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015년에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의약품 가격 스캔들이 발생했다. 62년 전에 출시된 약 가격이 갑자기 한 알에 736달러로 급등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전직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마틴 슈크렐리는 튜링이라는 벤처 제약 회사를 설립하고 에이즈 치료제로 쓰이던 다라프림 판권을 사들인 뒤 한 알에 13.5달러이던 약값을 하루 만에 736달러로 올려버렸다. 환자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약값이 55배 상승한 것이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생명 유지를 위해 연간 10만 달러에 달하는 약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6-27)

제약 회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곤란하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위법행위를 밥 먹듯 자행하는 범죄 기업이다. 다국적 제약 회사가 되었든, 시골 장터의 약장수가 되었든 약장수는 약장수일 뿐이다. 조직적 힘과 자금을 동원해 경쟁 관계에 있는 비타민, 미네랄, 약초와 같은 자연치료 물질들을 음해한다. 의사와 교수들을 매수하고, 환자들에게는 허위 과장 광고를 한다. 제약 회사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건강을 지키기는커녕 환자들을 해치고 상하게 하고 죽게 만들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로는 그렇다. 그런 제약 회사에 의사도 매달리고 환자도 매달리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44)

그러나 불행하게도 통계자료들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안전하지 않다. 미국에서 연간 의료 사고에 의한 사망자는 심혈관 질환과 암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2009년을 기점으로 미국에서 약물에 의한 사망자 수가 자동차 사고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 60% 이상이 약물 남용이 아닌 정식적인 진료를 통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사망한다.


(83)

진정한 보험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의료보험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식습관과 충분한 수면, 운동,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는 건강한 생활 습관이다. 적당한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훨씬 더 확실한 보험이다. 1년에 한 번 하는 정기검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먹는 음식이다.


(172-173)

수십 년간 잘못된 가이드라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망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레스트롤이 함유된 지방 섭취가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가공식품에서 지방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과당이 메웠다. 지방 대신 맛을 내기 위해 가공된 과당의 사용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은 지방보다 훨씬 파괴적인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지방간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지방을 많이 먹어야 지방간이 생길 것 같은데, 당분이 지방간의 원인이라고 하니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몸이 액상 과당이나 콘시럽 같은 가공 당을 처리하는 방법은 알코올()을 처리하는 방식과 같다. 일반 포도당은 몸의 모든 부위에서 처리되고 사용이 가능하지만, 과당은 전부 간으로 간다. 과당을 이동시키는 효소가 간에만 있기 때문이다. 즉 과당 처리를 많이 하면서 간은 무리를 하게 되고, 그래서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술도 안 마시는 지방간 환자들이 급증한 것이다. 물론 비만, 당뇨, 심장병 모두 함께 증가했다.


(180)

콜레스트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선 결국 체내 염증 반응을 낮추는 것이 관건이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일이다.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은 기본이다. 올바른 음식과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관리는 기본이다. 햇빛을 쬐는 것이 콜레스트롤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햇빛을 쬘 때 생성되는 비타민 D가 콜레스트롤이기 때문이다. 의사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의 노력에 달린 것들뿐이다.


(193)

그런데 조금만 아프면 왜 염증 반응이 생겼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약국에 가서 소염제를 사먹거나 병원에 가서 진통제를 처방받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다. 불편한 증상을 빨리 없애는 것이 최고의 치료라고 생각하는 환자와 의료인이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항상 어떤 목적 아래 일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보면 당장의 불편함을 없애주는 처치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이 현재 의료인의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증상에 대응하는 치료들, 즉 대증요법에서 끝나면 절대로 안 된다. 증상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증상을 억누르는 치료 효과가 끝나는 동시에 더 큰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결국 처음에는 한두 알의 약으로도 잘 듣던 증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 알 네 알, 나중에는 한 주먹의 약을 먹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206-207)

그런데 요즘은 싱겁게 먹어야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어 일부러 저염식을 한다. 특히 고혈압 환자들은 짜게 먹으면 절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조건 싱겁게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 박고 있다. 하지만 싱겁게 먹는 습관은 혈압을 낮추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위산만 약하게 만든다. 집안 내력으로 싱겁게 먹는 사람들은 대체로 위장이나 소화기가 건강하지 못하다.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바로 설사하고 소화력도 약한 편이다.


(310)

또 의사로서 진정한 백신 전문가라면 강압적으로 백신 접종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논란이 될 만한 정보가 나왔을 때 백신의 부작용을 신속히 알아보고 환자 편에 서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백신이 안전하니까 무조건 접종할 것을 강요하고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일즈맨이다. 하지만 백신에 대한 신뢰가 지나치다 보면 눈에 드러나는 뻔한 부작용도 간과하게 된다. 연구는 불충분하고 효과는 부풀려져 있는 탈 많은 일개 의약품에 불과한 백신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백신 정책과 백신 스케줄을 요구할 수 있어야 전문가일 것이다.


(311)

하지만 WHO 같은 국제기구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같은 보 건 당국 또는 백신을 지지하지 않는가? 많은 이들이 과대평가는 것이 FDA의 역량이다. FDA는 백신이나 신약을 검증할 만한 인적, 재정적 여유가 없다. FDA가 신약을 허가해주고 관리 감독하는 기관인 것은 맞지만, 제약 회사는 연구 결과를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필요한 서류만 구비되면 행정적 절차를 거쳐 신약 허가가 나온다. 연구가 미비하면 FDA가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연구해오라고 지시할 뿐이다. 마치 미국 이민국의 업무와 비슷하다. 영주권을 신청하는 데 서류가 미비하면 빠꾸를 맞지만, 서류만 잘 갖춰지면 별문제 없이 영주권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331)

백신 강제 접종을 찬양하는 이들은 개인의 선택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개인의 상황이나 선택에 상관없이 누구나 접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강제 접종을 거부하는 이들은 본인들의 선택이 이론적으로 미래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머무르지만, 강제 접종 명령에 따를 경우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면 반박할 것이다. 백신이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에 대해 서로 합의할 수 없는 것처럼, 백신이 없으면 반드시 질병이 확산된다는 점도 서로 합의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미 오랜 기간 끝없이 이어져온 쟁점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8)

그는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la mar>라고 생각했다. 그건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할 때 스페인어로 부르는 말이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험담을 하지만, 그런 때에도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말한다. 부표를 낚싯줄의 찌로 사용하고 또 상오 간()을 많이 팔아 번 돈으로 사들인 모터보트를 타는 젊은 어부들은 바다를 <엘 마르el mar>라고 남성형 명사로 불렀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 하나의 정복 장소 혹은 적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노인은 바다를 언제나 여성으로 생각했고, 엄청난 혜택을 줄 수도 있고 거두어 가기도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만약 바다가 거칠고 사악한 짓을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달이 여성에게 영향을 주는 것처럼 바다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101-102)

너무 좋은 일은 오래가지 못하는구나,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꿈이었더라면. 저 고기를 낚지 않고 차라리 신문지를 깐 침대 위에 그냥 누워 있었더라면.

하지만 인간은 패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 저 말린을 죽인 것이 정말 미안하군. 그는 생각했다. 이제 어려운 때가 닥쳐 오는데 난 작살마저 없어. 덴투소는 잔인하고 노련하고 강인하고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하지. 하지만 나는 그놈보다 더 똑똑했어. 어쩌면 더 똑똑한 게 아닐지도 몰라. 단지 내가 더 잘 무장하고 있었을 뿐이지.


(103)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그는 생각했다. 희망이 없다는 건 죄악이야. 죄악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 죄악 말고도 골치 아픈 문제들이 많아. 게다가 나는 죄악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해.

난 그걸 잘 모르고, 또 그걸 믿는지 어떤지도 불확실해. 어쩌면 물고기를 죽이는 건 죄악일지도 모르지. 생계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더라도 그건 죄악일 수 있어. 그렇다면 모든 게 죄악이야. 죄악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 그런 걸 생각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세상에는 돈 받고 그런 죄악을 저지르는 자들도 있어. 그런 자들이나 죄악에 대해 생각하라고 해. 물고기가 물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넌 어부로 태어났을 뿐이야. 위대한 디마지오의 아버지가 어부였던 것처럼 산 페드로도 어부였어.


(118)

아무튼 바람은 우리의 친구야. 그는 생각했다. 이어 때때로 그러하지, 라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의 우군과 적군이 함께 있는 저 위대한 바다도 우리의 친구야. 그리고 침대도, 하고 그는 생각했다. 침대도 나의 친구지. 침대는 아주 멋진 물건이야. 패배당했을 때는 더욱 그렇지. 그게 이렇게 편안한 것인지 예전에는 몰랐어. 그런데 무엇이 자네를 패배시켰나?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날 패배시키지 못했어.”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단지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1)

하지만 이것이 단지 자연의 섭리일까요? 아니면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해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유로운 생활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동지 여러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영국은 땅이 기름지고 기후가 온화해 현재 영국에 살고 있는 동물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동물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습니다. 우리 농장의 경우에도 열두 마리의 말과 스무 마리의 암소와 수백 마리의 양을 먹여 살릴 수 있으며, 현재 우리 모두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하고 품위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처럼 비참한 상태를 여전히 면치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노동으로 생산한 거의 모든 것들을 인간들이 다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은 우리의 유일한 적입니다. 인간을 여기서 몰아냅시다. 그러면 배고픔과 과로의 근원이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25)

메이저가 말을 계속했다.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다시 한번 말하건대, 인간과 인간의 모든 방식에 적개심을 갖는 게 여러분의 의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고, 네 다리나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 친구입니다. 그리고 인간과 싸울 때 그들을 닮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또한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인간을 정복할 때에도 그들의 악습을 배워서는 안 됩니다. 어떤 동물도 집에서 살거나 침대에서 자거나 옷을 입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돈을 만지거나 장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습관은 모든 나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동물이든 서로를 탄압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약하든 강하든, 현명하든 우둔하든 우리는 모두 형제들입니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합니다.


(39)

7계명은 다음과 같았다.

7계명

1.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나 적이다.

2.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누구나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69-70)

동물들은 스노볼이 추방된 데서 받은 충격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의 발표를 듣고 당황했다. 정당한 이의라도 생각났더라면 몇몇 동물들은 항의를 했을 것이다. 복서조차도 막연히 걱정이 되었다. 그는 귀를 뒤로 젖히고 몇 번이나 앞머리를 흔들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몇몇 돼지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뚜렷한 생각을 말했다. 앞줄에 앉아 있던 어린 식용 돼지 네 마리가 찬성할 수 없다며 날카로운 소리를 꽥 지르더니 재빨리 벌떡 일어나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갑자기 나폴레옹을 둘러싸고 있던 개들이 위협적으로 낮고 으르렁거렸고, 돼지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그 자리에 앉아 버렸다. 그러자 양들이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고 거의 15분 동안이다 큰 소리로 외쳐 대는 바람에 토론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103)

그해 내내 동물들은 지난해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했다. 농장의 일상적인 일을 다 하면서 전보다 두 배나 더 두껍게 풍차의 벽을 쌓고 예정된 날짜에 풍차 건설을 끝낸다는 것은 엄청난 노동이었다. 존스 시대보다 더 오랫동안 일하고 먹는 것도 더 나아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스퀼러가 기다란 종이 두루마리를 앞발로 들고 각 식량 생산량이 2백 퍼센트, 3백 퍼센트, 혹은 경우에 따라 5백 퍼센트 증가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통계 수치를 발표했다. 동물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반란 전의 생활상이 어땠는지 뚜렷이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통계 수치는 아무래도 좋으니 먹을 것이라도 많이 먹어 봤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나날들이었다.


(137)

여하튼 동물들은 잘사는 것 같지 않은데 (물론 돼지들과 개들은 빼고) 농장은 더 부유해진 것 같았다. 어쩌면 돼지들과 개들의 숫자가 불어난 것도 그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돼지들과 개들도 나름대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스퀼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한 대로 그들은 농장 일을 감독하고 조직하는 데 할 일이 많았다. 이런 일들 중 상당 부분은 무지한 다른 동물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스퀼러는 돼지들은 <문서>, <보고서>, <의사록>, <각서>와 같은 알 수 없는 것들에 매일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것들은 글씨로 뒤덮인 커다란 종잇조각으로 글씨가 다 채워지면 즉시 아궁이에 던져져 태워졌다. 이 일은 농장의 복지를 위해 아주 중요하다고 스퀼러가 말했다. 그러나 돼지들과 개들은 자신들의 노동으로 어떤 식량도 생산해 내지 못했다. 게다가 그들의 수는 굉장히 불어났고 식욕도 늘 왕성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5)

적정한 기술이 사람의 삶을 바꾸듯 적정한 심리학 이야기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론이 아닌 실생활에서 실질적인 위력을 갖는 실용적인 심리학 정도로 바꾸어 설명할 수도 있겠다.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소박한 심리학을 나는 적정심리학이라 이름 붙였다.


(39)

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둥거리며 보내는 모르스 부호 같은 급전(急電)이다. “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거의 다 지워진 것 같아요.”라는 단말마다. 공황발작의 원인을 생물학적 요인 중심으로 판단하면 증상을 없애기 위해 약물치료에 보다 치중하겠지만, 그러다 보면 공황발작이 의미하는 개인의 심리적 상태에 대한 집중과 해결은 놓치기 쉽다.


(50)

사람은 상대가 하는 말의 내용 자체를 메시지의 전부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그 말이 내포한 정서와 전제를 더 근원적인 메시지로 파악하고 받아들인다. ‘너는 옳다고 해주면 A는 지금 집밖을 배회하는 내가 참 잘하고 있구나라고 믿는 게 아니라 찌질하게 구는 나를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의 존재를 통해서 자기 존재에 대해 안심하게 된다. 산소가 희박한 순간에 고농축 산소를 들이켜는 것이다. 사람은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다. 생각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정서적인 존재다. 어른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다.


(88)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직장 생활은 한 인간이 입체적인 모습과 다양한 역할로 사는 시간이 아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도구로 살아온 시간이며, 사회적 성공이란 자기 억압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런 삶의 끝에서 만나는 은퇴란 몸에 밴 가지 억압이 한꺼번에 풀리는 일대 사건이다. 과장하자면 평생 감옥에 있다 출소하면서 눈부신 햇빛에 눈을 찡그리는 출소자 같은 상태다. 24시간 정해져 있는 삶을 살다가 사방 어디로든 발을 떼어도 되고 언제 먹든 언제 잠자리에 들든 자유로운 상태다. 비로소 내 삶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103)

심폐소생술은 심장 외 다른 장기들은 제쳐놓고 오로지 심장과 호흡에만 집중하는 응급처치다. 심장 기능만 돌아오면 몸의 다른 모든 기능은 알아서 연쇄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CPR도 마찬가지다. 심리적 CPR라는 존재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 심장 압박을 할 때는 두꺼운 옷을 젖히고 옷에 붙은 액세서리도 다 떼고 정확하게 가슴의 중앙 바로 그 위 맨살에 두 손을 올려놓는다. 심리적 CPR처럼 보이지만 가 아닌 많은 것들을 젖히고 라는 존재 바로 그 위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121)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착하는 일이 아니다. 그 방식으론 상대를 끝까지 부축해 낼 수 없다. 둘 다 늪에 빠진다. 공감은 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누군가를 공감한다는 건 자신까지 무겁고 복잡해지다가 마침내 둘 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너를 공감하다 보면 내 상처가 드러나서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나도 공감받고 나도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공감하는 사람이 받게 되는 특별한 선물이다.


(125)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 조각 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 상황을, 그 사람을 더 자세히 알면 알수록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할수록 공감은 깊어진다. 그래서 공감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내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얻게 되는 무엇이다.


(153)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공감자가 되기 위해선 그의 마음에 대해 에게 물어야 한다. 돕는 자로서의 견해를 말하거나 주장하기보다 에게 주목하고 그의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 한다. 그의 세세한 속마음은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전문가가 알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비로소 그에게 질문을 시작할 수 있다. 그만이 아는 그의 마음에서 혼돈을 끝낼 그만의 길이 나온다. 당사자가 그것을 속속들이 느끼고 만질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공감자의 일이고 그것이 치유다.


(158)

공감은 상처를 더 그러낼 수 있게 만들고 제대로 드러난 상처 위에서 녹아드는 연고다. 상처 위에 바로 스민다. 상처 부위를 덮고 있는 겉옷 위에 뿌리는 분무제가 아니라 옷을 젖히고 상처 난 바로 그 부위 맨살에 바르는 약이다. 정확하고 집중력 있는 공감은 문제 해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진다. 공감은 치유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장하는 강력한 치유제다.


(171)

친구를 때린 아이와 엄마의 관계처럼 부모와 미성년 자식 간에 생기는 대부분의 정서적 갈등은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공감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다. 부모만 잘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부모가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고 사과하고 제대로 공감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허무할 만큼 어렵지 않게 갈등이 풀린다.

그러나 성인 간의 관계는 다르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지만 나만 잘한다고 되지 않는다.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도 있다. 그것까지 내가 짊어질 이유는 없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 어떤 관계에서든 납득할 수 없는 심리적 갑을 관계가 일방적이고 극단적으로 계속된다면 이런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것이 더 건강하다. 우선 내 건강성을 지켜야만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다.


(203-204)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기쁨과 즐거움이거나 배움과 성숙, 성찰의 기회일 때다. 그것이 관계의 본질이다. 끊임없는 자기 학대와 자기혐오로 채워진 관계에서 배움과 성숙은 불가능하다. 자기 학대와 자기혐오가 커질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끊어야 한다.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면 끊어야만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관계들이 의외로 많다. .관계를 끊으면 그때서야 상대방도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계기가 만들어진다. 그런 계기로 삼지 못해서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되어도 그건 그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247)

공감이란 제대로 된 관계와 소통의 다른 이름이다. 공감이란 한 존재의 개별성에 깊이 눈을 포개는 일, 상대방의 마음, 느낌의 차원까지 들어가 그를 만나고 내 마음을 포개는 일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내 마음, 내 느낌을 꺼내서 그와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일이다. 그렇게 서로의 개별성까지 닿지 않으면서 함께 사는 부부는 서로의 역할에 충실한 기능적 관계이기 쉽다.


(315)

공감이 그렇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것처럼 숨 막히는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공감이 몸에 배인 사람은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없는 것 같던 공간이 순식간에 눈 앞에 펼쳐진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공감이 하는 일이다. 사람은 그렇게 해서 사지를 빠져나올 수 있다. 공감의 힘이다. 그렇게 놀랍고 아름다운 공감의 힘을 내가 가진 경험과 정성을 다해 펼쳐놓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것이 지금 내가 가진 나의 모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3-24)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도무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보지 않는다. <그 애의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그 애도 나비를 채집하니?> 절대로 이렇게 묻는 법이 없다. <그 앤 나이가 몇이지? 형제들은 몇이나 되고? 몸무게는 얼마지? 그 애 아버지는 얼마나 버니?> 항상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 묻고 나서야 어른들은 그 친구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여러분들이 <나는 아주 아름다운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는데요, 창문에 제라늄이 있고, 지붕 위에 비둘기가 있고……> 이런 식으로 어른들에게 말한다면, 어른들에겐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10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 비로소 그들은 소리친다. <정말 예쁜 집이겠구나.>


(44)

그때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한 거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꽃을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 꽃은 나를 향기롭게 해주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었어. 거기서 도망쳐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 어설픈 거짓말 뒤에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꽃들은 정말 모순덩어리야! 하지만 난 꽃을 사랑하기엔 너무 어렸어.”


(53)

바로 그렇다. 누구에게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해야 하느니라.” 왕은 계속했다. “권위는 무엇보다도 이성에 근거를 두는 법이니라. 네가 만일 네 백성들에게 바다에 빠져 죽으라고 명령을 한다면 그들은 혁명을 일으키리라. 짐이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은 짐의 명령이 지당하기 때문이니라.”


(76)

할아버지 생각엔 제가 어딜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는 물었다.

지구가 괜찮아.” 지리학자가 대답했다. “그 별은 평판이 좋아……”

그래서 어린 왕자는 자기 꽃을 생각하며 길을 떠났다.


(92-93)

나는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모두를 너무나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물론이지.” 여우가 말했다. “너는 아직 내게 세상에 흔한 여러 아이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네가 필요 없어. 너도 역시 내가 필요 없지. 나도 세상에 흔한 여러 여우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한 여우에 지나지 않는 거야.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이 세상의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고……”


(94-95)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 알수 없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어느 것도 알 시간이 없어. 그들은 미리 만들어진 것을 모두 상점에서 사지. 그러나 친구를 파는 상인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서 바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나는 곁눈질로 너를 볼 텐데, 너는 말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이 앉아도 돼……”


(98-99)

잘 가.”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되풀이했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너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나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되풀이했다.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여우는 말했다.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되풀이했다.


(110-111)

아저씨네 별에 사는 사람들은,” 어린 왕자가 말했다.

정원 하나에 장미를 5천 송이나 가꾸고 있어…… 그래도 거기서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찾지는 못해……”

찾지 못하지.”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장미꽃 한 송이에서도 물 한 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을 텐데……”

물론이야.”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덧붙였다.

하지만 눈은 장님이야. 마음으로 찾아야 해.”


(119)

사람들에겐 별이라고 해서 다 똑 같은 별은 아니야.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겐 별이 길잡이일 거고, 어떤 사람들에겐 작은 빛에 지나지 않을 거야. 학자들이라면 별을 문젯거리로 생각하겠지. 내가 만난 사업가들한텐 별은 황금이야. 그러나 별은 말이 없어. 아저씨가 보는 별은 다른 사람들하곤 좀 다를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내가 그 별들 중의 어느 별에서 살고 있을 테니까, 그 별들 중의 어느 별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에겐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으로 보일 거야.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가지게 되는 거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1-31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31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1-31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어린왕자는 명작인거 같아요~!!

bookholic 2022-02-01 09:42   좋아요 1 | URL
저도 다시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예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다음엔 또 어떤 느낌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