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7)

(고성훈) <정감록>에도 일종의 암호가 나오는데요. 파자(破字)라고 합니다. 글자를 풀어서 획으로 나눠 쓰거든요. 이를테면 이망정흥(李亡鄭興)’으로 쓰지 않고 목자(木子)가 망하고 전읍(奠邑)이 흥한다로 씁니다. 임진왜란을 예로 들면 임진왜란의 키워드 중 하나가 이지 않습니까? 이것을 직접 ()’로 쓰지 않고 여인(女人)이 벼()를 이고 있다.”로 씁니다. 또한 병자호란이 한겨울인 12월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눈 설() 자가 곧 병자호란을 상징하는데, 눈 설 자를 쓰지 않고 비 우()자 아래 산()이 옆으로 누웠다고 해서 우하횡산(雨下橫山)’ 같은 식으로 쓰는 게 일종의 파자법이거든요. 암호라고 할 수 있죠.


(44)

(신병주) 무신란 이후에 영조가 직접 전교를 내립니다. 반란의 원인은 결국 조정에서 당쟁만을 일삼아서 재능 있는 인재들이 등용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계속 기근이 일어나 백성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구제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당쟁만을 일삼는다는 점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나라에서 해 주는 게 없으니까 백성들이 조정이 있는 것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반란군에 편입된 것이라고 하고요. 그러니 결국 반란을 일으켰던 주모자와 반란에 가담했던 백성들의 죄가 아니라 조정이 잘못한 거라고 합니다.


(46)

(신병주) 좌청룔,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라고 들어 보셨죠? 푸른색이 상징하는 것은 동쪽으로, 동인을 상징하는 게 미나리입니다. 우백호라는 건 서쪽을 말하는데 백호니까 흰색인 청포묵이 서인을 뜻하죠. 그다음에 남쪽은 붉은 봉황을 뜻하니까 붉은색 소고기가 남인을 가리키고요. 또한 북쪽은 검은 거북이어서 검은색인 김이 북인입니다. 이런 식으로 동인, 서인, 남인, 북인으로 인식되는 붕당에 상징색을 부여하고 이 음식들을 고루 섞어 먹으면 붕당 간의 화합이 이루어진다는 뜻을 담은 거죠.


(60)

(신병주) 어사는 공식적으로 왕의 가까운 신하로서 왕명을 받아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러 파견을 나가는 사신에 해당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임무에 따라서 진휼을 감독하는 어사는 감진어사라고 했고, 별도로 파견하는 어사는 별견 어사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 관리들의 부정이나 비리를 색출해야 할 때는 비밀리에 작업을 수행해야 해하니까 암행이라는 말을 썼죠.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도 암행어사였기 때문에 신분을 위장해야 하는 거지꼴로 나타나는 바람에 장모를 깜짝 놀라게 해 주는 대목이 나오죠.


(81)

(신병주) <실록>의 기록을 보면 두 사람의 성격이 대단히 닮았어요. 영조가 박문수를 지적하면서 나도 고집이 세지만 넌 진짜 고집이 세다.”라고 이야기하고 너는 성격이 진짜 불같다.”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영조 본인도 약간 그런 기질이 있다 보니까 서로 통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박문수가 왕 앞에서 싸우니까 다른 신하들이 박문수를 무식하다고 나무라는데 영조가 다 나라를 위하는 말이다. 무식하면 공부 좀 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박문수를 옹호해 주는 말까지 합니다.


(120)

(신병주) 이제까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라는 인물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아주 중요한 열쇠를 쥔 인물이었던 거죠. 여러 자료를 보면 영빈 이씨는 상당히 원칙이 분명하고 경우가 바르던, 아주 이성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때 파국을 막을 방법은 사도세자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영조도 후에 종사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평가하잖아요. 영빈 이씨 본인도 엄청나게 괴로웠겠죠. 그래서인지 기록을 보면 영빈 이씨가 사도세자의 삼년상이 끝난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다가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147)

(김문식) 문학 하시는 분과 예술 하시는 분들은 문체반정을 놓고 대단히 비판적으로 보시는데, 정조가 개방적인 군주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허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정치적인 입지가 있는 거고, 기본적으로는 왕위를 보존해야 하는 속성이 있죠. 또한 문체반정의 목적이 노론 세력을 약화하려는 데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당시에 정조가 금지하려 했던 패관 소품체를 쓰는 사람들이 대개 노론 계통이었거든요. 참고로 패관 소품체는 대단히 짤막하면서도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문체입니다. 정조는 그런 문체로 쓴 글들이 나왔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성도 간파한 것 같아요. 계속 유행한다면 체제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본 거죠. 상당한 정치적 고려 끝에 취한 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169-170)

(그날) 포도대장뿐만 아니라 대신들도 말렸다고 합니다. “서민이 상언하는 것은 매우 외람되고 난잡한 행동입니다. 상언과 격쟁을 받지 마소서.” 그러니까 정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들어러. 저 말할 것 없는 자들이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달려와 하소연하기를 어린 자식이 부모에게 하소연하듯이 하니 그렇게 만든 자가 잘못이지, 저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애민 군주의 진정성이 수백 년의 시공간을 넘어서 가슴에 감동을 안깁니다. 정말 진정한 소통과 공감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지 않습니까?”


(192)

(그날)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어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일 텐데, 정조는 매우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는 몹시 나쁜 경험을 한단 말이죠. 근데 그 상처가 치유의 과정 없이 가슴에 남아서 오래도록 정조를 괴롭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힐링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정조야말로 힐링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왕위에 오르자마자 너무 포용하는 정책들을 펼친 게 문제일지도 몰라요. 피바람을 몰고 오는 복수를 했으면 울화가 해소됐을 거예요. 화병이 안 생겼을 수도 있죠. 그런데 자기 아버지를 죽게 한 사람들과 20년간 함께 나라 살림을 걱정했어요. 철천지원수랑 같은 공간에서 매일매일 20년을 만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종기가 안 생기기고 못 배기죠. 게다가 역사를 보면 독살 사례들이 있으니까 의심하는 거고요.


(210-211)

(김문수) , 그런 한계는 있습니다. 물론 민의 성장을 지도층이 받아들여 맞추면서 개혁이 계속 이루어졌으면 좋았겠죠. 우리가 조선 시대에 기대한 건 그런 개혁인데, 정조는 민의 성장으로 나타난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정책을 펴기는 했습니다. 다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아버지로 말미암아 생긴 트라우마가 정조의 발목을 크게 잡는 요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릴 때부터 죄인의 아들이라는 의식이 있었고, 자신이 왕이 되었는데도 아버지를 쉽게 복권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아버지를 복권해야겠다는, 상당히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서 세운 계획을 하나하나 진행해 가는 것이 정조로서는 상당히 부담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장애와 정치 세력 정치를 자기 마음대로 추진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247)

(김문식) 정조는 자신이 강력하게 일을 추진할 때 자기를 도울 수 있는 확실한 세력을 아들인 순조의 혼인을 통해서 얻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조순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려고 결심했을 거고요. 근데 정조가 예상 밖으로 일찍 사망한 게 하나의 패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왕들의 건강이 안 좋았던 것이 또 다른 패착이었죠. 세자가 되어서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잖아요. 근데 계속해서 왕이 이른 시점에 사망해 버리고, 덕분에 후임자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왕이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다가 결국은 후손마저 끊기죠. 그래서 철종을 데려오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한 사람의 책임은 아닌 것 같아요. 안 좋은 조건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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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4)

스스로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등 떠밀려 시작한 방랑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행성에 속해 있었지만 나는 이 행성에 속해 있다는 확신이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세상을 사랑했고 사람들을 이해했다. 누군가 그를 힘껏 밀쳐도 그는 곧 중심을 잡고 자기가 갈 방향을 찾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도 항상 제자리를 벗어나 있었고 항상 뒤처진 느낌이었다. 내가 어디에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단지 내가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시적으로 불안정을 겪을지라도 끊임없이 돌아다녔지만 나는 영원히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움직였다면 급류가 흐르는 여울에서 흔들리는 뗏목 위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사람 같았을 것이다 뗏목이 움직이고 강물이 움직일지라도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96)

그는 실험에서 대조군이었고 나는 실험군이었다. 그에게 가짜 약이, 내게는 진짜 약이 주어졌다. 나는 신약의 효과를 경험한 반면 그는 왜 약이 효과가 없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둘 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내겐 버티고 설 땅이 있었고 그는 언제나 방랑자였다. 내게는 영주권이, 그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벼랑 끝에 서 있었지만 나는 벼랑 밑을 내려다봐야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게는 그 심연을 가릴 담장이나 생울타리가 항상 있었던 반면 그에게는 그런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한편 또 다른 차이도 있었다. 그는 그 벼랑에서 물러서서 살아나올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벼랑과 나 사이에 그를 세워놓았다. 그는 내 가림막, 내 스승, 내 목소리였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추구했던 삶이 그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23)

아무것도 몰라. 너무 갈팡질팡하고. 그래서 잠자코 있거나 너무 서두르지. 여자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그래. 가만히 앉아서 뭔가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그게 자네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야.” 그는 내가 순간을 팽창시키고 오래 끄는 방법을 알고, 발을 질질 끌면서 원하는 일이 일어나길 가만히 기다린다고 말했다. 사부라르 트레네(질질 끄는 지식인). 그저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고 있는 거라고.


(197)

나는 왜 그녀를 떠났을까? 내가 나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있고 싶었거나, 혹은 그녀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거나, 그도 아니면 아무하고도 함께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었지만 타인은 절대로 나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고, 결국에 그런 허상은 내 안에서 끄집어내 던져서 깨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이가 소원해지면서 영혼이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고, 사랑이란 내게는 낯선 것이며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분노와 증오만 있었기 때문이다.


(199)

멀어져가는 그의 택시를 바라보면서, 우리를 친하게 만든 요인은 상상 속 프랑스와의 로맨스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냥 가림막, 착각이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어디서도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극단적인 무능력이었다. 우리는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한 집에서 살며 평범한 일을 하고 평범한 텔레비전을 보고 평범한 식사를 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심지어 우린 평범한 친구를 갖거나 유지할 수도 없었다.


(328)

그날 저녁 뉴턴행 그린 라인 지하철의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너야? 이 너무도 낯선 보스턴 풍경 속에서 눈에 띄는 저 얼굴이 정말 너라고? 네가 누군데? 너는 몇 개의 가면을 동시에 쓸 수 있어? 이렇게 보지 않을 땐 너는 누군데? 너는 형체가 없는 반죽 같은 존재냐?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질 준비가 된 반죽? 그렇게 쉬운 묵인과 동의, 인정으로, 그 거짓된 얼굴을 믿는 사람들에게 네가 안겨줄 배신감에 대해 미리 사죄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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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02 16: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을,,,
애치먼의 <하버드 스퀘어>
재독 해야 겠습니다 ^^

bookholic 2022-09-03 00:35   좋아요 2 | URL
그렇게 말씀하셔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소설 가을하고 어울리는 것 같아요..^^
즐거운 가을 되세요~~
 















(26)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가,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있듯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신체기관은 미련스러우면서도 장엄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내장은 음식물을 소화하고, 피부는 재생하고 손톱은 자라고, 조직은 계속 생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설 때에도, 10분의 1초 만에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쑥 떨어질 때에도, 그의 손톱은 자라나고 있을 터였다. 그의 눈은 누런 자갈과 잿빛 담장을 보았고, 그의 뇌는 여전히 기억과 예측과 추론을 했다-그는 웅덩이에 대해서도 추론을 했던 것이다. 그와 우리는 같은 세상을 함께 걷고,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2분 귀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중 하나가 죽어 없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었다.


(32)

이 모든 것들이 당혹스럽고 언짢았다. 왜냐하면 그 무렵 나는 제국주의가 사악한 것이니 어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그로부터 멀어질수록 좋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론적으로는(물론 남몰래 그랬다) 전적으로 버마인들 편이었고, 그들의 압제자인 영국인들을 전적으로 적대시했다. 내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도보다 지독하게 혐오했다. 그런 일을 하다보면 제국의 추악한 짓거리들을 지근거리에서 보게 된다. 악취 지독한 철창에 처박혀 있는 불쌍한 죄수들, 장기 재소자들의 겁먹은 얼굴, 대나무로 매질을 당한 사람들의 터진 엉덩이. 이 모든 게 견딜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난 그럴싸한 내 나름의 관점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나는 아직 어린데다 부실한 교육을 받았고, 동양에 가 있는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랬듯 내 문제를 철저히 함구한 채 혼자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대영제국이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것을 대체해가는 신생 제국들보다는 영국이 훨씬 낫다는 건 더더욱 몰랐다. 내가 알았던 것이라곤 섬기던 제국에 대한 나의 증오와, 도무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려던 악독하고 자그만 인간들에 대한 나의 분노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64-65)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나 지금 우리 사회와 같은 곳에 살면서 변화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본성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버마에서 영국 제국주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목격했고, 영국에 와서는 빈곤과 실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나로서는 그런 시스템에 맞서 싸운다는 게, 주로 독서 대중에서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책들을 쓰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계속해서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는 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태의 진전이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한때는 한 세대 뒤의 위험 같아 보이던 것들이 우리를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극적인 사회주의가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에 공감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되고, 언제나 활발한 적들의 술수에 놀아나서도 한 된다.


(88)

애국주의, 즉 국민적 충심이 갖는 압도적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오늘의 세계를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애국주의는 상황에 따라 무력해질 수도 있고, 문명의 어느 단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힘으로서 그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기독교와 국제 사회주의는 애국주의에 비하면 지푸라기처럼 연약하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들의 나라에서 권좌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그들은 이 사실을 파악했고 그들의 적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데 있다.


(107)

영국은, 자주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구절처럼 보배 같은 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괴벨스 박사의 묘사처럼 지옥인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집안을, 상당히 고루한 빅토리아 시대의 집안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골칫덩이가 많진 않아도 찬장마다 해골이 넘쳐나는 집안 말이다. 이 집안에는 비굴하게 아첨을 떨어야 하는 부자 친척도, 끔찍이 들러붙는 가난뱅이 친척도 있으며, 집안의 수입원에 대해 함구한다는 단단한 공모가 있다. 또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좌절을 겪고, 실권은 대부분 무책임한 삼촌들이나 몸져누운 숙모들 손에 있다. 그래도, 집안은 집안이다. 나름의 언어가 있고, 공통의 기억이 있으며, 적이 다가오면 단결한다. 엉뚱한 식구들이 살림을 주무르는 집안-영국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게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134-135)

군대 생활의 본질적인 공포는(군인이 되어본 사람이라면 군대 생활의 본질적 공포라는 게 무엇인지 알 것이다) 어떤 성격의 전쟁에서 싸우게 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군기 같은 것은 어떤 군대든 궁극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명령은 복종해야 하고 필요하면 처벌로써 강요되며, 장교와 사병의 관계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같은 책들에 나오는 전쟁 묘사는 대체로 정확하다. 총탄은 맞으면 아프고, 시체는 썩어 악취를 풍기고, 총격전이 벌어지면 너무 무서워 바지를 적시기도 한다. 어떤 군대가 만들어지게 된 사회적 배경이 그 군대의 훈련과 전술과 전반적인 능력에 영향을 끼치며, 정의 편이라는 의식이 사기를 북돋우는 것도 사실이다.


(137)

오늘날 일반 대중의 견해가 왔다갔다하는 묘한 현상은, 말하자면 수도꼭지 열리고 닫히듯 정서가 돌변하는 것은 신문과 라디오의 최면 탓이다. 한편 지식인들의 경우는 상당 부분 돈과 한낱 신체적 안전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주전(主戰)’ 쪽이 되기도 하고 반전쪽이 되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그들의 머릿속에는 전쟁에 대한 실제적인 그림이 없다. 물론 그들은 스페인내전에 대해 열광하면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죽는다는 게 불쾌한 일이란 건 알았다. 하지만 스페인 공화국 장병의 전쟁 체험은 아무튼 품위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웬일진지 이 전쟁의 변소는 악취가 덜 나고, 군기는 덜 짜증스럽다고 본 것이다. 그들이 정말 그렇게 믿었는지는 <뉴 스테이츠먼>을 슬쩍 들여다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과 쏙 빼닮은 허튼소리가 작금의 붉은 군대에 대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문명화되어 명백한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종종 싸워야만 하고, 싸우자면 자신을 더럽혀야 한다. 전쟁은 악이며, 차악(遮惡)인 경우도 흔히 있다.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하며, 칼을 들지 않는 자는 악취 진동하는 병으로 망하는 것이다. 이런 케케묵은 소리를 굳이 쓸 필요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간 임대소득이나 이자로 먹고사는 자본주의가 우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148)

기록된 역사 대부분은 어떤 식이든 거짓이라는 말이 유행인 건 나도 안다. 나는 역사가 대체로 부정확하고 편향된 것이라는 말을 기꺼이 믿는 쪽이다. 한데 우리 시대에 와서 특이한 점은, 역사가 진실하게 기록될 수도있다는 개념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 글을 무의식적으로 윤색하거나,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진실을 애써 추구했다. 단 어느 쪽이든 사실은 존재하며,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 만한 사실이 늘 상당 부분 있었다.


(194)

진실은 밝혀질 수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신문이 사실을 워낙 거짓으로 알리기 때문에, 거짓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어거나 나름을 견해를 갖추지 못한다 해서 일반 독자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가 전반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황당한 믿음을 고수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무엇 하나 입증되지도 반증되지도 않기에, 더없이 엄연한 사실도 뻔뻔히 부인해버리는 게 가능해진다. 더구나 민족주의자는 세력, 승리, 패배, 복수에 대해 끊임없이 골몰하면서도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선 다소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그가 바라는 바는 자기편이 상대편보다 앞서고 있다고 느끼는것이며, 사실이 뒷받침되는지 확인하기보다는 상대편을 묵살해버림으로써 더 쉽게 그럴 수 있다. 모든 민족주의 논쟁은 토론반 학생들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어떤 논쟁 참가자든 자신이 이겼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수준을 넘지 못한다. 어떤 논쟁 참가자든 자신이 이겼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결판이 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어떤 민족주의자는 정신분열증 환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실제 세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세력과 정복을 꿈꾸며 제법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210)

문명의 역사는 대체로 무기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주장은 이제는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특히 화약의 발명과 부르주아에 의한 봉건제 전복의 연관성은 누차 지적된 바 있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일반적인 사실로 판명될 것이라 생각한다. , 가장 강력한 무기가 싸고 단순한 시대에는 서민들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예컨대 탱크나 전함이나 폭격기는 본질적으로 압제적인 무기인 반면에, 소총이나 머스킷총이나 긴 활이나 수류탄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인 무기인 셈이다. 복잡한 무기는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들고, 단순한 무기는(보복이 따르지 않는 한) 약자에게 갈고리발톱이 된다.


(218-219)

확실히 과학교육은 합리적이고 회의적이며 실험적인 사고의 습성을 심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방식’, 즉 부닥치는 어떤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습득하는 것이어야지, 사실을 잔뜩 축적하는 것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말을 과학교육 옹호론자에게 하면 대게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하면, 언제나 과학교육이란 정밀과학에, 달리 말해 더 많은 사실에 주목하는 일이라는 식의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과학은 한 덩어리의 지식에 불과한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생각은 현실에서 강한 반발에 부닥친다. 그렇게 된 데에는 순전히 직업적인 시기심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학이 단순히 하나의 방식이나 태도라면, 그래서 사고방식이 충분히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의미에서 과학자라 할 수 있다면, 지금 화학자나 물리학자 등등이 누리고 있는 엄청난 위세는 어찌 되며 아무튼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현명하다는 주장은 또 어찌 되겠는가?


(240)

하지만 자연과학이나 음식이나 미술이나 건축이 어떻게 되든 간에 사상의 자유가 말살된다면 문학의 운명은 (내가 지금까지 밝히려고 한 바와 같이) 암울할 게 확실하다.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전체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작가, 박해와 현실 조작에 대해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작가, 그럼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이는 작가도 같은 운명인 것이다. 그 길로 접어들면 헤어날 방법이 없다. ‘개인주의상아탑을 비난하는 어떤 장광설도, ‘참된 개성은 공동체와 합일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식의 경건하고 상투적인 어떤 주장도, 매수된 정신은 망가진 정신이라는 사실을 넘어설 수 없다. 어느 순간에 자발성을 갖게 되지 않는 한, 문학 창작은 불가능하며 언어 자체가 굳어져버린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인간의 정신이 지금의 것과 완전히 다른 무엇이 된다면, 우리는 문학 창작과 지적 정직성을 분리하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가 아는 것은, 상상력이란 야생동물과 비슷한 것이어서 가둬두면 번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실을 부인하는(지금 소련에 대한 거의 모든 찬사에는 그런 부인이 내제되어 있다) 작가나 언론인은 실은 자신의 파멸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246-248)

이런 질문을 하루 수밖에 없는 건,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 때문이다. 행락이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 중 상당수는 의식을 파괴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인간이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면 인간으로서 잘 산다는 것이 단순히 일을 하지 않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등 아래서 녹음된 음악만 듣고 사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만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에겐 온기가, 사회가, 여유가, 안락이, 안전이 필요하다. 또 고독도, 창조적인 작업도, 경이감도 필요하다. 그런 걸 알게 되면 인간은, 언제나 어떤 것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만드는지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의 기준을 적용하여 과학과 산업화의 산물을 선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지고의 행복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포커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한꺼번에 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울러 삶이 점점 더 기계화되는 현실에서 민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가, 옛것을 선호하는 감상적 취향에 불과한 게 아니라 십분 정당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의 수많은 발명품들(특히 영화, 라디오, 비행기)은 인간의 의식을 약화시키고, 호기심을 무디게 하며, 대체로 인간을 가축에 더 가까운 쪽으로 몰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77)

제비보다 먼저, 수선화보다 먼저, 아네모네보다 조금 늦게, 두꺼비는 봄이 다시 찾아온 것에 대해 나름의 경의를 표한다. 지난 가을부터 들어가 누워 있던 땅속 구멍에서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적당한 물웅덩이 쪽으로 최대한 빨리 기어가는 것이다. 무언가가(땅속의 어떤 떨림인지 아니면 그냥 온도가 몇 도 올라서인지 잘은 모르지만) 두꺼비에게 깨어날 때가 되었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몇 마리는 내내 잠만 자다 한 해를 아예 빼먹기도 하는 것 같다. 한여름에 땅을 파다가 멀쩡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두꺼비를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300)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으로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 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이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다.


(329)

작가의 관점은 정신건강 차원의 온전함, 그리고 가지 생각을 밀어붙이는 힘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 이상으로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재능일 것이며, 그것은 확신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프트는 정상적인 의미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비전은 확실히 갖고 있었으며, 그것은 숨겨진 진실 하나를 골라내어 확대하고 비틀어서 볼 줄 아는 능력이기도 했다. <걸리버 어행기>가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작가의 세계관이 온전함이라는 기준을 겨우 만족시키는 수준일지라도, 작가의 확신이 뒷받침해준다면 위대한 예술 작품을 충분히 낳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419)

언제나 강자가 약자에게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미덕은 이기는 데 있었다. , 미덕이란 남들보다 더 크고, 강하고, 잘생기고, 부유하고, 인기 좋고, 세련되고, 거리낌 없는 데 있었다. 달리 말해 남을 지배하고,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고, 바보 같아 보이게 하며, 모든 면에서 남보다 앞서는 데 있었던 것이다. 삶이란 본래 위아래가 있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 자체가 옳은 일이었다. 강자가 있어 그들은 이겨 마땅하고 언제나 이겼으며, 약자가 있어 그들은 져 마땅하고 언제나, 끝없이 지기만 했다.


(431)

아이는 일종의 이질적인 수중(水中) 세계에 살며, 우리가 그 세계를 이해하자면 기억이나 점술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단서는 우리도 한때 어린아이였다는 점인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어린 시절의 분위기를 거의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 같다. 이를테면 자기 어린 시절의 분위기를 거의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 같다. 이를테면 신학기가 되어 학교로 아이를 돌려보낼 때 무늬가 영 이상한 옷을 입혀 보내면서 그게 문제가 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아이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안겨주는 부모를 생각해보라! 그런 유의 문제에 대해 아이는 때때로 항의 표시를 하겠지만, 많은 경우 아이의 태도는 그저 감정을 숨기는 데 그치고 만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어른에게 노출하지 않는 것은 일고여덟 살 때부터 시작되는 본능 같은 게 아닌가 싶다. 어른이 아이한테 느끼는 애정이나 아이를 보호하고 아끼고자 하는 욕구도 몰이해의 원인이 된다. 어른이 다른 성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고 하자.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보답으로 그 어른에게 사랑을 느낀다고 생각한다면 경솔한 판단이다.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건대, 유아기가 끝난 뒤로는 어머니 말고는 어떤 어른에게도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어머니에 대해서도 신뢰가 없었는데, 쑥스러워서 진짜 감정은 대부분 숨겼다는 의미에서 그랬다. 내 경우에 자발적이고 전폭적인 사랑의 감정은 어린 사람에게만 느낄 수 있는 무엇이었다.


(434)

아이들의 약점은 백지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사는 사회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의문시하지도 않는다. 아이는 그렇게 잘 믿기 때문에 어른한테 영향받기 쉬우며, 그만큼 열등감에 물들거나 불가사의하고 끔찍한 법을 어기는 데 대한 공포감에 휘둘리기 쉽다.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나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은 가장 계몽된 학교에서도(보다 미묘한 방식일진 몰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하는 기숙학교가 일반 통학학교보다 더 나쁘다는 것만은 거의 확신할 수 있다. 집이 가까이 있으면 아이가 인식을 얻기가 더 쉬운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영국 상류층과 중산층 특유의 결함은 여덟아홉, 심지어 일곱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들을 최근까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로 보내온 일반적인 관행에서 어느 정도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446)

정치에선 둘 중 어느 쪽이 덜 악한지를 판단하는 것 이상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악마나 미치광이처럼 행동해야만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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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8-28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책입니다.
뽑아주신 인용문장을 보니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bookholic 2022-08-28 23:21   좋아요 1 | URL
저는 읽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좋은 글들이 많았어요...
소설을 통해 조지 오웰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의 에세이도 깊이 있고, 좋았습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133)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에 정규직으로 일하는 직장인.’

이 평범함은 준이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였다. 사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게 숨 쉬듯이 당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 생활을 쟁취하는 것, 유지하는 것 모두 준에겐 숨이 차오르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고 살고 있을까, 어떻게 자기를 꾸준히 먹여 살리고 있을까. 이력서를 수정하던 준은 마음이 아득해져서 모니터 앞에 얼굴을 묻었다.


(147-148)

그렇죠. 결국 세상에서 비싼 값을 쳐주는 재능을 타고나는 건 운의 영향이 큽니다. 시대도 마찬가지죠. 아마 저 같은 사람은 80년대에 태어났으면 틀림없이 실패자가 됐을 거예요. 몸이 허약하고, 술은 못 먹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사람이니까요. 웬만한 회사는 일 년도 못 버티고 나왔을 겁니다. 그러니 제 성공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게임 산업이 막 성장하고 있을 때에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진 한국에서 살았다는 거라고 할 수 있겠죠.”

남자는 잠시 멈추고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미친 듯이 노력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대부분 운이었던 겁니다.”


(153)

어쩌면 준이 그동안 뽑기에서 실패했다고 투덜거린 재능들이 언젠가 행운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태수처럼 말이다. 준은 이제 고작 서른두 살이었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의 기준을 성인 평균 수명의 3분의 1로 잡았다고 했으니, 백 세 시대에서는 어린이가 서른세 살까지인 셈이다. 무엇을 새로 발견해도, 새로 시작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였다.

준은 아직 불시착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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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대부분의 원소는 최소한 우리에게 익숙한 보통 온도에서는 차가운 회색 고체 물질이다. 오른쪽 끝부분에 있는 몇몇 세로줄에는 기체 원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실온에서 액체인 원소는 수은과 브롬(브로민), 두 가지뿐이다. 금속 원소들과 기체 원소들 사이에는 정의하기가 다소 애매한 원소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러한 모호한 특징 때문에 이 원소들은 흥미로운 성질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화학 실험실에 보관돼 있는 것보다 수십억 배나 강한 산을 만들 수 있다.


(43)

각 가로줄을 수평 방향으로 지나가며 주기율표를 읽으면 원소들에 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며, 그나마 가장 좋은 이야기도 아니다. 같은 세로줄에서 수직 방향으로 늘어선 이웃들보다 훨씬 더 밀접한 관계에 있다. 거의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사람들은 무엇을 읽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도록 길들여져 있다. 그렇지만 주기율표는 위에서 아래로 읽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러면 예기치 못했던 경쟁 관계와 대립 관계를 비롯해 원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놀라운 사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주기율표는 나름의 문법을 갖고 있으며, 행간을 잘 살피면 아주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48)

이런 난잡스러운 행동이야말로 탄소의 미덕이다. 산소와 달리 탄소는 가능하기만 하면 어느 방향으로건 다른 원자들과 결합된다. 사실, 탄소는 자신의 전자들을 최대 4개의 다른 원자들과 동시에 공유한다. 이러한 성질 덕분에 탄소는 복잡한 사슬 구조의 분자를 만들 수 있으며, 심지어 3차원 분자 그물까지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탄소는 전자를 다른 원자에게서 빼앗아오는 게 아니라 공유하는데, 이렇게 생겨난 공유 결합은 튼튼하고 안정하다. 질소도 맨 바깥쪽 전자 껍질을 가득 채우려면 다중의 결합을 해야 하지만, 탄소만큼 많은 결합을 할 필요는 없다. 앞에 나온 아나콘다와 같은 단백질은 원소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 긴 분자를 만든다. 한 아미노산의 줄기에 있는 탄소 원자가 다른 아미노산의 끝부분에 있는 질소 원자와 전자를 공유함으로써 두 아미노산이 연결되는데, 이런 식으로 탄소와 질소가 무한히 연결된 사슬을 통해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59)

그러나 게르마늄의 운명은 순탄치 못했다. 1954년에 이르자 트랜지스터 산업이 급성장했다. 컴퓨터의 처리 능력이 수십 배 이상 증가했고, 휴대용 라디오 같은 새로운 제품의 생산 라인이 크게 늘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급성장기 동안에 공학자들은 실리콘에 미련을 갖고 연구를 계속했다. 실리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 중 일부는 게르마늄의 단점 때문이었다. 게르마늄은 전기를 아주 잘 통하게 하는 성질이 있는 반면, 바로 그 때문에 불필요한 열이 너무 많이 발생해 게르마늄 트랜지스터가 과열되어 작동이 중단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더 중요한 이유는, 흙보다도 더 싼 실리콘(모래의 주성분인)의 가격 경쟁력에 있었다. 과학자들은 여전히 게르마늄을 고수하면서도, 실리콘 트랜지스터 개발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었다.


(74)

갈륨은 실온에서는 고체이지만 29.8℃에서 녹기 때문에,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으면 녹아서 수은처럼 변한다. 갈륨은 액체 상태에 만져도 뼛속까지 살이 타지 않는 희귀한 금속 물질 중 하나이다. 그래서 갈륨은 화학 전문가들이 사람들에게 장난치고 싶을 때 선호하는 물질이 되었다. 많이 쓰이는 방법 중 하나는 알루미늄처럼 보이고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갈륨으로 찻숟가락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뜨거운 차와 함께 손님에게 내놓고는, 손님이 찻잔에 담근 찻숟가락이 사라지는 걸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을 즐긴다.


(93-94)

목성 내부에 원소들이 이렇게 기묘한 형태로 존재하는(그다음으로 큰 행성인 토성에서는 그 정도가 좀 덜하다) 이유는 목성이 보통 행성이 아니라 별이 되려다 실패한 행성이기 때문이다. 목성이 지금보다 10배쯤 더 많은 물질을 끌어모았더라면, 일부 원자핵이 융합을 일으킬 만큼 충분한 질량을 가지게 되어, 행성에서 졸업해 낮은 에너지의 갈색 빛을 방출하는 갈색왜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태양계에서는 2개의 태양이 쌍성계를 이루어 존재할 것이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이런 상황은 그다지 기이한 것이 아니다.) 그러는 대신에 목성은 핵융합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해 식어버리고 말았지만, 원자들을 아주 촘촘하게 압축시킬 만큼 충분한 열과 질량과 압력을 지녀 원자들이 지구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 목성 내부에서 원자들은 화학 반응과 핵반응 사이에 존재하는 가능성의 림보(limbo, ‘가장자리란 뜻인 라틴어 limbus에서 유래한 말로, 지옥과 천국의 중간에 있는 장소)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는 행성만한 크기의 다이아몬드나 기름 같은 금속성 수소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142-143)

가끔 이러한 이론적 종이 뭉치가 핵폭발이란 결과를 낳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경우는 성공한 것으로 쳤다. 하나의 계산이 끝나고 나면, 여성들은 곧바로 다른 무작위 수들을 가지고 다시 계산을 했다. 그것이 끝나면 또 다른 계산이 계속되었다. ‘리벳공 로지는 전쟁 기간에 산업 현장에서 일한 여성을 상징한다.(리벳공 로지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전쟁터로 나간 남자들을 대신해 산업 현장에서 일한 여성을 상징했다. 유명한 포스터에서 리벳공 로지는 소매를 걷고 우린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여성들은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승리와 가족을 위해 일하면서 얻은 새로운 기술과 자유에 자부심을 느꼈다.-옮긴이) 하지만 엄청난 수치 자료를 일일이 손으로 계산한 이 여성들이 없었더라면 맨하튼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여성들은 컴퓨터라는 신조어로 불렸다.


(243)

질소는 그러한 시스템의 작동을 방해한다. 질소는 냄새도 색깔도 없으며, 혈관 속에서 산을 만들지도 않는다. 우리는 질소를 쉽게 들이마시고 내보내는데, 폐도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않으며, 질소는 우리의 어떤 심리적 인계철선도 건드리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든다. 질소는 체내의 보안 시스템을 무사통과해 돌아다니면서 우리를 자비롭게 죽인다.”(질소와 같은 족에 있는 원소들을 옛날에는 닉토겐족이라 불렀는데, 그 이름이 질식또는 목을 조름이란 뜻의 그리스어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게 재미있다.) NASA의 그 기술자들(22년 뒤 텍사스 주 상공에서 공중 폭발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컬럼비아 호에서 발생한 최초의 희생자들)은 질소 안개 속에서 머리가 몽롱해지고 몸이 처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33시간 동안 계속 일한 뒤에는 누구라도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으며, 아무 이상도 못 느끼고 질소를 들이마실 수 있기 때문에, 의식을 잃고 질소가 뇌의 작동을 멈추기 전까지 더 이상 정신적으로 다른 걸 느끼지 못했다.


(283)

주기율표의 역사가 정치로 얼룩져 있다면, 돈과의 관계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긴밀하다. 많은 금속 원소의 이야기는 돈의 역사와 얽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원소들의 역사는 위조의 역사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소, 향신료, 돌고래 이빨, 소금, 카카오콩, 담배, 딱정벌레 다리, 튤립 등이 돈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것들은 모두 위조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에 금속은 위조하기가 쉽다. 특히 전이 금속 원소들은 전자 구조가 비슷해 화학적 성질과 밀도가 비슷하며, 서로 잘 섞이기 때문에 합금을 만들 때 다른 물질 대신에 쓸 수도 있다. 위조범들은 귀금속과 값싼 금속의 배합 비율을 달리하는 방법으로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을 속여왔다.


(297-298)

20년 뒤, 한 프랑스인이 알루미늄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대규모로 추출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렇지만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었기 때문에 알루미늄은 여전히 금보다도 비쌌다. 알루미늄은 지각에서 가장 풍부한 금속이지만(무게로 따질 때 약 8%를 차지해 금보다 수억 배나 더 풍부하다), 순수한 알루미늄광의 형태로 산출되지 않기 때문에 추출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알루미늄은 항상 다른 원소와 결합한 상태로 산출되는데, 대개 산소와 결합한다. 순수한 시료는 기적의 물질처럼 간주되었다. 프랑스인은 한때 대관식용 보석류 곁에 알루미늄 나이프와 포크를 내놓았다. (덜 중요한 손님에게는 금으로 된 나이프와 포크를 내노핬다.) 미국에서는 정부에서 일하던 공학자들이 1884년에 워싱턴 기념비를 세울 때, 미국의 산업 기술을 과시하고자 꼭대기에 무게 2.7kg 의 알루미늄 피라미드를 씌웠다. 한 역사학자는 그 피라미드에서 알루미늄을 1온스만 깎아내도 그것으로 그 작업에 투입된 모든 노동자의 일당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321)

리튬은 생체 시계를 제어하는 단백질을 조절한다. 생체 시계는 기묘하게도 뇌 깊숙한 곳의 특별한 뉴런들 안에 들어 있는 DNA가 작동시킨다. 매일 아침 사람들의 DNA에는 특별한 단백질이 들러붙었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면서 떨어져나간다. 그런데 햇빛이 단백질을 계속해서 되돌려놓기 때문에 단백질은 더 오래 들러붙었다가 단백질은 어둠이 찾아온 뒤에야 완전히 떨어져나가는데, 이 시점에서 뇌는 DNA가 벌거벗은 것을 눈치 채고자극 물질 분비를 멈추어야 한다. 그런데 조울증 환자의 경우, 햇빛도 없는데도 단백질이 DNA에 단단히 들러붙은 채 남아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긴다. 뇌가 달리는 걸 그만 멈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리튬은 DNA에서 단백질이 떨어져나가게 도와줌으로써 그 사람을 진정시킨다. 낮 동안에는 햇빛이 리튬을 이겨 단백질을 계속 되돌려놓으며, 밤이 되어 햇빛이 사라진 뒤에야 리튬이 DNA의 해방을 돕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리튬은 햇빛의 작용을 하는 게 아니라, ‘햇빛과 반대되는작용을 한다. 리튬은 신경학적으로 햇빛을 없애고 그럼으로써 생체 시계를 24시간 주기로 되돌린다. 이런 작용을 통해 조증이 상승하거나 울증이 심해지는 것을 막는다.


(343)

오늘날 우리는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면서 이렇게 수선을 피운 걸 보고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가 보여준 그가 보여준 놀라운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뢴트겐은 자신이 뭔가 획기적인 것을 발견했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대신에 어딘가에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꼼꼼히 따졌다. 당황한 그는 자신의 잘못을 증명하려고 연구실에 7주일이나 틀어박힌 채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조수들도 다 내보내고, 식사도 마지못해 억지로 삼켰고, 가족에게는 대화보다는 불평을 더 많이 했다. 뢴트겐은 크룩스나 메갈로돈 탐색자, 폰스와 플라이시만과는 달리 자신이 발견한 것을 알려진 물리학으로 설명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혁명가가 되길 원치 않았다.


(483-484)

그나저나 보통 사람들이 별 불편 없이 써오던 원소 이름을 왜 갑자기 바꾸자고 한 것일까? 미국 유학파가 다수인 대한화학회 관계자가 설명한 내용 중에 이런 게 있었다. 국제 회의 같은 데 가면, 우리나라에서 칼륨이나 나트륨으로 배운 사람들이 포타슘이나 소듐이라고 하면 헷갈려서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도 대학 때 원서로 화학을 배우면서 약간 헷갈린 경험이 있는지라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국제 회의에 참석할 정도면 머리가 상당히 좋은 사람일 것이다. 우둔한 나도 영어 원서를 계속 보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져서 전혀 불편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불편하다고? 그렇다면 수소와 산소는 왜 바꾸자고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평소에 하이드로전과 옥시전이라고 배워야 국제적으로 제대로 소통하지 않겠는가?    -- 옮긴이의 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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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새로 바뀐 원소명은 일관성도 없고 표기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어서 뭐라고 평가할 수조차 없다. 주식 시장의 용어를 빌리자면 감사 의견 거절이다. 감사 의견 거절이 나오면 해당 주식은 상장 폐지되어 주식 시장에서 퇴출된다. 어쨌든 번역자의 양심상 이런 이름들은 도저히 쓸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름들을 이미 교과서에 쓰기 시작했다니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캘리포늄, 아인슈타이늄, 프로탁티늄만 바뀐 이름으로 쓰고, 나머지는 이전에 쓰던 이름을 그대로 쓰되 처음 한두 번은 괄호 안에 바뀐 이름을 병기하기로 했다. 번역자의 책임은 아니지만, 독자 여러분에게 혼란과 불편을 드려 괜히 송구스럽다. 대한화학회와 국어연구원은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여 조속히 제대로 된 개선안을 내놓기 바란다.     옮긴이의 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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