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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정치경제학 - 하버드 케네디스쿨 및 경제학과 수업 지상중계
천진 지음, 이재훈 옮김 / 에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정치나 경제라는 말은 사실 내겐 무척 낯선 단어들이다.
늘 개인적 의미의 경제 활동을 하고, 선거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결국 겉돌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당연함의 이유는 "내가 어떻게하든 달라질 것은 없잖아?" 혹은 "골치아파, 자기들끼리 치고 박으며 알아서 하라 그래."와 같은 포기와 무관심이었다.
하지만 나이들어가면서 경제 활동의 중요성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책임, 욕구)이 커져가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측 불가능한 정치⊙경제적 요인이 늘어갈수록 그에 따른 불안이 증가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문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불안을 방지할 지적 공백을 메우기란 지금에 와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시점에서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경제나 정치적 흐름과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될 예정에 있는 정책들의 학문적 근거에 대해, 경제적 이슈들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인 나도 어느정도 알고 있는 굵직한 사례를 배경으로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사례를 통해 제시되고 해석되는 견해들을 통해 현재의 국제 정세를 희미하게나마 쫓아갈 수 있도록 간결하게 적어나가고 있다.
먼저 책의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자.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추가로 부록이 딸려있는 형식이다.
1장에서는 각국의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인플레이션의 관계에 대해 여러 사례와 견해를 보여준다.
통화와 환율정책에 있어 중앙은행의 재량권을 얼마나 부여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환율의 역할 그리고 환율에 적용되는 각각의 환율정책의 특성과 장단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와 현재 그리스가 겪고있는 극심한 재정위기와 같은 경제적 위기에서 찾을 수 있는 교훈과 IMF의 역할 등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2장에서는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의료보험에 있어 미국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현상(의사의 과다진료 행위, 가입 환자의 의사에 대한 집요한 소송, 의료보험 미가입자의 무임승차)을 자세히 다루면서 그 심각성을 보여주고, 의료보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 따르는 정치 경제적 어려움들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불평하는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제도는 비교적 우수한 제도와 시스템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3장에서는 경제학의 탄생과 변화, 종교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적 간략히 적고 있다.
4장에서는 경제학의 새로운 분야로 개척되고 있는 문화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다룬다.
지금까지는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았던 분야로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과제로 소개되는 형태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탄소 배출관련 국제 협의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미국의 다양한 분야의 현실들에 대해 각 분야의 권위자들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사례를 분석하고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고 행해진 논의와 제안된 방안을 이야기하던 앞 장들과는 달리 정치경제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근본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주목한 것은 경제와 정치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많은 경험을 지닌 비중있는 학자라고 하는 이들도 섣불리 어떤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는 것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인 제프리 프리든 교수는 "저는 전형적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 질문을 던질 뿐이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학자와 교수의 역할은 해결책을 정해 내놓는 것이 아닌 다양한 견해와 방안을 연구하고 논의될 수 있는 씨앗을 뿌리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마지막 장의 끄트머리에 저자는 전 하버드 대학 총장의 '행복'에 대한 강연을 들려준다.
결국 우리가 올바른 정치를 갈구하고, 적절한 경제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함일 것이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행복의 수단'으로 이용하던 것들이 되려 '목적'이 되어 우리의 행복을 갉아내고 불안을 증대시키게 된 것 뿐이다.
부록을 통해 저자는 하버드 대학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적고 있는데, '하버드'라는 대학이 가지는 강점이 특별한 '개성적' 사람들이 아닌 다양하고 수준 높은 연구와 견해를 접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큰 대학과 작은 대학을 옷의 경우 가격이 비싼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닌 내게 잘 맞는가의 문제라고 비유하며 큰 대학이 좋고 작은 대학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내 목적에 적합한가 부적합한가의 구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학의 가치가 그 이름과 명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학문적 욕구와 목적에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입시에 목숨까지 오가는 우리나라 현실에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나 역시 정치와 경제에 대해 무척 무관심했었다. 내가 신경쓴다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답이 있는지 그들 스스로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나은 답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고도 한다.
99.99% 불가능한 일이라도 해보면 0.01%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그 0.01%의 가능성마저 사라져버려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린다.
가능과 불가능은 어쩌면 아주 작은 차이가 만드는 것일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막상 감상을 적으려니 무슨 말을 어떻게 적어내야 할지 무척 고민됐었다.
사실 내게 쉬운 책은 아니었다.
어렵고 낯선 용어도 많았고, 동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무관심 했던 것들에 대한 관심도 결국 나를 위한 자기위안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불안과 불만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무엇인가 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 나에겐 큰 의미가 되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읽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달 마지막으로 읽었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 두었던 것도 큰 힘이 되었다.
무의미 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라도 '도전'하다보면 가까워질 수 있다.
이 책 속에 담긴 수 많은 세계적 석학들의 이야기는 깊고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단지 질문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
학문적 목적으로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깊이도 수준도 없는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무관심'에서 벗어나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렸다.
세상은 소통을 이야기하고, 학문은 통섭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은 시도였고, 사소한 노력이었지만 조금 더 세상으로 통하는 통로가 넓어진 기분이다.
이 서평은 네이버 북카페 이벤트를 통해 해당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개인적 주관에 의해 작성된 감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