 얼굴은 젊어질 수도 있고, 늙을 수도 있는데 그건 그 사람이 꿈이 앞으로 꾸는지 뒤로 꾸는지에 따라 달라진답니다. 닐스는 잠을 잘 때 자신의 얼굴은 어떻게 변하는지 물어보았다. 루나는
닐스의 얼굴이 늙어 보인다고 했다. 루나는 닐스가 뒤로 거슬러 꿈을 꾸기 때문에 얼굴이 늙어 보이며, 특히 왼쪽 얼굴이 눈에 띄게 더 늙어 보인다고 말했다.
루나는 닐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얼굴이 늙어 보일 때가 더 좋아요. 왜냐하면
당신의 얼굴이 울퉁불퉁한 산기슭처럼 보어거든요.
(208)
닐스는 하나의 이름은 운명이자 숙명이며, 모든 시를
시작하는 첫 단어라고 말했다. 비록 인간이나 배가 죽거나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 이름은 항상 남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마르타는 그런 것쯤은 다 안다면서 자시는 바보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당신은 어떤 이름이 좋을 것 같나요? 밤과 낮. 그녀는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닐스는 코웃음을 치면서 배는 이미
완벽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피오르에 나가 있을 때, 그녀와
떨어져 있는 모든 밤과 낮에도 그는 항상 그녀 속에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아, 징그러워. 그녀가 쏘아붙였다.
(268)
닐스는 이것이 바로 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고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삶은 끝없는 초안과
스케치이며,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단 시작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따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