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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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음

 

장은진

 

몇 년 전... 이 작가 님을 알게 되었다.(뚜루 님의 카페에서 책 읽기를 통해서 알게 된 작가... 그 뚜루님은 어디서 무얼하실까?) 참 독특하고 참신하면서 재미있는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이다.

많은 작품을 하시는 분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잊고 살았다가 서점에서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작가 편에서 만났다. 이런 시리즈는 그리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읽고 나서는 참 좋았지만 읽기 전까지는 손이 가기 어렵게 나온 책 같다... 나에게는 그렇다. 딱 각 잡힌 양장본 스타일은 손이 좀 덜 간다. 무거운 책도 싫은데 무거울 거 같고 뭔가 어려울거 같고.... 그래서 보건교사 안은영도 한참 뒤에 읽었다. (물론, 너무 너무 상큼하고 기발하고 재미있었지만....)

 

암튼 그래도 제목도 표지도 괜찮아서...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처럼 다른 책을 제치고 이 책을 선택해서 읽게 되었다.

 

잠깐 책소개를 볼까...

세상은 끝나 가는데, 사랑이 시작됐다

이상기후, 폭설, 재난, 그리고 마지막 하루

종말에 대처하는 연인의 자세

 

장은진 장편소설 날짜 없음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날짜 없음은 긴 겨울이 계속되는 기이한 재난을 배경으로, 모두가 떠나 버린 텅 빈 도시에서 살아가는 연인의 하루를 다채로운 감정과 대화 들로 채워 넣은 장은진식 고립형 재난 로맨스다. 장은진의 소설에는 대부분 혼자만의 공간에 고립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타인과 단절되고 싶은 동시에 연결되고 싶은 욕망을 그려 내는 것은 장은진의 특기다. 대개 종말소설에서는 재난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긴 여정을 떠나거나 험난한 생존 게임에 휘말리는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 준다. 그러나 장은진이 주목하는 이들은 떠나지 않고 남은 자들, ‘하지 않을 것을 택한 사람들이다. 추위와 공포를 무릅쓰고 도시를 탈출하면 더 나은 곳에 도착할지도 모른다거나 먼저 떠나보낸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보다, 그들에겐 지금 하고 있는 연애가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이 젊은 연인의 태도는 우리 세대 청년들이 미래에 대해 지니는 태도 혹은 가치관에 대한 거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뭔가 실험가 같은 작가 님은 평범한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시작부터 숫자다.

 

179

그게 온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178~1까지 이야기가 계속 된다.

완전 재난 상황이다. 어느날 붉은 비가 계속 오더니 어느 순간부터 회색 눈만 내린다. 아무것도 자라지 못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뭔가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고 많은 이들이 죽었고 죽이고 죽어가며 떠나는 곳에서의 하루의 이야기이다. 처음에 읽을 때는 집중이 안 되었다. 그러나 조금 읽어가면 갈수록.... 어둡고 우울하고 꿀꿀하기만 할 것 같은 재난 세상의 고립된 인간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차갑고 쓸쓸하지만은 않다.

참 독특한 작가다. 외로운 이야기를 하는 건데.. 사랑이 있고 이웃이 있고 인간미가 있고 이상하게 희망이 있다. 가족이 떠난 곳에서 남은 의사인 그녀에게는 구둣방을 하고 있는 그가 있다. 그에게는 이라는 개 한 마리가 있는데 버려졌던 그 에게 대하는 눈빛에 그녀는 그에게 먼저 반했다. 많은 이들이 회색인이 되어 도시를 벗어났다. 뭔가 좀비의 행렬같은 그들의 순례 행렬에서 이탈한 그들에게는 .... 오늘이 마지막 날인지도 모른다. ‘그게온다니까...대략... 지구 종말이라고 할까?

그렇게 그의 컨테이너 구둣방(가게 겸 숙소)에 있자니 습관처럼 마직막 인사처럼 많은 이들이 잊을만하면 한번씩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들....

 

책이 참 매력있었다. 어두울 것 같지만 그래도 우울이 다가 아닌... 왜 종말을 이야기하는데 따뜻함이 있지? 이야기 중간에 환상특급이야기가 나온다. .. 초등학교 때 정말 재미있게 봤던 이야기였는데...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고 친구들에게도 얘기했고 언젠가 나의 일기장에도 쓰여있는 이야기가 여기 나온다. 항상 부산한 자녀들과 이웃 때문에 전쟁을 치르고 살고 있는 그녀는 조용히 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발견된 오래된 시계 모양의 목걸이... 그걸 끼고 조용히 해!” 했더니 모든 것이 멈췄다. 사람들도 공기도, 바람도, 새도, 물도... 정신 사나운 일상에서 이 stop의 시간을 누리며 행복했던 그녀에게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소련이 핵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녀는 선택한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대신 그녀는 끝없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 암튼 이런 이야기... 나는 종말을 맞을 때 어떤 것을 선택할까?

 

주문을 풀래요

왜요?”

혼자 남겨지는 것보다는 곁에 있는 사람과 죽는 편이 덜 불행하지 않을까요.”

“......”

같은 순간을 살다, 같은 순간에 죽는 것. 해인 씨는요?”

“......”

왜 대답 안 해요?”

저도요

정말 우리가 하는 얘기를 엿듣고 있었던 걸까? 반이 자기도 그렇다는 듯 내 말에 멍, 하고 짖었다. 하지만 저마다의 눈동자는 모두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게 마법의 목걸이가 있다면 그 움직임만은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들의 불안이 아니라 그들의 불안을 지켜봐야만 하는 나의 불안을 위해서. p.93

 

주인 남자는 개의 몸에 쌓인 눈을 맨손으로 털어 주며 오랫동안 눈을 맞췄다. 나는 그 광경을 밖에 서서 숨죽인 채, 눈을 맞으며 지켜봤다. 순간 심장이 꽁꽁 얼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 찾아왔다. 고약한 날씨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 남자의 눈빛 때문에. 그것은 아주 아득하면서도 묘하게 퍼져 나가는 기운이었는데, 그 경건한 냄새로 눈 속에 숨쉬고 있는 건 사람이었다. 내가 의대 공부며 병원냄새로 조금씩 잃어 갔던 인간의 것. 나와 세상이 가져 본 적 없거나 가졌지만 부족하게 가진 걸 그 개의 주인은 제대로 갖고 있었고, 써야 할 곳에 쓰고 있었다. 내가 반한 것이다. p.126

 

그의 인생 모토는 발이 편해야 인생이 편해진다였다. 내 인생이 편치 않았던 건 발 때문이었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발이 아프고 불편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았다. p. 170

 

정말 몰입해서 읽었다.

작가의 말이 나는 항상 가장 좋다.

 

날짜 없는 달력을 대하듯

소설을 쓰는 일은 백지를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모래 위에 까만 문장으로 지어 올리는 작은 세계

벽돌을 차곡차곡 쌓듯 어떤 문장으로라도 백지를 채워 나가야만하는 하는 일.

건너뛰기나 생략할 수 없으면, 날짜 없는 달력처럼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나는 매번 깜빡 잊고는 한다.

그 세계를 모래 위에 지었다는 사실을.

자그마한 바람에 하나의 세계가 부서지고 나면 파도는 잔해들을 쓸어 가고

내 앞에 백지가 막막하게 놓인다.

날짜 없는 달력처럼 언제 문장이 시작될지 알 수 없는.

 

그렇게 다시, 고통과 절망뿐이 백지 위에 홀로 서 있다. p.263

 

작가님의 고통과 고독으로 만들어진 이 글이 참 좋았다. 감사하다. 항상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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