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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 하서명작선 40 ㅣ 하서명작선 40
헉슬리 지음, 황종호 옮김 / (주)하서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놀라운 소설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의 연장선에 있으면서 1984년의 미래를 그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던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중앙 런던 인공 부화 조건 반사 육성소에서 시작된다.
인공 부화라든가 조건 반사 육성에서 상상할 수 있는 조류라든가 동물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다.
이곳 육성소에서는 '일정한 규격'에 맞는 '인간'을 '대량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대의 의학, 과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복제, 배아, 줄기세포, 맞춤아기 따위의 일들이 이곳에서는 당연하게 이루어진다.
특정한 계급의 '인간'을 그 계급의 인간이 수행할 '업무'에 꼭 필요한 조건들에 맞춰 육성하고 불필요한 조건들은 제거하는 것이 이 육성소의 업무이며 누구도 그것에 의문이나 이견을 제시하는 일은 없다.
그들의 세계는 '공유' '균등' '안정'이라는 표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표어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반영하며 완벽하게 함축하고 있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따위로 분류되는 각각의 계급들은 서로 완벽한 위계를 지니며, 발생 단계에서부터 완벽한 화학적, 심리적 처리를 거쳐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좋아하는" 불행을 모르는 하나의 세계의 세포로써 기능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세계에나 그렇듯 이 완벽하고 완전한 세게에도 부적응자가 존재했다.
그의 이름은 '버나드', 그는 알파 플러스라는 우수한 지배 규격의 인간이지만 발생 단계의 어떤 처리가 잘못되어(소문에) 하급 규격의 인간의 특성이 발현되고 만 존재다.
그는 줄곧 육체적 결함에 대한 의식의 과잉에 시달렸고 다른 인간들과 어울리지 못했으며 늘 외로워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완전히 이해해주는 친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헬름홀츠' 같은 알파 계급이며 '100% 알파'라고 불릴 정도로 우수한 육체적 조건을 타고 났으며 능력 또한 우수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의 완벽함에 열광하는 사람들 속에서 되려 괴로워하며 결국 극심한 고독에 시달린다.
그런 그들에게 '야만인' 존의 존재는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임신과 출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개념이 극도의 혐오를 줄 뿐인 것으로 '조건 반사 교육'이 이루어지는 이 세계에서 존은 특별한 케이스였다.
우연히 '야만인 육성 지구(원주민을 놓아 기르는 지역, 그들은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에 관광을 갔던 알파 계급의 남자와 베타 계급의 여자가 불의의 사고로 남자는 돌아가지만 여자는 그곳에 남겨지고 완벽히 이루어졌을 피임이 실패해 태어난 존재가 그다.
그런 그를 야만인 지구에 관광갔던 '버나드'가 신세계로 데리고 오면서 이야기는 급진전 된다.
이 세계에서는 '정조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인은 만인의 것이다."가 그들의 이념이며 완벽히 조건 반사 교육이 이루어진 '신 인류'에겐 쾌락이든 무엇이든 통제없이 마음껏 허락된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을 '야만인' 존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을 이해하지 못한다.
'신 인류'에겐 '소마'라고 불리는 약물이 상시 지급된다.
'소마'의 효력은 모든 것을 잊게해주는 것.
괴로움도 슬픔도 시간마저도 완벽히 잊게 해주는 것이 '소마'였다.
발생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각종 처리와 조건 반사 교육 그리고 '소마'의 조합은 너무나 완벽해 모두가 행복한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존은 베타 계급의 레니나라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레니나 역시 존을 사랑했지만 존과 레니나의 사랑은 같을 수 없었다.
존은 '야만인의 세계'에서 자라며 그들의 사상을 익히고 있었고 늘 비난당하는 어머니를 봐왔기에 '만인은 만인의 것이다'라는 개념을 인정 할 수 없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일어난 불의의 사건들로 존과 버나드와 헬름홀츠는 이 세계에서 추방되게 된다.
중앙 런던을 떠나온 후 존은 어떤 등대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를 구경하기 위해 많은 인간들이 찾아와 그를 귀찮게 한다.
존은 자신의 그릇된 욕망들을 정화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데 그 행위가 특히 신세계 인간들의 관심을 끈다.
급기야 그를 찾아온 인간의 무리는 그에게 채찍질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존은 그를 찾아온 레니나를 향해 무참한 채찍질을 행한다.
자신에게까지 심한 채찍질을 했던 그는 정신을 차리고 난 후 등대에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된다.
부끄럽지만 내 비겁한 무기가 할 말이 정리되지 않으면 줄거리를 늘어놓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줄거리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아무리 잘 읽히는 소설조차 나를 괴롭히게 되는 이유는 감상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은 결여되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능력의 결여는 때로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신세계에는 그러한 괴로움이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은 완벽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적합하게 발생하고 성장하고 키워진다.
때로 찾아오는 혼란, 우울, 괴로움은 '소마' 1그램이면 씻은듯 사라진다.
그들은 불행을 알 수 없으며, 차별이나 부족 불안에의한 괴로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똑같은 규격의 상품을 찍어낸 산업화 된 공장처럼 심지어 그들은 인간조차 '보카노프스키 법'이라는 특별한 방법으로 복제하여 사용할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이라기보다 '부품'에 가깝다.
이 이야기의 배경 연대로 등장하는 '포드00년'이라든가 '신'을 칭하는 감탄사가 '포드님'인 것이나 "값싼 자동차이신 포드님"이라는 욕이 존재하는 것에서 급격히 발전하는 규격화 된 산업에 대한 작가의 우려와 불안이 엿보인다.
이 이야기를 예사로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이 소설과 많은 점에서 닮아있기 때문이다.
과학과 사회제도 심지어 가치관까지 지배하는 세계와 그 세계에 아무런 불만도 요구도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인간들.
표현할 수 없이 섬뜩하기만 하다.
버나드나 헬름홀츠의 고독과 존의 죽음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수 많은 것을 박탈당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이 정말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정리는 되지 않으면서 자꾸 의문만 느는 충격과 경악의 참 먹먹한 이야기였다.
아, 이 소설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인용된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렇게 무리하게 마무리 짓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나라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