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최근 몇 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부는 바람이 있으니, 국뽕일지라도 자랑스러운 한류란다. K-pop, K-무비, K-드라마 등으로 여러 나라에 인기를 끌더니, 최근에는 K-요리, K-뷰티, K-클래식 등 다양한 분야로 퍼지면서, 소프트 파워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들이란다. 다른 나라에서도 Korea Wave(한류)에 대해 연구하고 다큐멘터리도 찍는다고 이야기 들었어. 그리고 코로나 규제가 완화되면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에 온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그런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더 알기 위해 우리나라 말도 배우고 우리나라 역사도 공부한다고 들었어.

이런 흐름 속에 영어로 된 우리나라 현대사를 다룬 소설이 하나 나타났단다. 그리고 그 소설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대. 책 제목은 <작은 땅의 야수들>. 아마존 이달의 책에 선정되었고, 여러 매체에서 2021년 최고의 책에 선정되었다고 했어. 이 책은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김주혜라는 분이 쓴 것인데, 장편소설은 <작은 땅의 야수들>이 첫 번째 작품이라고 했어.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18년부터 1964년까지의 이야기란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 힘들었던 시기.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모두 가슴에 한()을 품고 살지 않았을까 싶구나. 지은이는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외할아버지께서 독립 운동을 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지은이가 비록 미국인이지만 영혼만은, 정신만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리고 이런 괜찮은 소설을 한 편 쓸 수 있는 힘을 갖고 계셨고 말이야. 물론 우리나라 작가가 쓴 현대사를 바탕으로 한 더 훌륭한 소설이 많다고 생각해. 하지만 번역이 쉽지 않고, 우리나라의 작가들의 유명세가 세계적으로 아직 넓지 못해서 그런 작품들이 세계에 많이 소개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 이런 와중에 미국에서 영어로 된 소설로 인기를 끌었으니 그 영향력은 클 거라고 생각되는구나.

지은이 김주혜 님이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더 쓰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현대사에 관한 소설들을 몇 권 더 써서 외국 사람들에게 더 많은 우리나라 역사를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구나. 이 책을 언론에서 평한 것을 책 앞쪽에 실어주었는데, 그 중에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 팬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라라는 평이 있었단다. 아빠가 얼마 전에 재미있게 읽은 이사벨 아옌데의 <바다의 긴 꽃잎>이라는 소설이 있었잖아. 칠레의 현대사를 소설로 다른 소설 말이야. 그것처럼 김주혜 님의 <작은 땅의 야수들>도 우리나라 현대사를 소설로 쓰신 것이니, 그 평이 나름 공감이 갔었단다.


1.

, 그럼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게. 사냥꾼 남경수는 눈길에서 기력을 잃고 쓰러지게 된단다. 그런데 길 잃고 헤매던 일본군대를 만나 살아나게 되었어. 그리고 남경수는 일본군대에게 길을 안내해 주었고, 가는 길에 만난 호랑이의 공격으로부터 구해주었단다. 산에서 내려온 이후 일본군대 하야시 소좌는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야마다 대위가 설득하여 살려주었단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프롤로그의 줄거리란다.

, 이제 소설 속 등장인물에 대해 소개해 줄게. 은실이라고 하는 평양의 유명한 기생이 있었단다. 은실에게는 딸이 두 명 있었는데, 월향과 연화였어. 월향과 연화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은실만 알고 있었어. 독립운동을 하는 이였고, 지금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고, 은실은 남몰래 독립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단다. 은실의 밑으로 기생견습생 옥희가 들어왔는데, 옥희와 연화는 금방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단다. 옥희는 무엇이든 열심히 했어. 시조도 열심히, 노래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은실의 첫 딸 월향은 둘째가면 서러워할 만큼의 미인이었는데, 일본군 소좌 하야시에게 겁탈을 당하고 말았고, 임신까지 하게 되었단다. 은실은 그런 월향을 평양에 두기 보단 좀 멀리 보내려고 했어. 그래서 경성에서 기생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촌 단이에게 보냈단다. 그때 월향을 보살피라고 연화, 옥희도 함께 보냈단다. 단이는 일본인 판사에게 잘 보여서 그에게 후원을 받으며 큰 집에 살고 있었단다. 그래서 월향, 연화, 옥희는 경제적으로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었어.

….

남정호라는 남자 아이가 있었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경성으로 왔다고 했는데,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남정호의 아버지는 앞서 이야기했던 사냥꾼 남경수더구나. 남정호는 다리 밑 패거리들과 싸움이 붙었는데, 그 패거리의 우두머리를 이기고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었단다. 그래 봤자 아직 열 살 남짓 어린 아이들이었어. 남정호는 우연히 옥희와 알게 되었고 친구가 되었단다.

김성수라는 지주 아들이 한 명 있었단다. 어느날 동경 유학 동기 중에 한 명인 이명보가 찾아와 독립자금을 부탁했으나, 김성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거절했단다. 이명보는 은실의 소개로 단이를 찾아갔단다. 단이도 은실처럼 남몰래 독립자금을 조달하고 있었거든. 단이는 흔쾌히 독립자금을 준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 명보는 김성수를 다시 보게 되었단다. 사실 김성수와 단이는 옛 연인이었는데, 김성수가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온 것이란다. (얼마 후 다시 단이를 버리게 되었지만…) 당시 이명보는 3.1 운동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인쇄소를 하는 성수에게 단이가 선언문과 태극기 인쇄를 부탁했어. 성수는 단이의 부탁까지는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허락했단다.

그리고 얼마 뒤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단다.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웠듯이 1919년이었단다.  단이도 시위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 구치소에 갇혀 있었는데, 그를 후원해주는 일본인 판사의 도움으로 풀려날 수 있었어. 하지만 동행했던 하녀이자 친구인 해순은 감옥에서 죽고 말았단다. 이 일로 단이는 큰 충격을 받았단다. 이명보도 3.1 운동 주동자로 잡혀서 감옥살이를 했는데, 단이가 이번에도 일본인 판사에게 부탁해서 징역 2년으로 감형되었단다.


2.

시간은 지나 1925년이었어. 그 사이에 연화와 옥희는 제법 자라서 십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단다. 연화는 경성 최고의 가수가 되었고, 옥희는 기생 공연에서 칼춤과 연기로 유명해지게 되었단다. 그래서 어떤 극단이 옥희에게 제안을 해서 배우로 일하게 되었고 크게 성공하였단다. 연화는 옥희와 여전히 친하게 지냈지만, 자신도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을 밀어준다고 하는 대동영 극장으로 옮겨서 가수로 독자적 활동을 시작했단다. 연화가 노래 실력이 좋았지만 대동영 극장에서 가수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대동영 극장 사장의 애인이 되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란다. 연화는 임신하고 딸 선미까지 낳게 되었단다.

그런 사이 월향은 딸 해숙을 낳은 이후 열심히 생활했단다. 비록 일본 장교의 겁탈에 의해 낳은 딸이지만, 월향은 딸 해숙에게 정성을 다했단다. 딸의 학교 일로 학교에 갔다가 미국 부영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월향은 부영사의 눈에 들어 미국 영사관에서 일하게 되었어. 나중에서는 그 부영사가 청혼을 했는데, 월향은 자신의 딸 해숙을 미국에서 공부시켜준다는 조건으로 그 청혼을 받아들였단다. 결혼 후 월향은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나중 일이지만 미리 이야기를 하자면 아주 행복하게 잘 살았단다.

남정호도 부쩍 자라서 청년이 되었어. 어렸을 때부터 옥희를 사랑했는데 단이가 접근 못하게 하여 마음에만 품게 되었단다. 주먹으로 일인자가 되어 건달 무리들과 지내다가 누군가의 소개로 이명보를 만나게 되었단다. 이명보 기억나지? 이명보는 감옥살이 2년을 마치고 나온 이후 돌아가신 아버지의 재산을 물러 받은 뒤 철저하게 사회주의자로 활동했단다. 자신의 재산 절반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도 했어. 그리고 여전히 몰래 독립 운동을 했는데, 그 일을 남정호가 도와주게 된 거야. 정호는 자신이 의거를 하기로 마음 먹고 중국으로 건너가기로 했단다. 중국으로 가기 전에 옥희를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옥희에게 사랑 고백을 하면서 마음이 흔들려 중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어. 그러자 옥희는 가라고 하였고 이 일로 정호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단다. 정호는 중국에 건너가 의거에 성공했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단다.

옥희의 주변에는 또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단다. 한철이라는 사람으로 오래 전부터 옥희의 인력거꾼 일을 했었어. 그렇게 일도 하고 야학 공부도 했어. 옥희는 한철의 학비를 도와주었고, 한철은 계속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어. 옥희와 한철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대학까지 졸업한 한철은 슬슬 옥희를 멀리하게 되었단다. 한철이 일하는 곳에서 사장의 눈에 띄어 사장의 중요한 일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장이 다름 아닌 김성수였으며, 한철은 김성수의 딸 서희와 결혼까지 하게 된단다. 옥희의 사랑을 배신을 한 나쁜 놈.


3.

시간은 또 흐르고연화는 대동영 극장의 사장으로부터 결국 버림을 받았어. 뻔한 스토리였잖니. 연화는 아편에 빠지고 나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단다. 옥희는 연화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어. 해방이 된 이후 정호가 기지촌에서 연화를 찾아냈고, 옥희는 돈을 주고 연화를 데리고 왔단다.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였던 연화는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았어. 미국에 있는 월향에게 연락해서 연화도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단다. 옥희도 한철로부터 배신을 당한 이후 생활이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어. 단이 이모가 병으로 죽기 전까지 옥희 혼자 보살펴 주었고, 단이 이모가 죽고 나서는 혼자 생활했단다.

….

정호는 해방 이후 국회의원이 될 정도로 성공했단다. 하지만 일제시대 때 공산당원 이력이 문제되어 수감되었어. 이것은 반대정당의 야비한 수법이었단다. 일제 시대 때 많은 사람들이 공산당원이면서 독립운동을 했었거든. 옥희는 사업가로 성공한 한철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했어. 한철은 해방 후에 자동차 제조사를 차리고 큰 사업가가 되어 재계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옥희가 한철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어. 한때 옥희가 그렇게 도움을 주었고, 사랑의 배신까지 한 한철이 용서를 받고 보답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한철은 거절했단다. 이 소설의 최고의 빌런이구나. 결국 정호는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고 말았단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마음에 상처를 크게 받은 옥희는 서울을 떠나 제주에 가서 정착했단다. 그곳에서 버려진 아이 철수를 거두어 보살피면서 지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아빠가 줄거리를 이야기해준다고 하긴 했는데 잘못된 부분도 많고, 다른 이들이 보면 중요한 장면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도 있을 거야. 이해해 주렴. 이 책은 비록 소설이지만 있을 법한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였단다. 그런 우리 조상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있고 우리나라가 있는 거란다. 그들과 우리는 한민족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들이 비록 힘든 삶을 살았지만, 하늘에서라도 지금의 우리나라 모습을 보면 뿌듯해하시지 않을까 싶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하늘은 하얗고 땅은 검었다.

책의 끝 문장: 나는 마침내 바다와 하나였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3-02-07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bookholic 2023-02-08 22:28   좋아요 1 | URL
늘 축하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미세먼지 많은 요즘인데요..
마음만은 화창한 2월 되시길 바랍니다~~

커래히 2023-02-1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
 
드립백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0월
평점 :
품절


입맛이 둔한 이에게도 독특한 산미가 느껴집니다.^^
주말 아침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 하반기 내내 각계각층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이 정지아 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아닌가 싶구나. 아빠가 좋아하는 유시민 님도 이 책을 추천해 주셔서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책 제목 때문에 별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어. 작년에 방영된 인기 드라마의 제목에서 따온 듯한 책 제목이 별로였거든. 해방일지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데, 책 제목에 넣은 것은 드라마의 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점이 아빠에게는 마이너스 요소였단다.

책을 읽고 나니, 굳이 제목을 <아버지의 해방일지>라고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인기를 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만큼 책 내용이 너무 좋으면서 재미있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들 추천하는지 알겠더구나. , 그러면 제목이 뭐였으면 좋았을까? 창의적이지 못한 아빠가 이 책의 제목을 짓는다면…. <나의 아버지>? 음 이것도 드라마의 제목과 유사한가?^^ 소설의 첫 문장 <아버지가 죽었다>는 어떨까?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짧은 첫 문장 속에 소설의 성격을 어느 정도 담겨 있는 듯 했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라는 높임말이 아닌,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말에 아버지와 딸 사이에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고, 나이 드실 만큼 드신 다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슬픈 감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어. 아버지가 죽은 것도 희한하게도 전봇대에 머리를 박았기 때문이라고 했어. 아무튼 첫 문장부터 끌어당기는 그런 소설이었단다.

주인공 정지아 님의 소설은 아빠가 처음 읽어보았는데 이름 꼭 기억해야겠구나. 정지아 님의 또 다른 대표작 <빨치산의 딸>도 꼭 읽어봐야겠구나. 정지아 님의 또 다른 책이 무엇이 있나? 찾아보았더니, , 그 중에 우리 집에도 있는 책이 무려 두 권이 있더구나. 그러니까 정지아 님의 글을 그 이전에도 읽었더구나. 하나는 <민중의 기록하라>라는 책으로 여러 사람들의 같이 지은 책인데, 정지아 님도 포함되어 있었어. 나머지 하나는 아빠가 너희들 읽으라고 사준, 우리나라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에 과한 책 <하늘을 쫓는 아이>를 정지아 님이 쓰셨더구나알고 보니 정지아 님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들도 많이 쓰셨더구나.


1.

, 그러면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이는 고아리. 고아리의 아버지는 고상욱. 평범하신 분은 아니었어. 빨치산 경력을 갖고 계시고 철저한 사회주의자셨어. 빨치산 경력 때문에 십 수 년 감방생활도 하셨어. 감방에 나오셔도 여전히 사회주의자였어. 어머니도 빨치산 경력이 있었고, 두 분은 동지로 만났다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빨치산 이력으로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와 멀찍이 떨어지려는 의도로 깡촌에서 농사를 지내며 지내셨어. 그런데 농사를 지내 본 적이 없으신 분들은 농사일도 쉽지는 않았어.

평생을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는 말년이 되셔서 치매도 겪게 되었어. 다른 사람에게 치매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었던 아버지는 어느날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어머니도 아버지 따라 깡촌에서 농사를 지내며 살았지만, 책도 많이 읽으시고 공부도 많이 하시고 그랬어. 어머니도 평생 철저한 사회주의자.

그런 부모님을 보는 친척들의 시선은 좋지 못했단다. 친척 가족 중에 빨치산 이력이 있다면, 예전에는 제약이 많았거든. 그래서 작은 아버지는 원하는 아버지와 평생을 원수지간처럼 지냈어. 나중에는 눈물을 자아내는 진실이 드러나지만 말이야. 고아리의 아버지 고상욱의 성격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 아빠가 소설 속 글을 발췌해 보았단다. 딸 고아리가 느끼는 아버지 고상욱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이해하게 될 거야.

=======================

(68)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는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 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두시간의 노동도 참지 못했다. 그런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은, 굶어 죽을 뻔한 고통은,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은 동료들이 바로 곁에서 죽어가는 고통은 어떻게 견뎠을까?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려와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 인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


2.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많은 사람들이 왔단다. 그들을 통해서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 아니 몰랐던 모습을 뒤늦게 알게 되었단다. 아버지는 평생 철저한 사회주의자이자 유물론자였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사람 그 자체였단다. 사람이 좋으면 사상보다 앞섰어. 그러니 사상적으로 정반대였단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단다. 심지어 잘 죽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생전에 술 한잔 잘 기울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사람을 가장 먼저 생각했던 아버지의 철학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

(138)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 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싫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관계를 맺지 않았다. 사람에게 늘 뒤통수 맞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인지도 몰랐다.

=======================

그렇게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아버지는 공감능력도 뛰어났단다. 모르는 십대 소녀와 맞담배를 피면서 조언을 해주어 그 소녀가 검정고시까지 볼 수 있도록 해주었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담배 핀다고 잔소리만 늘어 놓는 다른 어른들과 달리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담배조차 이해를 해주는 어른의 이야기라면 자신도 귀담아 듣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버지의 빨치산 경력 때문에 친척들이 간혹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친척들의 어려움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달려가서 일을 해결해주는 것도 아버지였단다.

고아리는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고, 뒤늦게 친밀감을 느끼게 된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제서야 말이야.

=======================

(231)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아빠, 나는 들을 리 없는, 유물론자답게 마음 한줌 남기지 않고 사라져, 그저 빛의 장난에 불과한 영정을 향해 소리 내 불렀다. 당연히 대답도 어떤 파장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그리고 고아리는 마지막으로 깨닫게 된단다. 아버지는 혁명가이고 빨치산이고 사회주의자이고 유물론자이기 전에 나의 아버지였다고 말이야.

=======================

(248-249)

오십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잠이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가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

이 책을 읽다 보면 읽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아버지를 떠오르게 할 거야. 아빠도 아빠의 아버지, 그러니까 너희들의 할아버지가 떠오르더구나. 어떤 특별한 사상을 가지시지는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아버지. 하지만 아빠가 본 모습이 전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계시겠지. 어쩌면 아빠도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 더 진짜일 모습을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새해가 밝았구나.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나이 드신 부모님 걱정은 커져만 갈 수 밖에 없는데, 건강히 오래오래 함께 하셨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아버지가 죽었다.

책의 끝 문장: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는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 P102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나는 불편한 모든 현실에서 몇발짝 물러나 노상 투덜댔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나 있었던 것인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들어오는 순간부처 나를 불편하게 한 아버지의 동지들은 목청 높여 아버지와 인연을, 조국통일에의 열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동지들의 장례식에 갈 때마다 참석한 동지들이 한둘씩 줄고, 십년쯤 지나면 누군가의 부고가 들린다 해도 갈 수 없는 몸이 될 사람들이었다. - P148

질 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대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려 했던 이십대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 P181

아버지는 죽음 앞에서 담담했을까? 인간의 시원은 먼지, 누구라도 언젠가는 그 시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불변의 과학이라 생각하는 사람답게 담담하게 맞이했을 것도 같고, 아는 것은 머리요, 정작 죽음이 닥쳤을 때는 머리만 바위 밑으로 디밀었다는 김일성대 출신의 엘리트처럼 공포에 떨었을 것도 같았다. 뇌출혈이었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1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굴 없는 살인자 쿠르트 발란데르 경감
헨닝 만켈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스웨덴의 작가 헨닝 망켈의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 없는 살인자>를 읽었단다. 아빠가 읽은 헨닝 망켈의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는 이번이 두 번째란다. 예전에 읽은 <사이드 트랙>이라는 잔인하면서 무서운 소설이 첫 번째였고, 이번이 두 번째야. 헨닝 망켈의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가 우리나라에서 출간될 때 순서대로 출간되지 않았대. 인기 있다고 소문난 소설을 번역 출간한 다음 장사가 되다 보니, 그것이 시리즈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 하나둘 찾아서 번역하지 않았나 싶구나. 그렇다 보니 가장 첫 번째 시리즈가 최근에 번역 출간되었지. 범죄스릴러 소설들이 사건들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는 않지만, 등장 인물들은 계속 나오니, 아무래도 1권부터 차례대로 읽는 것이 등장인물들을 이해하기 편했을 텐데, 좀 아쉽구나.

그런데 1권부터 읽었다면, 아빠는 그 다음 시리즈는 안 찾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전에 읽은 <사이드 트랙>이라는 작품도 아빠의 성향과 좀 다르고, 다른 북유럽 범죄 스릴러인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나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보다 재미가 덜 했는데, 이번에 읽은 <얼굴 없는 살인자> <사이드 트랙>보다 좀더 아빠 취향이 아니었단다. 다음 작품을 찾아 읽을 동기마저 줄어들었어. 그런데 헨닝 망켈의 책이 우리 집에 두어 권 더 있는데 그 책들을 읽으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외국인 지은이의 이름을 우리나라로 쓸 때 좀 통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헨닝 망켈이라고 책에 써 있는데, 인터넷서점의 지은이 소개에는 헨닝 만켈로 되어 있더구나. 헨닝 망켈이나 헨닝 만켈이나 발음도 비슷한데 굳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지 모르겠네.

이런책 내용 이야기는 안하고 군소리만 잔뜩 했구나.


1.

시작은 괜찮았단다. 범인은 왜 그런 일을 벌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확 올라왔단다. 시골 농장에서 노부부가 강도로 보이는 침입자로부터 공격을 받아 남편은 잔인하게 죽음을 당하고, 노부인은 줄에 묶여 중상을 입고 정신을 잃고 있었어. 병원에 옮겨졌지만 오래 못 가 결국 죽고 말았단다. 그런데 죽기 전에 이 사건의 단서가 될 만한 한 마디를 남기고 죽었어. 그 한 마디는 외국이라는 단어였단다. 이 단어는 상당히 민감한 단어였어. 이 소설의 배경이 된 1990년대 초반 스웨덴은 자유 이민 정책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거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난민 캠프들도 있었어. 이 수사를 맡게 된 발란데르도 노부인이 마지막 한 말에 대해 언론 통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 하지만, 이 말이 어떻게 언론에 새어 나갔는지 모르지만, 언론에서 노부부를 죽인 범인이 외국인의 소행인 것 같다는 기사를 내 보냈어. 그리고 이후 난민 캠프에 대한 테러가 일어나게 되었어. 인종차별주의자들에 의해 난민 캠프에 방화에 의한 화재가 발생하고, 급기야 살인 사건까지 일어나게 되었단다.

1990년대 스웨덴의 사회 문제를 소설에 옮겨왔다는 점에서 문제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당시 스웨덴 독자들이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외국인 혐오 등에 대한 반성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작가는 사회문제를 반영할 줄 알아야 하는 측면에서 지은이 헨닝 망켈에게 점수를 좀 주자꾸나.


2.

주인공 발란데르. 북유럽 범죄스릴러에 나오는 주인공 형사들은 캐릭터들이 어찌 다 비슷비슷한지 모르겠구나. 발란데르는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와도 비슷해 보였어. 발란데르에 대한 가족관계는 전에 읽은 <사이드 트랙>의 독서편지에서 이야기했는데 다시 한번 해 주면, 아내와 이혼한 상태이고, 딸 린다는 다 커서 독립한 이후로는 아빠를 잘 보러 오지도 않고, 아버지는 치매가 있으셔서 자주 보살펴 드려야 했단다. 이런 가정사라면 그리 행복할 것 같지는 않구나. 그러니 형사 일이나 열심히 해서 유능해 지는 것 아닌가 싶구나. 그런데 이런 형사일수록 또 룰도 잘 어기고 말썽도 자주 피우고 약간은 독단적이고, 결정적으로 술을 좋아하는, 그런 캐릭터잖니. 발란데르도 술 먹고 운전하다가 경찰도 그만둘 뻔 했어. 하지만 그 집요함. 그 집요함이 발란데르의 큰 장점이었어. 그 집요함으로 범인의 범위를 좁혀간단다.

그리고 살해당한 노인이 평범한 시골 노인이 아니라는 것도 밝혀졌단다. 단순 강도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지. 그 노인의 이름은 뢰브그렌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전쟁 통에 모은 엄청난 돈을 숨겨 놓았고, 돈뿐만 아니라 식구들 몰래 숨겨 놓은 여자도 있었고, 그 여자 사이에 낳은 아들도 있었단다. 피해자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게 된단다. 하지만 결말은 예상치 못한 결말은 아닌, 범죄스릴러 소설의 일반적인 규칙을 잘 지킨 결말로 끝을 맺는단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너무 기대를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괜한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오늘은 짧게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잠에서 깼을 때 그는 자신이 확실히 아는 무언가를 잊어버렸다.

책의 끝 문장: 이제 그는 마침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 제철 채소 제철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을 것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소설가 김탁환 님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한 책,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를 읽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예전부터 김탁환 님의 백탑파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그의 소설들을 제법 많이 읽었단다. 독서기록을 뒤져보니, 생각한 것보다 많이 읽었더구나. 대부분이 소설인데 이번에 읽은 것은 에세이란다.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기란다.

새로 터를 잡은 곡성의 섬진강변에서 지내면서 2021 1년간 쓴 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란다. 김탁환 님은 집필실을 여러 번 옮긴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섬진강변에 터를 잡았다고 하는구나. 새로운 장편 소설을 준비하면서 말이야. 김탁환 님은 주로 장편 소설을 쓰셨는데, 장편 소설 작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보니 미래를 사는 사람이라고 하고, 그렇게 장편에 매력을 느낀다고 하는구나.

=========================

(72)

장편 작가는 미래를 사는 사람이다. 단편이라면 올해 쓰고 올해 발표할 수도 있지만 장편은 불가능하다. 구상부터 탈고까지 최소한 3년은 걸리고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5년이나 10년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기에 장편은 이 계절의 유행이 아니라 삶의 본질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 치명적인 매력이자 기꺼이 감수하는 한계다.

=========================

일기라는 것이 꾸준하게 쓰는 게 쉽지 않은데, 김탁환 님은 1년간 거의 매일 일기를 꼬박 쓰셨더구나. 일상에 대한 내용도 쓰고, 생각에 대한 내용도 쓰고 그야말로 격식 없는 글들이었어. 그런데 일기를 출간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아주 사적인 글들은 안 실었거나 살짝 편집했겠지?^^ 김탁환 님의 일기를 읽으면서 아빠도 올해는 다시 일기를 써보겠다고 다짐을 해보았단다. 일기라는 것이 밥 먹는 것처럼 매일 하는 것이라서 루틴만 잡으면 명문을 아니더라도 짧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예전에 한때 일기를 참 부지런히 쓸 때가 있었는데, 어떤 호르몬이 아빠를 변화시킨 것인가. 늘 해마다 데일리 다이어리를 준비는 하는데, 창피할 정도로 텅 빈 다이어리를 연말에 만나게 되더구나. 올해는 다시 한번 굳은 결심을 해와야겠구나. 책 이야기가 아닌 딴 이야기로 빠졌네.^^


1.

김탁환 님이 집필실로 여러 곳을 옮겨다녔는데, 시골은 처음이신 것 같았어. 최근 몇 년 사이에 귀농 귀촌이 한참 유행이었어. 그래서 아빠도 아주 조금은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자꾸 유튜브에서 관련 동영상을 보게 되더구나. 어떤 사람들은 주중은 도시에서 주말은 시골에서 지내곤 하는데, 그런 것도 꿈꿔보지만 아빠처럼 게으른 사람은 못할 것 같아. 얼마 지나면 시골집이 귀신 나오는 집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어. 김탁환 님도 그런 시골 생활을 처음 하면서 농사도 처음 해보셨다고 했어. 그러면서 건강한 재철 음식도 먹고 말이야. 아빠처럼 입맛에 둔한 사람도 직접 기른 시금치의 맛의 차이를 알 수 있을까?

=========================

(84)

농부는 흙을 믿기에 시금치를 솎는다. 시금치를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상의 쾌감을 열 배는 더 독자에게 주고 싶다. 그 상상이 엷어지고 저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엔 선입견과 오만이 깔려 있다.

솎아낸 시금치와 봄나물로 점심을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시금치 중에서 맛과 향이 가장 진했다.

=========================

….

시골살이가 그리 쉽고 낭만적인 것만 아니야. 특히 여름이면 무성하게 자라는 풀들과 전쟁, 그 풀들 사이에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하는 벌레들이 정도까지는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빠가 진짜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뱀의 출현은 귀촌의 망설임을 꺾는데 일등공신이란다. 설마 뱀이 나올까, 싶은데 김탁환 님도 뱀을 여러 번 봤다고 하더구나. 계단에 또아리를 틀고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상상만 해도 무섭구나.

김탁환 님은 시골에 살면서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노력도 많이 하셨단다. 농사 일도 거들고, 자신의 전공답게 글쓰기 학교도 열고, 자연을 공부하는 생태학교도 열고 조그마한 시골서점도 열었다고 했어. 그래서 초보 책방지기도 되었다고 하는구나. 책방 이름이 <들녘의 마음>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기회 되면 한번 가 보고 싶구나. 너무 멀긴 하지만김탁환 님의 서점뿐만 아니라 주변에 좋은 서점이나 카페 등도 추천을 해주었어. 나중에 곡성, 구례 쪽에 여행 갈 일이 있으면 이 책에서 소개된 곳도 메모하면 좋겠구나.

귀농 귀촌이 유행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시골에는 사람들이 적어서 그것이 사회 문제가 되는 지방들이 많아지고 있단다. 하지만, 김탁환 님은 시선을 달리 봐서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아빠도 그 생각에 동의하게 되더구나.

=========================

(403)

이곳 섬진강 들녘은 사람이 매우 적은 대신,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생물들이 아주 많다. 소멸하고 있는 곳은 사람만 득실대는 서울이다. 만인에서 만물로 시선을 돌리면, 곡성을 비롯한 소위 소멸예정지역들이 달리 보인다.

인가 증가 대책만 세울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제외한 생물들을 어떻게 잘 지켜낼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들지 말고, 만물을 위해 무엇도 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


2.

1년간 쓴 일기를 읽다 보니 글 속에서도 세월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단다. 그러면서 아빠의 2021 1년은 어땠는지 생각해 보았단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 제대로 여행도 못하고 회사와 집만 쳇바퀴 돌 듯 다닌 일 년이었구나. 그리고 1년이 너무 금방 휙 지나감이 실감났어. 일년 동안 쓴 일기를 몇 시간 만에 휘리릭 읽었더니 더욱 일년의 짧음이 느껴졌어. 새로 시작한 2023년도 금방 휙 지나가겠지? 너희들과 더 알찬 시간을 가져야겠구나.

오늘은 책 이야기보다 아빠의 잡생각을 더 이야기한 것 같구나. 뱀 때문에 시골살이가 어려울 수 있지만, 아빠도 김탁환 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나무와 하늘이 반반이 세상에서 살고 싶구나. 살기 어려우면 자주 가보기라도 해야겠구나.

=========================

(108)

나무와 하늘이 반반인 세상에서 살고 싶다.

=========================


PS:

책의 첫 문장: 쓰고 싶은 장편이 있어 섬진강 들녘으로 집필실을 옮겼다.

책의 끝 문장: 장르를 따진다면 모험담이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3-01-08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보다 새 책을 쓸 때마다 집필실을 옮겨가며 산다는데 팍 꽂히면서 너무 부럽네요. ㅠ.ㅠ
직장다니는 우리는 그런거 못하잖아요. 아 진짜 나도 섬진강가에 가서 한동안 살고싶게 해주는 책이네요. ^^ 이상하게 낙동강은 그 옆에 살고싶다는 생각은 안드는데 섬진강은 왜 그런느낌이 드는걸까 궁금하기도 해요.

bookholic 2023-01-08 13:47   좋아요 1 | URL
낙동강 주변에는 더 멋진 해변가가 있어서~~^^
우린 새로운 책 읽을 때 마음가짐만 새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